소설리스트

나는 교황이다-32화 (32/225)

# 32

10. 똑똑히 보여주마(1)

“그냥 본인을 잡아가면 되지 왜 귀찮게 이런 짓을 해야 하는 거야?”

“일 한두 번 하냐? 가족이 걸려 있어야 반항할 생각을 못하는 거야.”

“그냥 간단하게 잡아서 손가락 하나 자르면 될 걸 뭘…….”

야쿠자 3대 조직 중 하나, 이나가와 카이의 조직원인 시미즈 켄타가 늘어지게 하품을 쏟아냈다.

도세은이라는 각성자가 대체 누군지, 상부 명령으로 그 각성자의 가족들을 감시하고 있었다.

그와 같은 조로 파견된 모리 아베는 지루한 기색이 역력한 켄타와 달리 기강이 바짝 든 태도로 임무를 수행하고 있었다.

“어이어이. 어차피 우리 말고도 다른 놈들이 잘하고 있다고. 번갈아 가면서 쉬다 오면 안 될까?”

“안 돼. 2인 1조가 규칙이다.”

“전투하러 온 것도 아닌데 깐깐하게 굴기는.”

단호한 아베의 말에 켄타는 투덜거리며 품에서 담배를 꺼내 불을 붙였다.

“푸우.”

하얀 연기가 켄타의 입에서 하늘로 솟아올랐다.

“빨리 다음 명령이 내려왔으면 좋겠고만.”

더 이상 기다리는 임무에 지친 켄타가 끊임없이 투덜거렸다.

그러나 아베가 그런 켄타의 말이 들리지 않는다는 듯이 자세를 유지하며 타켓의 집을 감시했다.

“아, 화장실 좀 다녀올게.”

이윽고 담배 한 개피를 모두 끝낸 켄타가 아베에게 말했다.

아베는 켄타 쪽으로는 시선도 주지 않은 채 고개만 끄덕였다.

“쳇. 성실한 척 하기는.”

골목을 돌아 근처 상가의 화장실을 찾아 들어가면서 켄타가 나지막이 욕설을 내뱉었다.

별것도 아닌 임무에 저렇게 성실한 척 하던 아베가 마음에 들지 않았다.

“조금 더 널널한 놈이랑 왔으면 좋았을 텐데.”

파트너 운이 없는 자신을 탓하며 켄타는 화장실에 들어가 바지 지퍼를 내렸다.

부르르―

잠시 쪼르륵거리는 소리가 들리고 이내 켄타의 몸이 부르르 떨렸다.

“크으, 시원하다.”

달칵―

켄타의 방뇨의 짜릿함을 느끼고 있을 때 누군가가 화장실 문을 열고 들어왔다.

퍽!

동시에 둔탁한 타격음과 함께 바지를 반쯤 내리고 있던 켄타의 몸이 옆으로 쓰러졌다.

치직―

“여기는 오메가 원. 타켓 한 명을 제압했다.”

―여기는 알파. 오메가 원 수고했다. 다음 장소로 이동하라.

“썰! 알겠다.”

남자는 쓰러진 켄타의 뒷덜미를 잡고 화장실에서 유유히 사라졌다.

* * *

“켄타, 이 자식은 왜 안 오는 거야?”

계속 타켓의 집을 감시하던 아베는, 화장실에 가겠다고 사라진 켄타가 시간이 꽤 지나도 오지 않자 불만을 터트렸다.

“처음부터 계속 불만이더니만 어디 가서 땡땡이치고 있는 거 아냐?”

잠시 자리를 비우더라도 근처를 찾아봐야 할지 고민하던 아베가 순간 주변의 공기가 어색해지는 것을 느꼈다.

‘너무…… 조용한데?’

오러 유저 중에서도 기감이 조금 더 뛰어난 편에 속한 아베는 주변이 너무 조용해진 것을 의아하게 생각했다.

“하여간 켄타 새끼, 구제불능이라니까.”

‘골목을 돌아서 숨어본다.’

켄타는 타켓의 집 감시를 멈춘 다음, 마치 사라진 켄타를 찾으러 가는 것처럼 골목길을 돌았다.

샤삭―

그러고는 재빨리 옆으로 숨어 들어갔다.

타다닥―

공교롭게도 켄타가 골목길로 사라지자마자 두 명의 남자가 그를 따라 골목길을 꺾어 들어왔다.

“…….”

켄타는 뭐라고 표현할 수 없는 위화감에 숨소리를 죽이며 기척을 감췄다.

그러나 남자들은 평범한 사람인 것처럼 자연스럽게 켄타가 숨어 있던 곳을 지나쳐 갔다.

‘괜히 예민한 건가.’

자신의 예상과 다르게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자 켄타가 작게 한숨을 쉬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퍼억!

“……칙쇼.”

하지만 그때 어느새 되돌아온 남자가 긴장이 풀린 켄타의 후두부를 강타했다.

