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나는 교황이다-8화 (8/225)

# 8

2. 마왕 단탈리안(4)

“그러므로, 국가안보원에서는 앞으로 도세은과 전격적인 협력 체계를 구축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이지호는 자신의 앞에서 보고를 듣고 있는 차장과 부원장에게 건의했다.

그러나 매우 열성적인 이지호와는 달리 차장과 부원장의 반응은 시큰둥했다.

“개인이 어떻게 국가와 동등할 수 있나? 그리고 보고한 각성자가 여태까지 알려지지 않았다는 것도 믿을 수 없구먼.”

차장이 부원장을 대신해서 부정적인 의견을 피력했다.

직접 세은의 실력을 보지 못한 이들이 이지호의 보고를 그대로 수용할 수 없는 것은 어찌 보면 당연했다.

“거기에 여기 보고서를 보면, 뇌전을 수없이 내리치고, 허리케인을 만들고…… 마지막에는 마왕이라고 불리는 지성이 있는 몬스터를 순식간에 빛의 검으로 갈랐다고?”

차장이 어이없다는 듯이 실소를 지었다.

“도대체 이게 말이 되나?”

“보고서는 과장이 없는 사실입니다.”

“소설인지 보고서인지 구분이 안 가는 게 어떻게 사실이라고 할 수가 있어?”

“저뿐만이 아니라 박동원 팀장과 서채연 각성자도 함께 확인한 사실입니다.”

이지호는 최대한 담담하게 말했으나, 긴장을 숨길 수는 없었다.

제발 차장과 부원장이 자신의 판단을 믿어줬으면 하는 바람이었다.

그러나 차장은 그런 이지호의 기대를 처참히 무너트렸다.

“그게 말이 되는 소리야!”

차장이 탁자로 집어 던진 보고서가 뒤죽박죽으로 뒤엉켰다.

“우리 안보원, 아니! 한국에서 가장 강한 각성자로 평가되는 김영한도 기껏해야 혼자서 트롤을 사냥하는 정도인데. 뭐? 혼자서 트롤과 오우거 수십 마리를 도륙해? 뇌전 수십 발을 내려쳐? 허리케인 만들어? 야! 이 새끼야! 너 미쳤어?”

“……믿지 못하시겠지만 사실입니다. 게이트가 닫힌 것을 확인하시지 않았습니까.”

“그래, 게이트는 닫혔지.”

이지호의 말에 차장이 입가에 비릿한 미소를 지었다.

그는 이지호에게 차가운 시선을 주며 말했다.

“그게 아니었으면 자네는 상관 모욕죄로 바로 처벌이야. 알아?”

“…….”

이지호는 더 이상 차장과 부원장을 설득할 수 없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실제로 세은의 능력을 옆에서 지켜본 자신조차 여전히 믿기지 않는데, 차장과 부원장이 믿을 리 만무했다.

다만, 이들이 게이트에 연루된 세은을 국가의 이름으로 강압적이게 제압하려 들지 않을까 하는 걱정되었다.

이지호가 본 세은은 절대로 누군가가 다룰 수 있는 사람이 아니었다.

“나가. 나가서 제대로 된 보고서 다시 써와! 알겠어?”

차장의 축객령에 이지호는 흐트러진 표정으로 고개를 꾸벅이고는 회의실을 나섰다.

* * *

세은은 휴학계를 내기 위해 학교로 향했다.

당장은 부모님과 시간을 보내고도 싶기도 하지만, 학교를 다닐 필요를 느끼지 못해서이기도 했다.

언젠가는 졸업을 하겠으나, 그것이 꼭 지금일 필요는 없었다.

“무슨 일로 왔어요?”

과 사무실로 들어가자 조교가 세은에게 물었다.

세은은 담담하게 대답했다.

“휴학하러 왔는데요.”

“휴학하려면 지도 교수님 상담이 필요해요.”

‘아, 귀찮게.’

조교의 말에 세은은 자신의 지도 교수가 누구였는지 떠올렸다.

이계로 떨어지기 전에도, 전역을 한 후 역시 학교에 그리 큰 애착을 가지고 있지 않았기에 지도 교수가 생각나지 않았다.

