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나는 교황이다-28화 (28/225)

# 28

8. 그럴 생각이 없는데(3)

펜 샌데로크는 아침부터 올라온 보고에 불편한 기색을 숨기지 않았다.

“그래서 뭐 어쩌라는 건가?”

“보고서에 기안한 대로 로이스의 한국 출장을…….”

“크흠.”

펜 샌데로크가 헛기침을 하며 부하직원의 말을 끊었다.

“자네, 제대로 알아본 거 맞나?”

“예?”

예상치 못한 반응에 부하 직원의 얼굴에 당혹감이 피어났다.

그 모습에 펜의 얼굴의 불편한 기색이 더욱 짙어졌다.

‘이런 놈을 부하라고 데리고 있으니…….’

답답한 마음에 얼굴 가득 인상을 쓰며 펜이 말했다.

“게이트의 소멸에 연관이 되어 있고, 각성자 네 명이 순식간에 당했다. 이 문구가 무엇을 뜻하는 줄 모르나?”

“아, 물론 만만히 보지 않고 있습니다. 그래서 로이스…….”

쾅!

자신의 책상을 강하게 내려치는 펜의 행동에 부하가 말을 하다 말고 움찔거렸다.

“물론 로이스라면 이길 수도 있겠지. 그런데 고작 그런 이유로 로이스를 극동까지 보내자니, 그게 할 말인가?”

“하, 하지만 보고에 따르면 매우 오만해서 콧대를 꺾어놓을 필요가 있다고 합니다.”

“고작 그런 도발에 발끈해서 대응한 것 자체가 우리와 동급이라는 걸 인정하는 꼴이라는 것을 모르나?”

물론 보고서에 적힌 세은의 말이 매우 오만하다는 건 펜도 인정했다.

그러나 겨우 그런 이유로 미국의 주요 전력인 로이스를 극동 아시아로 보내자고?

이러니 아직도 게이트 하나 못 없애는데다 쩔쩔매고 있지.

펜으로서는 현재의 상황이 마음에 들지 않았다.

모두의 긴장이 많이 풀려 있다 라고밖에 볼 수 없던 것이다.

‘언제 한 번 모아놓고 교육을 해야겠어.’

하지만 당장은 눈앞에 있는 이 멍청한 부하부터 교육시켜야 했다.

“가서 다른 방법으로 데리고 와! 알겠나?”

“예, 옛!”

다시 터진 펜의 호통에 부하 직원이 급하게 국장실에서 도망치듯 빠져나갔다.

* * *

미국의 움직임은 곧바로 대한민국 정부에 전달되었다.

심지어 그 상황에서 미국의 각성자 세 명이 부상을 입었단 건 정부 관계자들을 불안하게 만들기에 충분했다.

누가 뭐라 한들 게이트가 열리기 전이나 지금이나 최강대국은 미국이었다.

각성자의 수 역시 압도적이었기 때문이다.

한국 정부는 가벼운 요청이라고 생각했던 일이 점점 커지자 회의를 열어 사태에 대해 의논하기 시작했다.

“그러니까, 대체 그 사람이 누군데 이 사달이 났습니까?”

대통령이 국가안보원 국장에게 물었다.

“그, 그게…… 게이트의 소멸에 직접적인 관련이 있는 각성자입니다.”

“아, 그 보고는 확실히 받았습니다. 분명히 제가 따로 안보원에 포상까지 내렸는데 말이죠.”

게이트 얘기가 나오자 밝은 표정이 된 대통령이 말했다.

게이트의 소멸이 국가로서 끌어안고 있던 고민 중 하나인 탓이었다.

자신의 재임기간 치적 중 하나로 삼아도 손색이 없을 정도의 일이었다.

“그게…… 그 각성자가 안보원 소속이 아닙니다.”

“각성자 관리법 개정 때문에 다들 민간으로 나가지 않았나요?”

대통령의 질문에 안보원 국장이 식은땀을 흘리며 대답했다.

“처음부터 안보원 소속이 아니었습니다. 저희도 최근에야 알게 된 각성자입니다.”

“뭐가 다른가요?”

“저희의 통제에서 완전히 벗어난 사람입니다.”

안보원 국장의 말에 국무총리가 물었다.

“그래봤자 우리나라 국민이 아닙니까? 안보원에서 고작 국민 하나 컨트롤 못합니까?”

“그게 고작 국민이라 하기에는 각성자라…….”

“아무리 각성자여도 국익이 우선하는 거 아닙니까!”

국무총리의 말에 국장이 앞에 놓인 보고서를 가리키며 대답했다.

“보고서에 따르면 저희가 어떻게 할 수 없는 사람입니다.”

안보원 국장의 말에 회의에 참석한 사람들이 보고서를 뒤적거렸다.

“흐음.”

잠시 보고서를 읽던 대통령이 안보원 국장에게 물었다.

“이런 능력을 개인이 가진 게 가능한가요?”

“저희 역시 온전히 믿을 수가 없어 처음 게이트 분야 실장이 고과를 위해 과장하는 것이라고 판단했습니다.”

