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나는 교황이다-16화 (16/225)

# 16

5. 1서클 마법사 정재호(1)

“국장님, 한국에서 이번에도 게이트를 소멸시키는 데 성공했다고 합니다.”

미국의 게이트에 대응하기 위해 신설된 특수국토안보국의 국장인 펜 샌데로크는 아침부터 올라온 보고에 인상을 찌푸렸다.

“어떻게 그렇게 했는지 알아냈나?”

“그게 노력은 했습니다만…….”

말끝을 흐리는 부하직원의 태도에 펜의 눈썹이 치켜 올라갔다.

“한 사람이 게이트를 닫는 데 연관되었다는 사실 말고는…… 그들조차 아무것도 모르는 것 같았습니다.”

“한 사람?”

펜 국장은 직원의 말에 어이없다는 듯이 되물었다.

“게이트가 소멸했는데 한국 정부가 아무것도 모른다는 걸 지금 믿으라고 하는 건가?”

펜의 호통에 부하직원의 어깨가 움찔거렸다.

그러나 정말로 더 이상 보고 할 것이 없었다. 그 때문에 아무 대꾸도 하지 못한 채 펜의 질책을 들어야 했다.

“게이트를 닫을 능력이 없으면, 그 방법이라도 찾아와야 할 거 아닌가! 가서 훔쳐오든, 배워오든, 뺏어오든, 방법을 찾아와!”

“예, 옛!”

황급히 집무실을 나서는 직원의 뒷모습을 보며 펜이 거친 숨을 몰아쉬면서 중얼거렸다.

“한국, 한국이라…….”

* * *

“흐음.”

세은은 얼마 전 게이트에서 거대 박쥐를 잡고 얻었던 마정석을 살펴보고 있었다.

다들 미로를 헤매느라 마정석에 대해서 까맣게 잊고 있었다.

“뭐, 상관은 없겠지.”

어차피 세은이 직접 잡았기에, 이성우 역시 탐내지 않았다.

다만, 마정석을 어떻게 사용할 방법이 있는지에 대해서 고민 중이었다.

“이걸 어떻게 잘만 이용하면 마나로 변환할 수 있을 것 같은데.”

세은은 굳이 수련할 필요가 없어서 마나와 오러에 대한 기본적인 지식만을 가지고 있었다.

“일단 가지고나 있어야겠네.”

영롱하게 보라색으로 빛나는 마정석은 보석이라고 하기에도 충분했기 때문에 나중에 선물용으로도 나쁘지 않아보였다.

세은은 마정석을 눈에 잘 보이는 곳에 인테리어로 장식했다.

“괜찮네.”

자신의 미적 감각에 세은이 새삼 감탄하고 있을 때, 이지호 실장에게서 전화가 걸려왔다.

“뭐지?”

미로 형식의 던전형 게이트에 대해서는 이미 대화를 다 끝났다. 이지호에게 연락이 올 일이 없던 것이다.

“여보세요?”

―아, 세은 씨. 저 이지호입니다.

“압니다. 무슨 일이죠?”

이번에도 역시나 단도직입적인 말투에 잠시 머뭇거리던 이지호가 본론을 꺼냈다.

―아…… 혹시 어디 외국에서 세은 씨와 접촉한 적이 있습니까?

“아니요. 없는데요.”

―……그렇습니까?

“무슨 일이죠?”

세은의 질문에 이지호가 상황을 설명하기 시작했다.

―미국에서 세은 씨를 알아챈 것 같습니다.”

“그게 무슨 말입니까?”

―게이트를 소멸시킨 사람이 세은 씨라는 사실을 알고, 정부에 세은 씨를 빌려달라고 요청했습니다.

“사람이 물건도 아니고 빌려달라고 한다고요? 개념이 없네요.”

―하하…… 하여튼 정부에서는 오히려 세은 씨의 힘을 믿지 못하고 있어서 미국의 요청을 실수라고 판단한 모양입니다.

“그럼 무엇이 문제인지?”

―미국에서 세은 씨와 직접 접촉을 시도하려고 하는 정황이 포착되었습니다.

이지호의 말에 세은이 살짝 혀를 찼다.

이지호는 휴대 전화 너머로도 세은이 어떤 표정을 짓고 있는지 알 수가 있을 것 같았다.

“귀찮네요.”

―그래서 혹시나 해서 미리 말씀드리는 겁니다.

“감사합니다.”

자신을 생각해서 따로 정보를 주는 이지호의 모습에 세은이 감사를 표했다.

이지호는 세은의 감사에 별일이 아니라는 듯이 웃음을 지으며 대답했다.

―아닙니다. 세은 씨가 도와주신 것도 있고…… 사실 미국 쪽에서 접촉하면 조금 살살 다뤄주십사 해서 연락드렸습니다.

“뭐, 제가 함부로 누굴 때리거나 하지는 않는데요?”

세은의 말에 이지호가 다급하게 변명했다.

―그래도 미국이라, 노파심에서 드린 말입니다. 기분 나쁘셨다면 죄송합니다.

“그런 건 아닙니다.”

