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9
9. 화성 행궁 게이트(1)
“미스터 도, 그럼 다른 소식을 하나 알려드리겠습니다.”
윤리의식을 건드려서 도발하려다가, 오히려 당황한 스미스를 대신해서 다시 사노가 나섰다.
세은은 여유 있는 표정으로 사노를 바라보았다.
어차피 자신을 움직일 방법이 없었다.
그러나 이런 세은의 여유는 다음에 이어진 사노의 말에 살짝 금이 가고 말았다.
“저희뿐만 아니라 중국과 미국에서도 미스터 도를 예의 주시하고 있는 상황입니다. 특히 일본이 가장 적극적으로 미스터 도의 가족까지 동향을 파악하고 있는 중입니다.”
“일본에서?”
“예. 평소의 동선까지 파악해 두고 있습니다.”
세은의 눈썹이 갈 지 자로 꿈틀거렸다.
“크헉?”
“헉?”
동시에 사노와 스미스의 몸이 보이지 않는 힘에 강력하게 속박되었다.
“그런데 그 사실을 너희가 어떻게 알아?”
어느새 세은의 얼굴에 다시 미소가 어려 있었다.
그러나 처음과 같은 미소가 아니었다.
“그, 그게…….”
정신을 못 차리는 스미스와 달리, 사노가 그나마 정신을 부여잡은 채 세은에게 변명을 하려고 했다.
“잘 생각해서 말하는 게 좋을 거야. 지금 기분이 최고로 나빠졌으니까.”
세은의 입가에 걸린 미소가 짙어질수록 둘을 압박하던 힘은 점점 강해졌다.
그 상황을 지켜보던 이지호는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했다.
그저 불안한 마음으로 상황을 지켜볼 뿐이었다.
‘이런 미친! 로이스랑 비슷한 등급? 도대체 어떤 새끼야! 그런 보고를 올린 놈이.’
미국 최강의 각성자들 중 한 명으로 꼽히는 로이스조차 이런 압도적인 퍼포먼스를 보여줄 수 없었다.
왜 스미스가 그렇게 걱정했는지 사노 또한 확실하게 알 것 같았다.
“저, 저흰 미스터 도의 니즈를 충족시키기 위해서 다방면으로 조사한 것뿐입니다.”
“참 그럴싸한 변명이네?”
“사실입니다. 그 와중에 우연히 일본의 개입을 발견한 것뿐입니다.”
그러나 사노의 말에도 둘을 억압하던 힘은 전혀 줄어들지 않았다.
결국 지켜보다 못한 이지호가 상황에 개입해 들어갔다.
“세은 씨, 아마 이 말이 맞을 겁니다. 미국은 굳이 세은 씨의 가족을 건드리지 않아도 될 힘을 가졌습니다.”
“흐음…….”
이지호의 말에 머리카락을 손가락으로 비비 꼬던 세은이 사노에게 물었다.
“일본은 접촉 의사를 내비치도 않았는데, 왜 우리 부모님부터 조사하는 거지?”
“일본은 우리와 다르게 게이트를 막는 데 어려움을 겪고 있습니다.”
“구체적으로.”
“보통 게이트 자체가 무작위로 생성됩니다. 하지만 일본에서는 유독 도시 한복판에 생긴 경우가 많습니다. 도쿄부터 오사카까지, 관광업과 일반 일본인의 생업 모두 지장이 있을 정도로 말입니다.”
“그래서?”
“저희가 파악한 바로는 지금 세은 씨 가족을 감시하는 건 정부가 아니라 야쿠자 쪽입니다.”
“야쿠자라고?”
야쿠자라는 단어에 세은의 표정이 다시 굳어져 갔다.
그 모습에 사노가 다급하게 말을 이었다.
“그래서 저희가 지켜보고 있던 겁니다! 야쿠자들의 사업에 게이트가 상당한 피해를 끼치고 있습니다. 아마 일본 정부와는 상관이 없는 단독 행동일 가능성이 높습니다.”
“그런데 왜 처음에 일본이라고 두루뭉술하게 얘기했어.”
“구, 굳이 자세하게 얘기할 필요가 없다고 판단해서…….”
정확히는 일본에 대한 불신을 심어서 미국으로 먼저 오게 하려는 것이 목적이었다.
“하여튼 그렇다 이거지? 요즘 안보원에만 너무 오래 있었더니, 하루살이들이 꼬였군.”
“죄송합니다. 미리 확인을 했어야 했는데…….”
이지호가 세은에게 사과했다.
그러나 의외로 이지호에게 잔잔히 고개를 저어보였다.
“뭐, 아닙니다. 실장님이 예언가도 아니고, 다 알 수는 없는 거죠.”
“금방 알아보겠습니다.”
“아아. 괜찮습니다.”