“죄송한데, 제 지도 교수님이 누구신지 잘 모르겠는데요.”

조교가 한심한 눈빛으로 세은을 쳐다봤다.

그렇지만 별말하지 않고 세은의 이름과 학번을 듣고는 지도 교수님을 알려주었다.

“그럼 상담 후 서명 받아오세요.”

“네, 수고하세요.”

볼일을 마친 세은은 과사무실을 나섰다.

그런데 과사무실이 있는 건물 일 층이 어느새 시끌시끌해진 상태였다.

“오빠!”

그리고 어딘가 익숙한 목소리와 함께 모든 학생들의 시선이 세은에게로 향했다.

“저 사람 보러 왔나 봐.”

“저 사람 우리 과 선배 아니야?”

“대박, 대박!”

사람들의 웅성거림을 뚫고 세은의 앞에 나타난 것은 서채연이었다.

채연은 게이트에서 만났을 때와는 다른 화사한 평상복을 입고 있었다.

하늘거리는 하얀색 테니스 스커트가 잘 빠진 그녀의 다리와 완벽하게 매치됐다.

“여긴 어떻게 알고 왔어?”

“에이. 알려면 다 알죠. 아직 점심 안 먹었죠?”

“안 먹어. 배 안 고파.”

“그러지 말고 같이 먹어요. 내가 살게요!”

채연은 사람들의 시선은 아랑곳하지 않고 세은의 팔을 붙잡았다.

세은은 자신의 팔을 잡아끄는 채연이 귀찮았다.

하지만 여기서 더 실랑이를 벌이다가는 사람들이 많아질 것이 분명했기 때문에 순순히 이끄는 대로 따라갔다.

“왜 이렇게 알아보는 사람이 많아?”

채연이 지나갈 때마다 사람들이 그녀를 보고 웅성거렸다.

덕분에 세은도 그 시선을 모두 감내해야 했다.

“제가 이런 여자예요.”

세은의 말에 채연이 뿌듯한 표정으로 말했다.

그러나 세은은 그런 채연의 말을 가볍게 무시했다.

이미 게이트에서 세은을 겪어본 채연은 세은의 반응에도 별다른 신경을 쓰지 않았다.

“자, 옆에 타세요.”

“운전 할 줄 알아?”

세은은 채연이 가리키는 차를 보고 물었다.

외국에서 만든 아담한 경차는 작고 귀여웠다.

딱 이십대 여자들이 좋아할 만한 외형이었다.

“당연하죠. 매일 운전하고 다니는데요?”

세은도 운전면허는 있지만, 차가 없어서 실제로 운전을 해볼 기회가 많지는 않았다.

그래도 매일 운전을 한다니…… 세은은 더 이상 별다른 말없이 보조석에 자리를 잡았다.

“안전벨트 매요. 오빠.”

세은이 안전벨트를 맨 것을 확인하자 채연은 차를 출발시켰다.

차는 부드럽게 대학 경내를 빠져나와 시내를 달렸다.

“오빠 뭐 좋아해요?”

“아무거나.”

“아니, 이거 남녀가 바뀐 거 아니에요?”

“네가 밥 먹자며? 메뉴는 네가 골라.”

세은의 말에 할 말이 없어진 채연은 결국 자신이 자주 가는 레스토랑으로 향했다.

“일단 안심 스테이크 하나 주세요.”

“같은 걸로.”

직원의 안내를 받아 독립된 방으로 안내를 받은 채연과 세은은 일사천리로 주문까지 끝냈다.

“그런데 무슨 일로 왔어?”

직원이 나가가 세은이 물었다.

뒤늦은 세은의 물음에 채연이 혀를 삐죽거리며 대답했다.

“참 빨리도 물어보시네요.”

채연은 잠시 뜸을 들이고는 대답했다.

“그냥, 고맙다는 인사도 제대로 못한 것 같아서요.”

“별것도 아닌 걸로 고맙긴.”

세은은 정말 담담하게 말했지만, 채연은 게이트에서의 마지막을 잊을 수 없었다.

“에이, 생명의 은인이잖아요.”

채연은 마지막으로 세은이 단탈리안을 처치했을 때를 다시 한 번 떠올렸다.

