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나는 교황이다-30화 (30/225)

# 30

9. 화성 행궁 게이트(2)

“깽!”

쿠웅―

세은의 일격으로 마지막 놀이 처절한 소리를 내며 생을 마감했다.

동시에 사노의 감탄이 봉수당을 가득 채웠다.

“대, 대단합니다! 정말로!”

짝짝짝―

경외에 찬 외침과 함께 박수소리가 울려 퍼졌다.

“미스터 도의 능력은 우리의 예상을 아득히 뛰어넘었습니다.”

“알아.”

그러나 세은은 그런 사노의 칭찬에 전혀 관심이 없었다.

지금 세은의 관심은 오로지 자신의 가족을 감시한 야쿠자들의 처리였다.

지금이야 당장 한국에 야쿠자들이 들어와 있어 미국에 맡겼지만, 일이 정리되고 나면 일본으로 가야 되나 고민 중이었다.

‘제대로 본보기를 보여야 할 텐데.’

아무리 귀찮은 게 싫은데다, 평범하게 살고 싶은 세은.

하지만 적어도 건들면 안 되는 경계선을 확실하게 인식시켜줘야 할 거 같았다.

‘무작정 숨긴다고 될 상황은 이미 지난 것 같고.’

미국까지는 어떻게 그냥 넘어가려고 했다.

하지만 야쿠자 얘기가 나온 순간부터 생각을 싹 바꿀 수밖에 없었다.

이미 자신은 안보원을 돕는 바람에 공개될 대로 공개됐다.

그 정보를 믿고 안 믿고는 각 국가의 정보기관 재량에 달린 일이었지만 말이다.

하여튼, 이미 신상이 공개된 이상 이런 상황은 앞으로도 계속될 것이 자명했다.

‘차라리 한 번 크게 귀찮고 마는 게 낫지.’

지금의 사노의 반응을 보면서 세은의 생각이 더욱 굳어졌다.

“이제 게이트로 들어갈 건데, 제대로 진행되고 있는 거겠지?”

“하하. 물론입니다. 그런데 게이트에 그냥 이렇게 들어갈 겁니까?”

“문 제대로 닫고, 걸어 잠그려면 안으로 들어가야지.”

말을 하는 동안 어느새 이지호가 게이트 안으로 들어갈 인원을 선별하고 있었다.

그 모습을 본 세은은 안드라스 때의 찝찝하고 불쾌한 감정이 다시 살아나는 것을 느꼈다.

“실장님, 그냥 이번에는 저와 미국인 둘만 들어가는 게 나을 것 같네요.”

“아? 왜 그러십니까?”

이지호의 질문에 세은이 입술을 꾹 다문 채 좌우로 고개를 천천히 저었다.

“아…… 알겠습니다. 저만 따라 들어가겠습니다.”

이지호 역시 현장에 있던 사람으로서 지금 세은이 무엇을 말하는지 금방 알아챌 수 있었다.

이지호는 서둘러 준비를 마쳤다.

게이트 경계 명령을 내림과 동시에, 비상식량을 챙겨다 사노와 스미스에게 주었다.

“이게 뭡니까?”

“비상식량키트입니다. 게이트 안은 어떤 환경이 있을지 모르겠더군요. 크기도 제각각이고. 혹시 모르니 받으시죠.”

“오! 미스터 리. 감사합니다.”

이지호의 말에 사노와 스미스는 키트를 받아서 잘 챙겨들었다.

대충 준비가 끝난 것을 확인한 세은이 먼저 게이트 안으로 이동했다.

“이번에도 아시죠? 먼저 들어갈 테니 잠시 후에 따라오세요.”

“예, 알겠습니다.”

세은은 이지호에게 항상 하는 당부를 전하면서 망설임 없이 안으로 몸을 날렸다.

* * *

“자, 그럼 우리도 들어가죠.”

세은이 들어가고 3분 후. 이지호가 사노와 스미스에게 말했다.

사노와 스미스는 게이트 안으로 들어간다는 사실에 상당히 흥분하고 긴장한 모습이었다.

“오, 들어가서 되돌아 나올 수 있을까 걱정까지 듭니다.”

“다 아시지 않습니까? 걱정 말고 들어가시죠.”

“물론, 정보의 신뢰도 역시 백 퍼센트입니다만. 저도 사람인지라 긴장이 되는군요.”

“하하, 당연한 일입니다. 그럼 먼저 들어가서 기다리겠습니다.”

이지호가 먼저 게이트 안으로 몸을 날렸다.

“양키 둘은?”

잠시 대기하고, 사노와 대화를 나눈 그 짧은 사이에 게이트 입구 근처에 주둔하던 놀 떼의 씨를 말려 버린 세은이 이지호를 보고 물었다.

“금방 올 겁니다. 현재 매우 긴장하고 있습니다.”

“간도 작네요.”

세은이 말을 마치는 순간 사노와 스미스가 게이트 안으로 입장했다.

둘은 입장하자마자 여기저기 쌓여 있는 놀의 시체들을 보고 경악을 금치 못했다.

“서, 설마 그 짧은 사이에 이걸?”

