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나는 교황이다-15화 (15/225)

# 15

4. 길드에 들어오세요(4)

반짝―

그때 박쥐 몬스터의 가슴에서 무엇인가 반짝거리는 물체가 세은의 눈에 들어왔다.

‘뭐지?’

세은은 호기심에 박쥐 몬스터의 시체로 다가가서 유심히 살펴보았다.

“이건 마정석이네?”

오랜 세월을 지내온 영물에게 내단이 있듯이, 그와 비슷한 마물들이 가지고 있는 것이 바로 마정석이었다.

“이걸 여기서 볼 줄이야.”

게이트의 내부 환경이 이계와 비슷하기는 했지만, 설마 마정석까지 나올 줄 몰랐다.

“그럼 마력석이나 미스릴 같은 것들도 나오는 게이트가 있으려나?”

“그건 뭡니까?”

세은이 박쥐 몬스터의 가슴에서 요사한 보랏빛이도는 돌을 꺼내 손에 쥐고 있자 이성우가 조심스럽게 물었다.

“이거요? 마정석이라는 건데요.”

“마정석이요?”

“음. 쉽게 말하자면…… 타락한 이무기가 가지고 있는 여의주?”

세은조차 간단히 설명하기 어려웠다.

그러나 이성우는 이 정도 설명으로도 충분한지 고개를 끄덕였다.

“아아. 그럼 이걸 어디에 사용하는 겁니까?”

“보통 마법 연구나 마법진의 재료로 씁니다만.”

그러나 지금 지구에서 마정석이 필요한 마법사가 있을 리 없었다.

‘일단 죽이 되든 밥이 되든 각성자를 키울 필요가 있겠어.’

한국의 최상위 각성자 그룹 세 명이 이딴 박쥐 몬스터 한 마리도 잡지 못하는 모습에 세은의 생각이 바뀌었다.

이러다가 마왕이 하나라도 지구로 직접 나온다면, 그 국가는 순식간에 초토화가 될 것이 눈에 불을 보듯이 뻔하게 그려졌다.

세은은 이번 게이트에서 나가면 이지호 실장과 얘기를 나눠봐야겠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왜 출구가 안 열리지?”

던전의 보스로 추정되던 박쥐 몬스터를 잡았으니 게이트의 출구가 열려야 하는 것이 정상이었다.

“설마 이게 보스가 아닌가?”

“이게 보스가 아닙니까?”

세은의 중얼거림에 놀란 이성우가 반문했다.

오러가 전혀 통하지 않던 몬스터가 보스가 아니라니…… 갑자기 온몸에 소름이 돋는 기분이었다.

“흐음. 출구가 열리지 않는 걸 보니 그런 것 같은데.”

“그러고 보니 뒤쪽에 다른 통로가 있어요.”

채연의 말에 모두의 시선이 동공의 뒤쪽으로 향했다.

“아무래도 진짜 미로 같은데.”

앞으로의 고생길이 예견됨과 함께 세은의 입에서 한숨이 새어 나왔다.

“일단 다시 걸어볼까요.”

* * *

“……도대체 어디가 출구일까요?”

끝이 보이지 않는 던전를 헤매는 데 지친 채연의 입에서 불쑥 하소연이 튀어나왔다.

계속되는 갈림길에 헷갈리지 않게 왼쪽으로 움직였지만, 도저히 끝이 보일 기미가 보이지 않았다.

육체적인 피로야 세은이 신성력을 치유를 주기적으로 해줘서 버틸 수 있었지만, 생리적인 배고픔은 견디기 힘들었다.

다른 사람들도 말을 안 할 뿐, 마찬가지의 심정이었다.

‘확 일렬로 길을 뚫어버릴까.’

세은도 슬슬 배고픔과 짜증을 느끼고 있었기 때문에 던전의 벽을 뚫으면서 직선으로 다닐까 생각도 들었다.

그러나 던전의 구조를 모르는 이상 무너질지도 모르기에, 과격한 행동을 자제해야 했다.

그나마 다행히 몬스터들은 처음의 동공에서 만났던 거대 박쥐를 제외하면, 스켈레톤들밖에 나오지를 않아 다행이었다.