단탈리안이 강력한 공격을 세은에게 쏟아내자 세은이 단탈리안에게 쇄도했다.

단탈리안은 반사적으로 세은의 공격을 막기 위해 방어막을 생성했다.

그러나 세은이 정말로 노린 것은 채연과 일행을 구속하고 있던 흑마력이었다.

순식간에 인질을 잃은 단탈리안은 당황해서 세은의 상대가 되지 못했다.

그 뒤로 이어진 몇 번의 공격에 목숨을 잃었다.

단탈리안과 세은이 보여준 능력치고는 너무 허무한 결말이었다.

그러나 그만큼 세은의 능력이 강하다는 반증이기도 했다.

“됐어. 별거 아니니까.”

세은의 말에 채연은 다시 현실로 돌아왔다.

그토록 대단한 능력을 보이고도 담담한 세은이 색다르게 보였다.

자신의 주변에는 세은의 반의반도 되지 않는 능력을 가지고 갖은 허세를 부리는 각성자가 너무 많았다.

채연은 얼굴 가득 싱그러운 미소를 지으며 세은에게 물었다.

“그런데 학교는 왜 휴학하는 거예요?”

“그건 또 어떻게 알았어?”

“에이. 다 방법이 있죠, 오빠.”

자신의 말에 살짝 놀라는 세은의 반응이 즐거운지 채연은 빵빵 웃음을 터트렸다.

세은은 그런 채연을 보면서 고개를 좌우로 저었다.

“혹시 길드에 들어가려고 하시는 거예요?”

한참을 웃던 채연이 진정하더니 다시 세은에게 물었다.

“길드?”

“아? 길드 모르세요? 이번에 각성자 등록법 개정으로 프리랜서 각성자들도 법인을 만들어서 등록할 수가 있어요. 아무래도 정부에서 전부 월급을 주면서 통제하기도 힘들고, 거부하는 사람들까지 있으니까요.”

그럼 대체 왜 휴학을 하는 거지.

채연의 입이 궁금함을 가득 담고 웅얼거렸다.

“게이트가 없는데 길드가 왜 필요해?”

“외국에서는 게이트가 산발적으로 발생하는 일이 잦다고 하더라고요. 그걸 전부 막을 수는 없으니까요.”

“우리나라치고는 일처리가 빠르네.”

“몬스터 시체가 돈이 좀 되거든요.”

채연은 손을 들어 귀엽게 동그라미를 그려 보였다.

“외국에서는 몬스터 사체가 좋은 연구대상이니까요. 가지고 있던 사체를 수출해서 돈 좀 벌었나 봐요.”

“게이트가 안 생기면 끝 아닌가?”

“에이. 오빠! 외국은 땅이 넓어서 헌터가 모자란 상황이라고요? 우리나라가 땅에 비해 인구가 많잖아요.”

“나가서 외화 좀 벌어오란 얘기네.”

“아하하. 맞아요, 맞아.”

채연은 도도하게 생긴 외모와 첫인상과는 달리 생각보다 발랄하고 쾌활했다.

세은으로서는 생각외의 정보를 채연에게서 얻을 수 있었다.

“하여튼 나는 오빠가 길드에 들어가서 돈 벌려고 하는 줄 알았어요. 오빠 정도 능력이면 어디서든 모셔가려고 할 테니까.”

“딱히 그걸로 돈을 벌고 싶지는 않은데.”

“왜요? 오빠 정도면 어디를 가서도 최고 대접 받을 수 있을 텐데?”

하도 많이 상대해서 신물이 난다고 하면 믿어주려나.

그러나 세은은 진실을 말하는 대신 적당한 핑계를 댔다.

“부모님이 걱정하셔. 아직 내가 각성자인 것도 모르시니까.”

“헐. 정말요? 대박…….”

세은의 말에 잠시 순수하게 감탄하던 채연은 이내 곧 다시 물었다.

“그럼 오빠, 길드에 가입할 생각은 없으시겠네요?”

“응. 그렇지. 그런데 그건 왜?”

“아니요, 뭐 그냥…….”

채연은 세은의 반문에 말끝을 흐렸다. 그러나 채연의 얼굴에는 하고 싶은 말이 정확히 쓰여 있었다.