머리에서 느껴지는 강렬한 통증과 함께 의식이 흐려지는 것을 느끼며, 켄타는 욕설을 내뱉었다.

* * *

“그래? 그래, 잘했네.”

사노는 자신에게 걸려온 전화를 받고 밝은 표정으로 세은에게 말했다.

“미스터 도. 일본 야쿠자들을 일망타진했다고 합니다.”

“오, 그래?”

근처에서 쪼로록 차를 마시고 있던 세은이 사노의 말에 반색했다.

“예, 저희가 처리하겠습니다.”

“아아, 아니.”

세은이 사노에게 말했다.

“내가 직접 가지.”

“예? 굳이 직접 가실 필요가…….”

사노는 말끝을 흐렸다. 어차피 직접 가서 세은이 할 일은 없다고 생각했기 때문이었다.

그러나 세은의 말투는 단호했다.

“내 일이니 내가 마무리하겠어.”

“굳이 원하신다면…….”

사노는 세은과 함께 야쿠자들을 잡아 놓은 곳으로 이동했다.

* * *

“끄응…….”

뒤늦게 정신이 든 켄타가 신음을 내뱉었다.

“정신이 드나?”

“아…… 베? 뭐야? 여긴 어디지?”

켄타가 정신을 차리는 것을 본 아베가 말을 걸었다.

켄타는 잠시 당황했지만, 자신의 팔 다리가 묶인 채 갇혀 있다는 사실을 금방 알아챘다.

“이까짓 밧줄쯤……!”

웅―

켄타는 오러를 활성화시켜 밧줄을 끊어내려고 했다.

“칙쇼!”

그러나 오러의 힘에도 밧줄을 끊어지지 않았다.

“소용없어 켄타. 이미 우리도 다 해본 일이다.”

다시 들려온 아베의 말에 켄타는 그제야 주위를 자세히 둘러보았다.

널찍한 폐공장 같은 곳에는 자신을 포함해서 6명의 조직원들이 전부 밧줄에 묶여 내동댕이쳐져 있었다.

“뭐야, 이게 어떻게 된 거야?”

“붙잡혔다.”

“그건 나도 알아! 누가 감히 우리 조직을 건드렸는지가 궁금한 거다.”

“미제 양키놈들 같다.”

“양키?”

“나는 자세히 보지 못했지만, 기무라가 얼굴을 봤다는군.”

켄타는 아베의 말에 옆에 묶여서 얌전히 앉아 있던 기무라를 바라보았다.

“어이, 기무라. 확실한 거냐?”

“조선에서 우리를 건드릴 양키가 미국 말고 더 있나?”

기무라의 말에 켄타 역시 입을 꾹 다물었다.

확실히 유럽 놈들이 극동까지 와서 자신들을 건드릴 이유가 없었다.

“그리고 자네들이 마음 편히 잠들어 있는 사이에 몇 마디도 나눴지. 확실히 미국 놈들이었어.”

기무라의 말에 켄타가 다시 주위를 두리번거렸다.

“그런데 왜 아무도 없는데 도망칠 생각은 안 하는 거야?”

켄타의 말대로 폐공장에는 야쿠자 6명을 제외한 다른 인원들이 보이지 않았다.

“자네들이 일어나기 전에 친절하게도 밖에 있을 거라고 통보하고 가더군. 그리고 나간다하더라도 이렇게 오러도 사용하지 못하는 상태에서 얼마나 도망칠 수 있겠나.”

“그래도 시도는 해봐야 할 거 아냐?”

“굳이 묶어놓기만 하고 해를 끼치지 않는 상황이다. 긁어 부스럼 만들 필요는 없다고 보네만.”

기무라의 말에 다른 조직원들이 동의하는 몸짓을 보였다.

“흥.”

‘계집애 같은 새끼들.’

켄타는 그런 조직원들이 불만스러웠지다.

하지만 혼자서 움직일 수는 없었기 때문에 속으로만 욕을 삼켰다.

키잉―

그때 공장의 오래된 철문이 열리는 소리와 함께, 다섯 명의 사람이 안으로 들어왔다.

야쿠자들의 시선이 모두 한곳으로 향했다.

“미스터 도, 이자들입니다.”

“흐음.”

사노의 말에 세은이 가까이 다가서더니 그 앞에 쪼그려 앉았다.

야쿠자들이 매서운 눈으로 세은을 노려보았다.

세은은 그런 야쿠자들의 시선을 가볍게 흘려 넘기며 사노에게 물었다.

“말하면 통역됩니까?”

“그렇습니다.”

사노가 준비한 통역가가 세은의 말을 통역하기 위해 준비했다.

세은은 통역 준비가 끝난 것을 확인하더니 야쿠자들에게 말을 시작했다.

“야, 이 개새끼들아.”

시작부터 다짜고짜 튀어나오는 욕에 통역을 비롯한 일행이 모두 당황했다.

야쿠자들은 한국어를 알아듣지는 못했지만 세은이 욕을 했다는 걸 알아채고 같이 욕을 했다.

