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나는 교황이다-23화 (23/225)

# 23

7. 마왕 안드라스(1)

“후우. 드디어 끝났네.”

백록담 분지에 꾸역꾸역 가득 차 있던 몬스터 무리를 드디어 전멸시킨 세은이 말했다.

“그러게요. 얼마나 많은지 다시 생기는 것 같은 느낌까지 들었다니까요.”

채연이 옆에서 세은의 말에 맞장구를 쳤다.

‘아니면 실제로 더 생겼을 수도 있고.’

게이트를 실시간으로 확인한 것이 아니기 때문에, 몬스터들이 게이트에서 계속 충원되었을 가능성도 완전히 배제할 수 없었다.

“이제 게이트 안으로 진입하겠습니다.”

“네, 알겠습니다.”

“주의사항은 전의 게이트에서와 같습니다. 절대 제 앞으로 나오지 마시고 먼저 행동하지 마세요. 그로 인해서 일어나는 일은 책임 못 져요.”

“네!”

몬스터 떼를 처리하면서 어느새 세은을 진심으로 따르게 된 일행들이 우렁차게 대답했다.

세은은 살짝 피곤해 보이는 웃음을 지으며 말했다.

“자, 그럼 얼른 들어가서 정리하고 집에 가서 쉽시다.”

세은에 말에 모두의 얼굴에 웃음이 피었다.

“그럼 제가 먼저 들어갈 테니 잠시 후에 들어오세요.”

일행들에게 당부하고 세은은 먼저 게이트로 들어갔다.

‘이번 게이트는 미로는 아니었으면 좋겠는데.’

저번처럼 게이트가 미로만 아니기를 바라며 세은은 감았던 눈을 떴다.

“음…….”

금빛 모래가 끝없이 반짝거리는 사막이 세은의 시야에 들어왔다.

“추운 것보다는 낫긴 한데 말이야.”

작열하는 태양이 후끈한 열기로 대기를 가득 채우고 있었다.

거기에 황금빛 모래로 가득한 지평선이 끝없이 펼쳐져 있었다.

“헐……. 사막이네.”

“그러게 사막 같은 곳을 다 와보네요.”

세은을 따라 게이트로 진입한 사람들은 갑자기 눈앞에 펼쳐진 사막에 연신 감탄사를 내뱉었다.

“생각보다 안은 오히려 멀쩡합니다?”

“그러게요. 결계 같은 것도 없고.”

세은은 주변을 살피며 가볍게 이성우와 대화를 주고받았다.

“어느 방향으로 가야 합니까?”

그 뒤로 따라 들어온 이지호가 주위를 둘러보고 있는 세은에게 물었다.

그러나 세은도 도저히 방향을 잡을 수가 없었다.

사막이 꽤 넓은지 세은의 탐지 범위를 넘어서까지 사막이 계속되었기 때문이었다.

결국 세은은 더 이상 탐지하는 것을 포기하고 이지호에게 말했다.

“글쎄요. 사막이 일단 너무 넓을 것 같아서 길을 못 찾겠네요.”

“얼마나 넓습니까?”

“대충 3일은 걸어야 할 것 같은데요.”

“3일이요? 흠…….”

잠시 고민하던 이지호는 결정을 내렸다.

“다들 가지고 있는 건조 식량으로 일주일은 버틸 수 있으니 한 번 가보는 게 나을 것 같습니다. 정 안 되면 되돌아오죠.”

이지호는 자신과 세은의 대화를 듣고 있던 각성자들에게 비상식량을 확인하게 했다.

모두의 식량이 이상이 없다는 얘기를 듣고서야 출발 신호가 떨어졌다.

그러나 일차적인 문제는 식량이 아니었다.

“모래에 발이 너무 푹푹 빠져요!”

“너무 뜨거워서 신발 밑창이 녹을 것 같은데요?”

그늘 한 점 없는 사막의 날씨는 일행의 신발 밑창을 녹일 수 있을 정도로 뜨거웠다.