‘그게 더 이상하단 말이야.’

보통 이런 인위적인 던전 자체가 최종적으로 무엇인가를 지키기 위해 만들어지는 일 대부분이었다.

가끔 함정의 용도로 사용되기도 하지만, 이러나저러나 스켈레톤들만 넣어놓지 않았다.

스켈레톤의 모습이 기괴하기에 그렇지, 몬스터로 따지면 고블린들조차 일대일로 상대할 수 있는 유일한 언데드였다.

무엇인가를 지키거나 죽이기 위한 던전에 스켈레톤만 있다는 사실이 더욱 위화감을 주었다.

“어쩐지 같은 곳을 도는 기분입니다.”

이성우의 말에 긴장감 없이 걸음을 옮기던 세은의 걸음이 우뚝 멈춰 섰다.

“같은 곳을 도는 것 같다고요?”

“예. 사실 다 거기서 거기기는 하지만…… 그냥 느낌이 그러네요.”

세은은 주변을 둘러보았다.

확실히, 이성우의 말을 듣고 주위를 자세하게 살펴보니 묘한 기시감이 느껴졌다.

“채연이 너는 어때?”

“네? 전 잘 모르겠어요.”

“……잘 모르겠습니다.”

거대 박쥐를 잡을 때 목도한 세은의 무력에 기가 질린 영한이 세은의 시선을 받고 마지못해 입을 열었다.

“흐음.”

서걱―

잠시 고민하던 세은은 신성력으로 한 쪽 벽면에 표식을 남겼다.

“일단 이제부터 갈림길이 나오면 계속 표식을 남기고 움직이죠.”

“알겠습니다.”

세은은 표식을 남기며 다시 걸음을 옮겼다. 그리고 역시 다음 갈림길에서도 벽에 표식을 남겨 놓았다.

‘여기에는 줄을 두 개 그어놔야겠어.’

혹시나 하는 마음에 갈림길이 한 번 더 나올 때마다 줄을 한 개씩 추가해서 그었다.

그런 식으로 갈림길에 표시한 줄이 다섯 개가 되었을 때, 세은의 미간에 금이 그어졌다.

“표식이 있네요.”

“예?”

“그것도 줄이 한 개인 걸 보니 다시 처음으로 돌아온 것 같습니다.”

모든 일행의 얼굴에 허탈함이 가득 찼다. 어쩐지 통로가 보이지 않는다 했더니 같은 곳을 돌고 있던 것이다.

“여기서는 오른쪽 길로 한 번 가고, 다시 나오는 갈림길에 표식이 없으면 다시 왼쪽으로 가겠습니다.”

“예. 그게 제일 나을 것 같군요.”

“오빠만 따라갈게요.”

일행의 동의를 얻은 세은이 희미하게 웃어보였다.

“조금만 더 힘내죠. 게이트가 미로라는 건 예상치 못한 상황이지만 천천히 가다보면 끝이 보일 겁니다.”

말을 마친 세은은 다시 앞장서서 걸음을 옮겼다.

일행들의 무거운 발걸음이 그 뒤를 따랐다.

“오빠, 여기서 며칠이나 못 나가면 어떻게 해요?”

“그전에 나가야지.”

“그래도 여기가 엄청 길면 오래 걸릴 텐데…….”

채연은 잠깐 머뭇거리다가 하려던 말을 꺼냈다.

“벌써 목도 마르고, 제일 큰 문제는 식수랑 식량이잖아요.”

그것들은 어디서 구할 수 있는 것도 아니었다.

채연이 더 이상 말을 하지는 않았지만 뒷말은 같이 걷고 있는 누구나 알 수가 있었다.

세은은 살짝 불안해하는 채연의 머리를 쓰다듬으며 그녀를 안심시켰다.

“정 안 되면 내가 빠르게 한 바퀴 돌고 오지 뭐.”

세은이 담담하게 말했다.

지금 같은 상황이라면 자신이 전부 돈다고 해도 얼마나 걸릴지는 모르겠지만, 결국 방법을 찾는다면 이렇게 할 수밖에 없을지도 몰랐다.

“그럼 지금 그렇게 하면 되지 않나요?”

