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나는 교황이다-20화 (20/225)

# 20

6. 한라산 게이트(1)

팡―

“몇 번을 말해요? 마법사는 준비하는 사람이라고. 왜 다음 한 수밖에 생각을 못합니까?”

“아, 저, 그게…….”

세은의 짜증 어린 질책에 정재호가 당황해서 말을 더듬었다.

정재호가 전투 마법사로서의 재능을 키우기 위해 채연과 실전 같은 대련을 시작한 지 이 주째였다.

대신, 세은이 지켜보다가 방금처럼 위험한 상황이 닥치면 적절하게 개입해서 부상까지는 가지 않게 막는 중이었다.

그러나 방금 전의 정재호는 너무나 멍청하게 있다가 채연의 화살에 당할 뻔했다.

대련을 지켜보던 세은이 짜증이 날 만큼 한심한 상황이었다.

“아무리 채연이가 오러 익스퍼트급이라지만, 작전만 잘 짜면 이길 수 있다고 몇 번을 말했어요? 일부러 지형지물 이용하라고 미리 준비할 시간도 줬는데 왜 이용을 못해요?”

“죄, 죄송합니다.”

대련을 시작하기 전에 미리 정재호가 자리를 잡을 시간을 주고, 어떻게 지형을 이용할지 생각할 시간도 줬다.

하지만 마법을 한 번 사용한 다음 위치를 들킨 나머지, 멍하니 있다 바로 채연의 반격을 허용했다.

“이건 정해진 답이 있는 것이 아니라 그때그때 판단을 하는 것도 필요해요.”

“예…….”

세은의 질책이 계속될수록 재호의 얼굴이 침울해져 갔다.

오히려 최선을 다한 채연이 미안해질 정도의 표정이었다.

하지만 세은은 그런 정재호의 표정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할 말을 끝까지 이어 나갔다.

“캐스팅만 빠르다고 다 되는 게 아닙니다. 그건 조건에 불과해요. 다른 사람들이 마나를 잘 못 느끼는 거? 재호 씨도 제가 도와주지 않았나요.”

“…….”

세은의 말이 이어질수록 정재호의 고개가 아래로 푹 숙여졌다.

확실히 안보원의 사람들이 마나링을 만드는 속도가 생각보다 느리자 자신감이 붙은 것도 사실이었다.

“십 분 쉬고 다시 시작합니다. 좀 쉬세요.”

“네, 알겠습니다.”

엄한 세은의 질책에 급격히 침울해진 재호는 심각해진 표정으로 대답했다.

위잉― 위잉―

그때 정재호의 휴대전화가 때마침 울리기 시작했다.

“예, 실장님!”

―정재호 요원, 지금 수련 중인가?

“예, 그렇습니다.”

―아무래도 세은 씨에게 사정을 설명하고 당장 복귀해야 할 것 같네.

“지금 말입니까?”

―그래, 한라산에 게이트가 나타났어. 그런데 크기가 기존의 것과는 영 달라서 말이야.

“아…… 알겠습니다.”

―그럼 잠시 후에 보세나.

이지호와의 통화를 끝낸 정재호가 쭈뼛쭈뼛 세은에게 다가가 말을 건넸다.

“저…… 세은 씨?”

“말하세요.”

“지금 이지호 실장님에게 연락이 왔는데, 한라산에 게이트가 생겨서 안보원으로 복귀하랍니다.”

“그럼 가봐야겠네요.”

가볍게 고개를 끄덕인 세은이 정재호에게 말했다.

“가면 실전 한 번 더 겪고 오실 테니, 다음 대련에서는 더 발전된 모습으로 오세요.”

“예! 알겠습니다.”

“오늘 수고했습니다.”

“네, 수고하셨습니다.”

정재호가 급하게 안보원으로 출발하자, 세은이 채연에게 물었다.

“한라산에 게이트가 생겼다는데 길드에서는 연락 없어?”

