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나는 교황이다-25화 (25/225)

# 25

7. 마왕 안드라스(3)

“놈들이 불에 약하다! 화염 계열 마법으로만 공격해!”

이지호는 일행들을 지휘하며 고군분투하고 있었다.

사막에서 갑작스런 소진의 비명소리 이후로 세은과 소진이 사라졌다.

그대로 둘을 버리고 돌아갈 수 없어 찾기 위해 사막을 건너다보니 울창한 숲에 도착했던 것이다.

‘이런 숲이 너무 조용했을 때 알아차렸어야 했는데…… 여긴 게이트다.’

생명이 가득해야 할 숲에서 작은 새소리 하나 들리지 않았지만, 사막에 지친 일행들은 그늘이 있다는 것에 반색해서 축 늘어졌다.

끼릭. 끼릭.

그리고 놈들이 바로 그때 나타났다.

사람만 한 거대개미들.

순식간에 몰려들어 이지호와 서채연을 비롯한 일행을 포위해 왔다.

다행히 크기에 비해 방어력이 강하지 않아 겨우겨우 막아내고 있었다.

숲에 화재가 일어날 수도 있지만, 당장 그런 것까지 생각하면서 막기에는 전력이 부족했다.

깨륵. 깨르륵.

그러나 겨우겨우 유지되던 전황은 거대 병정개미가 나타나면서 서서히 무너지기 시작했다.

마법 한두 방으로는 쓰러지지 않았다.

병정개미를 상대하기 위해 마법사들의 화력을 한 곳에 집중하다 보니 일반 거대개미를 막고 있던 근접 각성자들에게 과부하가 걸리기 시작한 것이다.

“어후. 도대체 언제까지 나오는 거야?”

처음에는 징그러운 개미의 모습에 진저리를 치던 채연도 이제는 혐오감보다 질린다는 기색이 역력했다.

“고작 개미한테 죽을 수는 없다! 전부 죽을힘을 짜내!”

“옙!”

이지호의 독촉에 각성자들이 다시 힘을 내기 시작했다.

그의 말대로 겨우 개미에게 개죽음을 당하고 싶지는 않았다.

하지만 이지호의 독촉에도 불구하고 전황은 점점 나빠지고 있었다.

* * *

전투는 시간이 갈수록 난전이 되어갔다.

숨조차 돌릴 수 없이 급박한 상황에, 경쾌한 파공성이 들렸다.

파아앙―

“다들 괜찮아요?”

“오빠!”

“세은 씨!”

익숙한 목소리와 함께 채연과 이성우가 반갑게 세은을 불렀다.

세은의 뒤에서는 소진이 따라오고 있었다.

“대체 어떻게 된 겁니까?”

이지호가 세은의 모습에 안심을 하면서도 짜증을 담아 물었다.

세은은 신성 마법을 캐스팅해 개미들을 학살하면서 대답했다.

“사막에서 모래 아래에 있는 개미굴에 빠졌네요. 저희가 없어졌으면 먼저 나가지 왜 여기까지 왔어요?”

“어떻게 동료를 두고 갑니까?”

“맞아요, 오빠! 어떻게 오빠를 두고 가겠어요?”

“저희가 그렇게 은혜를 모르지는 않습니다.”

세은의 등장에 여유가 생긴 사람들이 각각 한 마디씩 던졌다.

그다지 나쁘지 않은 기분에 세은의 입가에 미소가 걸렸다.

“일단 개미새끼들부터 처리하고 얘기하죠.”

세은의 손짓 한 번에 개미 한 마리가 주살되었다.

역시나 압도적인 세은의 무력에 일행의 사기는 하늘을 찌를 듯이 솟아올랐다.

“음?”

그러나 개미들을 빠르게 처리하던 세은의 공격이 갑자기 멈췄다.

그러고는 고개를 들어 옆을 바라보았다.

그리고 개미들도 마찬가지로 갑자기 공격을 멈춘 채 세은과 같은 방향을 바라보았다.

“뭐지?”

자연스럽게 일행의 시선도 같은 곳을 향했다.

“허허, 시렌 공. 참으로 오랜만입니다.”

그때였다.

기분 나쁜 목소리가 반가운 듯 인사를 전해온 것은.

* * *

“안드라스, 네 둥지였냐?”

까만 길까마귀의 머리에 사람의 몸통, 등에는 타락한 천사의 날개와, 손에 날카롭게 예기를 뽐내는 장검을 들었다.

날개가 있음에도 항상 거대한 검은 늑대를 타고 다니는 제63좌의 마왕. 안드라스.

“그렇습니다, 시렌 공. 이렇게 오랜만에 만나니 반갑기 그지없습니다.”

