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2
4. 길드에 들어오세요(1)
『예비군 게이트 봉쇄! 대체 각성자들은 무엇을 하고 있나?』
휴대전화를 만지작거리다가 자극적인 제목의 기사가 포털 사이트 메인에 오른 것을 확인했다.
“하여튼 기자들 제목 뽑는 능력이란.”
연천 게이트를 해결한 세은은 약속대로 조기 퇴소를 해서 집으로 돌아왔다.
내년에는 이런 기회가 없을 거란 게 아쉬울 뿐이었다.
각성자 등록을 하면 면제가 된다는 얘기에, 각성자로 등록을 심각하게 고민까지 할 정도였다.
그러나 각성자로 등록하면 모든 정보가 정부에 등록되기 때문에 그러고 싶지는 않았다.
세은은 기사를 클릭해 기사에 달린 댓글들을 읽어보았다.
『역시 대한민국 예비군.』
『내 친구 말로는 저기 각성자 한 명 있었다고 하더라.』
『윗님 카더라 통신 자제 좀요.』
『솔직히 맞는 말이지, 예비군끼리 괴물들 잡는 게 말이 되나?』
『왜 말이 안 됨? 총 무시하셈?』
세은이 댓글 전쟁을 실시간으로 감상하고 있을 때였다.
누군가 현관문을 두드리는 소리가 들렸다.
똑똑.
“오빠! 저 채연이에요.”
“응?”
무방비 상태로 누워 있던 세은은 연락도 없이 찾아온 채연의 방문에 당황했다.
“연락도 없이 무슨 일이야?”
“에이, 이렇게 올 수도 있죠.”
“잠깐만 기다려.”
급하게 운동복을 챙겨 입은 세은은 문을 열었다.
“짠! 오빠 커피 사왔어요.”
문이 열리자 한 손에 테이크아웃 커피 두 잔을 든 채 반갑게 인사를 하는 채연이 보였다.
“다음부터는 말 좀 하고 와.”
“네네, 그럴게요.”
채연이 건네는 커피를 마시며 세은은 안으로 들어갔다.
채연 역시 신발을 벗고 세은을 따랐다.
“방이 생각보다…….”
“더럽지? 남자 혼자 사는 방이 다 이렇지 뭐.”
“아, 아니요, 그게 아니라.”
직설적으로 물어보는 세은의 말에 살짝 당황한 채연이 손을 내저었다.
그런 채연을 보고 자신도 모르게 미소를 지었다.
“그래서 무슨 일이야?”
“아! 오빠! 이번에도 게이트 하나 닫았다면서요?”
“닫았지.”
“진짜 대단해요!”
커다란 채연이 눈이 초롱초롱하게 세은을 바라보았다.
“그래서 무슨 일로 왔어?”
“우리 길드장님이 오빠를 꼭 한 번 뵙고 싶다고 전해달래요.”
“싫어.”
“아, 왜요오!”
“귀찮아.”
각성자 길드.
이지호가 연천 게이트 사건에 대한 감사를 표하기 위해 세은과 만나면서 했던 얘기 중에 길드 얘기가 절반 이상을 차지하고 있었다.
“길드 때문에 이지호 실장이 죽어 나가던데.”
“아무래도 월급쟁이보다는 수익이 많으니까요. 실력에 따라 승진도 빠르고요.”
“크게 차이가 나나?”
세은의 생각에는 어지간한 실력자가 아니면 국가안보원에 소속되는 게 더 좋은 판단이라고 생각되었다.
공무원은 철밥통이니까.
“당연하죠!”
그러나 채연은 세은의 그 질문을 시작으로, 길드에 대한 이야기를 줄줄 늘어놓기 시작했다.
“일단 기본적으로 몬스터 사체를 판매할 수가 있으니까요. 길드에서 사체 판매를 총괄해 주는 대신, 판매 총괄 수수료 15퍼센트와 세금만 떼면 전부 개인 소득이니까요. 안보원 소속은 전부 국가가 가져가고 월급만 받으니 격차가 날 수밖에 없죠.”
