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나는 교황이다-22화 (22/225)

# 22

6. 한라산 게이트(3)

그러나 일행이 채 얼마 가기도 전에 트롤과 오우거들의 울음소리가 한라산을 가득 채웠다.

“와. 숫자가 어마어마한 것 같은데요?”

“트롤이랑 오우거만 있는 거 같지는 않은데…….”

일행이 주위를 둘러봤다.

그러나 안개로 인해 멀리까지 시야가 확보되지 않아 바로 소리의 근원지를 발견할 수는 없었다.

결국 일행은 조심조심하면서 백록담을 향해 전진했다.

“헉!”

“커억?”

백록담으로 올라서자 안개가 더 이상 시야를 가리지 않았다.

그러나 더욱 놀라운 광경이 일행들을 기다리고 있었다.

‘대체 뭐가 이렇게 많아?’

게이트 입구는 쉽게 발견할 수 있었다.

신기하게도 백록담 한가운데 게이트가 발생되어 있었기 때문이다.

문제는 백록담을 둘러싸고 있는 분지에 가득 차 있는 몬스터들이었다.

트롤과 오우거부터 시작해서, 놀이나 오크 같은 하급 몬스터들까지…… 없는 것이 없었다.

‘어쩐지 하나도 보이지 않더라니.’

일행 모두의 표정에 경악이 어렸다.

“끙. 숫자가 너무 많네요.”

이지호가 세은에게 말했다.

“그러게요. 완전 발 디딜 틈 없이 꽉 차 있어요.”

“금요일 홍대 수준인데요?”

세은은 몬스터 무리를 보면서 고민 에 빠졌다.

몬스터가 많다고 처리 못할 것은 없지만, 워낙 분지에 빽빽하게 들어차 있어서 꽤나 힘을 써야 할 것 같았다.

‘거기에 공중을 선회하고 있는 비행 몬스터들까지 처리하려면 고생 좀 하겠네.’

잠시 대책을 생각하던 세은은 좋은 생각이 났는지 이지호를 불렀다.

“이대로 들어가도 처리하지 못할 건 없지만, 조금 편하게 잡는 게 낫겠네요.”

“예, 어떻게 하면 됩니까?”

세은은 이지호에게 자신이 생각한 방법을 알려주었다.

“분지마다 높낮이가 다르니까. 유인을 해서 잡는 게 좋을 거 같네요.”

“유인을 해서요?”

“네. 아무래도 사방에서 오면 피곤하니까요. 외나무다리 같은 상황을 만들어서 처리하면 훨씬 편하죠.”

“아아. 무슨 말인지 알겠습니다.”

“속도가 빠른 익스퍼트들이 교대로 적당히 몬스터들을 끌고 오면 되겠네요. 무리하지 않고 앞에 있는 놈들만 끌고 오면 됩니다.”

“알겠습니다.”

세은의 작전에 따라 일행은 몬스터들을 유인하기 좋은 곳으로 자리를 옮겼다.

“여기가 좋겠네요.”

지형을 확인한 세은이 고개를 끄덕이자 오러 익스퍼트들이 몬스터들을 끌고 오기 위한 순서를 정했다.

“그럼 다녀오겠습니다.”

가위바위보로 인해 이성우가 가장 먼저 몰이꾼으로 선정되었다.

이성우는 오러를 끌어올리린 채 날렵하게 백록담 정상으로 향했다.

“쿠어억―”

“꾸엑!”

이성우의 신형이 백록담 분지로 사라지자 몬스터들의 괴성이 바로 들려왔다.

몬스터들의 이동으로 땅이 쿵쿵 울리는 느낌이 들자, 괴성이 점점 가까워졌다.

‘됐다!’

다행이도 세은의 생각대로 길이 좁아서 몬스터들이 거의 일렬로 이성우의 뒤를 쫓아왔다.

거기다 분지가 꽤 넓어서 다른 곳에 있던 몬스터들은 이쪽에 신경도 쓰지 않았다.

세은의 지시에 따라 나무 위에 자리를 잡고 있던 마법사들이 긴장했다.

“저 왔습니다!”

잠시 기다리니 어느새 이성우가 지척에 도착했다.

세은은 광범위 신성 마법 홀리 레인을 발동했다.

홀리 레인만으로도 오크나 놀 같은 몬스터들은 바로 즉사였다.

거기에 이어서 겨우겨우 버티고 있던 오우거와 트롤 같은 몬스터에게는 홀리 애로우가 날아가서 어김없이 숨통을 끊었다.

“세상을 구성하는 힘. 내 앞의 적을 얼리는 얼음의 마나, 모든 것을 얼려 버리는 차가운 얼음의 분노, 내 앞의 적을 분쇄하라. 아이스 블래스트!”

