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나는 교황이다-21화 (21/225)

# 21

6. 한라산 게이트(2)

“이 인원이 말씀하신 조건에 부합하는 사람들 전부입니다.”

이지호에 말에 세은은 그의 뒤에 서있는 사람들을 쓱 둘러보았다.

‘마법사 7명에 오러 사용자 3명, 이성우랑 채연이까지 하면 총 12명인가.’

“그나마 마법사들은 세은 씨가 알려주신 방법으로 수련한 덕분에 조금 늘었습니다. 앞으로 더 늘어날 수 있을 텐데 하필 지금 시점에…….”

이지호의 말에 마법사들의 눈이 휘둥그레졌다.

안보원 소속은 물론, 안보원에서 마나를 증가시키는 수련을 한다는 소식을 접하지 못한 마법사들은 없었다.

‘이 사람이 그 수련법을 알려준 사람이라고?’

그러나 아무리 살펴봐도 세은은 마법사나 오러 유저로 보이지 않았다.

“괜찮습니다. 어쩔 수 없죠.”

“감사합니다. 그럼 지금 바로 올라가실 겁니까?”

“굳이 오래 끌 필요는 없겠죠.”

“예. 그럼 마지막으로 점검을 하고 출발하겠습니다.”

하지만 이지호의 정중한 태도가 세은에 대한 의심을 조금 접게 만들고 있었다.

그러고 이성우와 서채연, 김영한이 순순히 세은을 따르는 모습까지 더해지니 궁금한 점이 있어도 일단 속으로 삼키는 중이었다.

“각자 무기 점검하고, 구급물품 다 챙겼는지 확인하도록.”

“이상 없습니다.”

“저도 이상 없습니다.”

그렇게 모든 인원의 장비 점검이 끝나자 이지호가 세은을 바라보았다.

이지호의 시선을 받은 세은이 고개를 살짝 끄덕이는 것으로 일행이 한라산 게이트를 향해 이동을 시작했다.

“저희는 한라산 성판악탐방로를 타고 올라가서 백록담 옆에 열린 게이트로 접근해야 할 것 같습니다.”

“어디부터 문제인가요?”

“정상에서 2.3킬로미터 정도 떨어진 진달래밭 대피소까지는 멀쩡합니다. 아마도 반경 2킬로미터 정도가 문제라고 판단하고 있습니다.”

“그럼 그곳까지는 최대한 빨리 이동하죠.”

세은의 말에 따라 일행의 이동속도가 더 빨라졌다.

“저곳이 바로 진달래밭 대피소입니다.”

속도를 올리고 삼십 분 정도 지나 드디어 일행의 앞에 나무로 된 건물 한 채가 나타났다.

대피소에서 결계를 살피던 각성자들이 다가오던 일행을 보고 경계를 굳혔다.

“실장님!”

그러나 이내 일행에 섞여 있눈 이지호를 발견하고 반갑게 그들을 맞이했다.

“별다른 이상은 없나?”

“없습니다. 아, 아니 한 가지 이상한 점이 있긴 합니다.”

“뭔가?”

“몬스터들이 결계 밖으로는 나오지 않으려고 합니다.”

보고를 들은 이지호가 세은을 바라보았다.

“제가 생각하는 게 맞는다면 지금은 영역 확장을 기다리고 있을 겁니다. 바로 들어가죠.”

“예, 알겠습니다.”

“자, 잠깐만요!”

“무슨 일입니까?”

이성우와 마찬가지로 안보원 소속이었다가 법 개정 이후로 퇴직해 화령 길드를 세운 화령 길드장 김소진이 이지호를 불러 세웠다.

“지금 이 인원만으로 저 안으로 들어간다는 말인가요?”

“그렇습니다.”

“듣기로는 안보원의 모든 요원이 투입되었는데도 피해를 입고 후퇴했다고 들었는데요.”

“예, 맞습니다.”

