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1
3. 예비군 동원훈련(3)
산발성 게이트.
얼마 전에 들었던 채연의 말대로라면 땅이 넓은 외국에서는 이미 흔한 현상이었다.
그 얘기를 들었을 때 단탈리안이 했던 말이 떠올랐다.
72마왕을 제외하고도 게이트가 열린다는 말이었다.
확실히, 지금 지구에서 열리고 있는 게이트가 모두 마왕의 영지와 연결되어 있다면 대부분의 국가는 애초에 멸망했어야 했다.
그리고 전 세계적인 게이트의 숫자는 이미 72개를 뛰어넘어 있었다.
‘이번에도 마왕은 아니겠지.’
게이트로 들어온 세은은 자신의 추측이 맞았다는 사실을 알 수가 있었다.
“오크 부락에, 고블린 부락이 같이 있다니……. 상식적으로 말이 안 되는데?”
다른 종족의 부락 두 개가 사이좋게 있는 모습을 보며 세은은 중얼거렸다.
“오우거들은 어디서 나온 거지?”
그러나 세은의 말은 게이트로 입장 중인 예비군들의 대화소리에 의해 묻혔다.
“와! 게이트란 곳도 똑같은데?”
“오히려 공기는 더 좋은 거 같지 않아요, 아저씨?”
예비군들은 처음으로 들어오는 게이트에 신기함을 감추지 못했다.
‘긴장들은 다 풀린 것 같네.’
오우거라는 괴물을 단숨에 숨통을 끊어버리던 세은의 모습을 본 예비군들은 완전히 긴장이 풀린 상태였다.
키엑!
꾸우엑!
그러나 침입자의 존재를 알아챈 오크와 고블린 경비병들이 경계령을 발령하고 있었다.
귀에 또렷하게 들려온 몬스터들의 괴성에 예비군들은 순간 다시 긴장의 끈을 붙잡았다.
“소대 사격 준비!”
몬스터들의 울음소리에 소대장들이 알아서 소대의 사격을 준비시켰다.
그워어어!
그러고 오우거의 괴성도 들려왔다.
그 소리를 들은 세은은 처음부터 생각했던 것을 시행해보기 위해 명령을 하달했다.
“M60 사수들은 전방을 조준한 뒤 사격 대기. 방금 전 게이트 입구에 있던 오우거가 나오면 집중 사격합니다.”
“사격 대기!”
“사격 대기!”
그렇게 예비군들이 몬스터들을 상대할 준비를 하고 있을 무렵, 뒤에서 세은을 부르는 소리가 들려왔다.
“선배님!”
세은은 고개를 돌려 자신을 부른 현역 병사를 빤히 바라보았다.
“대대장님께서 크레모아와 수류탄 사용 허가하셨습니다.”
세은은 굳이 그것들까지 필요하다고는 생각하지 않았지만, 대대장의 성의를 봐서 사용하기로 했다.
‘뭐, 소총만 사용하는 것보다 훨씬 시간은 단축되겠네.’
“소대장 아저씨들한테 가져다줘.”
“옛!”
현역 병사는 세은의 말이 떨어지자 급하게 공수해 온 크레모아와 수류탄을 예비군들에게 지급했다.
“이야, 실제로 크레모아를 써보는 거야?”
“훈련 때마다 교보재로 연습한 보람이 있네.”
실제 전투의 흥분감에 예비군들이 재빨리 크레모아를 전방에 설치하기 시작했다.
“아저씨들! 방향 잘 잡고, 폭파 명령 전에는 절대 발포하시면 안 됩니다.”
“아아, 알고 있어요.”
세은 역시 실제 수류탄을 한 번쯤을 투척해 보고 싶은 마음에 수류탄 한 알을 받아서 손에 쥐었다.
잠시 그렇게 진형을 유지한 채 몬스터들을 기다리다 보니, 부락 쪽에서 먼지가 일으키며 오크와 고블린이 돌진해오는 것이 보였다.
세은은 그 뒤에 오우거가 따라오는 것을 유심히 살펴보았다.
‘아무래도 오우거들이 다른 몬스터들을 조종하는 것 같은데.’
그러나 일단 눈앞의 몬스터들을 사살하는 게 우선이었기 때문에, 세은은 손을 휘저어 사격 명령을 내렸다.
“준비된 사수로부터 사격 개시!”
“사격 개시!”
타다탕! 탕!