“아이스 볼트!”

각성자들은 임시방편으로 얼음 마법을 바닥에 깔고 그 위에서 신발을 식혔다.

그러나 이런 행동들이 이동 속도를 계속 갉아먹고 있었다.

“으하. 더워도 너무 더워요.”

땀으로 인해 온몸이 흠뻑 젖은 채연이 세은에게 말했다. 유일하게 세은만이 땀을 흘리지 않았다.

“오빠는 안 더워요? 땀을 하나도 안 흘리네?”

“덥지. 왜 안 더워.”

“그런데 몸이 굉장히 뽀송뽀송한데요?”

신성력이 몸을 보호해 주고 있는 세은은 더위나 추위를 크게 느끼지 않았다.

그러나 그 사실을 모르는 채연은 고개를 갸웃거렸다.

하지만 이내 계속 느껴지는 더위에 금방 호기심을 접고 이동에 집중했다.

“그런데 원래 게이트가 이렇게 조용해요?”

처음 게이트를 들어오는 김소진이 물었다.

“그건 아닌데…….”

그나마 게이트를 들어와 본 적이 있는 이지호가 말끝을 흐리며 대답했다.

그러나 자신 역시 이번이 두 번째로 입장한 게이트였다.

“제가 들어갔을 때는 초원에 몬스터 마을이랑, 지하 동굴에 미로랑 언데드가 있었어요.”

그나마 세 번째 게이트인 채연이 자신의 경험을 얘기했다.

하지만 표본이 너무 적어 답을 내릴 수가 없었다.

이지호가 답을 갈구하는 표정으로 세은을 바라봤지만, 세은도 뭐라 해줄 말이 없었다.

게이트 자체가 지구에 돌아와 처음 겪는 것이기 때문이었다.

“우리 이러다가 밤이 되면 어떻게 자요? 그냥 모래에서 잘 수는 없잖아요?”

지나가는 식으로 나온 채연의 질문에 모두의 걸음이 우뚝 멈췄다.

“왜, 왜요?”

자신 때문에 모든 사람의 걸음이 멈추자 채연은 당황했다.

그러나 이지호는 황급히 다른 사람들에게 캠핑 장비가 있는지 확인에 들어갔다.

“혹시 숙박 장비 가져온 사람?”

“없는데요.”

“저도 없습니다.”

“저도요.”

일행의 얼굴에 하나같이 수심이 끼었다.

그나마 과거 게이트 공략에 하루를 넘기지 않은데다, 급박하게 게이트로 진입하다 보니 좀 더 준비하지 못한 것이다.

“사막에서 바람 하나 막아줄 텐트도 없이 노숙을 할 수도 없고…….”

“그러게요. 여태까지 게이트는 전부 작았는데 왜 이건 이렇게 클까요?”

이지호와 채연의 당황한 대화가 들려왔다.

‘지금이라도 돌아가야 하나?’

잠시 대처 방안을 생각하던 세은은 이내 곧 좋은 방법을 하나 떠올렸다.

“그냥 계속 들어가죠. 숙박은 방법이 생길 것 같습니다.”

“좋은 방법이 있습니까?”

“조금 귀찮더라도 물 계열 마법으로 모래를 적시고, 모양을 만든 다음, 불 계열 마법으로 딱딱하게 구우면 될 것 같네요.”

“흠…… 아주 불가능할 것 같지는 않은데요?”

“그리고 어차피 슬슬 해가 지고 있으니 돌아가기는 늦었어요. 돌아가더라도 하룻밤은 지내고 가야 할 것 같아요.”

세은의 말대로 사막의 모래를 뜨겁게 달구던 태양은 어느새 거의 노을로 변해가고 있었다.

“그럼 우선 자리를 만들어볼까요?”

결정이 끝나자 마법사들이 빠르게 물을 한 곳으로 쏟아부었다.

