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4
7. 마왕 안드라스(2)
“대체 뭐죠?”
소리가 들려온 방향으로 꽤 걸었지만 모래 말고는 아무것도 보이지 않았다.
쿠구궁―
그러나 또다시 소리가 들려왔다.
혹시나 모를 위험요소를 그대로 둘 수는 없었기 때문에 세은과 소진은 모래 언덕을 올라갔다.
“아무것도 없는데?”
모래 언덕까지 올라왔지만 온통 모래밖에 보이지 않았다.
세은의 감각에도 딱히 생명체가 걸리지는 않았다.
“일단 돌아가죠.”
아무 이상이 없는 것을 확인한 세은이 소진에게 말했다. 그러나 소진은 여전히 귀를 기울이고 있었다.
쿠궁―
“또 들렸어요!”
소진은 소리가 들린 방향으로 모래 언덕을 따라 뛰어 내려갔다.
“거 참. 아무것도 없는데 뭐하러 고생을 하는지.”
그러나 아무리 그래도 소진을 혼자 보낼 수는 없었기에 세은은 소진을 따라 모래 언덕을 내려갔다.
“이상하다. 분명 여기서 소리가 들렸는데?”
“아무것도 없어요.”
언덕을 내려와서 소리의 진원지를 찾는 소진에게 세은이 말했다.
“무슨 소리가 들리기는 분명히 들렸어요. 그죠?”
“들리긴 들렸죠.”
“대체 무슨 소리지?”
‘안 어울리게 호기심이 흘러넘치네.’
고민에 빠져 있는 소진에게 세은이 먼저 캠프 쪽으로 몸을 돌리면서 말했다.
“이제 그만 오세요.”
“네, 지금 가…… 꺄악!”
쿠구구궁―
소진의 말이 채 끝나기도 전에 비명소리와 함께 또다시 땅이 울리는 소리가 들렸다.
비명소리가 들리자 자연스럽게 세은의 시선이 소진에게로 향했다.
“어?”
다시 뒤로 몸을 돌린 세은의 시야에 소진이 모래 늪으로 빨려 들어가는 모습이 들어왔다.
속도가 꽤나 빨랐기 때문에 잠깐 당황한 순간에도 소진의 몸은 절반 이상 빨려 들어가고 있었다.
“도, 도와주세요!”
“젠장! 그러니까 가지 말라니까.”
세은은 급하게 소진을 향해 뛰어들었다.
소진이 허우적거리며 자신에게 달려든 세은을 끌어안았다.
보통의 사람이라면 위험천만한 행동.
하지만 세은에게는 믿는 구석이 있었다.
이미 이성을 잃은 듯한 소진을 한 손으로 꽉 잡으며 빠르게 대처 시작했다.
‘방어막으로 보호하고, 바닥을 강하게 때려서 튀어 오른다.’
세은의 손짓에 따라 신성력이 소진과 세은을 두텁게 감쌌다.
“꽉 잡아요.”
소진의 손이 더욱 자신을 끌어안는 것을 느낀 세은이 바닥을 향해 신성 마법을 발사했다.
“에일린. 홀리 파이어!”
가장 폭발력이 뛰어난 홀리 파이어가 세은의 손에서 바닥으로 발사되었다.
펑!
‘자, 이제 튀어 오르면 바로…….’
강렬한 폭발음과 함께 반동으로 튀어오를 준비를 하던 세은의 생각이 중간에 뚝 끊겼다.
“응?”
“꺄아악!”
바닥으로 쏘아진 홀리 파이어가 터진 공간으로 깊은 동공이 드러난 것이다.
결국 소진과 세은의 몸은 미끄러지듯 동공으로 빨려 들어갔다.
“…….”
고간이 찌릿찌릿한 느낌을 참으며 세은은 냉정하게 상황을 파악하고 있었다.
다행히 소진이 기절한 상태라, 한 손만으로도 충분히 붙잡을 수 있었다.
쾅!
마치 운석이 추락한 것 같은 커다란 소리와 함께 세은과 소진의 신형이 바닥에 착지했다.