“그러고 보니 몬스터 사체를 수출한다 했는데, 그렇게 가격이 나가나?”
“당연하죠! 몬스터들을 이용한 재료나 의약품 개발도 연구 중이라고요.”
“그럼 게이트를 닫는 건 손해이지 않아? 왜 닫으려고 하는 거야?”
“그건 아니에요. 뭐가 나올지 모르니까요. 만약 전에 오빠와 처리했던 마왕 같은 게 밖으로 나오면…… 망해 버리는 거라고요. 뭐가 나올지 모른다는 건 너무 큰 리스크예요. 그래서 계속 비쌀 수밖에 없어요. 수요는 많은데, 공급이 너무 적으니까요.”
채연의 말에 세은은 이계에 있을 때 연금술사들이 트롤의 피를 이용한 포션을 만들었던 사실을 상기했다.
‘뭐…… 그쪽은 마법적 처리를 이용했지만……. 거기다 고도로 발달한 과학은 마법과 비견된다는 말도 있으니까.’
“하여튼 오빠 게이트 안에 몬스터 사체들 다 두고 왔다면서요? 정말로…… 아르바이트 구한다면서 그거 몇 개만 가지고 나왔어도 아르바이트 안 해도 될 거라고요.”
채연은 입이 아프지도 않은지 계속해서 말을 쏟아냈다.
그녀의 말에 따르면 현재 제일 흔한 고블린 시체 한 구의 가격조차 상당했다.
‘생각보다 짭짤하네.’
“……그러니까 오빠 정도 실력이면 우리 길드에 오면 길드장님이 완전 대접해 줄 거라니까요? 아마 가만히 있어도 월급 챙겨줄걸요?”
세은이 생각에 빠져있는 와중에도 채연은 계속 할 말을 하고 있었다.
채연의 말을 계속 듣다보니 세은은 궁금한 점이 하나 생겼다.
“그래도 길드장이면 어느 정도 실력이 있겠네?”
“네? 그럼요. 한국에서 1등은 아니어도 순위로 따지면 항상 손에 꼽히는 분이죠.”
“채연이 너는 어느 정도 수준인데?”
“음…….”
잠시 고민에 빠진 채연은 이내 대답했다.
“저는 한 30등 안에 들지 않을까요?”
‘심각하네.’
오러 유저로 보이는 채연이 30등 안이라면, 다른 사람들의 수준은 불 보듯이 뻔했다.
‘1등은 되어야 오러 익스퍼트 정도 되려나.’
물론 실제로 1등을 만나본 적은 없지만, 그 이름은 이지호의 입에서 몇 번 들은 적이 있었다.
‘김영한.’
나이는 채연과 동갑이면서도, 한국에서 가장 강한 각성자로 손꼽히는 사람이었다.
들리는 소문에는 성격이 안하무인이라는 얘기가 있었다.
실제로 이지호도 김영한 얘기를 하면서 고개를 몇 번 젓기도 했다.
‘내가 신경 쓸 일은 아니지.’
“어때요? 대단하죠?”
마치 채연이 30등이라는 사실을 칭찬해 달라는 표정으로 세은을 바라보고 있었다.
그 모습이 생각보다 귀여워 세은은 자신도 모르게 미소를 지었다.
“아! 오빠! 지금 비웃는 거죠?”
“에이…… 아니야.”
“웃는 게 딱 비웃는 건데? 물론 오빠보다는 당연히 약하지만…….”
잠시 분한지 말끝을 흐린 채연 다시 세은에게 길드 가입을 권유했다.
“그러니까 동생 도와주는 셈치고 길드에 들어오면 안 돼요?”
끈질기게 길드에 가입을 권유하는 채연의 모습에 세은이 고민했다.
길드에 들어갈 생각은 전혀 없었지만, 성격을 봐서는 계속 귀찮게 할 것이 분명했다.