“그런데 그렇게 판단한 보고서를 이 자리에 가져온 이유가 뭔가요?”

대통령의 질문에 안보원 국장의 얼굴이 굳어졌다.

“아, 이 보고서 말고는 그를 설명할 만한 다른 자료가 없습니다. 그리고 이번의 일련의 사태에 비추어 보았을 때 아주 신빙성이 없다고 판단되지는 않아서…….”

“그렇다면 더욱 미국으로 보내서 국익을 챙겨야겠군요.”

국장의 말에 국무총리가 말했다.

다른 장관들도 국무총리의 말에 동의한다는 듯이 하나같이 고개를 끄덕이고 있었다.

“단순히 사람 한 명을 빌려간다고 하기에는 사안이 크군요. 이 일로 인해서 우리가 받을 수 있는 이익을 계산해 보세요.”

“예. 알겠습니다.”

“저…… 다만 이 각성자가 미국에 가지 않겠다는 의사표현을 너무 확실하게 해서…….”

“어차피 그도 국민 아닙니까? 당연히 가야지요.”

안보원 국장의 걱정에 국무총리가 뻔뻔하게 말했다.

그러나 다른 사람들도 국무총리와 같은 의견인 것처럼 보였다.

대통령을 위시한 장관들 역시 당연히 세은이 미국으로 갈 것으로 결론을 내린 채 미국에서 얻을 이익에 대한 토론을 시작했다.

각 각료들 중에서 유일하게 각성자들을 자주 대하는 안보원 국장만이 불안을 느낄 뿐이었다.

* * *

“그래서요?”

“예?”

“지금 이거 협박 같은데요?”

“제가 드리는 제안이 아니라…….”

“압니다. 그래도 내용이 기분이 나쁘네요. 대체 어떻게 말했기에 이렇게 고자세로 나와요?”

“저는 최대한 사실대로 보고를 했습니다만…….”

‘멍청한 윗놈들이 안 믿는 걸 왜 나보고 뭐라고 합니까.’

라는 이지호의 뒷말은 속에서만 울려 퍼졌다.

“한 마디로 대한민국 국민이라면 이번 일은 국가적인 일이니 협조를 하라. 협조를 안 하면 뒷일은 책임 못 진다는 말인데…… 이게 부탁입니까, 협박입니까.”

“험험.”

세은의 말에 이지호가 마른기침을 내뱉었다.

“당장 국내 각성자들 가르치기도 힘든데 외국을 가라니. 갑자기 게이트라도 나타나면 어쩌려고.”

“위에서는 잘 막을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퍽이나 그러겠네요.”

어이가 없어 하는 세은의 일침에 이지호는 고개를 들 수 없었다.

대체 자신의 보고서를 왜 그렇게 안 믿는지…….

보고서의 반만 믿었어도 이런 국가적 인력을 미국에 보낼 생각 따위 하지 않을 텐데.

아무리 게이트를 꾸역꾸역 막아내고 있다지만, 그런 식으로 겨우 막아내는 것과 세은처럼 게이트 자체를 소멸시키는 건 차원이 달랐다.

심지어 게이트 안의 몬스터들은 웨이브 때 밖으로 나오는 것들과 비교도 되지 않을 정도로 강했다.

나중에 그런 놈들이 밖으로 나온다면 어떻게 될지 도저히 상상도 되지 않았다.

‘젠장.’

이지호는 속으로 나지막이 욕설을 내뱉었다.

아무래도 차장 선에서 자꾸 보고가 걸러지는 것 같았다.

게이트 분야 차장은 각성자도 아닌 전형적인 관료였다.

‘뭣도 모르는 놈이 차장이라고 앉아 있으니…….’

정부에서 이렇게 나왔다고 해서 세은이 미국으로 끌려갈 거라고 생각하지 않았다.

오히려 이 일 때문에 세은의 심기가 상할까 걱정이었다.

만약 세은이 칼을 정부에 들이밀면 아무도 막지 못할 게 자명했다.

‘아니지, 오히려 실력을 보여주면 조용해질 수도.’

앞에서 잔뜩 인상을 쓰고 있는 세은을 바라보던 이지호가 계속 열심히 머리를 굴렸다.

“어차피 미국에서 한 번 더 찾아오겠네. 저번의 일도 있고.”

이지호가 앞으로의 일에 대해서 열심히 계산기를 두드리고 있을 때, 세은이 정말 귀찮음이 역력한 투로 중얼거렸다.

똑똑―

그때 마침, 이지호의 집무실로 누군가가 찾아왔다.

“들어와.”

이지호의 말에 그의 보좌관이 문을 열고 들어왔다.

“실장님, 미국에서 손님이 오셨습니다.”

보좌관의 말에 세은의 시선이 문 쪽으로 돌아갔다.

보좌관 뒤에는 얼마 전에 식당 앞에서 만났던 스미스와, 누가 봐도 미국인인 남자 한 명이 서 있었다.

“벌써?”

예상보다 빠른 방문에 이지호는 살짝 당황했다.

그러나 이내 당황한 기색을 지우고 자리에서 일어나 반갑게 그들을 맞이했다.