“네. 아마도 안보원 단독 작전 아닐까요? 길드에 너무 많은 권한을 주는 걸 정부에서 싫어하거든요.”

“그래? 그럼 뭐하러 각성자 관리법을 개정했지.”

“그러니까요. 진짜 한심하다니까요. 아마도 안보원 힘이 커지니까 다른 정부기관에서 견제한 거 같다는 말은 들었어요.”

“하여간 하는 짓들이라고는.”

채연의 말에 세은이 고개를 저으며 한숨을 쉬었다.

자신이 생각해도 안보원에서 각성자를 전부 관리하는 것이 효율적일 텐데, 민간에 풀어놓은 게 이해 가지 않았다.

“뭐, 알아서들 하겠지.”

자신은 이렇게 각성자들이 수준을 높일 수 있게 도와주면 된다.

그럼 자신이 굳이 나설 필요가 없어질 거라고 세은은 생각했다.

이번에도 마법사 각성자들의 수준이 어느 정도는 높아졌을 테니 잘 해결하고 올 거라고 기대했다.

그리고 정재호가 어느 정도 궤도에 오르면 오러 사용자들도 가르쳐야지.

* * *

그러나 이런 세은의 기대는 단 삼 일 만에 이지호에게 걸려온 전화로 인해 무너지고 말았다.

따르릉―

“여보세요?”

―세은 씨! 저 이지호입니다. 염치없지만…… 한 번만 더 도움 부탁드립니다. 도저히 저희 수준에서 수습이 안 됩니다.

“무슨 일인데요?”

―말로 설명하기에는 힘들고, 제발 한 번만 부탁드리겠습니다. 비행기는 바로 준비시켜 놓겠습니다.

“그래도 대충 무슨 일인지는 알아야 할 것 아닙니까?”

―게이트 주변으로 아예 다가갈 수가 없습니다. 몬스터들이 너무 강력합니다.

“휴우…….”

결국 도움이 필요하다는 말에 세은이 한숨을 쉬었다.

애초에 나서지 말았어야 했는데.

세은은 게이트가 하필 부모님 집의 근처에 생겼던 것을 불평하며 이지호에게 대답했다.

“알겠습니다. 비행기 시간이랑 장소는 문자로 보내주세요.”

―감사합니다! 금방 보내겠습니다!

“예예.”

우웅―

그리고 잠시 이지호의 연락을 기다리고 있자니 뜻밖에 채연에게 문자가 도착했다.

『오빠! 이번에 우리 길드랑 같이 제주도로 가면 돼요. 자세한 건 이따가 전화 할게요.』

‘상황이 심각하긴 한가보네.’

자신뿐만이 아니라 다른 길드들까지 불렀다는 사실에 이지호의 엄살이 아니라는 것을 느낄 수가 있었다.

‘대체 무슨 몬스터들이 나타났기에 그러지?’

세은은 자신의 머릿속에 있는 몬스터들들 뒤적였다.

그러나 세은 자신에게는 다 비슷해서 도저히 어떤 몬스터가 그렇게 위협인지 알 수가 없았다.

‘에라 모르겠다. 어차피 내려가면 알겠지.’

목적지가 제주도인 만큼 세은은 여행가는 기분으로 가방을 꺼내서 적당히 운동복과 속옷을 담았다.

* * *

“세은 씨! 감사합니다.”

세은이 비행기에서 내리자마자 마중을 나와 있던 이지호가 반갑게 맞이했다.

얼굴 가득 반가운 표정을 짓고 있는 이지호의 모습에 세은이 인사를 건네고는 물었다.

“저 말고 다른 길드들도 많이 왔던데, 그 정도인가요?”

세은의 말에 이지호가 대답했다.

“그렇습니다. 도저히 안보원의 힘으로는 답이 보이지 않아서 이렇게 부탁을 드리게 됐습니다.”

“일단 가면서 얘기하시죠. 그럼.”