―그럼 다행입니다. 아! 그리고 미국뿐만이 아니라 일본이나 중국에서도 세은 씨에 대해 관심을 갖는 것 같다는 정보가 있습니다. 이 부분에 대해서는 더 자세한 정보가 들어오면 알려드리겠습니다.

“알겠습니다. 그래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하하, 아닙니다.

이지호와의 전화를 끊은 세은이 전화 내용에 대해 생각했다.

“미국이라…….”

이지호의 말을 들었지만 딱히 걱정은 들지 않았다.

다만 어떤 식으로 자신에게 접근할지에 대해서는 궁금함이 들었다.

* * *

“나도 차나 한 대 살까?”

“오빠도 한 대 사요! 얼마나 편한데요?”

“돈이 없어서…….”

“에이. 오빠는 돈 벌려면 충분히 벌 텐데, 왜 그래요.”

확실히 그렇지 않아도 얼마 전에 대한 길드의 길드장인 이성우가, 게이트의 대가를 보내준다고 했던 게 기억났다.

이성우가 대가를 보내주겠다고 계좌를 알려달라 요청해 왔던 것이다.

그때는 아무 생각 없이 알려줬는데 나중에 확인해 보니, 2억이라는 돈이 들어와 있었다.

「생각보다 큰데요?」

「저희가 정부에서 얻은 금액과 신뢰에 비하면 아무것도 아닙니다. 받아주세요.」

이성우의 간곡한 말에 일단 받아두기는 했지만, 부모님에게 갑자기 이런 큰돈을 번 이유를 설명할 수 없었다.

그래서 자신의 통장에 넣어놓은 채 방세와 교통비로 사용 중이었다.

“그나저나 더 이상 살 거 없어요?”

돈이 들어온 김에 옷을 사려고 했던 세은은, 채연에게 의류 매장이 많은 곳을 물어봤다가 붙잡혀 같이 쇼핑을 하고 있었다.

“아, 충분히 샀어. 대충 사면 되지.”

“에이. 그래도 잘 맞춰서 사야죠!”

“시간 늦었어. 가야 돼.”

세은의 말에 채연의 눈매가 살짝 치켜 올라갔다.

“아니 오빠!”

“왜?”

“저를 만나는데, 뒤에 약속을 잡았다고요?”

“아르바이트 면접 봐야 해.”

“돈이 생겼는데 왜 아르바이트를 해요?”

“그래야 용돈을 안 받아도 부모님이 의심을 안 하시지.”

“…….”

물 흐르는 듯이 흘러나오는 세은의 대답에 채연의 입이 꾹 다물어졌다.

“적당히 옷 갈아입고 가야 하나.”

“무슨 면접인데요?”

“카페 서빙.”

“어디 있는 카페인데요?”

“명동에 있어.”

“왜 그렇게 멀리서 일해요?”

“조건이 괜찮던데? 어차피 집 근처에서 하면 동네조차 안 벗어나니까. 멀리 좀 가보려고.”

“언제언제 하는데요?”

“일단 평일 마감이기는 한데, 가서 면접 봐야 해.”

“지금 바로 가요?”

“응. 두 시까지 면접이야.”

“그럼 제가 태워다 줄게요.”

“아냐, 바로 지하철 타고 가면 되는데?”

“에이…… 저도 시간 있어요. 같이 가요.”

하지만 채연의 목적은 따로 있었다.

바로 세은의 동선을 파악하는 것이었다.

집을 제외하면 가장 오래 머물 곳이 될 것이리라.

“뭐, 그럼 고맙긴 한데.”

아무래도 지하철보다는 차가 편한 세은은 채연과 함께 차를 타러 이동했다.

‘나도 차를 한 대 사야 하나…….’

* * *

“오빠!”

“어서 오…… 오늘도 왔어?”

세은은 카페로 들어오는 손님에게 인사를 건네려다 빙긋 웃고 있는 채연을 보고 말했다.

“에이. 커피 마시러 오는 거죠.”

채연은 싱긋 웃으면서 세은 근처에 자리를 잡고 앉았다.

세은은 한숨을 쉬면서 메뉴판과 물을 준비해서 채연이 앉은 테이블로 다가갔다.

“주문 결정하시면 불러주세요, 고객님.”

세은은 벌써 일주일 넘게 매일같이 찾아오는 채연에게 매뉴얼대로 응대했다.

채연은 메뉴판은 열어보지도 않은 채 바로 음료를 주문을 했다.

“저는 아이스 카페모카요. 휘핑크림 듬뿍 올려서요.”

“그러다 살찝니다, 고객님.”

“그럴 일 없으니, 산처럼 쌓아서 주세요.”

당당한 채연의 말에 세은은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그러고는 주문을 바에 전달하기 위해 움직였다.

“아이스 카페모카, 휘핑크림 잔뜩 올려서요.”

탁.

“여기요.”

안에서 바리스타 겸 바텐더로 일하는 아르바이트생이 주문한 카페모카를 내보냈다.

“…….”

세은의 앞에는 거의 음료 잔만큼 높이 쌓아올려진 휘핑크림이 있었다.

