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나는 교황이다-9화 (9/225)

# 9

3. 예비군 동원훈련(1)

『오빠, 토요일 2시에 만나기로 했어요. 장소는 삼청동의 카페예요!』

“왜 이렇게 먼 곳에서 만나자는 거야?”

세은은 투덜거리며 삼청동을 걷고 있었다.

채연은 어떻게 자신의 번호를 알아냈는지, 문자로 이지호와의 약속 장소와 시간을 보냈다.

세은은 채연이 알려준 상호를 지도앱으로 검색해서 찾아가고 있는 중이었다.

“일행이 있으신가요?”

3층으로 이루어진 고풍스러운 카페로 들어가자 직원이 물었다.

세은은 고개를 끄덕이며 대답했다.

“예, 일행이 있습니다.”

직원은 세은의 대답에 별다른 안내 없이 그를 안으로 들여보냈다.

세은은 3층에 가장 구석의 룸에 있다는 채연의 말을 상기하며 3층으로 올라갔다.

드르륵―

3층 가장 구석에서 채연과 이지호의 기운이 느껴지는 것을 확인한 세은은 거침없이 문을 열었다.

“아! 세은 씨 반갑습니다.”

“오빠, 빨리 왔네요?”

두 사람은 노크도 없이 문이 열리자 처음에는 놀랐으나, 이내 세은의 얼굴을 확인하고는 반갑게 인사를 건넸다.

“아, 반갑습니다. 반가워.”

세은은 그들의 인사를 받고는 자리에 앉았다.

이지호는 세은이 자리에 앉자 우선 차를 권유했다.

“음료는 커피? 차? 어느 게 좋습니까?”

“시원하면 아무거나 괜찮습니다.”

세은은 적당히 이지호의 말에 대답했다.

이지호는 채연에게도 같은 질문을 던졌다.

마지막으로 이지호가 음료를 고르고 주문을 마쳤다.

그리고 잠시 음료가 나올 때까지 셋 사이에 어색한 침묵이 흘렀다.

아무래도 이지호의 표정이 심각한 것이, 활발한 채연조차 쉽게 말을 꺼내 못하게 만들었다.

“주문하신 음료 세 잔 나왔습니다.”

직원이 음료를 두고 나가자 이지호는 바로 자신의 잔을 집어 들고 한 모금 크게 빨아들였다.

“일단 죄송한 말씀을 드려야 할 것 같습니다.”

잠시 한숨을 내쉰 이지호는 씁쓸한 얼굴로 말을 꺼냈다.

“상부에서는 세은 씨의 능력을 다 믿지 않습니다. 아무리 보고를 해도 소용없더군요. 찍었던 동영상만 남았어도…….”

“맞아요. 안보원 사람들이 오빠 능력을 못 믿더라고요. 물론 이해는 하지만요.”

“뭐, 이해합니다.”

“……감사합니다. 그러나 조만간 안보원에서 다시 세은 씨를 찾아갈 것 같습니다.”

“그거 귀찮네요.”

단탈리안 때문에 촬영하던 기계까지 잃어버려, 세은의 힘을 증명할 방법이 없었기에 벌어진 일이었다.

세은의 얼굴에 냉정함이 깃들었다.

세은의 표정이 굳어가자 이지호의 얼굴에는 더욱 당혹감이 피어올랐다.

“그럼, 각성자들의 능력을 계발할 수 있다는 말도 믿지 않겠군요.”

“죄송합니다…….”

세은의 손가락이 테이블 끝을 툭툭 내려쳤다.

“실장님이 무능한 건가요? 아니면 위가 잘못한 건가요?”

이지호는 세은의 질문에 잠시 침묵하다가 힘겹게 입을 열었다.

“둘 다…… 입니다.”

차마 정부의 녹을 먹고 사는 입장에서 곧이곧대로 상부를 욕할 수는 없었다.

힘겨워 보이는 이지호의 얼굴에 딱딱하게 굳어 있던 세은이 깊은 한숨을 내뱉었다.

“뭐, 어쩔 수 없죠. 다만 앞으로 제게 오는 각성자들의 신변은 책임 못 집니다. 미리 경고해 두세요.”

“그, 그래서 말인데……! 한 번만 더 안보원에 방문하면 안 되겠습니까?”

세은의 말에 이지호가 급하게 물었다.

이지호의 말에 세은이 퉁명스럽게 대답했다.

“가면 뭐가 달라집니까?”