‘차라리 얘를 가르쳐서 바쁘게 만들어볼까.’
뇌리를 스치는 생각에 세은의 눈가가 반달 모양의 호를 그렸다.
“왜, 왜요?”
갑자기 능글맞게 웃는 세은의 태도에 불길함을 느낀 채연이 물었다.
“너네 길드장한테 조용한 수련 장소 있냐고 물어봐.”
세은은 잘 가르쳐서 앞으로 귀찮은 일은 채연에게 시킬 생각을 했다.
“네? 수련 장소요?”
부르르―
이런 사정을 모르는 채연은 갑자기 드는 오한에 몸을 떨었다.
* * *
.
“하아…… 하아…… 오빠 힘들어요.”
“조금만 더 참아.”
“아아! 더 이상은 한계예요.”
거친 숨소리의 채연과는 달리 너무나도 평온한 세은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털썩.
결국 더 이상 버티지 못한 채연은 다리의 힘이 풀린 채 바닥에 털썩 주저앉았다.
“아! 너무 힘들어요. 이게 정말 효과가 있는 거예요?”
뜬금없이 수련을 하자며 오러를 사용하지 않은 신체 단련을 시키는 세은의 교육에, 채연이 반신반의하며 물었다.
세은은 그런 채연의 질문에 담담하게 대답했다.
“내 실력이 증거라니까?”
“……그렇긴 한데.”
따르릉―
숨이 차서 얼굴이 발갛게 달아오른 채연이 심호흡을 하고 있을 때, 그녀의 휴대전화가 울렸다.
“어? 영한이네?”
휴대전화 화면에 뜨는 이름을 확인한 채연은 가쁜 숨을 고르며 통화 수락을 눌렀다.
“응, 영한아. 무슨 일이야? 나? 나 지금 아는 오빠랑 있어. 누구냐고? 말해도 모를 텐데?”
잠시 통화를 하던 채연은 잠시 전화기에서 입을 뗀 뒤, 세은에게 물었다.
“오빠, 여기에 다른 사람 와도 돼요?”
“아니, 안 돼.”
“넵.”
세은에게 대답을 들은 채연이 다시 전화기 너머의 사람과 대화를 주고받았다.
“응. 안 된데. 여기? 길드 건물인데? 응. 아냐, 너 여기 못 와. 아니. 가입해도 못 와.”
잠시 그렇게 통화를 하던 채연은 전화를 끊었다.
“친구가 여기 오고 싶어 하는데. 안 된다고 했어요.”
마치 세은에게 잘했죠? 라고 말하는 것 같았다.
채연의 모습에 세은이 살짝 웃음을 지으며 대답했다.
“잘했네.”
“헤헤.”
세은의 칭찬에 채연은 수줍게 웃음을 지었다.
하지만 바로 이어진 세은의 말에 채연의 표정은 금세 시무룩해졌다.
“그럼 처음부터 다시 해보자.”
“……너무해.”
채연은 투정을 부렸지만 이내 자리에서 일어났다.
지금 세은이 채연에게 가르쳐 주고 있는 것은, 오러를 느끼기 위한 기본 준비였다.
마법사들이 마나를 느껴 사용하는 것처럼, 오러 사용자들도 오러를 느끼고 사용한다.
다만, 공기 중에 퍼져 있는 마나와 달리, 오러는 오로지 자신의 몸에서만 느낄 수 있기 때문에 더 까다로웠다.
지금 이건 온몸을 혹사시켜서 몸속의 오러를 더 잘 느낄 수 있게 하는 방법이었다.
그리고 이 방법은 또 다른 장점까지 있었다. 바로 자연스럽게 기본적인 신체의 능력도 강화된다는 점이었다.
“안 돼요, 안 돼. 더 이상은 못하겠어요.”
세은의 감시 아래 채연은 드디어 손끝 하나 움직일 수 없을 정도로 지치고 말았다.
“이제 본격적으로 해볼까?”
“……네? 뭐라고요, 오빠?”