너무 다급해 보이는 이지호의 모습에 세은은 걸음을 재촉했다.

이왕 제주도에 도착하니 빨리 일을 끝내고 쉬고 싶기도 했다.

제주도의 자연은 사람을 설레게 하는 마력을 품고 있던 것이다.

“그럼 잠시 후에 뵙겠습니다.”

“오빠, 이따가 봐요!”

이성우와 서채연은 길드에서 준비한 차량을 타고 따로 이동하게 되었기 때문에, 간단하게 인사를 나눈 다음 헤어졌다.

세은은 이지호를 따라 공항을 나섰다.

공항 앞에 미리 준비된 차량을 타고 베이스캠프로 이동하며 이지호에게 설명을 들었다.

“처음에는 그저 조금 더 큰 게이트인 줄 알았습니다. 그래서 인원을 조금 더 많이 투입해 몬스터 웨이브를 포위 및 섬멸전을 펼쳤는데…… 문제가 생기더군요.”

“대체 어떤 몬스터이기에 그래요?”

세은의 물음에 이지호는 순간 몸을 흠칫 떨더니 말을 이었다.

“트롤과 오우거가 주 구성이었습니다. 다만…….”

“다만?”

“이상하게 게이트와 일정거리 이상 가까워지면 몬스터들이 더 흉포해지는데다, 저희 몸이 무거워지는 느낌이었습니다.”

“몸이 무거워진다고요?”

“네. 이상하게 마법과 오러가 제대로 위력을 발휘하지 못하고, 숨을 쉬기도 힘든 느낌이라 합니다.”

“느낌이라 합니다? 실장님은 그런 느낌 못 받았나요?”

“저 역시 마법의 위력이 줄은 건 느꼈는데, 호흡 곤란까지는 크게 못 느꼈습니다.”

“왜 그런 차이가 있을까요?”

“아마…… 능력의 차이 같습니다.”

이지호는 머리를 살짝 긁적이고는 말을 이었다.

“세은 씨가 구분하는 대로 오러 사용자는 익스퍼트 이상, 마법사는 4써클 이상은 호흡 곤란을 느끼지 못하더군요.”

이지호의 설명을 듣던 세은의 머리에 한 가지 기억이 스쳐 지나갔다.

“혹시, 그 이상한 느낌이 나던 경계 안쪽의 식물들이 이상하지 않아요?”

“식물들이 이상하냐는 말이 무슨 말씀입니까?”

“식물들이 말라비틀어진다거나, 색이 바랜다거나 그런 현상이요.”

“몬스터들을 상대하느라 제대로 확인을 못했습니다. 지금이라도 확인하라고 지시할까요?”

“네. 실장님 말을 들으니 떠오르는 것이 있긴 한데. 음…… 이상하네요. 그게 나타날 수가 없는데?”

“그럼 일단 식물들을 확인해 보라고 지시하겠습니다.”

“우선 그래야 할 것 같네요. 확인해 보고 알려달라 해주세요.”

그렇게 대화를 나누는 사이 어느새 세은과 이지호가 탄 차량은 베이스캠프에 도착했다.

베이스캠프의 분위기는 매우 어둡게 가라앉아 있었다.

하긴 이지호의 말대로라면 다들 지쳐 있는 건 당연한 일이었다.

“오빠!”

이성우와 같은 차를 타고 살짝 뒤에 도착한 채연이 세은을 불렀다.

세은은 채연과 같이 차에서 내리는 이성우에게 말했다.

“이성우 길드장님.”

“예, 세은 씨.”

“혹시 길드에 길드장님이랑 채연이 정도 수준의 각성자는 몇 명이나 있습니까?”

“아쉽게도 저와 채연이, 영한이까지 해서 세 명이 전부입니다.”

‘이럴 줄 알았으면 귀찮아도 모아놓고 한 번에 가르치는 건데.’