“차장님이랑 부원장님 앞에서 한 번만 더 능력을 보여주면…….”

“원숭이가 되기는 싫군요.”

세은은 이지호의 말을 중간에 잘라냈다.

“그런 뜻이 아닙니다.”

이지호는 다급히 세은을 설득하기 시작했다.

“개인적으로 각성자들의 수준이 꼭 올라가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외국을 보면 이미 난리도 아닙니다. 국민들을 위해서라도 세은 씨의 도움이 필요합니다.”

세은은 가만히 이지호를 바라보았다.

적어도 거짓을 말하는 것 같지는 않았다.

아무 힘도 없는 민간인을 언급하는 이지호의 말에 세은의 마음이 조금 움직였다.

“마지막입니다.”

“예? 예! 감사합니다.”

세은의 말에 이지호가 자신도 모르게 그의 손을 덥석 잡았다.

“그럼 언제 가면 됩니까?”

“다음 주! 아니아니, 차장님 일정을 봐서는 이 주 뒤 월요일 어떠십니까?”

이지호의 말에 세은은 휴대전화를 꺼내 캘린더를 살펴보았다.

그리고는 이내 고개를 저었다.

“그날은 안 되겠네요.”

“왜, 왜 안 되십니까? 정말 급한 일이 아니라면, 꼭 그날이면 좋겠습니다. 그날 이후로는 다시 한 달은 지나야 합니다.”

너무나도 간절한 이지호의 말에 세은은 자신도 모르게 짜증을 가득 담아 대답했다.

“동원 훈련 갑니다.”

“……예?”

“동원 훈련이요. 예비군.”

예상치 못한 세은의 대답에 이지호의 얼굴이 황당함으로 가득 차올랐다.

* * *

누가 그랬던가. 군복을 입으면 만성피로가 도진다고.

“왜 이렇게 시골이야, 귀찮게.”

세은은 동원 훈련장에 도착해 버스에서 내려며 불평불만을 쏟아냈다.

다른 예비군들도 세은과 같은 마음인 듯 표정이 밝은 사람이 아무도 없었다.

“학생 예비군을 이수하고 휴학을 했어야 하는데…….”

아무 생각 없이 휴학한 게 동원 훈련장에 도착하자마자 후회되는 세은이었다.

“선배님 휴대전화 및 전자기기 있…….”

“없어.”

“나중에 발각 시 퇴소 조치십니다.”

“알았어.”

조교는 불룩 튀어나온 세은의 주머니를 확인했지만, 더 이상 따로 제지하지는 않았다.

세은도 마찬가지로 훈련 명부에 서명을 하고서는 내무반으로 걸음을 옮겼다.

“본부 중대, 본부 소대라…….”

별다른 의미는 없지만 세은이 2박 3일 동안 머물게 된 내무반은 건물의 가장 끝에 있었다.

내무반 건물 입구에서 다시 한 번 신원을 확인하고, K2소총을 건네받은 세은은 자신의 자리에 짐을 던져놓은 채 관물대에 몸을 기댔다.

위잉―

『오빠! 훈련 갔어요?』

허벅지에서 느껴지는 진동에 휴대전화를 확인하니 채연의 문자였다.

채연의 문자를 받으니 카페에서 자신이 안보원에 가지 못하는 이유를 듣자 당황하던 이지호의 얼굴이 생각나서 실소가 나왔다.

자신이 생각해도 정말로 황당한 이유기는 했다.

그리고 그 와중에 채연은 초롱초롱한 눈빛으로 세은에게 질문했다.

「예비군 가면 막 군대처럼 총도 쏘고 그래요?」

그 뒤로도 예비군에 대해 이것저것 질문하던 채연이 생각나서 세은은 그녀를 놀려줄 요량으로 문자를 보냈다.

『오자마자 총 받고 전투대기 중.』

『헐, 전투요? 무슨 전투요? 훈련 아니에요?』

『훈련은 실전같이, 실전은 훈련같이 몰라?』

『헐, 대박. 예비군도 전투하는구나…….』

너무 순수한 채연의 반응에 세은은 놀리는 재미를 실컷 느낄 수가 있었다.

그렇게 채연과 문자를 주고 받다 보니 어느새 2박 3일 동안 같은 내무반을 사용하게 될 예비군들이 속속 들어왔다.

처음에는 다들 그렇듯이 주변을 신경 쓰지 않고 각자의 휴대전화를 만지거나 잠을 청했다.

그리고 한쪽에서는 짓궂은 장난이 한참이었다.

