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0
3. 예비군 동원훈련(2)
―조, 조기 퇴소요? 그건 안보원이 아니라 국방부 동원기획과 담당인데…….
자신의 권한을 벗어나는 세은의 부탁에 이지호가 말끝을 흐렸다.
세은은 이지호가 바로 난색을 표하자 망설임 없이 말했다.
“그럼 안 되겠네요. 이 제안은 없던 일로…….”
―자, 잠깐만!
이지호는 전화를 끊으려는 세은을 다급하게 불렀다.
‘동원기획과장도 예비군을 이용해서 피해를 막았다는 명분을 주면 협조하지 않을까.’
머릿속으로 빠르게 계산을 끝낸 이지호가 말했다.
―10분, 아니, 20분만 기다려 주시면 관계부처 협조 받아오겠습니다.
“그럼 그동안 제가 번거로워지는데요?”
―그래도 당장은 힘듭니다. 절차라는 게…….
“뭐, 알겠습니다.”
어느 정도 원하는 대답을 얻어낸 세은이 대충 대답했다.
이제 이지호의 연락을 기다리고 있으면 되는 일이었다.
―그럼 바로 연락드리겠습니다.
이지호는 황급히 전화를 끊었다. 세은은 끊겨진 휴대전화를 다시 주머니에 넣고 주위를 둘러보았다.
―보내줍시다.
국방부, 그중에서 예비군 동원훈련을 담당하는 동원기획과 과장은 자신의 핫라인으로 걸려온 전화에 난색을 표하고 있었다.
자신을 국가안보원 실장이라고 밝힌 남자가 현재 동원훈련 참가자 중에 각성자가 있는데, 그에게 사전 처리를 맡기는 대신 조기 퇴소를 시켜달라 요구를 했기 때문이었다.
“그, 그게 제 마음대로 할 수 있는 게…….”
국가안보원은 전 세계적인 일련의 게이트 사태 이후 모든 국가기관 중에서 가장 권력이 강한 곳이었다.
그러나 이런 일은 혼자서 처리하기에는 기획과장도 상당한 리스크를 감당해야 했다.
―예비군이 훌륭한 훈련을 바탕으로 도왔다고 하면 되지 않습니까? 다른 예비군들도 투입하는 시늉만 하고 그냥 전체 조기 퇴소시키세요.”
“예비군의 투입은 준전시나 국가비상사태…….”
―이보세요, 과장님. 게이트가 열려서 몬스터 웨이브가 나타났는데 준전시나 국가 비상사태도 안 됩니까?
“그건 그렇지만 말입니다.”
―내가 책임집니다. 우리 안보원도 요즘 법 개정 때문에 과로사할 지경입니다. 어차피 동원훈련 한 번 빠진다고 큰일 있는 것도 아니지 않습니까?
애원과 압박을 동시에 하는 이지호의 말에 기획과장의 입에서 작게 한숨이 새어나왔다.
“……만약의 사태에 책임 부탁드립니다.”
―걱정 마세요. 오히려 국가안보를 지키는 예비군에 대해서 신문에 대대적으로 기사를 내는 것이 어떻습니까?
기획과장의 동의를 얻은 이지호는 기쁜 마음으로 말을 이었다.
―일단 연천의 65사단 동원훈련 쪽에 지금 바로 말 좀 부탁합니다.
“예, 알겠습니다.”
이지호는 기획과장과의 통화가 끝나자마자 바로 세은에게 전화를 걸었다.
뚜르르―
몇 번의 전화벨 소리가 울리고 이내 익숙한 목소리가 휴대전화 너머에서 들려왔다.
“어떻게 됐습니까?”
―협조 얻었습니다! 잘 좀 부탁드립니다.
처음 전화 통화를 했을 때와는 확연하게 다른 이지호의 목소리에 세은이 피식 웃음을 지었다.
“부대 사람들하고도 얘기가 마무리된 겁니까?”
―이제 기획과장이 연락 내릴 겁니다.
“알겠습니다. 그럼 대대장한테 가서 말을 하고 움직이면 되겠군요.”