또다시 예비군들의 소총이 불을 뿜기 시작했다.
크에엑!
꾸엑!
“아! 뭔 숫자가 이렇게 많아?”
한 예비군이 쉴 새 없이 사격하면서 소리쳤다.
시끄러운 사격 소리에 묻혀 잘 들리지 않았지만, 대부분의 예비군이 같은 생각을 가지고 있었다.
게이트 밖으로 나온 몬스터들은 지금 예비군들을 향해 달려오는 몬스터들의 5분의 1에도 미치지 못했다.
그리고 거대한 덩치의 오우거들이 다섯 마리나 지축을 흔들며 달려오고 있었다.
“M60들 뭐해! 쏴!”
예상보다 많은 숫자에 당황하자, 뒤늦게 게이트로 따라 들어온 현역 간부들이 소리쳤다.
투다다다다다!
기관총 사수들은 뒤늦게 정신을 차린 뒤 오우거들을 향해 사격을 개시했다.
“아! 이거 정비가 왜 이따위야? 왜 자꾸 탄알이 걸려?”
“미친! 내 것도 마찬가지야! 하여간 국방부 이 개새끼들!”
그러나 몇 십 년 동안 제대로 된 교체가 없던 M60 경기관총 대부분이 제대로 기관총으로서의 기능을 발휘하지 못하고 있었다.
뜻밖의 상황에 모든 상황을 지켜보고 있던 세은은 한숨을 쉬며 신성 마법을 발동했다.
“에일린. 홀리 웨이브.”
단탈리안의 영지가 있던 게이트에서 보여줬던 신성력의 파도가 그대로 예비군들의 앞을 막아섰다.
쿵!
반투명한 신성력의 파도에 몬스터들이 부딪혀, 더 이상 전진하지 못했다.
그러자 예비군들의 표정이 한결 밝아졌다.
“자, 다들 침착들 하시고. M60 버리고, 조교들한테 총 새로 받으세요.”
세은의 말에 예비군들이 고장 난 총을 버렸다.
지원 분대와 현역 조교들에게 총기를 교환 받기 시작했다.
“준비된 사수부터 수류탄 투척!”
“수류탄 투척!”
콰왕!
여기저기서 수류탄이 커다란 호를 그렸다.
몬스터들 사이에서 거대한 폭발을 일으켰다.
“크으― 죽인다, 죽여!”
몬스터들이 육편 조각으로 변해 버리는 모습이 모두의 시야를 가득 채웠다.
하지만 이미 흥분으로 가득 찬 예비군들은 오히려 짜릿함을 느끼고 있었다.
탕! 타다탕!
그 와중에도 쉴 새 없이 예비군들의 소총이 화려하게 불을 뿜었다.
세은이 만들어낸 방어막 때문에 일방적인 학살이 자행되고 있는 모습이었다.
오크와 고블린은 나름 지능이 있는 지능형 몬스터였기 때문에, 전황의 우세를 살필 정도 지능을 가지고 있었다.
분명 이 정도 수세라면, 도망을 쳐야 하는 상황인 것이었다.
그러나 몬스터들은 움츠러들면서도 절대 후퇴하지 않았다.
그워억!
뒤에서 자신들을 독려하는 오우거가 있었기 때문이었다.
적어도 상위 포식자인 오우거에게 찢기는 것보다는 앞의 인간들이 덜 무서웠으리라.
세은도 그런 사실을 잘 알고 있었지만, 어차피 오크와 고블린을 살려둘 생각이 없었기 때문에 오우거를 몰이꾼으로 사용하는 중이었다.
“여기 탄약! 탄약!”
“으아아아! 박 부장, 이 개새끼!”
“나를 두고 내 친구와 눈이 맞아? 이 미친 년놈들! 다 죽여 버릴 거야!”
그리고 각자의 스트레스를 풀고 있는 예비군들까지.
‘뭐, 다들 스트레스 잘 풀고 있는 것 같네.’
생각보다 예비군들이 제몫을 다 해주고 있었다.
세은 입장에서도 이렇게 방어막 한 번 설치해 주는 것이, 도망치는 몬스터들 쫓아다니면서 사냥하는 것보다 훨씬 쉬운 일이었다.
‘역시 사람은 사회적 동물이라니까.’
자신의 판단에 만족스러운 미소를 지으며 세은은 예비군들을 흐뭇하게 바라보았다.