“선배님들, 이제 잠시 후에 입소식이 있으니 준비해 주시기 바랍니다. 또한 총기는 몸에서 떨어트리시는 일 없이 휴대 항상 부탁드립니다.”

“조교야, PX는 언제 가냐?”

“PX는 식사 시간 시작 후 30분 동안 이용 가능하십니다.”

“아, 거 참 너무 빡빡하네. 시간 좀 더 줘.”

예비군들의 말에 조교는 딱딱하게 대답했다.

아직 일병인 조교는 예비군들의 농담 섞인 진심에 능글능글하게 대응할 여유가 없는 것 같았다.

가만히 이 상황을 지켜보던 세은 역시 조교에게 물었다. 2박 3일간의 훈련 중에서 가장 중요한 점이었다.

“그런데 조교야. 우리 혹시 설마 야영 하냐?”

“야영…… 할 것 같습니다. 이 주 전 입소한 선배님들은 비가 와서 못했습니다.”

조교의 말에 예비군들의 야유가 조교에게 향했다.

“조교야, 그건 아닌 거 같은데.”

“아, 그게 무슨 소리야. 무슨 야영이야? 밤에 추워.”

“무슨 예비군이 야영이야? 장난해?”

“저, 저는 모릅니다. 대대장님이 그렇게 결정하셨습니다.”

“야, 대대장 좀 오라 해. 이게 무슨 소리야.”

“힘들게 왔으면 잠은 실내에서 재워줘야지. 너무하네 진짜.”

예비군들의 목소리가 점점 커지자 복도를 걷고 있던 다른 조교가 내무반에 고개를 내밀었다.

“무슨 일이야?”

“오! 선임!”

“후임 교육 어떻게 시킨 거야, 조교야?”

“무슨 일이십니까?”

여러 번의 동원 훈련 경험으로 예비군들이 짓궂은 장난을 치고 있다는 사실을 알고 있던 상병이 능글거리며 내무반으로 들어왔다.

“예비군이 야영이 말이 되냐? 그러다가 다들 병 걸려. 그런 거 함부로 하는 거 아니야.”

“에이. 날씨 따뜻합니다, 선배님들.”

“해 지면 추워. 대대장한테 말 좀 잘해봐.”

“흐흐. 전역 전날이라면 말해봤을 텐데…… 아쉽습니다. 일단 입소식하러 나가시죠. 선배님들.”

상병의 말에 몇 번 더 농을 던지던 예비군들은 하나둘씩 자리에서 일어나 자신의 총기를 챙겨 내무반 건물 앞에 대오를 맞춰 정렬했다.

그리고는 천천히 조교의 인솔에 따라 입소식이 거행될 연무장으로 이동했다.

“1소대 선배님들은 이쪽으로 와주시기 바랍니다!”

“3소대 선배님들, 잠시 대기 부탁드립니다!”

“선배님! 담배 태우시면 안 됩니다!”

입소식을 위해 한 번에 몰리는 예비군들 때문에 잠시 연무장 입구가 혼잡스럽게 바글거렸다.

조교들은 그런 예비군들의 질서를 정리하기 위해 고군분투하고 있었다.

이십 분 정도 지났을까.

조교들의 눈물겨운 노력 끝에, 드디어 예비군들이 질서정연하게 연무장에 모였다.

“이제 입소식 예행연습을 거행하겠습니다.”

어느 정도 정리가 되었다고 판단되자 중사 한 명이 연단에 올라가 마이크를 잡고 얘기했다.

세은은 하품을 하며 적당히 조교와 교관들의 지시에 따라 움직였다.

“아, 여기서 어떻게 이틀이나 자냐.”

벌써부터 퇴소하고 싶은 마음이 간절했다.

이 마음은 다른 예비군들 역시 세은과 마찬가지인 듯 보였다.

지루하기 그지없던 예행연습이 끝나자, 살짝 긴장한 중사의 목소리가 앰프를 타고 연무장에 울렸다.

“이제 대대장님을 모시고 입소식을 거행하겠습니다. 연습보다 더 우렁찬 호응 부탁합니다.”

세은이 슬쩍 뒤를 돌아보니 대대장이 연무장 입구에서 자신의 입장 차례를 기다리고 있는 것이 보였다.

‘동원 훈련 입소식 가지고…… 허례들은 알아줘야 돼. 적당히 하지.’

그러나 세은의 그런 생각과는 별개로 예비군들의 입소식이 시작됐다.