세은은 사노와 스미스를 묶고 있던 힘을 거두었다.
드디어 수발이 자유로워진 몸에 스미스와 사노가 깊은 안도의 한숨을 쉬었다.
“부모님 감시하는 야쿠자들 정보, 전부 다 보내.”
“그, 그럼 대…….”
“알겠습니다, 미스터 도. 바로 정리해서 보내도록 하죠.”
정보를 가지고 거래를 하려고 하던 스미스를 막으며, 사노가 흔쾌히 대답했다.
지금 상황에서는 대가를 요구해 봤자 역효과가 날 것이라는 사실을 사노는 선명하게 느끼고 있었다.
‘차라리 호의를 베풀어서 우리에게 호감을 갖게 하는 게 낫다.’
“지금 당장 보내. 가능하지?”
“30분만 기다려 주시죠, 미스터 도.”
사노의 말에 세은이 주머니에서 휴대전화를 꺼내들었다.
동시에 사노는 스미스에게 명령해 부하들에게 정보를 취합해 오도록 지시했다.
똑똑―
이지호의 집무실에 그렇게 잠시 긴장이 머물고 있을 때, 또다시 문을 두드리는 노크소리가 들렸다.
그리고 이번에 이지호가 들어오라고 할 새도 없이 문이 벌컥 열리며 그의 보좌관이 급하게 외쳤다.
“시, 실장님! 현재 화성 행궁에 게이트가 출현했다고 합니다!”
“뭐?”
이지호는 잠시 놀랐지만, 이내 경험을 살려 빠르게 지시를 내렸다.
“근처 요원들 당장 화성 행궁으로 보낸 뒤, 안보원에서도 당장 조 편성해서 출발해.”
“예!”
보좌관은 이지호의 지시를 듣자마자 바로 지시를 전파하기 위해 뛰쳐나갔다.
보좌관이 나가자 이지호는 간절한 표정으로 세은을 바라보았다.
그의 시선을 느낀 세은은 천천히 입을 열었다.
“정말 위험하면 말해주세요. 다만 괜찮으시면 저는 부모님 일 때문에 이번엔 빠지겠습니다.”
“아…… 이해합니다. 가족이 중요하지요.”
그때 사노가 또다시 둘의 대화에 난입했다.
“미스터 도. 당신이 참전한다면, 야쿠자들은 저희가 책임지고 응징하겠습니다.”
갑작스런 사노의 말에 세은이 그를 바라보았다.
“저희는 당신이 게이트를 없애는 모습을 보고 싶습니다.”
그런 이유였나. 세은은 잠시 머릿속으로 어떤 것이 이익일지 저울질했다.
그러나 오히려 야쿠자들에게 있어, 미국이란 존재가 더 강한 경고가 될지도 몰랐다.
생각을 마친 세은이 한쪽 입꼬리를 끌어 올렸다.
“확실히 책임질 수 있어?”
“물론입니다. 미합중국 특수국토안보국의 능력이 결코 장난은 아닙니다.”
자신감 넘치는 사노의 모습에 세은이 자리에서 일어났다.
“좋아. 그럼 내가 게이트를 없앨 때까지 일본 야쿠자 놈들 다 치워놔. 그렇지 않으면…… 알지?”
“그게 얼마 정도 걸립니까?”
“게이트에 따라 다르지. 시간은 게이트에 들어가서부터 잰다.”
“알겠습니다.”
사노와의 거래를 협상한 세은은 이지호에게 말했다.
“실장님, 들으셨죠? 빨리 출발하시죠.”
“예, 알겠습니다!”
이지호는 세은을 게이트로 갈 수 있게 만들어준 사노에게 고마움을 느끼며, 바로 화성 행궁으로 출동할 준비를 시작했다.
* * *
“정확한 게이트의 위치는 어디입니까?”
“화성 행궁의 봉수당 앞이라고 합니다.”
‘거기가 어디지?’
이름은 들어봤지만, 정확한 지형까지 알고 있진 않았다.
다행히 이지호도 그런 세은의 마음을 알았는지, 조금 더 자세하게 설명을 이어 나갔다.
“화성 행궁의 정문인 신풍루를 지나 그냥 쭉 직진하면 가장 안쪽에 있는 건물입니다.”
“그래서 무슨 몬스터들이 나오고 있나요?”
“그나마 다행히도 놀이라고 합니다.”
“놀이면 제가 지금 당장 갈 필요도 없겠네요.”
말을 하면서 같은 헬기에 탑승하고 있던 사노와 스미스를 바라보았다.
야쿠자들의 정리가 아니었다면 바로 게이트로 행하지 않았을 것이다.
그러니 조금이라도 수가 틀리면 바로 엎어버릴 생각이었다.
물론 저들의 행동 또한 이해할 수 있는 일이다.