퍽―
드디어 오우거가 홀리 웨이브의 앞까지 도착해서 주먹을 휘둘렀다.
그 모습에 몇몇 예비군이 움찔했지만 방어막이 꿈쩍도 하지 않는 것을 보고 용기를 내서 오우거에게 사격을 시작했다.
“크레모아 폭파!”
“폭파!”
폭발음과 함께 수백 개의 쇠구슬이 전방의 오우거를 향해 산탄총처럼 튀어나갔다.
그워! 그우어우웍!
생전 느껴본 적 없는 고통에 오우거의 입에서 고통에 찬 소리가 튀어나왔다.
탕! 타탕!
그리고 가까운 거리에서 신성력을 머금은 소총에 난사 당하자, 오우거의 두꺼운 피부가 서서히 너덜너덜해지는 것이 보였다.
그리고…….
쿵!
“잡았다!”
“이 새끼도 덩치만 크지 별거 아니네!”
“몬스터들도 다 잡을 만한데?”
결국 오우거들조차 수많은 탄환에 관통 당한 채 생을 마감했다.
“우아아아!”
게이트 안에서도 밖과 마찬가지로 너무나 쉽게 몬스터들을 물리치자, 예비군들의 사기가 하늘을 찌를듯 상승했다.
예비군들이 양손을 번쩍 치켜들어 승리의 함성을 지르고 있을 때였다.
퍼억!
갑자기 허공을 가르며 나무가 뿌리 채 날아와서 세은이 만든 방어막을 관통해 바닥에 박혔다.
‘뭐지?’
적어도 세은의 신성력을 관통하려면 마나를 다룰 수 있어야 했다.
그렇다면 저 나무를 던진 몬스터가 나무에 마나를 실어서 던졌다는 얘기가 됐다.
아마도 나무를 던진 놈이 이 게이트의 보스인 것 같았다.
“일단 몬스터들의 마을을 소탕합니다.”
급작스런 상황에 당황한 예비군들에게 세은은 다시 명령을 내렸다.
세은의 명령에 따라 소대장들이 다시 소대원들을 독려하며 천천히 앞으로 전진했다.
각 부락의 가용 가능한 몬스터들은 방금 전의 전투로 전부 사살되었기 때문에, 부락에는 전투가 불가능한 노약자들만 있을 터였다.
‘그렇다고 살려줄 필요는 없지.’
아무리 노약자여도 몬스터는 몬스터.
언제 습격을 할지 모른다.
부락으로 진입한 예비군들은 무참히 오크와 고블린들의 소탕에 나섰다.
이윽고 완전히 오크와 고블린의 부락이 소탕된 것을 확인한 세은은 소대에서 부락을 하나씩 맡아 경계를 펼치게 했다.
“이제 제가 돌아올 때까지 여기서 경계를 섭니다.”
“어디 가세요?”
세은은 임시 1소대장의 말에 대답했다.
“게이트의 보스 찾으러 갑니다. 경계하다가 부락으로 접근하는 몬스터들이 있으면 전부 사살하세요.”
“알겠습니다!”
몇 번의 전투로 자신감을 얻은 소대장은 호탕하게 대답했다.
세은은 그런 소대장들에게 씩 웃어주고는 나무가 날아왔던 방향으로 신형을 날렸다.
* * *
“오우거 발견.”
나무가 날아온 방향으로 잠시 달리다 보니 오우거가 시야에 들어왔다.
보통 오우거와는 달리 머리에 뿔이 하나 돋아나 있었다.
“응? 설마 트윈 헤드 오우거가 있나?”
세은은 오우거의 머리에 돋은 뿔을 보며 중얼거렸다.
그렇다면 자신의 방어막을 조금이나마 관통한 위력이 설명이 됐다.
오우거들의 왕인 트윈 헤드 오우거는 왼쪽 머리는 마법, 오른쪽 머리는 검기를 사용할 줄 아는 네임드 몬스터.
특히 트윈 헤드 오우거는 소위 자식이라 불리는 오우거들을 몇 마리 키우고 다녔는데, 그 오우거들은 머리에 뿔을 달고 있었다.
“아무래도 경계를 하고 있나 본데.”
세은은 부동자세로 서 있는 뿔난 오우거를 보며 말했다.
이럴 때는 속전속결이 제일이었다.
“홀리 파이어.”
신성한 불덩이가 순식간에 뿔난 오우거의 미간으로 날아갔다.
펑!