팡! 팡!

동시에 운 좋게 세은의 신성 마법을 피한 몬스터조차 나무 위에서 상황을 지켜보던 마법사들의 마법에 하나둘씩 쓰러졌다.

아무래도 산이라서 화염 마법을 사용할 수 없지만, 몬스터들한테는 얼음 계열의 마법도 충분한 위력을 발휘했다.

파앙―

마찬가지로 나무 위에 있던 채연도 시위를 열심히 당겼다.

채연의 화살을 맞아 움직임이 느려진 몬스터들은 마법사들의 먹잇감이었다.

“차압!”

“하아앗!”

그리고 애초에 이성우의 몰이에서 벗어나, 옆에서 다가온 몬스터들은 경계를 늦추지 않고 있던 오러 각성자들에게 당했다.

“와! 정말 대단해요!”

그렇게 순식간에 몬스터 한 무리가 전멸했다.

생각보다 훨씬 수월한 사냥에 다른 일행들의 표정에도 긴장이 많이 풀린 것이 보였다.

세은은 그런 일행들에게 말했다.

“자, 이런 식으로 계속 진행합니다. 마법사들은 마나 부족하면 미리 말해주세요.”

“예, 알겠습니다.”

이런 방식으로 몬스터를 여섯 번 정도 몰았다.

중간중간 마법사들의 휴식을 위해 쉬기는 했지만, 백록담의 몬스터들은 아직 채 절반도 줄지 않은 상황이었다.

‘대체 언제까지 해야 하는 거야?’

그러나 이런 세은의 짜증과는 다르게 각성자들의 분위기는 이보다 더 좋을 수가 없었다.

“이렇게 쉽게 잡을 수 있다니 다행이에요.”

“이 상태였다면 도움을 안 청했으면 큰일 날 뻔했네.”

“세은 씨를 발견한 건 정말 우리나라의 큰 행운입니다.”

보통 게임에서도 몰이사냥은 주로 사용된다.

한 번에 많은 숫자를 처리할 수 있을뿐더러 일일이 한 마리씩 잡는 것보다 덜 수고스럽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런 몰이 방식 사냥의 가장 큰 단점은 패턴이 정형화된다는 점에 있었다.

패턴이 정형화되면 우선 사람들의 긴장이 풀린다.

그리고 긴장이 풀리면 꼭 한 번은 사고를 치는 사람들이 생기기 마련이었다.

그리고 세은의 도움을 받은 일행의 긴장감이 거의 밑바닥으로 치달았다.

“이번에는 생각보다 좀 많이 몰린 거 같은데?”

이번 몰이꾼인 각성자가 자신의 뒤를 따라오는 몬스터의 수를 보고 고개를 갸웃거렸다.

“에이 뭐. 세은 씨가 있는데 괜찮겠지.”

그러나 세은의 압도적인 능력에 대수롭지 않게 생각하며 그대로 몬스터를 끌고 일행들에게로 갔다.

후두둑―

또다시 하늘에서 빛의 비가 쏟아져 내렸다. 그러나 여태까지와는 다르게 아직 남아 있는 몬스터의 수가 월등했다.

“엥? 뭐가 이렇게 많아?”

펑! 펑! 펑!

마법사들의 마법이 한 차례 작렬한 이후에도 상황은 별반 다르지 않았다.

몰이꾼의 생각과 달리, 몬스터들이 이동하는 모습을 보고 다른 몬스터들까지 영향 받아 쫓아온 결과였다.

그러나 그때까지도 일행들은 상황을 대수롭지 않게 생각했다.

세은의 능력이 너무 뇌리에 깊숙이 박힌 탓이었다.

무엇인가 잘못되었다고 느낀 것은 근접 각성자들에게 다가오는 몬스터들이 여태까지의 네 배가 넘었을 때였다.

“뭐, 뭐야? 왜 이렇게 많아?”

“몬스터들이 제대로 처리가 안 됐어!”

이성우의 외침에 세은의 고개가 일행들에게로 돌아갔다.

“젠장! 대체 이게 뭔 난리야?”

세은이 재빨리 홀리 애로우를 난사했다.

그러나 산의 특성상 몬스터들을 빠르게 처리하기에는 무리가 따랐다.

“쿠아악!”

쿵!

몬스터가 나무 같은 높은 곳에 자리를 잡고 있던 마법사들을 잡기 위해 나무에 몸을 부딪쳤다.

오러 각성자들이 마법사들이 마법을 캐스팅할 시간을 벌기 위해 앞을 막아섰다.

세은은 아예 화살을 날리는 것을 포기한 채 빛의 검을 손에 쥐었다.