듬뿍 달라고 하긴 했는데, 이게 대체 무슨 무식한 짓인지.

잠시 황당한 나머지 멍하니 있던 세은에게 바텐더 알바생이 물었다.

“그, 그런데 세은 씨 저 손님…… 서채연 맞지? 그 올림픽 금메달…….”

“아마도요.”

일단 휘핑크림이 금방이라도 무너질 것 같았기 때문에 대충 대답한 세은은 카페모카를 서빙 했다.

“주문하신 휘핑크림 추가한 아이스 카페모카 나왔습니다.”

“헐…… 대박. 완전 좋아…….”

생전 처음 보는 휘핑크림의 산에 채연의 눈이 몽롱하게 풀렸다.

“완전 고마워요. 오빠! 진짜 이런 건 처음이에요.”

“……그게 다 들어가? 달지 않아?”

“그럼요. 휘핑크림은 사랑이라고요.”

채연이 금방이라도 피어날 것 같이 화사한 미소를 지으며 휘핑크림을 먹기 시작했다.

세은은 작게 고개를 좌우로 저었다.

‘내가 먹는 건 아니니까.’

열성적으로 휘핑크림의 산을 깎아내리는 채연을 뒤로한 채 세은은 다시 자리로 돌아갔다.

“저…… 세은 씨?”

“네?”

바텐더 알바가 쭈뼛거리며 세은을 불렀다.

“세은 씨 출근할 때마다 오는 저 사람…… 서채연 맞지?”

“그럴 걸요.”

“서, 서채연이랑 아는 사이야? 그것도 이렇게 매일 올 만큼?”

“아는 사이는 맞는데요.”

세은의 대답에 남자의 눈에 경악이 가득 찼다.

“대, 대박. 호, 혹시, 나 인사라도 시켜주면…….”

기대감과 간절함으로 가득 차 있는 남자, 정재호의 얼굴을 잠시 바라보던 세은이 고개를 끄덕였다.

이렇게까지 간절한 눈으로 바라보는데, 인사 정도야 못 시켜줄 것도 없었다.

그리고 아르바이트 선배라는 이유로 자주 자신을 친절하게 도와주기도 했다.

“잠깐만요. 물어보고 올 테니.”

“고마워! 정말 고마워, 세은 씨!”

벌써부터 감격에 젖어 있는 정재호를 둔 채 세은은 여전히 휘핑크림의 늪에 빠져 있던 채연에게 다가갔다.

“채연아.”

“네?”

세상을 다 가진 것 같은 표정으로 휘핑크림을 먹던 채연이 세은의 부름에 고개를 돌렸다.

얼마나 열심히 휘핑크림을 먹고 있었는지 입술 끝에 하얀 휘핑크림이 묻어 있었다.

‘허억.’

뒤에서 조마조마하게 그 모습을 지켜보고 있던 정재호는 그런 채연의 모습에 심장을 부여잡았다.

‘역시 국민 여동생…….’

“방금 휘핑크림 산처럼 쌓아주신 분이 너랑 인사라도 하고 싶다는데?”

“아, 정말요? 저야 괜찮아요.”

“그래? 그럼 지금 오라고 한다?”

“네네.”

채연의 승낙이 떨어지자 세은은 고개를 돌려 조마조마하게 이곳을 보고 있던 정재호에게 손짓을 했다.

재호는 세은의 손짓을 보자마자 재빠르게 머리를 대충 만지며 바를 빠져나갔다.

“아, 안녕하세요. 정재호라고 합니다. 만나서 영광입니다!”

“네, 안녕하세요. 서채연이에요.”

서채연이 살짝 자리에서 일어나 인사를 받으며 싱긋 웃었다.

그 모습에 정재호의 얼굴이 발갛게 달아올랐다.

“실제로 뵈어서 영광입니다.”

“영광이라고 하시니까, 제가 더 영광이네요.”

“아닙니다! 이번에 안보원에 들어가는데, 퇴직하셔서 정말로 아쉽습니다.”

“아? 각성자세요?”

채연의 말에 정재호가 살짝 한숨을 쉬며 말했다.

“네. 그렇기는 한데…… 아무래도 채연 씨만큼 강하지 못해서요. 이번에 안보원에서 결원을 보충하기 위해 조건을 대대적으로 낮추는 바람에 겨우 들어갔습니다.”

‘그럴 만도 하지.’

세은 역시 처음 출근해서 정재호를 봤을 때, 각성자가 카페에서 아르바이트를 하고 있어서 살짝 놀랐다.

그래서 자세히 살펴보니 정재호는 이계의 기준으로 1클래스 러너 정도 수준밖에 되지 않았다.

아무리 수준이 낮은 지구에서조차 최하위였다.

당연히 각성자 관리법 개정으로 인해 빈 결원이 아니라면 안보원에 합격하기는 요원했을 터였다.

‘뭐, 내가 먼저 오지랖 부리면서 도와줄 필요는 없지.’

이런 세은의 생각은 꿈에도 모른 채 정재호는 채연과 즐겁게 대화를 나누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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