아직 이십대 초반답게 얼굴에 많은 것이 드러나는 채연을 보며 세은은 웃었다.

“이번에 길드라도 만들었어?”

“헐? 어떻게 알았어요?”

“어떻게 알기는. 얼굴에 다 쓰여 있는데.”

“대박, 대박! 오빠 진짜 대단해요.”

채연은 또다시 순수하게 감탄했다. 그리고는 세은에게 물었다.

“그래서 말인데요. 오빠 우리 길드에 들어올 생각 없어요? 내가 오빠 완전 추천하려고 하는데!”

채연의 맑은 두 눈이 잔뜩 반짝이며 세은을 바라보고 있었다.

세은은 설마 하는 마음에 채연에게 물었다.

“혹시 벌써 말한 건 아니지?”

“에이. 오빠 의사도 안 물어보고 그럴 수는 없죠.”

채연의 대답에 세은은 고개를 끄덕였다.

다행히 귀찮아질 일은 없을 것 같았다.

“그래, 다행이네. 길드 가입 안 해.”

“아! 왜요오. 부모님이 걱정이면 안 들키게 잘해줄게요. 내가.”

이래 봬도 꽤 높은 위치라고요? 채연은 자부심 넘치는 표정으로 말했다.

그러나 세은은 단칼에 그런 채연의 제안을 거절했다.

“됐어. 그냥 평범하게 살래.”

“와! 진짜 너무해. 나 같이 예쁜 여자가 부탁하면 적어도 고민하는 척이라도 해야 하는 것 아니에요?”

“예뻐?”

“아, 진짜!”

채연의 장난에 세은도 마찬가지로 가볍게 장난을 치며 응수했다.

생각보다 물 흐르듯 흐르는 대화에 채연에 대한 평가도 조금 올라갔다.

이왕 한 번 도와준 거, 나중에 죽지 않게 실력이라도 봐줄까 하는 생각이 설핏 스쳤다.

그렇게 가볍게 이야기를 나누다 보니 어느새 주문한 음식이 나왔다.

음식을 다 먹고 나니 채연이 깜빡 잊고 있었다는 듯이 말했다.

“아, 참. 오빠, 이지호 실장님이 한번 뵙고 싶다는데요?”

“언제?”

“음. 편한 날짜 알려달래요.”

“어차피 이제 백수니까 아르바이트 구하기 전에 오라고 해.”

“헐. 오빠 아르바이트하게요? 그럴 거면 그냥 길드에 들어오지.”

“필요 없어.”

“아깝다. 아까워.”

완고한 세은의 대답에 채연은 진심으로 안타까웠다.

자신의 길드로 세은을 데려가면 전 세계적으로 가장 강한 길드가 될 것이 분명했다.

눈앞에 보이는 뻔한 결과를 두고도 그를 영입하지 못하는 사실이 너무나 아쉬웠다.

‘뭐, 천천히 친해지면 되지.’

적어도 세은이 자신을 싫어하지는 않으니 그걸로 다행이라고 생각했다.

“오빠 그럼 이번 주 주말에 뭐해요?”

“별일 없는데. 왜?”

“그럼 우리 그날 실장님이랑 같이 만나요.”

“그래, 시간은 다시 알려줘.”

“알았어요. 그럼 실장님한테는 제가 말해놓을게요.”

디저트로 주문한 커피까지 다 마신 뒤, 둘은 자리에서 일어났다.

채연은 세은이 괜찮다고 하는데도, 여기까지 데려왔으니 집까지 데려다주겠다고 억지를 쓰며 세은을 집 앞까지 데려다주었다.

“조심해서 가.”

“네. 주말에 봐요, 오빠!”

인사를 나누고 시야에서 사라지는 채연의 차를 보며 세은은 살짝 웃음을 지었다.

부모님을 제외하고는 처음이라 해도 좋을 만큼 평범한 대화를 나눈 세은은 지구로 돌아온 게 더욱 실감이 나서 기분이 좋아졌다.

“자, 그럼 건실하게 아르바이트도 구해볼까?”

집으로 향하는 세은의 발걸음은 의욕에 넘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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