“지랄하지 말랬지? 뭐하는데 밖에까지 그 난리를 쳐놨어?”

“허허. 정복 과업은 마계의 숙명. 당연한 질문을 하십니까?”

싱긋 웃는 까마귀의 얼굴은 매우 기괴했다.

세로로 길게 찢어진 새의 눈이 일행들에게 향했다.

“어쩐지 밖의 선발대가 전부 사라지고, 안에 이질적인 기운이 느껴진다 했더니…… 시렌 공의 동료들이었군요. 그런데 수준이 참…… 교단이 멸망이라도 했습니까?”

“짜증나게 하지 마. 여기 오피뉴 아니니까, 좋은 말로 할 때 꺼져.”

“호오? 어쩐지 밖에서 느껴지는 차원의 결계가 조금 다른 느낌이다 했더니 다른 차원입니까? 정복할 맛을 느끼게 해주는군요. 허허, 마왕의 위에 올라 있는 자로서, 열린 차원의 통로를 보고도 가만히 있을 수는 없지요.”

“미친 새끼. 이번에도 참수 한 번 당해볼래?”

채연을 비롯한 일행은 도저히 이해할 수 없는 대화였다.

하지만 여유로운 척해도 서로 경계하며 대화를 한다는 걸 명확히 느낄 수 있었다.

그리고 어느새 개미들은 안드라스를 피해 조용히 물러나 코빼기도 보이지 않았다.

“공의 말을 들으니 아픈 기억이 떠오르는군요. 이번에도 똑같이 당할 수야 없죠.”

“결과가 뻔한데 귀찮게 하지 말고, 그냥 목 내밀고 있어라? 응?”

세은의 손에서 안드로말리우스와 단탈리안을 주살했던 빛의 검이 생겨났다.

그 검을 본 안드라스는 부리를 크게 벌려 웃음을 터트렸다.

“허허허. 역시 호쾌합니다. 그런 공의 모습을 저는 좋아합니다. 하지만 목을 내드릴 수는 없군요. 그나저나 이번 동료들은 굉장히 약해 보입니다?”

“어차피 나 하나면 충분하잖아. 그게 뭐.”

“충분히 관련 있지요. 제 능력을 잊으신 건 아니겠지요?”

번쩍―

순간 안드라스의 두 눈이 빨갛게 빛났다.

안드라스의 기괴한 모습에 시선을 빼앗기고 있던 모든 일행이 그 빛을 정면으로 마주 봤다.

세은의 불찰이었다.

“아! 젠장!”

그의 눈에서 빛나는 불길한 빨간빛을 보고서야 세은은 그의 능력이 떠올랐다.

* * *

“우리 오빠랑 둘이서 뭐했어!”

“흥! 왜 세은 씨가 네 오빠야?”

갑자기 채연과 소진이 서로 으르렁 거리고 싸우기 시작했다.

“실장 이 새끼야! 서운하다!”

“내가 더 서운해, 니가 뭐가 서운해! 인마!”

그리고 박정훈과 이지호가 서로를 향해 마법을 캐스팅하고 있었다.

다른 사람들도 서로 한 명씩 붙잡아 싸우기는 마찬가지였다.

불화의 마왕 안드라스.

그의 권능은 생명체들끼리 분란을 조성하는 것이었다.

그리고 한 번 걸린 권능을 풀기 위해선 세은조차 쉽지 않았다.

상당한 노력을 필요로 한 신성마법밖에 없던 것이다.

빠득.

세은의 이가 갈렸다. 어디를 먼저 정리해야 할지 감도 오지 않았다.

당장 일행들은 진정시키기에는 안드라스가 걱정이고, 안드라스를 먼저 죽이자니, 그전에 나올 사상자가 문제였다.

“너 이 개새끼…….”

“허허. 지금 저를 욕하실 때가 아닐 텐데요?”

“잠깐 목숨 부지한 줄 알아…….”

일행들은 일촉즉발의 상황이었다.

이미 서로의 대한 감정의 골이 깊어져 서로 무기를 들이대는 상황까지 이른 것이다.

결국 일행을 먼저 제압하는 길을 선택할 수밖에 없었다.

세은은 먼저 가장 가까이 있던 세은과 소진에게 다가가서 신성력으로 제압을 시도했다.

“가만히 좀 있어!”

그러나 안드라스의 권능으로 잠력이 폭발된 둘은 세은의 신성력에 살짝 저항했다.

“젠장!”

답답한 상황 탓인지 세은의 짜증이 극에 달하고 있었다.

쉬익―

그 틈을 노려 안드라스의 검이 세은의 목을 노리고 들어왔다.