“그런데 고작 12명으로 거기를 들어간다고요? 저희는 이러려고 지원 온 게 아닌데요?”

“괜찮습니다. 그때와 지금은 다르니까요.”

“대체 뭐가 다르다는 거죠? 우리가 아무리 강자라지만, 숫자에는 장사가 없어요.”

피식.

김소진과 이지호의 대화를 듣고 있던 세은의 입에서 자신도 모르게 웃음이 새어나왔다.

그 소리에 주변의 모든 시선이 세은에게로 향했다.

“거기, 뭐가 웃기죠?”

예상치 못한 상황에 이미 충분히 날카로워져 있던 김소진이 눈에 쌍심지를 켜고 세은에게 물었다.

세은은 입가에 미소를 걸고 담담하게 대답했다.

“아무것도 아닌데요.”

“방금 비웃었잖아요?”

그러나 세은은 이번에는 대답하지 않고 아니라는 대답으로 그저 어깨를 으쓱거렸다.

그 태도가 더욱 마음에 들지 않았는지 김소진의 말이 이어졌다.

“그리고 보니까 실장님, 저 젊은 사람에게 굉장히 정중하시던데. 설마 저 사람을 믿고 들어가는 건 아니겠죠?”

“맞습니다만? 문제가 있습니까?”

무슨 문제라도 있냐는 듯이 이지호가 김소진에게 되물었다.

“하. 문제가 있냐고요? 당연하죠. 딱 봐도 아무것도 안 느껴지는 민간인을 데리고 저기를 들어가요? 그것도 이 인원으로?”

“저는 별 문제 없을 것 같은데요.”

안보원 소속 마법사인 박정훈이 대화에 끼어들었다.

“처음에 실장님의 말을 들어보면 이 분이 마법사들에게 마나 링을 만드는 법을 알려주고, 국내의 게이트를 닫는데 일조한 그 각성자인 거 같은데요.”

박정훈은 정재호가 안보원에 알려준 방법에 따라 가장 먼저 마나 링을 만들어낸 각성자였다.

마나에 대한 뛰어난 친화력과 기감을 바탕으로 마나 링을 만들자마자 순식간에 4서클이 된 마법사.

아무래도 안보원에 있다 보니 듣는 것이 많아진 그는, 이지호의 태도를 보고 세은의 정체에 대해 어렴풋이 짐작하고 있었다.

“실장님도 같이 가시는데 설마 죽으려고 가시는 건 아닐 거고, 아무리 지금은 안보원 소속이 아니라 해도 옛 상관에 대한 기본적인 예의는 지켜주시죠.”

마법사와 오러 유저는 서로 도울 수 있는 부분이 없었기 때문에 끼리끼리 뭉치는 경향이 있었다.

거기에 실력을 인정받고도 안보원에 남은 박정훈과, 법이 개정되자마자 안보원을 뛰쳐나간 김소진은 애초에 그 성향 자체가 매우 다른 사람들이었다.

“…….”

박정훈의 말투가 매우 마음에 들지 않았지만, 막상 그의 말에 틀린 점은 없었다.

거기에 게이트가 닫히고 안보원의 마법사들이 마나 링이라는 것을 만들었다는 정보는 이미 접하고 있었다.

다만 세은이 너무 젊어 보인데다, 아무런 힘이 느껴지지 않아 믿지 않을 뿐이었다.

다만 지금의 정황상, 그 소문의 당사자가 세은이라는 것은 확실해 보였다.

유일하게 반발하던 김소진이 조용해지자 이지호는 일행들에게 말했다.

“자자, 그럼 이제 올라가겠습니다.”

일행은 다시 이지호의 인솔을 따라 결계의 경계 지점으로 향했다.

“흐음. 확실한 거 같네요.”

“뭔지 아시겠습니까?”

“예. 흑마력 지대입니다.”

“흑마력 지대요?”