거대 박쥐 이후로 계속 기가 죽어 있던 영한은, 세은이 채연의 머리를 쓰다듬자 질투가 섞인 말투로 물었다.

‘새끼. 좋아하는 여자 앞이라고 자꾸.’

영한의 눈이 계속해서 채연을 향한단 건 이미 알고 있었다.

하지만 굳이 미로에서 분란을 일으키고 싶지 않아 가볍게 그의 시비를 넘겼다.

“나눠지면 좋지 않으니 일단 할 수 있을 만큼은 해봐야죠.”

“이미 할 만큼 한 거 같은데요.”

“아직은 다들 멀쩡하니까 나눠지는 건 좋지 않죠.”

“위험 요소도 없는데 뭐가 문제입니까?”

“여기가 얼마나 넓은지 모르니까요.”

“단순히 혼자 고생하기 싫어서 하는 핑계 같은데요?”

“뭐, 그렇게 들리면 어쩔 수 없고.”

세은은 어깨를 으쓱거렸다.

자신의 시비에도 세은이 담담하게 넘기자, 더욱더 부아가 치밀었다.

“세은 씨 말이 맞습니다. 영한 씨, 아직은 우리가 여력이 있으니 같이 움직이는 게 나아요.”

한 마디 더 쏘아붙이려던 영한은 이성우의 개입으로 입을 꾹 다물었다.

각성자가 된 이후로 항상 주변에서 떠받들려지기만 했던 김영한의 프라이드가 산산이 부서지고 있었다.

“다시 갈림길이 나왔네요. 여기서는 다시 왼쪽으로 가겠습니다.”

무거워진 공기를 가르고 갈림길이 일행의 눈앞에 나타났다.

그러자 세은은 전과 다른 표식을 남겼다.

그렇게 일행은 다시 네 번의 갈림길에서 왼쪽으로 갔다.

그런 식으로 일행은 계속 표시만을 남기며 헤매고 있었다.

“하아. 이제는 정말로 지쳐요.”

“그래도 거의 다 온 것 같은데?”

어두운 던전 안이라 얼마나 시간이 지났는지 알 수 없었지만, 상당한 시간이 흐른 건 분명했다.

그래도 다행히 시간을 헛되게 쓰진 않았던 모양이었다.

드디어 길을 찾는 데 어느 정도 진척을 보였던 것이다.

길을 헤맨다 해도, 금방 방향 수정을 할 수 있었다.

구워억―!

얼마나 지났을까.

그리고 거의 끝에 다가왔다는 사실을 확실하게 알게 해준 것은.

거칠게 끓는 괴상한 소리가 일행을 향해 들려왔을 때였다.

“드디어 제대로 찾아온 것 같네요.”

평소라면 처음 들어보는 괴상한 울음소리에 긴장부터 했을지 모른다.

하지만 도저히 그 구조를 알 수 없던 미로에서 헤맨 일행은 오히려 스켈레톤이 아닌 다른 몬스터의 흔적에 기꺼워했다.

“드디어…….”

채연의 말에 감격이 가득 어려 있었다.

아직 끝은 아니었으나, 세은 역시 상당히 들떴기에 그녀를 제재하지 않았다.

구우어웍!

괴상한 소리가 커지는 것과 동시에 강한 사기가 세은에게 느껴졌다.

세은은 신성력을 사용하는 만큼 사기와 흑마력에 다른 사람들보다 예민하게 반응했다.

“앞에 있는 건 구울 같은데.”

“우리가 아는 그 구울이요?”

“비슷해.”

걸음을 멈추지 않고 전진하면서 세은이 설명을 시작했다.

“하나 다른 건 흑마력이나 사기로 인해서 육체가 강화되어 있다는 거? 어지간한 오러나 마법 같은 건 먹히지도 않지. 여기서는…….”

잠시 일행을 둘러본 세은은 영한을 가리키며 말했다.

“저 사람 오러 정도면 통하겠네.”

세은의 갑작스런 지목에 영한은 놀랐다.

그러나 자신의 실력을 인정해 주는 말에 살짝 뿌듯해졌다.

그사이 어느새 구울이 시야에 들어왔다.