다시 한 번 채연과 소진을 제압하려 하던 세은은 준비한 신성력으로 방어막을 생성했다.

“시발! 진짜!”

“지금은 실전입니다, 시렌 공.”

빠드득.

세은의 이가 더욱 세게 갈렸다.

소리만으로도 이가 부러질 것 같았다.

하지만 안드라스 역시 멈추지 않았다. 끈질기게 계속 세은의 방어막을 검으로 두들겨 갔다.

세은은 방어막을 유지한 채 침착하게 다시 상황을 파악했다.

안드라스 따위는 나중 문제.

결국 세은은 방어막을 풀어 버리고 직접 검을 피하기 시작했다.

안드라스의 검보다 일행들 사이에 불화를 막는 게 더 중요했기에, 위험을 감수하기로 결정한 것이다.

“에일린. 홀리 로프.”

우선 세은은 채연과 소진을 제압해 구석으로 집어 던졌다.

“허허. 그러다가 목이 잘립니다. 그 황홀한 경험……. 한 번 해보시렵니까?”

“그 황홀한 경험, 너 두 번 시켜줄 거야, 이 새끼야.”

“좋은 건 나눠야지요.”

세은은 힘겹게 안드라스의 공격을 피하며 이지호와 박정훈의 제압을 시도했다.

둘 다 마치 철전지 원수라도 된 것처럼 마법을 쏟아붓고 있었다.

‘마법을 배웠으면 한 번에 제압할 수 있는데.’

세은은 이 순간 마법을 배우지 않은 걸 후회했다.

5서클 마법 중에 하나인 홀드라면 한 번에 모든 인원을 붙잡아 둘 수 있으리라.

교황이던 과거에는 자신 대신 마법을 써줄 사람이 산만큼 있었다.

그리고 안타깝게도, 신성 마법에 홀드를 대신할 만한 건 없었다.

“시렌 공. 항상 어느 상황에도 살아 있던 공의 여유가, 지금은 보이질 않습니다그려?”

안드라스가 계속 세은에게 검을 휘두르며 살살 약 올렸다.

그러나 안드라스의 공격을 피하랴, 사람들을 피해 없이 제압하려 정신이 없던 세은은 더 이상 아무 대꾸도 하지 못했다.

일일이 제압하기엔 안드라스가 꽤나 위협적이었다. 일행을 조금 더 빨리 제압할 필요가 있었다.

퍽!

“컥?”

결국 세은이 선택한 것은 강제적인 방법이었다.

서로에게 마법을 난사하던 이지호와 박정훈의 머리를 딱! 기절할 정도로만 강타하는 것이었다.

확실하게 기절을 시키려다 보니 머리가 조금 깨져서 피가 흘렀지만, 그런 것까지 사정을 봐줄 여유는 없었다.

‘나중에 치료해 주면 되니까.’

“허어. 동료를 공격하다니, 혹시 저의 권능에 당하신 건 아닙니까?”

안드라스가 불화의 마왕답게 또 딴지를 걸어왔다.

“닥쳐. 이 새대가리 새끼야.”

“새에게 새라고 하니 기분이 나쁩니다.”

세은은 얼른 일행을 제압해서 안드라스의 부리를 꿰뚫어 버리겠다는 다짐을 하며 이성우에게로 몸을 날렸다.

“크억!”

“하하하! 쌤통이다. 이 개자식아!”

하지만 일행은 적이 아니기에 한 번에 쓸어버릴 수도 없었다.

그사이에 벌써 사상자가 나오기 시작했다.

“이런 시발!”

세은이 이를 꽉 앙다물었다.

“같은 편끼리 죽고 죽이고 이 황홀한 광경. 언제나 저를 살아 있게 합니다.”

안드라스의 날갯죽지의 근육이 황홀함에 역동적으로 꿈틀거렸다.

그는 정말로 황홀한 듯이 오르가슴을 느끼고 있었다.

여태까지 계속 휘두르던 검도 멈춘 상태였다.

“더러운 개새끼!”

“허허. 저는 개가 아니라 새입니다.”

안드라스는 세은이 자신을 조롱하던 별명까지 사용해서 지금을 즐기고 있었다.

안드라스에게는 이제 시렌 에일린의 배에 검을 꽂을 일만 남아 있었다.

자신의 검에 교황의 피가 흘러내릴 장면은 그 무엇보다 황홀할 것이 분명했다.

“그럼, 시렌 공의 피 맛을 보러 가볼까요?”

안드라스의 혼잣말은 세은에게 들리지 않았다.

“가만히 좀 있어! 이 병신 새끼들아!”

세은의 입에서 욕이 끊이지 않고 쏟아져 나오고 있었다.