“겨우 놀 가지고 호들갑은…….”

세은의 담담한 말에 사노와 스미스의 눈이 파도라도 만난 배처럼 더욱 거세게 흔들렸다.

세은은 먼저 시야에 들어온 숲으로 걸음을 옮기며 사노에게 설명을 시작했다.

“게이트는 항상 그곳을 점령하고 있는 보스가 있고, 그 보스를 없애면 탈출 할 수 있는 포탈이 생기지.”

세은의 능력에 익숙해져 담담한 이지호와는 달리, 사노와 스미스는 세은의 뒤를 따라가면서도 연신 학살당한 놀의 광경을 두 눈에 담고 있었다.

“다만, 지금의 각성자들의 능력으로는 게이트 진입을 추천하지 않아. 다들 고만고만해. 게이트 보스는커녕 중간에 함정 하나만 있어도 몰살당할 수준이야.”

“그럼 어떻게 해야 합니까?”

어느새 세은의 능력에 감명 받은 사노가 열정적으로 물었다.

“마법사들은 마나 링이라는 그릇을, 오러 유저들은 오러 홀이라는 그릇을 만들어서 자신의 수준을 더욱 계발하고 발전시켜야지.”

“혹시 오러 홀이라는 것이 오러를 한곳에 모아서 관리하는 것입니까?”

“응?”

예상치 못한 사노의 질문에 세은의 시선이 그에게로 돌아갔다.

“미합중국에서는 이미 오러 사용자들의 계발을 하고 있습니다.”

“자세히 설명해 봐.”

“이게 말로 설명하기는 애매한데…… 말 그대로 오러를 심장에 모아서 심장을 매개로 모아 퍼트리는 겁니다.”

“오러를 심장에 모아?”

마나도 아니고 오러를 심장에 모은다는 말에 세은의 표정이 이상하게 변했다.

“예. 저만 해도 그렇습니다.”

“잠깐 손 줘봐.”

세은은 거의 낚아채듯 사노의 손을 잡아 그의 몸 안을 관조하기 시작했다.

우웅―

세은의 신성력이 사노의 몸을 천천히 탐색했다.

‘정말로 오러가 심장에 모여 있다.’

정확히는 심장을 감싸듯이 둥근 구체의 모양을 형성하고 있었다.

“이거 누가 발견했어?”

“오러 사용자 중 한 명이 방법을 우연히 발견해 냈습니다. 이후로 오러 유저들은 조금씩이지만 꾸준히 강해지고 있습니다.”

“이거 좀 위험한데.”

“왓? 그게 무슨 말입니까?”

확인을 모두 끝낸 세은은 사노의 손을 놓은 다음 다시 걸음을 옮기며 설명을 시작했다.

“오러라는 건 원래 폭발적인 힘을 내는 힘이야. 그런데 그걸 심장 근처에 쌓는다? 조금이라도 몸에 이상이 생겨서 불안전해지면 심장에 바로 영향이 가.”

“그런데 마나는 심장에 형성하지 않았습니까?”

세은의 말을 듣고 있던 이지호가 물었다.

그의 물음에 세은이 자세한 설명에 들어갔다.

“마나는 그 자체가 자연의 기운이에요. 오러와는 안정성 자체가 비교가 안 되죠. 원래 오러는 극한의 수련을 통해 기감을 느낀 기사들만 사용할 수 있는데, 각성자들은 그런 식으로 깨우친 게 아니라 자세하게 설명이 힘듭니다.”

잠시 말을 멈추고 숨을 고른 세은이 다시 말을 이었다.

“하여튼 심장에 무리가 간다는 것은 경험으로 쌓여진 지식입니다.”

그러나 사노는 세은의 말을 그대로 받아들이지 않았다.

아직 미국의 오러를 사용하는 각성자들 중에서 심장에 오러를 쌓아 부작용이 일어난 사례가 없었다.

“의견은 감사합니다만, 아직 문제가 없었습니다.”

“뭐, 마음대로 하세요.”

어차피 세은은 문제가 생기기 전에는 이들이 받아들이지 않을 것이라 생각했기 때문에 그냥 넘어갔다.

이들은 충분히 그렇게 생각할 만한 자격이 있었다.

비록 잘못되기는 했지만, 스스로 능력의 계발 방법을 찾았다는 점에서, 세은에게도 역시 미국이라는 생각이 들게 만들었다.

“그나저나, 게이트 안은 원래 이렇게 평화롭습니까?”

처음에 세은이 학살한 놀 떼를 제외하고는 별다른 몬스터를 마주치지 않자 사노가 물었다.

“처음에 말씀드렸다시피, 게이트 내부는 너무 천차만별이라 자세한 정보를 알 수 없습니다.”

워우우―

그러나 그런 사노의 말이 씨가 되었는지, 놀보다 상위 몬스터인 웨어 울프의 울음소리가 때맞춰 들려왔다.

“울프?”

“그냥 늑대가 아니라 웨어 울프.”

게이트 안에 늑대가 있단 사실에 놀란 사노의 말을 정정해 주었다.

‘어쩐지 지형이 산에 가깝더라니.’