―예예. 세은 씨 부탁합니다.
“걱정 마세요.”
세은의 대답을 마지막으로 둘의 통화가 끊겼다.
그리고 다급하게 중위가 무엇인가를 대대장한테 보고하는 모습에, 세은은 천천히 연무장 앞의 연단으로 걸어 나갔다.
“선배님, 제자리를 지켜주시기 바랍니다!”
연단으로 다가서는 세은의 모습에 조교에 제지를 했지만, 세은은 가볍게 물리치며 연단 위로 올라갔다.
“전화 받았습니까?”
그 말에 막무가내로 연단을 올라온 세은을 막기 위해 움직이던 간부들의 움직임이 멈췄다.
대대장은 그 한 마디로 방금 전 명령의 대상이 바로 세은이라는 사실을 알아챘다.
“그럼 자네가……?”
대대장의 질문에 세은은 대답하지 않은 채 다른 말을 했다.
“그럼 지금부터는 제가 알아서 하겠습니다.”
말을 하며 세은은 거추장스러운 방탄 헬멧을 탈모했다.
연무장의 안의 소란스러움에도 많은 이들이 시선이 세은과 대대장을 향해 있었다.
우웅―
세은의 손에서 신성력이 발휘되었다.
말로만 듣던 각성자의 모습에 예비군들의 웅성거림이 더욱 커져갔다.
“자, 잠시 집중 좀 해주시죠. 아저씨들.”
신성력을 타고 퍼져 나간 세은의 말에 연무장의 소란이 일순 잦아들었다.
조용해진 주변에 만족해진 세은이 말을 이어 나갔다.
“몬스터가 주변에 있습니다.”
모든 사람들의 시선이 세은에게 집중되었다.
세은은 자신의 앞에 있는 수백 명의 예비군을 보며 이들을 이용할 생각을 했다.
게이트를 닫는 것은 어렵지 않지만, 이미 나온 몬스터들을 일일이 찾아다니며 없애기에는 상당히 귀찮음을 감수해야 했기 때문이었다.
산을 전부 도는 데 얼마 걸리지 않는다 해도 그사이에 게이트에서 다시 몬스터들이 나와서 도루묵이 될 게 뻔했다.
“저를 도와 몬스터를 막아내면 조기 퇴소입니다. 물론 다른 보상도 있지 않겠습니까?”
세은은 예비군들이 말할 시간조차 주지 않았다.
세은의 손에서 신성력이 폭발해서 하늘로 치솟았다.
쾅―
순식간에 하늘로 올라간 신성력은 바로 위에 있던 구름을 거둬내 버렸다.
그 장면을 지켜보는 모두의 입이 떡 벌어졌다.
“보다시피 죽는 일은 없을 거라고 보장합니다. 지원자만 받을 테니 하실 분은 십 분 뒤에 연병장에서 만납시다. 아저씨들.”
연단에서 내려가기 위해 마찬가지로 입이 떡 벌어져 있는 대대장을 지나치며 세은은 대대장에게 말했다.
“총기랑 실탄 좀 넉넉히 준비해 주시죠.”
할 말을 다 마친 세은은 사람들을 나두고 연무장을 나섰다.
오우거들의 울음소리가 점차 커지고 있었다.
“오우거 때문에 다른 몬스터가 기를 못 피는 건가, 아니면 없는 건가.”
세은은 가만히 게이트가 열린 곳을 탐색했다.
게이트가 몬스터들처럼 흑마력을 품고 있는 것은 아니었지만, 몬스터들의 위치를 추적하다 보면 대략적인 위치가 나올 것이 분명했다.
“흠. 대략 저쯤인가?”
다행이도 몬스터들은 근처에서 가장 사람 냄새가 진한 동원훈련장 쪽으로 내려오고 있는 것 같았다.
“대체 어떻게 하려고 하나?”
어느새 다가온 대대장이 세은에게 물었다.
세은은 당연하다는 듯 그의 말에 대답했다.