* * *

안드라스는 당장이라도 달려가 세은에게 검을 휘두르고 싶었다.

하지만 세은이라면 아무리 정신없는 상황이라도 대놓고 다가가면 피할 게 분명했다.

안드라스가 아는 시렌은 혼자서 마계를 무너트린 괴물 중의 괴물.

정면에서 시렌을 잡는 건 불가능한 일일 것이다.

하지만 이번에는 그의 일행이 이상하게도 너무 약한 덕분에 기회를 잡을 수 있었다.

예전 그의 동료들이라면 이런 잔 수작에 걸릴 리 없었다.

그리고 시렌의 움직임이 커질수록 때가 다가옴을 느꼈다.

안드라스는 세은의 신경이 일행에게 쏠린 걸 직감하고 기척을 죽인 채 점점 더 세은에게 다가갔다.

아무리 세은이 무시한다지만, 역시 마왕은 마왕.

드디어 세은의 뒤를 잡은 안드라스는 망설임 없이 검을 휘둘렀다.

“지금!”

푸욱―

안드라스가 자신의 애검을 세은에게 찔러넣었다.

동시에 부드러운 살이 관통되는 짜릿한 느낌이 손을 타고 올라왔다.

“컥!”

능력이 궤도에 오른 뒤 처음으로 느끼는 고통.

세은의 입에서 고통에 찬 신음소리가 튀어나왔다.

다행히 마지막에 본능적으로 몸을 비튼 덕분에 치명상을 피할 수 있었다.

그러나 안드라스에게 쾌락을 주기에는 충분했다.

“허어. 정말로, 정말로 짜릿합니다. 마왕 중에서는 제가 처음으로 공의 살갗을 찢어발겼군요.”

고통으로 가득 찬 세은의 표정이 안드라스의 두 눈에 가득 담겼다.

이제 완전히 마무리를 하고 영혼을 흡수하면, 바알을 제치고 마계에서 1인자가 될 수도 있으리라.

“그래. 그리고 난 네 목을 두 번이나 잘라내고. 이 새새끼야.”

파악―

‘그게 무슨 말입니까?’

라고 묻는 안드라스의 말은 입안에서만 맴돌았다.

대신 비릿한 피가 느껴졌다.

혈향이 안드라스의 코를 강하게 자극했다.

“쿨럭.”

한 움킴 피를 뱉던 안드라스의 목에는 빛의 검이 박혀 있었다.

이미 세은은 뒤를 잡혔다 걸 늦게나마 눈치챈 상태였다.

하지만 완벽한 방어가 힘들 거란 생각에, 차라리 반격을 준비했던 것이다.

반쯤 잘린 목에서 피가 분수처럼 튀어나와 세은의 얼굴과 주변을 따뜻하게 적셨다.

그러나 안드라스는 마왕답게 바로 죽지 않고 피 끓는 목소리로 말을 이었다.

“시…… 렌 공, 역시 대단…… 지옥에서 기…….”

마지막으로 안드라스의 두 눈이 붉은 안광을 폭사하다가 급격하게 불이 꺼졌다.

안드라스의 두 눈에서 완전히 생명의 빛이 사라지는 것을 확인한 세은이 자신의 복부에 박힌 검을 뽑아내었다.

“아윽.”

쑤욱 빠져나오는 검과 함께 세은이 고통에 찬 소리를 내질렀다.

“에일린. 리커버리.”

세은은 재빨리 자신의 상처를 치료했다.

안드라스의 시체는 그 짧은 시간 사이에 가루가 되어 부셔지고 있었다.

“하아…… 더러운 짓을 하고 있어.”

그러나 편안히 쉴 수가 없었다.

“죽어!”

“이 개새끼!”

안드라스를 처리 했다는 안도감에 잠시 한숨을 쉬던 세은은 아직 일행들의 제압이 끝나지 않았다는 사실을 상기하고 현장을 정리하기 위해 몸을 날렸다.

처음에 제압한 네 명을 제외하고는 대부분이 죽거나 깊은 상처를 입고 있었다.

“젠장…….”

* * *

마지막 인원까지 제압하고, 한 곳에 모여 세은의 치료로 제정신으로 돌아온 일행은 자신들이 한 행동에 대해 경악을 금치 못했다.

“이, 이게 무슨…….”

“대체…… 어떻게 이런.”

세은 역시 착잡한 기분이기는 마찬가지였다.

앞서와 같이 가볍게 생각하고 들어온 게이트에서 너무 찝찝한 일이 일어났다.

대한민국. 사망자 5명, 생존자 7명.

국제 각성자 협회 기준 A급 게이트 한라산 게이트 소멸 완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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