도대체 게이트가 어떤 기준으로 만들어지는지 세은은 슬슬 궁금해지기 시작했다.

마왕이 있는 게이트와, 없는 게이트가 어떤 차이인지.

거기다 왜 이런 일이 일어나는지.

벌써 몇 번이고 게이트에 들어오다 보니 자연스럽게 궁금해진 것이었다.

‘원인을 알면 아예 원인을 제거해 버리면 되는데.’

세은은 그런 생각을 하며 천천히 포위망을 좁혀오던 웨어 울프를 탐지했다.

“오른쪽에 다섯 마리, 왼쪽에 네 마리.”

세은은 간단하게 일행에게 웨어 울프의 위치를 알렸다.

그리고 어느 정도 준비가 되자, 세은이 무식한 방법을 선택했다.

“에일린. 홀리 애로우.”

처음 화성 행궁에서 가볍게 지원 사격을 하던 활과는 그 빛의 영롱함과 크기부터 다른 신성 마법이 캐스팅되었다.

시위를 당긴 세은은 무작정 왼쪽으로 화살을 쏘아 보냈다.

파아앙―

화살이 날아간 일직선상에 존재하는 모든 것들이 관통당했다.

“깨애앵!”

거기에 웨어 울프 한 마리가 재수 없게 걸렸는지 애처로운 울음소리가 숲을 가득 채웠다.

“아우우!”

“아우!”

동료가 당하자 웨어 울프들이 거침없이 뛰쳐나와 세은에게 달려들었다.

팡― 팡― 팡―

처음에 쏘았던 화살과는 다르게 가벼운 파공성이 여러 번 울려 퍼졌다.

그리고 그 화살들은 정확히 왼쪽에서 달려들던 웨어 울프 세 마리를 노리며 날아갔다.

“호오. 이걸 피해?”

그런데 홀리 애로우를 맞고 쓰러진 두 마리와는 달리, 가장 앞에서 달려오던 웨어 울프가 세은의 화살을 피해내었다.

“그러고 보니 너만 색이 다르다? 똥개 새끼 주제에.”

자세히 보니 가장 앞에 있는 웨어 울프는 유달리 털색이 은색으로 빛났다.

은색 웨어 울프는 그런 세은의 말을 알아들었는지 흉포하게 이빨을 드러내며 더욱 빠르게 달려들었다.

쾅!

그러나 홀리 애로우를 피했다고 해서 다음 공격이 세은에게 먹힌다는 의미가 아니었다.

어느새 만들어낸 방어막에 웨어 울프의 공격이 허무하게 막혔다.

그리고 그사이 오른쪽에서 달려들던 웨어 울프들에게도 또 다른 신성 마법이 날아갔다.

팡― 팡―

기실 세은이 자주 사용하는 신성 마법 중에서는 성화를 이용하는 마법이 가장 위력이 좋다.

하지만 이런 숲에서나 일행이 많을 때 사용하면 뒤처리가 힘들다는 단점이 있었다.

결국 빠르게 빛의 활을 생성해 시위를 여러 번 당기는 것으로 오른쪽의 웨어 울프들을 즉사시키거나 부상을 입혔다.

“크아앙!”

자신의 동족들이 순식간에 쓰러진 모습을 본 은빛 웨어 울프가 분노에 찬 울음을 터트렸다.

그러나 세은은 가소롭다는 듯이 비웃으며 말했다.

“아무리 봐도 너는 보스가 아니잖아. 보스 어디에 있어?”

끼이익!

날카로운 웨어 울프의 손톱이 세은의 방어막을 긁으며 소름끼치는 소리를 만들어냈다.

갑작스런 소음에 순간 두 눈을 찡그린 세은이 고막에 남아 있던 더러운 느낌을 털어내기 위해 고개를 좌우로 저었다.

“어후. 무슨 칠판 긁는 것도 아니고…… 이 개새야.”

원래는 적당히 때려서 보스가 있는 곳으로 보내 따라갈 생각이었지만, 방금 전의 의도치 않은 음파 공격으로 생각이 바뀌었다.

“일단 맞고 보자.”

가뜩이나 요 며칠의 일로 기분이 바닥을 치고 있던 세은의 심기를 제대로 건드렸던 것이다.

웨어 울프를 보며 세은은 사악한 미소를 지었다.

우웅―

그의 손에 항상 사용하던 빛의 검이 아닌 빛의 둔기가 생성되었다.

“크앙!”

은빛 웨어 울프가 아직 분위기 파악을 못한 채 온몸 가득 털을 바짝 세웠다.

“이 꽉 물어라. 송곳니 나가니까.”

세은이 씩 웃으며 둔기를 휘둘렀다.

“깨앵!”

“닥쳐!”

“깨애앵!”

은빛 웨어 울프가 정말로 처절하게 세은의 스트레스 해소 상대가 되어주었다.

그 모습을 뒤에서 지켜보던 사노와 스미스는 순간 등골이 오싹해지는 것을 느꼈다.

‘서, 설마 우리 때문에?’

“깽!”

그렇게 게이트에는 은빛 웨어 울프가 가열 차게 두드려 맞는 소리만 울려 퍼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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