청천벽력 같은 세은의 말에 채연이 멍하니 입을 벌렸다.
“오늘은 더 이상 못해요…….”
잠시 그대로 얼어붙어 있던 채연은 이내 정신을 차리고 고개를 좌우로 저었다.
세은의 실력에 감동해서 수련을 받겠다고 한 것이 슬슬 후회되기 시작했다.
“더 이상 몸은 안 쓸 거니까 일단 편하게 누워봐.”
“누워요?”
“더 편한 자세 있으면 아무거나 해. 하여튼 제일 편한 자세로.”
채연의 얼굴에 안도감이 깃들었다.
채연은 땀에 젖은 머리를 대충 정돈하며 바닥에 그대로 누웠다.
“오러랑 마나의 다른 점은 하나야.”
자리를 잡은 채연을 보며 세은은 말을 이었다.
“마나는 심장에 고리로 모인다는 거고, 오러는 온몸에 퍼져 있다는 거지.”
세은의 손가락이 채연의 배꼽 아래를 쿡 찔렀다.
예상치 못한 스킨십에 채연이 순간 움찔했다.
“그럼 왜 오러는 마나처럼 모을 수가 없을까? 그 생각에 오러도 마나처럼 모을 수 있는 방법이 연구되었고, 오러 유저들은 손발 어디로든 빠르게 오러를 보낼 수 있게 몸의 중심에 오러를 모으는 방법을 고안했어.”
세은은 채연의 배에 가져다 댄 손가락을 떼지 않고 말을 이었다.
“오러를 방출하지 말고 움직여서 내 손가락이 있는 곳으로 끌고 와봐. 천천히. 무리하지 말고.”
채연은 세은의 말에 따라 오러를 운용하기 시작했다.
그러나 습관적으로 오러가 그녀의 손끝으로 튀어나가려고 했다.
“잘 안 돼요.”
“의지를 불어넣어. 오러는 네 거야. 네 마음대로 움직일 수 있어야 해.”
채연은 온 힘을 집중해서 오러를 컨트롤하려 노력했다.
신기하게도 평소보다 오러가 더 잘 느껴지는 것 같았다.
눈을 감고 집중하고 있던 채연의 귀에 세은의 목소리가 다시 파고들었다.
“오러는 쉽게 말하면 가공된 마나라고 생각하면 돼. 주인의 신체에 완전히 적응한 마나.”
난생처음 듣는 이론에 채연이 세은에게 질문했다.
“오빠는 마법사인데, 어떻게 이렇게 잘 알아요?”
“나 마법사 아닌데?”
“네?”
하지만 분명 오러를 사용하는 건보지 못했는데…….
예상치 못한 대답에 채연의 집중력이 망가지자 세은은 채연을 재촉하며 대답했다.
“마나도, 오러도 내가 쓰는 게 아니야. 하여튼 지금은 가르쳐 주는 거에 집중해.”
“넵!”
채연은 다시 눈을 감았다.
과도한 수련으로 축 늘어진 몸에서 오러가 움직이는 것이 느껴졌다.
채연에게 가져다 댄 손으로 그녀의 오러가 움직이는 것을 관조하고 있었다.
“이 상태에서, 여기에 오러를 머물게 한다고 생각해.”
“어떻게요?”
“방을 하나 세놓는다고 생각해 봐.”
오러나 마나를 사용하지 않는 세은으로서는 더 자세한 설명을 할 수 없었다.
그저 이론만 알고 있을 뿐.
그러나 채연은 이런 추상적인 세은의 지도 아래 천천히 오러홀을 만들어가고 있었다.
‘생각보다 더 재능이 있네.’
천천히 오러가 자리를 잡아가는 것을 느끼며, 세은은 채연의 몸에서 손을 뗐다.
세은은 서서히 채연의 오러가 안정되는 것을 느끼며 옅은 한숨을 내쉬었다.
“하아…… 한 명 가르치는 것도 굉장히 귀찮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