‘대략 25초 정도 떨어졌나.’
공중을 날 수단이 없던 세은으로서는 동공을 거슬러 올라가기란 무리였다.
‘다행히 공기는 충분하고, 바람이 부는 걸 보니 밖이랑 연결된 길도 있는 것 같네.’
빛의 구를 생성해서 지형을 파악한 세은이 그나마 안도의 한숨을 쉬었다.
적어도 완전히 밀폐된 공간이 아니라는 사실이 그에게 희망을 주었다.
‘이지호 실장이 우리가 없어진 걸 알면 어떻게 하려나?’
지금 심정으로는 이지호가 게이트에서 철수했으면 하는 바람이 간절했다.
괜히 자신들을 찾는다고 게이트에서 헤매다가 몬스터라도 만나면 결과가 너무 뻔했기 때문이다.
‘뭐, 나름 똑똑한 사람들이니까 알아서 잘 하겠지.’
위에 남아 있는 일행에 대한 생각을 접은 세은이 아직도 자신의 품에서 기절해 있던 소진을 바라보았다.
빛의 구 때문인지 그렇지 않아도 하얀 피부가 더욱 하얘 보였다.
“하지 말라는 건 다 하더니 하여튼.”
세은은 미간을 잔뜩 찌푸리며 한숨을 내쉬었다. 이미 일이 벌어진 것 어찌하겠나 하는 생각이었다.
우웅―
세은은 소진에게 신성력을 넣어주었다.
“꺄아아아아……?”
정신을 차리자마자 비명을 지르던 소진은 빠르게 주변 상황을 파악했다.
“흠흠. 여기는 어디죠?”
언제 비명을 질렀냐는 듯 헛기침을 하며 화제를 전환했지만 부끄러움으로 발갛게 달아오른 얼굴까지 숨길 수는 없었다.
“…….”
“뭐, 뭐가요?”
세은은 그저 가만히 소진을 바라보았다.
괜히 민망해진 소진이 다시 헛기침을 하고는 세은에게 말을 걸었다.
“어떻게 된 거예요?”
“보시다시피, 동굴이네요.”
“그러니까 왜 저희가 이런 곳에 있죠?”
“정말 기억 안 나요?”
세은이 살짝 입가에 미소를 걸고서 물었다.
무언의 압박에 소진의 등에서 식은땀이 흘렀다.
“호, 호호. 기억이 날 것 같기도 하고…….”
“일단 바람이 불어오는 방향으로 움직여 보죠.”
세은은 먼저 걸음을 옮겼다. 최대한 빨리 나가서 일행들을 찾는 것이 급선무였다.
소진은 그런 세은을 따라 재빨리 걸음을 옮겼다.
다행히 빛의 구가 시야를 환하게 밝혀줘서 시야를 확보하는 데는 별 문제가 없었다.
“그런데 사막 아래에 이런 큰 동굴이 있네요?”
소진은 계속 쉴 새 없이 중얼거렸다.
“바람이 부는 걸 보니 어디 출구가 있는 것 같긴 한데……. 얼마나 가야 할까요?”
“…….”
처음에는 소진의 말에 대충이라도 대답해 주던 세은이 나중에는 지쳐서 대꾸를 하지 않았다.
하지만 소진은 세은이 대답하지 않아도 꾸준히 말을 이어 나갔다.
“아, 그나저나 도와줘서 고마워요. 정신이 없어서 감사도 못했네요.”
“됐습니다. 죽는 걸 보고 있을 수는 없죠.”
“그래도 그 상황에서 뛰어드는 게 얼마나 힘든 일인데요. 고마워요.”
매우 감사한 마음이 두 눈에 가득 담겨 있는 소진이 부담스러워 세은은 더 이상 아무런 대답도 하지 않았다.
하지만 소진은 기분 나빠하지 않고 계속 말을 이어 나갔다.
“하여튼, 이 은혜는 잊지 않을게요. 여기서 나가면 꼭 비싼 밥 살 테니 시간 좀 내요. 고기 좋아해요, 고기?”