그리고 몸을 날려 가까운 나무에 있는 몬스터들부터 처리하기 시작했다.

파앙―

채연이 급하게 활의 시위를 당겨서 이성우를 노리던 트롤의 손목을 꿰뚫었다.

순식간에 각자 살 길을 찾기 위해 고군분투하는 상황이 만들어졌다.

몬스터들을 몰아왔던 각성자 역시 상황을 파악하고 재빨리 난전으로 뛰어들었다.

“아악!”

결국 각성자 중 한 명이 트롤을 저지하다 옆에서 다가온 놀에게 물리고 말았다.

비명 소리를 들은 세은이 인상을 찌푸리며 신성력을 가득 모아 바닥으로 분출했다.

쾅!

귀청을 찢어버릴 것 같은 소리에 순간 몬스터들의 시선이 세은에게로 향했다.

그러나 이미 눈앞의 피맛을 본 몬스터 일부는 계속 다른 각성자들에게 달려들었다.

“다들 뒤로 조금씩 물러나요!”

세은이 몬스터들을 처리하면서 소리쳤다.

각성자들이 세은의 말에 천천히 뒤로 물러나기 시작했다.

근접 각성자들이 어느 정도 거리를 유지하자 세은이 광역 신성 마법을 발동했다.

“에일린. 홀리 노바!”

세은의 캐스팅이 끝나자 그를 중심으로 반경 10미터로 강렬한 원이 생성되었다가 사라졌다.

그러나 그 짧은 순간에 원의 반경 안에 있던 몬스터들은 모두 반으로 두 동강이 나서 상하체가 분리되어 있었다.

그렇게 어느 정도 각성자들이 여유를 가지자 몬스터들을 정리하는 데 한결 여유가 생겼다.

“이 개자식들!”

이지호가 욕설을 내뱉으며 마법을 난사했다.

마나 고갈을 신경 쓰지 않은 채 무작정 나가는 마법이 몬스터들을 하나둘씩 쓰러뜨렸다.

다른 마법사들도 마찬가지였다. 근접 각성자들은 그런 마법사들을 방해하지 않으며 부상자들을 정리했다.

그렇게 다시 5분 정도가 지나자 완전히 몬스터들을 정리 할 수가 있었다.

“사상자 현황은?”

“옛. 사망자 1명에 부상자 3명입니다.”

이지호의 물음에 안보원 요원이 사상자를 보고 했다.

다들 긴장이 풀려 있을 때 일어난 대형 사고였다.

거기에 모든 사상자가 오러 사용자들.

아무래도 나무 위에 있던 마법사들보다 땅에 내려와 있는 근접 각성자들가 더 좋은 먹잇감이었기 때문이었다.

세은은 가만히 부상자들에게 다가가 치유를 시작했다.

우웅―

“헐…….”

이미 세은이 치료하는 것을 한 차례 지켜봤던 채연도 멍한 모습으로 그 모습을 바라봤다.

손에서 밝고 따뜻한 빛이 나와서 사람을 치료하는 세은의 모습은 마치 성자와 같았다.

“치료 다 끝났습니다. 사망자는 저도 어쩔 수가 없군요.”

“아닙니다. 이 정도로도 충분히 감사합니다.”

치료를 받은 각성자들이 세은에게 가 감사를 표했다.

그들의 눈에는 세은에 대한 존경과 동경까지 엿보였다.

“아무래도 이번에 몬스터들이 많이 몰렸던 것 같습니다. 사망자 시신 수습하고 잠시 휴식 갖죠.”

갑작스런 상황에 꽤나 정신이 피로해진 세은이 말했다.

이성우도 옆에서 혀를 내두르며 대답했다.

“아무래도 그러는 것이 좋겠네요. 지금 바로 계속하는 것은 힘들어 보입니다.”

육체적 피로는 세은이 얼마든지 해결해 줄 수 있었지만, 정신적인 피로는 힘들었다.

사망자의 시신을 최대한 뒤쪽에 고이 안치한 사람들은 나무에 기대앉아서 휴식을 취했다.

채연은 사망자의 근처에 있는 각성자 두 명을 보면서 씁쓸하게 말했다.

“조금만 더 버티지…….”

“어쩔 수 없지. 각성자들은 항상 죽음을 옆에 두고 있으니까.”

이성우가 채연의 말을 듣고 그녀를 위로했다.

‘정말로 이번 일이 끝나면 마나 링 생성 방법과 오러 수련 방법을 공개해야겠어.’

눈앞에서 사람이 죽은 찝찝함에, 세은이 잔뜩 불편해진 마음으로 사망자의 시신을 바라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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