“총기가 괜히 있는 건 아니지 않나요?”
너무 담담한 세은의 말에 대대장의 말문이 턱 막혔다.
“M60이면 오우거한테도 박히려나?”
잠시 중얼거리던 세은은 연병장으로 모인 예비군의 숫자를 가늠했다.
“62명…… 뭐 이 정도면 충분하겠네.”
어차피 애초에 부딪혀 보지도 않고 겁먹은 채 안 나온 사람들은 필요가 없었다.
세은에게 필요한 건 신속하게 자신을 따라 움직여 줄 강심장들이었다.
우우웅―
이번에는 세은의 손에서 발휘된 신성력이 연병장에 모인 예비군들과 대대장을 포함한 간부들에게 흘러 들어갔다.
신성력이 모두의 몸에 스며들며 긴장감을 완화시키고, 알 수 없는 고양심을 고취시켰다.
“자, 다들 작전을 설명하겠습니다.”
자신들의 자신감에 세은이 무슨 일을 했다는 것을 알아챈 사람들이 더 믿음이 가는 눈으로 그를 바라보았다.
세은은 그 사람들을 바라보면서 대략적인 작전을 지시했다.
“일단 62명이니 9명씩 6분대로 나누겠습니다. 그리고 3개 분대씩 1소대를 이루고, 남은 8명은 4명씩 나눠서 지원분대로서 탄약을 들고 따라가면 될 것 같습니다. 전령 같은 거 필요 없으니, 소총병이랑 기관총 사수랑 부사수만 배정하고요. 자, 거기 중사님, 부탁합니다.”
세은의 말에 따라 예비군들이 2개 소대로 편제를 마쳤다.
“이제 어떻게 할 건가?”
그 모습을 지켜보고 있던 대대장이 세은에게 물었다.
세은은 담담하게 게이트가 있을 것으로 추정되는 산을 가리키며 대답했다.
“저 고지를 점령하러 갑니다.”
타다당! 타당!
키에엑!
꾸엑!
고블린과 오크들이 연발로 연사되는 K2소총의 탄알을 맞고 비명을 질렀다.
세은은 뒤에서 소총으로 감당하지 못하는 몬스터들이 있는지 계속 경계를 하고 있었다.
동시에 계속 총알에 신성력을 덧씌워 조금 더 수월하게 예비군들이 몬스터들을 상대할 수 있게 도왔다.
“아! 이거 연발 속도가 왜 이렇게 느려져?”
“아저씨! K2는 연발로 계속 쏘면 복좌용수철이 내부열 때문에 탄성이 약해져서 느려져요. 단발로 쏘세요.”
“그래요? 아오! 영화처럼 연발로 쏘니까 재밌었는데.”
6개 분대가 넓게 진형을 잡으면서 진격하자, 대부분의 몬스터들은 분대에 접근하기도 전에 사살되었다.
피웅―
그리고 운이 좋아 예비군들의 사격을 피한 몬스터는 뒤에서 전황을 살펴보고 있는 세은의 신성력에 미간에 구멍이 뚫렸다.
“이 새끼들 생각보다 별거 아닌데?”
“그러게요? 피도 초록색이라 그럭저럭 역하지도 않고.”
처음에 진격할 때만 해도 긴장하고 있던 예비군들은 위험할 때마다 세은이 나서서 자신들을 확실히 엄호해 주자 기분 좋은 흥분 상태에 빠져 있었다.
오히려 힘든 것은 계속 탄알을 지급해야 하는 지원 분대와 현역들이었다.
“조교야! 총 완전히 망가졌다! 제대로 된 총 안 가져올래?”
“선배님, 제발 총기 좀 살살 다뤄주십쇼!”
“조교야! 탄 떨어졌다! 탄알집 가져와라!”
“조교야! 탄 걸렸다! 다른 거!”
벌써 몇 정의 총기가 고장이 나자 현역들은 울상이었다.
나중에 여기 떨어진 탄피들을 전부 주워야 하는 일만 해도 막막했는데, 총기까지 고장이 나면 뒷일이 감당이 되지 않았다.