“소고기요.”
고기 얘기에 세은이 담담하게 대답했다. 고기를 사준다는데 굳이 거절할 필요가 없으니까.
원래 다른 사람이 사주는 고기가 더 맛있는 법이었다.
“끼릭. 끼릭.”
세은이 고기에 관심을 보이자 자신이 알고 있던 스테이크 맛집에 대해 일장 연설을 늘어놓던 소진에게 이상한 소리가 들렸다.
“들었어요?”
“네.”
마치 녹슨 기계가 억지로 돌아가면서 마찰이 일어나 나는 것 같았다.
그러나 게이트 안에 기계 장치가 있을 리가 만무했기 때문에 세은과 소진은 가만히 귀를 기울였다.
끼에엑!
동시에 괴상한 소리를 내며 어둠 속에서 거대한 개미 한 마리가 튀어나왔다.
“꺄악!”
거의 사람만 한 개미의 모습에 소진이 비명을 질렀다.
길게 늘어진 더듬이와 작게 튀어나온 뾰족한 더듬이, 털이 숭숭 달려 있는 6개의 다리는 혐오감을 주기에 충분했다.
마찬가지로 벌레를 굉장히 좋아하지 않던 세은도 움찔하더니 바로 신성 마법을 발동했다.
“에일린, 홀리 애로우.”
빛의 화살이 개미의 정수리를 관통해서 꽁무니까지 뚫었다.
“끼에엑…….”
이상한 소리와 함께 관통된 구멍에서 초록색 분비물이 흘러나오면서 개미가 쓰러졌다.
“으…… 아…….”
너무 혐오스러운 그 광경에 소진의 말문이 턱 막혔다.
세은의 뒤에 숨어 있던 그녀는 어느새 양손으로 세은을 꽉 붙잡고 있었다.
마찬가지로 당장이라도 토악질을 할 것 같던 세은 역시 얼굴 가득 인상을 찌푸리며 다시 신성 마법을 발동했다.
“에일린, 홀리 파이어.”
강렬한 신성의 불꽃이 개미의 시체를 태우기 시작했다.
둘은 한참 동안이나 개미의 시체가 재가 되기를 기다렸다.
“으으……. 여기는 개미굴인가 봐요.”
개미의 시체가 완전히 사라지자 그제야 정신을 차린 소진이 말했다.
“그러니까요. 정말 짜증나네요. 가뜩이나 귀찮은데…….”
소진은 처음으로 세은의 얼굴에 진심 가득 짜증이 어린 것을 보았다.
처음 만났던 때부터 항상 담담한 모습이던 세은이 짜증을 내자 소진은 조금 신선한 기분이 들었다.
‘이제 조금 나보다 어린 것 같네.’
그러나 그런 소진의 생각을 모르는 세은은 소진에게 말했다.
“최대한 빨리 나가야겠네요. 이런 놈들을 얼마나 더 상대해야 할지 모르니. 속도를 좀 올릴게요.”
“네, 알았어요.”
세은은 먼저 앞장서서 걷기 시작했다. 거대개미가 나타나면 재빨리 처리하기 위해서였다.
소진 역시 세은의 뒤에 딱 붙어서 거리를 유지하기 위해 노력했다.
혼자 떨어졌다가 거대개미를 만나는 건 절대로 사양하고 싶었다.
끼릭. 끼릭.
그리고 다행히도 한 번에 한 마리 이상의 개미를 만나는 일은 없었다.
아마도 거친 사막이라 먹이가 별로 없어서 그런 것이라고 생각 되었다.
그렇게 개미들을 하나씩 처리해 가며 세은과 소진은 계속 개미굴을 헤맸다.
정확하지 않았지만, 이곳에 빠진 지 하루는 훌쩍 지난 것 같았다.
그래도 개미굴에서 한시라도 빨리 나가고 싶어서 신성력으로 활력을 돋우며 강행군을 한 보람이 있는 것 같았다.
“거의 밖으로 도착한 것 같은데?”
세은은 점차 개미굴의 경사가 높아지는 것을 느꼈다.