익스퍼트와 4서클 이상이 아니면 호흡 곤란이 온다는 말에 인원을 정비하려했지만, 크게 인원이 나오지 않았다.

다른 길드까지 지원을 요청하면 인원이 더 많아지겠으나, 그들이 자신의 말을 제대로 들어줄 것 같지는 않았다.

‘결국 내가 움직여야 하나.’

“하아…….”

세은은 고민에 빠졌다.

포위망을 좁히면서 올라가는 것이 가장 수고를 더는 방법인데, 인원이 모자라서 오히려 걸림돌이 될 가능성도 있었다.

“세은 씨! 세은 씨 말이 맞았습니다!”

세은이 고민에 빠져있을 때 이지호가 갑자기 소리를 지르며 달려왔다.

“세은 씨 말대로 경계 안쪽의 식물들이 시름시름 시들어가고 있다고 합니다!”

“확실해요?”

“예! 확실합니다.”

세은이 이 초유의 상황에 대해 무엇인가 안다는 사실에 밝아진 이지호의 얼굴과는 달리, 세은의 얼굴에는 점차 그늘이 지기 시작했다.

‘설마 했는데 제일 귀찮은 일이 일어났네.’

상황을 잘 파악하고도 어두워진 세은의 표정에 이지호가 다시 근심을 가득 담아서 그에게 물었다.

“왜 그러십니까? 심각한 상황인가요?”

“그렇게 심각한 상황은 아닌데, 좋은 상황도 아닙니다.”

세은은 한숨을 푹푹 쉬면서 말했다.

“아마 그 결계는 마왕의 결계가 분명합니다.”

“마왕이면…… 전에 만났던 몬스터 아닙니까? 그때 세은 씨가 한 칼에 죽였던…….”

이지호가 단탈리안을 생각하며 대답했다.

옆에서 둘의 대화를 가만히 듣고 있던 채연도 끼어들었다.

“맞아요! 오빠가 마법도 다 막아내고 한 번에 죽였던 그때 얘기하는 거잖아요. 그런데 왜 이렇게 한숨을 쉬어요?”

“문제는 결계가 게이트 밖으로 나왔다는 거죠. 그럼 안은 얼마나 더 엉망일지…….”

“아…….”

이지호의 입에서 자신도 모르게 탄식이 흘러나왔다.

그러나 아직 세은의 말은 다 끝나지 않았다.

“그리고 가장 큰 문제는 결계 안쪽입니다. 식물이 시들어가고 있다고 했죠? 저 상태가 오래 되면 다시 식물이 살아날 때까지 꽤 오랜 시간이 걸리는데다, 민간인들이 가까이 접근하면 안 됩니다. 최대한 빨리 없애야 해요.”

“헉! 그렇습니까?”

“네. 게이트 안쪽이야…… 뭐, 게이트를 없애면 사라지겠지만, 이미 밖에 펼쳐진 결계는 최대한 빨리 없애야 합니다.”

“그럼 이럴 때가 아니지 않습니까? 최대한 빨리 움직여야지요.”

이지호의 말에 세은은 또다시 작게 한숨을 쉬었다.

아무래도 자신을 도와서 같이 갈 사람이 너무 적었다.

그렇다고 혼자서 모든 일을 하기에는 일이 너무 버거울 것이 분명했다.

아무리 오러 익스퍼트나 4서클 마법사여도 혼자서 모든 일을 하는 것보다는 도움이 되는 게 분명했으니까 말이다.

생각을 짧게 끝낸 세은이 자신의 앞에 있는 이지호를 바라보았다.

그의 두 눈은 세은이 해결해 줄 거라는 믿음에 희망으로 가득 차 있었다.

그 눈을 보고 있자니, 세은은 점점 일이 귀찮아지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럼 일단 가용 가능한 인원 전부 모아주세요. 최소 조건은 익스퍼트 이상, 4서클 이상입니다.”

“네! 알겠습니다.”

세은의 지시를 받은 이지호가 바쁘게 움직이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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