“세상을 구성하는 힘. 모든 것의 근원인 물의 마나, 모든 것을 적셔버리는 시원한 물의 구, 워터 볼.”

“워터 볼!”

처음에는 너무 오랜 시간 메말라 있어서 물을 잘 머금지 못하던 모래였지만, 오러 각성자들이 빠르게 물과 모래를 버무리자 금방 촉촉하게 변했다.

오러 각성자들은 강화된 힘을 이용해서 짧은 시간 안에 적당한 네모 모양의 흙집을 만들었다.

“자, 그럼 이제 이걸 불로 잘 구워보자고.”

이지호의 명령에 따라 이번에는 마법사들에게서 화염 계열의 마법이 집으로 쏟아져 나갔다.

다만 폭발성 마법은 집 자체를 부셔버리기 때문에 자제하는 중이었다.

화륵―

“이 정도면 됐으려나?”

다행히 각성자들의 노력으로 인해 예상보다 빠른 시간 내에 흙집이 만들어졌다.

그러나 마나의 부족으로 두 채를 만드는 것은 무리였기 때문에 어쩔 수 없이 모든 인원이 한 곳에 지내게 되었다.

“그럼 경계 인원을 뽑겠습니다. 세은 씨를 제외하고 11명이니까…….”

이지호의 말을 듣던 세은이 물었다.

“저는 왜 빼세요?”

“아, 괜찮습니다. 세은 씨는 좀 쉬셔도 됩니다.”

“어차피 제가 있어야 짝이 맞는데요. 상관없으니까 저도 같이 경계를 설게요.”

“아! 그렇게 해주시면 저희야 감사합니다.”

세은은 계속해서 대우를 받고 싶은 마음이 없었기 때문에 자진해서 나섰다.

여기서 이렇게 배려나 대접을 받게 되면 나중에 일을 도와주지 않았을 때 말이 많아지기 때문이었다.

어차피 대우를 받은 만큼 나중에 돌려줘야 하는 법이었다.

“그럼 1조 도세은, 김소진.”

“예?”

“네?”

김소진과 서채연의 입에서 동시에 경악이 터져 나왔다.

하지만 둘의 경악은 다른 뜻을 가지고 있었다.

채연이 세은과 같은 조를 서지 못해 아쉬운 거라면, 김소진은 미처 생각하지 못한 상황에 당황하고 있는 중이었다.

김소진은 딱히 도세은과 같은 조가 된 것에 불만이 있지는 않았지만, 오늘 출발하기 전에 자신이 했던 말이 생각나서 민망했다.

그러나 세은은 그런 김소진을 신경 쓰고 있지 않았다.

“그리고 2조…….”

그렇게 이지호의 무작위 선정으로 결정된 6개 조의 편성이 끝나고 경계 시간을 나누기로 했다.

“알아서 하세요.”

세은은 김소진에게 모든 것을 위임했다.

김소진은 1조 대표로 가위바위보를 해서 첫 경계 근무를 가져왔다.

“저희가 제일 첫 번째예요.”

“잘됐네요.”

아직 데면데면한 둘은 간단히 대화를 나눴다.

이윽고 해가 완전히 지평서 너머로 넘어가자 경계를 서야하는 세은과 소진을 제외한 모든 인원은 안으로 들어가서 자리를 잡았다.

“그럼 잘 부탁드리겠습니다.”

이지호와 이성우가 제일 마지막까지 남아 있다가 안으로 들어갔다.

내색은 안 했지만 몬스터들을 몰이로 사냥한 것부터 사막을 헤맨 일까지…… 다들 정신적으로 많이 지쳐 있었다.

“먼저 쉬세요.”

세은은 둘을 들여보내고 마법으로 유지되고 있는 모닥불 곁에 앉았다.

사막은 낮에 더운 만큼 밤에는 추웠기 때문에 일행들의 온도 유지를 위해서 불은 필수였다.

“저기, 몇 살이에요?”

세은이 옆에 앉아서 불을 바라보고 있던 김소진이 세은에게 물었다.