세은은 반색하며 신성 마법을 발동했다.

“홀리 애로우.”

좁은 던전의 특성상 최대한 조심스럽게 화살을 만들어냈다.

시위를 당겼다가 놓자 신성력의 화살이 빠르게 바람을 갈랐다.

쿠득! 쿠드득!

사기와 상극인 신성력의 화살에 관통된 구울들이 기괴한 소리를 내며 무너져 내렸다.

세은은 걸음을 멈추지 않은 채 계속 빛의 화살을 만들어 구울들을 사냥해 나갔다.

콰득!

채연을 포함한 일행들은 신기에 가까운 세은의 모습을 보면서 넋을 잃었다.

그런 식으로 손쉽게 구울들을 물리치며 걷다보니 구울 다음으로 스켈레톤 나이트가 나타났다.

“키에엑!”

일반 스켈레톤과는 달리 갑옷과 무기를 세트로 착용하고 있었다.

그러나 착용하고 있던 장비가 무색하게 세은의 화살에 속절없이 무너져 내렸다.

‘나오는 몬스터를 봐서는…… 보스가 리치일 것 같은데.’

미로와 언데드의 조합이라면 리치나 네크로맨서의 던전일 확률이 높았다.

그리고 그런 세은의 추리를 뒷받침 해주듯이 스켈레톤 나이트들 다음에는 듀라한이 나타났다.

“꺄악! 저건 뭐예요?”

“흐엑.”

잘린 머리를 한쪽 팔에 든 듀라한의 모습에 채연이 비명을 질렀다.

이성우와 김영한 역시 듀라한의 모습 때문에 살짝 헛구역질을 했다.

“듀라한. 머리가 잘려서 죽은 사람이 언데드가 되면 듀라한이 되는 거야.”

크오오!

손에 들린 머리에서 포효가 들렸다.

그러나 듀라한들의 자신감 넘치는 포효를 오래 가지 못했다.

푹!

세은이 날려 보낸 화살이 듀라한들의 눈알을 정확히 파고들었기 때문이다.

“아, 정신이 없어서 설명을 못했는데, 언데드들은 보통 불에 약합니다. 저야 일반 마법이 아니니까, 잘 통하는 거고요. 듀라한 같은 경우, 눈이 약점입니다. 눈을 찌르면 아무것도 못 봐요.”

혹시 다음에도 언데드와 조우할 수 있기 때문에 세은은 듀라한의 약점을 일행에게 전수해 주었다.

“그러니까 눈을 찌르고 나서 공격하면 수월하게 처리할 수 있습니다. 눈을 찌르는 게 어려우면 시야만 방해해도 되고요. 그런 마법은 많으니까.”

파아앙!

조금 더 출력을 높인 빛의 화살이 듀라한 세 마리의 가슴에 또다시 공기구멍을 만들었다.

펑!

듀라한들이 쓰러짐과 동시에 갑자기 흑마력으로 이루어진 마법이 세은에게 날아왔다.

“다들 기뻐하세요. 이제 나갈 수 있을 것 같네요.”

자신에게 날아오는 흑마력을 느끼고 방어막을 만들던 세은이 진심으로 기쁜 듯 입가에 미소를 가득 머금었다.

쓰러진 듀라한들 뒤로 네모난 방이 보였다.

아마도 거대 박쥐가 살던 동굴을 리치가 점령해서 던전으로 만든 것 같았다.

급한 마음에 방으로 빠르게 들어가니 눈이 있어야 할 자리가 텅 비어서 빨간 빛으로 흉흉하게 빛내는 해골이 나타났다.

해골은 로브를 걸친 채 오연하게 세은을 내려다보고 있었다.

“너냐? 미로 같은 걸 만든 새끼가?”

철컹― 철컹―

그러나 리치는 자신을 호위하던 데스 나이트 두 기를 내보내는 것으로 대답을 대신했다.

“후우…… 형도 피곤하다. 빨리 끝내자.”

꽤 넓은 방의 구조에 세은은 안심하고 신성 마법을 발동할 수가 있었다.

“에일린.”

세은의 시동어가 리치의 방을 가득 채웠다.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