그러나 세은의 뒤에서 서서히 따라오고 있는 대대장과 간부들은 흐뭇한 표정으로 이 광경을 보고 있었다.
“이거 기사로 내면 군에 대한 인식이 올라가겠군.”
“그럴 것 같습니다. 대대장님!”
“가뜩이나 게이트니, 각성자니 해서 군에 대한 국민들의 신뢰가 떨어졌는데. 이 정도면 군의 훌륭함을 어필할 수 있을 것 같군.”
대대장은 작전 전에 동원 기획과장과 나눴던 대화를 상기하며 흐뭇해했다.
“심지어 저 각성자는 자기 이름을 빼도 된다고 하니 온전히 군 성과로 삼을 수도 있고 말이야.”
마치 동네 뒷산을 산책이라도 하듯 여유롭게 뒤에서 지원을 하고 있는 세은을 보며 대대장은 말을 이었다.
“각성자들은 거의 다 오만하고 군에 대한 존경심이라고는 없었는데, 저 예비군은 다르군. 이게 맞는 건데 말이야. 군대가 없는 나라가 나라인가?”
“맞습니다! 대대장님. 하여튼 요즘 세상이 말세라…….”
“저 각성자 이름이 세은이라고 했나?”
“옛! 도세은 예비군입니다.”
“이번 작전 끝나고 퇴소 전에 밥이나 먹자 해. 식당 예약해 놓고.”
“알겠습니다!”
세은은 자신에 대한 얘기가 진행되고 있다는 사실을 모른 채, 가장 중요한 오우거가 보이지 않아 예비군들을 돕는 도중 틈틈이 탐색을 하고 있었다.
“아무래도 오우거는 아직 게이트 근처에 있나본데?”
오크와 고블린이 전멸한 것을 확인한 세은은 수신호로 사격 중지를 명령했다.
“사격 중지!”
“사격 중지!”
예비군들은 세은의 지시를 확인한 임시 소대장들의 명령에 따라 사격을 중지했다.
세은은 신성력을 사용해 총기 소음으로 인해 멍멍해졌을 예비군들의 고막을 치료했다.
“어? 귀가 멀쩡해졌어!”
“와. 각성자들은 다 이런 건가?”
세은은 다시 손을 들어 예비군들을 진정시키고 말했다.
“이제 곧 게이트에 도착하게 됩니다. 그곳에는 오우거라는 4미터 신장을 가진 몬스터가 있습니다. 키가 커서 생각보다 달리기도 빠르니 절대 먼저 나가지 말고, 제 뒤에서 따라오길 바랍니다.”
오크들과 고블린들을 사냥하느라 흥분 상태에 있는 예비군들에게 세은은 살짝 찬물을 끼얹었다.
“제 지시를 어겨서 죽으면 책임 안 집니다.”
말을 마치고 잠시 예비군들을 둘러본 세은은 먼저 앞으로 나섰다.
“그럼 분대별로 주변 잘 경계하면서 따라 올라옵니다.”
시계를 보니 어느새 한 시간이 지나있었다.
목표는 고지 점령까지 두 시간.
세은은 최대한 빨리 끝내고 집에 가서 점심을 먹고 싶었다.
“역시 여기에 있군.”
산 정상 근처에서 발견한 게이트 근처에는 오우거 세 마리가 자리를 잡고 있었다.
크르륵―
오우거들은 세은을 보자 이를 드러내며 공격성을 내보였다.
“헉!”
세은의 뒤를 따라오던 예비군들은 상상 이상의 위압감을 주는 오우거의 모습에 헛바람을 들이켰다.
방금 전까지의 자신감과 흥분은 오우거들을 마주하는 순간 온데간데없이 사라지고, 공포가 두 눈을 가득 채웠다.
“자, 이 새끼들 죽이고 게이트 안으로 진입합니다. 먼저 들어갈 테니 따라오세요.”
말과 동시에 세은의 손에서 빛의 검이 생성되었다.
그의 신형이 오우거들을 향해 쇄도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