세은은 소진 쪽은 바라보지도 않고 대답했다.

“왜요?”

예상치 못한 대답에 소진은 당황했다.

“……그냥요. 나보다 어려 보여서요.”

그러나 소진은 능숙하게 대화를 이어나갔다. 어려 보인다는 말을 싫어하는 사람은 없었다.

그러나 세은의 대답은 소진의 예상을 또 벗어났다.

“당연하죠. 딱 봐도 내가 어린데.”

“네? 그럼 제가 나이가 많아 보인다는 거예요?”

살짝 자존심이 상한 소진이 아예 몸을 세은 쪽으로 돌렸다.

그러나 세은은 당황하지 않고 대답했다.

“아까 한라산에 올라오기 전에 저한테 젊은 사람이라고 한 걸 보니 나이가 많은 것 같아서 그런 건데요.”

“그, 그건…….”

확실히 자신이 했던 말이 있기 때문에 말문이 막힌 소진이 더듬거렸다.

“하여튼 저도 아직 젊어요. 29살이라고요.”

“네. 나도 30살 넘은 것 같다고는 안 그랬어요.”

끄응.

보통은 자신이 이렇게 말을 걸면 호의를 가지고 대하는 사람이 대부분이었는데, 세은의 태도는 도저히 종잡을 수가 없었다.

그렇다고 악의를 가지고 있는 것도 아니니, 딱히 불쾌감이 생기지 않았다.

‘그리고 능력도 상상 이상이고.’

김소진도 하나의 길드의 길드장답게 세은을 길드로 영입할 생각을 갖고 있었다.

‘딱 보니까 이성우랑 이지호랑 안면은 있어도 딱히 그렇게 친한 것 같지는 않은데, 좀 친해져야겠어.’

세은은 그런 소진의 생각을 아는지 모르는지 멍하니 불만 바라보고 있었다.

잠시 그 모습을 바라보던 김소진은 다시 세은에게 말을 걸었다.

“이름이 세은 씨라고 했죠? 이 정도 능력이면 안보원에서 봤을 법도 한데 그동안 어디에 있던 거예요?”

“집이요.”

“……예?”

그러나 소진의 대화 시도는 이번에도 세은의 대답에 또다시 막히고 말았다.

“지, 집이요?”

“네, 집이요. 왜요?”

“아니요. 왜 그런 능력을 가지고 집에…….”

“귀찮아서요.”

뚝뚝 끊기는 대답도 대답이지만, 도저히 소진의 상식으로는 세은의 대답을 이해할 수가 없었다.

이런 능력을 가지고도 귀찮아서 집에만 있었다니.

자신이라면 상상도 못할 일이었다.

‘가진 능력에 비해 야망은 부족하네.’

마치 엑스칼리버가 아더왕이 아닌 동네 촌부에게 뽑힌 것 같은 아쉬움이 느껴졌다.

‘하긴, 이런 능력을 가졌는데 야망까지 있으면 내가 거느리기 힘들지.’

오히려 이렇게 욕심이 없는 것이 더 다루기 편하다 생각한 소진은 이제는 세은이 어떤 대답을 하더라도 당황하지 않겠다는 다짐을 했다.

“그럼 지금은 무슨…….”

쿠구구구궁―

소진이 다시 입을 열었을 때 벌레 소리 하나 없이 고요하던 사막에서 땅이 울리는 소리가 들려왔다.

갑작스런 상황에 세은과 소진이 자리에서 일어나 주위를 둘러보았다.

“뭐지?”

쿠구궁―

또다시 소리가 들려왔다.

어둠 속에서 들려온 소리에 소진은 자신의 애검을 뽑아 든 채 서서히 소리가 들려온 방향으로 향했다.

“홀리 라이트.”

세은도 마찬가지로 랜턴 대용으로 사용할 빛의 구를 생성해서 앞에 띄우고 천천히 소리가 난 방향으로 이동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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