무슨 일인지 파악하기도 전에 머리가 날아간 오우거의 몸이 스르르 무너져 내렸다.
세은은 그런 오우거를 지나 더 깊숙한 숲 속으로 들어갔다.
“머리가 세 개?”
조금 더 들어가자 머리가 세 개 달린 오우거와, 뿔난 오우거 세 마리와 함께 있는 모습을 발견할 수 있었다.
머리가 세 개 달린 오우거는 다른 오우거들과 달리 신장이 거의 7미터에 육박했다.
“대가리가 두 개인 놈은 봤어도 세 개는 또 처음이네. 굳이 얘기하자면 트리플 헤드인가.”
이계에서조차 마법이 발전하기 전의 문헌에서나 간혹 존재하던 존재였다.
트리플 헤드 오우거는 세 개의 커다란 머리를 연신 이리저리 굴리며 연신 경계를 늦추지 않고 있었다.
“저 새끼가 보스인 거 같은데. 그럼 저놈 잡으면 출구가 이쪽으로 열리나?”
구억!
잠시 세은이 고민하는 동안 바람을 타고 퍼진 세은의 냄새를 맡았는지 트리플 헤드 오우거가 정확히 세은 쪽으로 시선을 집중했다.
콰앙―
순식간에 세은에게로 불덩이가 하나 쏟아졌다.
마법을 쓰는 머리가 세은에게 마법을 사용한 것 같았다.
동시에 트리플 헤드 오우거는 세은에게로 빠르게 달려왔다.
그러고는 한 손에 들고 있는 몽둥이에 검기를 두른 채 두터운 팔을 휘두르려 하고 있었다.
저 공격에 제대로 맞으면 100프로 사망.
그러나 세은은 그 공격을 제대로 맞아줄 생각이 전혀 없었다.
“에일린. 홀리 레인.”
빛의 비가 하늘에서 떨어져 내렸다.
트리플 헤드 오우거는 홀리 레인을 맞고도 몸이 관통되지는 않았다.
머리 수만큼의 힘이 있는 듯 보였다.
그러나 일반 뿔난 오우거들은 세은에게 달려들다가 빛의 비를 맞고 허물어져 내렸다.
세은은 어느 정도 데미지를 받아 움직임이 둔해진 트리플 헤드 오우거에게 후속타를 날렸다.
콰아앙―!
신성력으로 이루어진 불덩이 세 개가 각각의 머리들을 노리고 쏘아져 나갔다.
불덩이들이 폭발하면서 일순간 강력한 폭발음이 주변을 가득 채웠다.
그러나 연기가 사라지고 난 곳에는 피부에 화상을 입었을 뿐이었다.
세 개의 머리 모두 멀쩡한 트리플 헤드 오우거가 서 있었다.
“새끼 생각보다 맷집이 좋네.”
상당히 화가 났는지 트리플 헤드 오우거는 자신의 가슴을 쿵쿵 두드렸다.
그러나 세은은 그런 트리플 헤드 오우거의 모습에 코웃음을 치며 중얼거렸다.
“이것만 해치우면 집에 간다…… 이거지?”
세은은 다시 의기충천했다.
자신에게 달려드는 트리플 헤드 오우거를 바라보며 신성 마법을 캐스팅 했다.
“에일린. 홀리 애로우.”
세은이 마치 허공에서 활을 쏘는 것 같은 모션을 취하자, 신성력이 화살의 모양을 갖추었다.
파아앙―!
그리고 마법이 완성되고 세은의 화살이 발사되었다.
사람에게서 나온 소리라고는 믿기지 않는 파공성이 공간을 격했다.
“꾸륵?”
그 위력이 얼마나 강한지, 세은에게 달려들던 트리플 헤드 오우거가 관통을 당함과 동시에 뒤로 몇 발자국을 밀려났다.
그리고는 자신의 가슴에 생긴 커다란 구멍을 확인하더니, 스르르 무너져 내렸다.
그 모습을 확인한 세은의 입가가 짙게 호를 그렸다.
“좋아! 이제 집으로 가는 거야.”
세은은 트리플 헤드 오우거의 죽음과 함께 게이트의 출구가 생성되는 것을 확인했다.
잠시 후 예비군과 함께 게이트를 빠져나온 세은은 이지호에게 전화를 걸었다.
따르릉―
“아, 예. 접니다. 게이트 마무리했어요. 네네. 저 못 믿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