“마왕이 마계의 환경과 비슷하게 대기의 마력을 바꾸어 자신과 수하들이 더 힘을 많이 낼 수 있도록 하는 결계죠.”

“흠, 그렇습니까?”

그러나 세은과 마왕을 토벌한 적이 있던 이지호는 세은의 설명에도 별로 심각하게 생각하지 않았다.

‘공간의 축이 바뀌어 버리는 바깥까지 이럴 정도면 꽤 성가시겠는데.’

오히려 세은이 안에 있는 놈이 얼마나 칼을 갈았을까 고민하고 있었다.

“하여튼 이제부터 제가 지휘하겠습니다. 제 앞으로 나서지 마시고 뒤에서 사주경계하면서 천천히 따라오세요.”

말을 마친 세은은 다른 사람들보다 먼저 결계의 안으로 들어갔다.

‘음? 생각보다 강한데.’

먼저 들어간 세은을 따라 들어간 일행들 또한 결계의 힘에 적지 않게 놀랐다.

“이거 몸이 너무 무거운데요?”

“거기에 숨도 약간 막히는 것 같아요.”

거기에 주변을 둘러본 채연이 놀란 표정을 지으며 말했다.

“여기 나뭇잎은 아예 말라비틀어졌어요.”

한 각성자가 갈색으로 탈색되어 버린 나뭇잎을 살짝 집자, 나뭇잎이 가루가 되어 산산이 부서졌다.

“이, 이게 무슨?”

마치 영화나 소설에서 나오는 음습한 위험 지대가 현실에 구현된 것 같았다.

“아예 다 말라붙어서 죽었는데요?”

채연이 집은 나뭇잎이 가루가 되는 모습을 지켜보던 세은이 말했다.

“실장님한테 들은 것보다 더 강한 것 같은데요 결계가?”

“예. 제가 봐도 그런 것 같습니다.”

요원들이 보고를 거짓으로 했을 리는 없으니, 그 한두 시간 사이에 결계의 힘이 강화되었다는 말이었다.

자꾸 예상치 못하게 변하는 상황에 세은은 한숨을 쉬었다.

우우웅―

세은이 축복의 기도를 시작했다.

기본적인 정신 마법과 항마력을 상승시켜 주는 축복이었다.

세은의 입술이 달싹거릴 때마다 대기 중에 반짝이는 빛들이 하나씩 생겨나더니 일행의 몸을 천천히 에워쌌다.

“에일린.”

시동어를 마지막으로 일행의 몸이 순간 환하게 빛났다가 꺼졌다.

“어? 호흡이 편해졌어?”

“몸도 무거운 게 사라졌는데?”

방금 전까지도 불만이 가득 찬 표정이던 김소진도 놀란 눈을 하고 세은을 바라봤다.

“이게 대체……?”

“오빠! 역시 최고예요!”

채연이 어느새 활짝 웃으며 세은의 팔을 붙잡았다.

예상치 못한 결계의 힘에 살짝 가라앉았던 분위기가 세은의 축복과 채연의 행동에 의해 다시 위로 떠올랐다.

백록담을 향해 전진할수록 결계의 음습함은 짙어져 갔다.

이제는 아예 대기 중에 흑안개가 껴서 시야를 방해하고 있었다.

“안개 때문에 제대로 시야가 확보되지 않습니다.”

“건강에 절대로 좋지 않을 것 같은 색의 안개네요.”

“조금 더 소리에 귀를 기울여 주세요.”

일행은 조심하면서 계속 전진했다.

백록담까지 1킬로미터 정도 남았을 때 갑자기 하늘에서 괴상한 소리가 들렸다.

키엑― 키엑―

잔뜩 예민해져 있던 일행의 고개가 동시에 하늘로 향했다.

안개에 가려져 잘 보이지는 않았지만 거대한 박쥐같은 것들이 하늘을 날고 있었다.

“익…… 룡?”

공룡의 모습을 하고 있는 몬스터의 외형에 누군가의 입에서 익룡이라는 단어가 튀어나왔다.