적어도 입구가 지하에 있지 않을 테니, 지금 제대로 가고 있다는 게 증명된 것이었다.
‘더 큰 개미 종류가 나올까 걱정했는데 다행이네.’
세은이라도 징그러운 건 싫었다.
그렇기 때문에 더 이상 개미들과 마주치지 않을 거란 생각이 들어 마음이 놓였다.
뒤에서 세은의 옷깃을 꽉 붙잡은 채 조심스럽게 따라오던 소진 역시 출구가 가까워지는 것을 알고 안심하는 것처럼 보였다.
“거의 다 왔네요. 설마 여기서 또 뭐가 나오지는 않겠죠?”
이제는 완연하게 느껴지는 신선한 바람을 느끼며 소진이 세은에게 물었다.
깨리릭. 깨릭.
그러나 또다시 앞에서 개미의 울음소리가 들렸다.
거기에 여태까지 들었던 개미와는 그 소리가 조금 달랐다.
탁― 탁―
이윽고, 둘의 앞에 거대한 집게를 사정없이 부딪치고 있는 병정개미가 나타났다.
일반 거대개미보다 더 커다란 집게, 더 도드라진 머리, 강인한 발까지.
안심하던 둘 앞에 더 흉악하게 징그러운 병정개미가 나타난 것이다.
여태까지 봤던 일반 거대개미는 귀여운 편이었다.
“미, 미안해요…….”
자신의 입을 원망하며 소진이 세은에게 사과했다.
그러나 세은은 잔뜩 찌푸린 미간과는 다르게 희망적인 말을 꺼냈다.
“여태까지 안 나오다가 이제야 나온 걸 보니, 입구를 지키는 경비병인 것 같네요. 얼른 처리하고 나갑시다.”
“저, 정말요?”
세은의 말에 소진이 반색을 표했다.
세은이 고개를 끄덕이고는 일반 거대개미를 상대했던 빛의 화살을 만들어 망설임 없이 발사했다.
“에일린. 홀리 애로우.”
깨랙!
그러나 거대 병정개미는 일반 거대개미와는 달리 화살에 완전히 관통되지 않았다.
거기다 머리에 화살을 박은 채로 세은에게 달려들었다.
“이런 미친!”
예상했던 것보다 병정개미의 껍질이 더 두꺼웠던 것이다.
세은이 급하게 소진을 안고 옆으로 피했다.
쾅!
병정개미가 순간 세은을 놓치고 벽에 머리를 박았다.
그때를 놓치지 않고, 세은의 공격이 뒤에서 작렬했다.
“에일린. 홀리 파이어!”
“깨에엑!”
순식간에 신성의 화염으로 뒤덮인 병정개미가 고통에 몸부림쳤다.
그 광경은 아무리 좋게 봐도 정신건강에 좋은 광경이 아니었다.
헛구역질을 참으며 세은이 다시 신성의 화살을 만들어 병정개미의 목숨을 끊어버렸다.
“얼른 나가죠.”
완전히 목숨을 끊어서야 조용히 불길에 타오르는 개미를 보며 소진을 데리고 계속 걸었다.
“빛이에요!”
그렇게 조금 더 걷다보니 드디어 그토록 원하던 출구가 보였다.
출구를 발견한 세은과 소진의 걸음 속도가 더 빨라졌다.
화아악―
이윽고 완전히 개미굴을 나서자 강렬한 햇빛의 둘의 눈을 강타했다.
반사적으로 팔을 들어 눈을 보호한 둘은 상쾌한 주변의 공기를 느꼈다.
“……사막이 아닌데요? 여기는 숲?”
푸르다 못해 울창한 숲의 전경에 놀란 소진이 중얼거렸다.
세은 역시도 사막이 아닌 숲이 나와 당황하고 있을 때, 멀리서 무엇인가 폭발하는 소리가 들려왔다.
콰앙!
“뭐지?”
게이트 안에 사람이라고는 같이 들어온 일행밖에 없었기 때문에 세은은 소진을 데리고 재빨리 폭발음이 들린 곳으로 향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