국민의례 및 순국선열에 대한 묵념, 입소 선서가 끝나고 대대장이 연설을 위해 마이크를 잡았을 때였다.

크아아왕!

커다란 괴성이 연무장으로 들려왔다.

모두가 들을 수 있을 정도로 크고 괴상한 소리였기 때문에 예비군들의 고개가 모두 한 곳으로 돌아갔다.

‘이건…… 오우거 소리인데?’

세은은 단번에 괴성의 주인공을 알아챘다.

들린 소리로 봐서는 근처 산에 있는 것 같았다.

‘설마 여기에 게이트가 열렸나?’

그리고 이런 세은의 생각을 확인해 주듯이 하사 한 명이 다급하게 연무장 안으로 뛰어 들어왔다.

중위에게 귓속말로 무엇인가를 보고했다.

하사의 보고를 들은 중위는 심각한 표정으로 대대장에게 보고를 올렸다.

크왕! 크와왕!

그리고 그 와중에도 오우거들의 괴성은 더욱 우렁차게 훈련장 전체를 가득 채웠다.

예비군들도 모두 게이트에 대해 알고 있는 만큼, 다들 어느 정도 이 괴성의 주인공이 몬스터라는 사실을 알아채고 있었다.

“뭐야. 근처에 몬스터라도 나타난 거야?”

“에이 씨. 동원 왔다가 이게 뭐야?”

가만히 예비군들의 웅성거림을 듣고 있던 세은은, 어수선한 틈을 타 주머니에서 휴대전화를 꺼내 누군가에게 전화를 걸었다.

따르릉.

―세은 씨? 지금 동원훈련 중 아닙니까?

세은이 전화를 건 사람은 이지호 실장이었다.

이지호는 세은이 먼저 전화를 걸 줄 몰랐는지 세은의 전화에 의문을 표했다.

“맞습니다. 그런데 급하게 전화할 일이 생겨서요.”

―무슨 일입니까?

“이 근처에 게이트가 열렸네요.”

―예?

세은의 갑작스런 말에 이지호의 말문이 턱 막혔다.

그러나 금세 정신을 차리고는 최대한 침착히 세은에게 물었다.

―거, 거기가 어딥니까?

“연천인데요.”

―몬스터 웨이브는 없습니까?

“괴성이 들리는 걸 보니 이미 나왔습니다.”

―세, 세은 씨!

“예, 말씀하시죠.”

당황한 이지호의 부름에 세은이 태연하게 대답했다.

이지호는 그런 세은에게 간절하게 부탁했다.

―안보원에서 각성자들을 그곳으로 보낼 때까지만 멀리 퍼지지 않게 막아주시면 안 되겠습니까?

“제가 왜 그래야 합니까? 아직 몬스터들은 산 위에 있는데요.”

―넓게 흩어지면 한 번에 소탕하기가 더 힘듭니다.

“소탕하기 힘든 거지 할 수 없는 건 아니잖아요?”

세은이 담담하게 되물었다.

그러나 마치 이지호는 세은이 이렇게 대답할 줄 알았다는 듯이 망설임 없이 다음 말을 꺼냈다.

―제 선에서 가능한 보상을 해드리겠습니다. 그러니 좀 도와주세요. 가뜩이나 개정된 법으로 인해 생겨나는 길드들 때문에 안보원의 인력이 부족해서 죽겠습니다.

이지호가 앓는 소리를 하며 세은에게 사정했다.

잠시 고민하던 세은은 그래도 안보원에서 유일하게 자신을 제대로 알고 있는 사람이 이지호라는 생각에 마땅한 보상을 고민했다.

“흐음…….”

잠시 고개를 아래로 기울여 이지호가 해줄 수 있는 보상이 무엇이 있을까, 고민하던 세은의 눈에 자신이 입고 있는 얼룩무늬 군복이 눈에 들어왔다.

“퇴소, 조기 퇴소 가능합니까?”

―예? 퇴소요?

이지호의 반문에 세은은 한순간도 망설이지 않고 바로 대답했다.

“네. 예비군 조기 퇴소요. 아무래도 여기서 이틀이나 자기는 싫어서.”

돈 같은 것을 요구할 줄 알았던 이지호의 말문이 턱 막혔다.

그리고 그런 이지호의 귀로 거부할 수 없는 달콤한 세은의 거래가 악마의 속삭임처럼 깊숙이 파고들었다.

“바로 조기 퇴소시켜 주면…… 이깟 게이트, 그냥 닫아주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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