정말 그의 말대로 몬스터의 모습은 익룡을 닮아 있었다.

“그러게요, 닮았어요.”

가만히 머리 위를 선회하는 몬스터들을 보고 세은이 한 마디 했다.

“와이번이네.”

“와이번이요?”

세은의 옆에 꼭 붙어 있던 채연이 물었다.

세은은 고개를 끄덕이면서 말을 이었다.

“공중 몬스터 중에서는 최상급이지. 가죽도 단단해서 5서클 미만 마법은 박히지도 않아.”

세은의 말에 마법사들의 얼굴이 새파랗게 질렸다. 지금 일행 중에 5서클 마법사는 딱 한 명이었기 때문이다.

키에엑― 키엑!

와이번들의 울음소리가 더욱 격해졌다. 시끄러운 소리에 눈살을 찌푸린 세은이 중얼거렸다.

“일단 처리하면서 움직여야겠네.”

세은은 허공에 신성력으로 된 활을 만들었다.

그의 손짓에 따라 갑자기 생겨난 빛의 활.

그 모습을 처음 본 일행이 화들짝 놀랐다.

그러나 더욱 놀랄 일은 그다음에 일어났다.

“에일린, 홀리 애로우.”

빛의 활의 시위가 당겨지면서 화살이 생겨났다.

그리고 활시위를 놓자, 순식간에 허공을 가르며 날아가 와이번 중 하나의 가슴에 박혔다.

꾸엑!

고통에 찬 와이번의 비명소리가 크게 울려 퍼졌다.

동족이 고통스러워하는 모습에 다른 와이번들이 흥분해서 더욱 크게 괴성을 질렀다.

파아앙― 파아앙―

흥분해서 일행을 공격하려던 와이번들이 세은의 화살에 하나씩 격추되기 시작했다.

‘계속 이런 놈들만 나오면 사람들을 데리고 온 이유가 없는데.’

처음에 이지호와 얘기를 나눴을 때는 트롤과 오우거가 몬스터들의 주 구성이라더니 오우거는커녕 트롤도 보이지 않았다.

쿵!

생각을 하면서도 세은의 손은 잠시도 쉬지 않았다.

세은의 화살을 두 번 이상 맞은 와이번이 여지없이 공중에서 땅으로 볼썽사납게 추락했다.

“……이게 가능해?”

처음에 이지호에게 항의했던 김소진은 자신의 눈앞에서 일어난 일이 믿기지 않았다.

그러나 아무리 눈을 비비고 다시 감았다가 떠봐도 자신의 눈앞에서 보이는 광경은 엄연한 현실이었다.

“저도 실제로 보기 전에는 이 정도일 거라고 생각을 못했습니다.”

어느새 대한 길드장인 이성우가 김소진의 옆에 와서 말했다.

“괜히 이지호 실장이 자신감 있게 이런 곳으로 들어오는 게 아닙니다. 아시잖아요? 공무원들의 보신주의는.”

“그, 그렇죠.”

꾸에엑―

이성우와 김소진이 대화를 하는 동안 어느새 마지막 7번째 와이번이 바닥으로 추락했다.

모든 와이번이 추락하자 채연이 가장 먼저 세은에게로 달려가 말했다.

“오빠! 진짜 짱이에요! 정말 대단해요, 진짜!”

이지호도 역시라는 표정으로 세은에게 말했다.

“역시 대단하십니다.”

다른 일행들도 경외에 찬 표정으로 엄청난 능력을 보인 세은을 바라보았다.

세은만 아무 일도 아니라는 표정으로 담담하게 대답했다.

“트롤이나 오우거가 주 구성이라더니 훨씬 상위 몬스터가 나오네요. 무슨 일이 일어날지 모르니 빨리 이동하죠.”

“아, 예! 알겠습니다.”

일행은 세은의 말에 정신을 차리고 다시 백록담으로 이동을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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