그러나 이해할 수 있는 것과 결과가 안 좋게 나오는 건 별개의 문제였다.
“거래는 잘 이행되고 있습니까?”
“그렇습니다. 현재 한 번에 일망타진할 준비 중입니다.”
“뭐, 놓쳐도 됩니다. 다만 저희 부모님의 신변에 이상이 생기면…….”
세은은 뒷말을 더 이상 이어 나가지 않았다.
그러나 이미 그의 힘을 겪었던 사노는 세은이 무슨 말을 하려는지 알 수 있었다.
“걱정은 하지 않아도 됩니다. 미합중국 특수국토안보국의 실력을 보여주겠습니다.”
사노의 말에 세은이 어깨를 으쓱거렸다.
“당연히 그래야겠죠. 그래야 제가 움직이는 이유가 될 테니까요.”
그렇게 대화를 주고받던 사이 어느새 헬기가 화성 행궁에 도착했다.
행궁 안에서는 놀과 각성자들이 대치를 하고 있었기 때문에 급한 대로 화성 행궁 광장에 헬기가 착륙했다.
“막아!”
“파이어 볼트!”
그러나 신풍루를 넘어 화성 행궁 광장까지 놀과 각성자들이 사투를 벌이는 소리가 새어나오고 있었다.
“시간 지체할 것 없이 빨리 끝내죠.”
“예.”
세은이 빠르게 신풍루를 지나 행궁 안으로 진입했다.
그러나 전황은 생각보다 훨씬 유리했다.
모두 마나 링과 오러 홀 덕분이었다.
각성자들의 수준이 상당히 늘어났기에 이제는 놀 정도로 당황하지 않았다.
‘아직도 멀었어.’
다만 세은이 보기에는 아직도 거기서 거기인 수준이었지만.
그나마 지난번 명동에서의 일을 생각하면 장족의 발전이었다.
당금에는 긍정적으로 받아들이며 세은이 마법을 발동했다.
“에일린, 홀리 레인.”
순식간에 게이트 주위에 몰려서 꾸역꾸역 차례를 기다리고 있던 놀들이 빛의 비에 맞아서 쓰러지기 시작했다.
“헉?”
“이, 이게 무슨…….”
사노와 스미스는 생전 처음 보는 광경에 경악을 금치 못했다.
이어진 세은의 공격에 사노는 더욱 경악을 금할 수가 없었다.
“홀리 애로우.”
세은의 손짓에 허공에서 빛의 활이 생성되었다.
그다음 시위에 매겨진 빛의 화살이 놀의 미간을 빠르고 정확하게 꿰뚫었다.
“미, 미스터 리.”
“왜 그러십니까?”
“한국 정부는 왜 이런 사람을 이렇게 쉽게 보내려 합니까?”
세은의 힘을 보며 사노는 이지호에게 물었다.
가장 최근 한국에서 제시한 조건은 환율 조작국에 대한 지정 금지와, 신규 군사 무기 협상의 조속한 마무리.
게이트를 닫는 열쇠를 빌리는 조건으로는 별 무리 없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지금 세은의 힘을 보며 그 생각 자체가 송두리째 바뀌었다.
“하하. 사실을 말해도 윗선에서는 믿지 않더군요. 두 눈으로 보지 않으면 믿을 수 없는 게 사람이니까요.”
“아무리 그래도 이건…….”
“한 가지 제가 말씀드릴 수 있는 건, 이건 세은 씨 능력의 반의반도 되지 않는다는 겁니다. 그와의 거래를 잘 지키시는 것이 좋을 겁니다.”
꿀꺽.
사노는 무의식적으로 자신의 주머니에 있는 휴대전화에 손을 가져갔다.
그러나 어차피 자신이 전화하지 않아도 특수국토안보국 요원들이 알아서 잘 처리할 것이 분명했다.
이제 남은 건 세은의 능력을 정확히 보고 조치하는 임무뿐이었다.
‘쩝. 좋지 않아……. 미국에서 세은 씨의 능력을 제대로 알게 되다니.’
그런 사노의 모습을 본 이지호가 속으로 입맛을 다셨다.
여태까지의 언행으로 봤을 때, 세은에게 가장 중요한 건 부모님의 안전과 평범한 삶이었다.
미국에서 두 가지를 보장하는 조건으로 회유한다면 미련 없이 떠날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우리 상부의 멍청한 놈들이 내 보고서를 믿었어야 했는데.’
이지호는 각성자들에 대해 쥐뿔도 모르는 상부의 무능함에 넌더리가 났다.
그의 눈에 복날 개 잡듯 놀들을 빠르게 요리해 나가고 있는 세은의 모습이 들어왔다.
만약 미국에 세은이 간다면 앞으로의 게이트는 어떻게 막을지 앞이 깜깜해지기 시작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