“반갑습니다. 국가안보원 게이트 분야 실장 이지호입니다.”

“환대에 감사합니다. 미스터 이. 저희는 특수국토안보국 소속의 조니 스미스와 사노 와트입니다.”

“반갑습니다. 사노 와트입니다.”

셋은 매우 반갑게 인사를 나눴다.

오직 세은만이 불쾌한 기색을 숨기지 않은 채 자리에 그대로 앉아 있었다.

“아, 이쪽은…….”

“알고 있습니다. 미스터 도. 지난번에 실례했습니다.”

스미스가 먼저 나서서 세은에게 아는 척을 했다.

얼마 전의 강압적인 태도와는 사뭇 다른 모습이었다.

스미스의 말에 사노가 호들갑을 떨며 그의 말을 받았다.

“오! 이 사람이 그 유명한 미스터 도인가? 만나서 영광입니다.”

“휴우.”

그러나 세은이 그들의 인사를 받지 않고, 깊은 한숨을 쉬었다.

“차라리 한 번에 전부 데리고 오지? 위에다가 아주 귀찮은 짓을 해놨더군?”

그러곤 짜증이 선명하게 깃든 목소리로 말했다.

그러나 그런 세은의 태도에도 스미스는 얼굴에 지은 웃음을 거두지 않았다.

“우리는 강자를 우대합니다. 강한 자는 그만큼 대접 받을 자격이 있죠.”

“아직 보여준 게 없는데 말이야.”

“하하, 요원을 눕힌 정도면 충분하다고 우리 상사들이 판단했습니다.”

“자, 일단 앉아서 얘기하시죠.”

이지호가 우선 스미스와 사노에게 자리를 권유했다.

둘은 이지호의 안내에 따라 자리에 착석했다.

“미스터 도, 하나만 묻겠습니다.”

자리에 앉자마자 사노가 세은에게 말했다.

“당신이 게이트를 소멸시킬 수 있다는 게 맞습니까?”

“그렇다면?”

사노의 입가에 미소가 걸렸다.

“그렇다면 우리는 미스터 도를 꼭 본국으로 모셔가고 싶습니다.”

“내가 왜 우리나라도 아닌 곳까지 가서 그런 귀찮은 짓을 해야 하지?”

“원하는 게 뭡니까? 우리는 미스터 도가 원하는 모든 것을 줄 수가 있습니다.”

자신감 넘치는 사노의 말에 세은 역시 흥미롭다는 듯 말했다.

“원하는 모든 것을 줄 수 있다고?”

“당연합니다. 미합중국에서 드릴 수 없는 건 없습니다.”

세은이 관심을 보인다고 생각했는지 사노가 더욱 열심히 미국의 힘에 대해 자랑했다.

그러나 이어진 세은의 말은 그런 사노의 말문을 턱 막히게 만들었다.

“내가 원하는 건, 집에서 부모님이랑 평범하게 사는 건데.”

“그, 그건…….”

“미스터 도! 당신은 이기적이군요.”

사노와 세은의 대화를 듣고 있던 스미스가 갑자기 질책을 담아 세은에게 말했다.

“게이트로 인해 전 세계의 수많은 사람들이 고통 받고 있습니다. 그런데 그 고통의 근원을 없앨 수 있는 능력을 가지고서도 없애지 않다니요! 당장 당신의 나라만 없애는 그런 단기적인 해결법이 언제까지 통할 것 같습니까?”

스미스의 말에 이지호 역시 자신도 모르게 살짝 고개를 끄덕였다.

사실 스미스의 말이 틀린 게 없었다.

한국의 게이트만 없앤다고 해서 세은이 원하는 평범한 삶을 사는 게 가능할 것 같지는 않았다.

“내가 왜? 각자 나라는 각자가 해결해야지.”

“게이트 이후로 각성자가 생겨난 건 게이트에 대비하기 위한 신의 안배가 아니겠습니까?”

세은은 가소롭다는 표정으로 대답했다.

“첫 번째, 내 힘은 게이트 이후로 생겨난 게 아니고. 두 번째, 게이트 전에도 많은 문제가 있었지만 힘이 있던 미국이 다른 나라들을 모두 다 도와준 적이 있던가?”

세은이 한국에 쭉 있다가 게이트 이후로 각성자가 되었다면 모른다.

하지만 세은은 그런 식으로 힘을 얻은 것이 아니었다.

그리고 상황을 보면 게이트로 인해 세상이 당장 멸망 직전에 몰린 것도 아니었다.

물론 예방 차원에서 게이트를 없애는 게 좋다고 할 사람도 있겠지만, 언젠가 각성자들이 할 수 있을 것이라 생각하고 있었다.

스미스의 말처럼 그러기 위해서 각성자가 생겨난 것이 아닌가.

그렇기에 세은은 당당하게 대답할 수가 있었다.

오히려 너무 당당한 세은의 태도에, 윤리의식을 자극해서 설득하려 하던 스미스가 말문이 막혔다.

“자, 할 말이 있으면 더 해봐.”

세은은 당황한 스미스의 얼굴을 보며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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