“저, 정말 통역합니까?”

그 와중에 통역은 사노에게 허락을 구하고 있었다.

사노도 처음에는 당황했지만 이내 고개를 끄덕여 통역에게 지시했다.

“그대로 하게.”

“아, 알겠습니다.”

세은은 다시 입을 열었다.

“어디서 감히 쪽바리 새끼들이 우리 가족을 넘봐. 이 뭣 같은 놈들아.”

“바카!”

“칙쇼!”

상상도 하지 못할 욕에 야쿠자들의 눈이 돌아갔다.

지금 이렇게 묶여 있다고 한들, 여리여리한 한국인이 자신들에게 욕을 하자 분노가 폭발했다.

그 와중에 아베는 이성을 붙잡아, 방금 통역이 했던 말의 주제를 파악했다.

‘가족이라고? 그럼 설마…….’

눈앞에 청년이 자신들의 목표란 사실을 알아챈 아베는 동료들을 진정시키기 시작했다.

“다들 진정해! 바로 이놈이 우리 목표 대상이다!”

“호오.”

통역의 도움으로 아베의 말을 알아들은 세은이 짙은 웃음을 지었다.

“그래도 원숭이 새끼 중에서도 똑똑한 놈이 있네.”

부들부들.

모욕적인 언사에 아베를 비롯한 모든 야쿠자들의 얼굴이 벌겋게 달아올랐다.

그러나 세은은 아랑곳하지 않고 계속 말을 이어 나갔다.

“남자 새끼들이 쪽팔리게 가족을 노려? 이래서 불량배 새끼들이 욕을 처먹고 다니는 거야. 혼자서는 뭘 하지도 못하는 새끼들 주제에.”

계속되는 세은의 말에 켄타는 거의 혈압이 머리끝까지 솟을 지경이었다.

가능하다면 당장이라도 자신을 묶고 있는 밧줄을 끊어내고 눈앞의 건방진 새끼를 붙잡아 손가락 마디마디부터 잘라내 주고 싶었다.

그러나 그런 마음을 알았는지 세은이 뜻밖의 제의를 했다.

“묶여 있으니까 답답하지? 풀어줄게. 원숭이 새끼들 풀어줘 봤자, 원숭이지.”

“예?”

이번에는 뒤에 있던 이지호가 놀라서 되물었다.

“세은 씨. 지금 풀어주신다고 했습니까?”

“예. 그러면 안 됩니까?”

“굳이 어렵게 잡은 놈들을 왜…….”

“제가 언제 보내준다고 했습니까? 풀어준다고 했지?”

“예, 그게 무슨…… 아!”

잠시 두 단어의 차이가 뭔지 고민하던 이지호는 이내 세은의 말에 담긴 뜻을 알아챘다.

세은은 잔혹할 정도로 짙은 미소를 입가에 지었다.

“이런 놈들은 확실하게 보여줘야 앞으로 기어오르지는 못하죠. 비위 약한 분 있으면 나가 계세요.”

그 와중에 통역은 열심히 세은의 말을 통역했다.

통역의 말에 야쿠자들은 화가 나기는커녕 점점 어이없다는 표정이 되었다.

혼자서 우리 여섯 명을 전부 상대하겠다고?

그들은 이나가와 케이에서도 고르고 고른 정예 조직원.

그러나 이지호는 다른 의미로 걱정을 하고 있었다.

‘아무리 세은 씨가 강하다고 해도 아직 청년인데…… 사람을 상대로 잘할 수 있으려나.’

그러나 이지호는 생각을 입 밖으로 꺼내지 않았다.

세은의 경고를 가볍게 넘기며 살짝 뒤로 물러나는 것으로 대답을 대신했다.

반대로 사노는 세은이 사람을 상대로 얼마나 실력을 보여줄지 관찰할 수 있을 기회에 눈을 반짝였다.

사노 역시도 이지호와 같이 뒤로 물러났다.

스미스와 통역까지 포함해서 모두 뒤로 물린 세은이 마지막으로 통역에게 말했다.

“자, 밧줄 풀어줄 테니 살고 싶으면 필사적으로 덤비라고 해주세요. 한 대라도 스치면 살려서 보내준다고.”

“예? 예…….”

통역의 말이 채 끝나기도 전에 켄타의 입에서 다시 욕설이 튀어나왔다.

“칙쇼! 바카! 퍽킹!”

얼굴이 벌개져서 욕을 내뱉던 야쿠자들을 보며 세은이 여유롭게 웃음을 지었다.

오랜만에 사람을 상대하는 거라 힘 조절을 하기 위해 옛 기억을 되살렸다.

이계에서 건달 놈들을 어떻게 혼내줬더라.

세은은 당장이라도 밧줄이 풀리자마자 달려들 준비를 하고 있는 야쿠자들에게 검지를 들어 까닥거렸다.

“드루와. 이 원숭이 새끼들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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