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5
2. 마왕 단탈리안(1)
“실장님, 대체 저 사람 누구예요?”
거침없이 게이트 내의 몬스터들을 학살하고 있는 세은을 보며 채연이 이지호에게 물었다.
채연이 알고 있던 그 어떤 각성자도, 세은과 같은 능력을 보여줄 수 없었다.
심지어 한국의 각성자들 중에서 공공연히 최고로 불리는 김영한조차 세은에 비하면 달빛, 아니, 태양 아래의 반딧불 같은 능력을 지니고 있었다.
왜 그렇게 이지호가 세은에게 쩔쩔매고 있었는지 채연은 이제야 알 것 같았다.
“글쎄. 나도 잘 몰라. 하지만 우리 한국의 미래를 보장하는 보증수표라는 건 알 수 있지.”
안보원에서 보여준 세은의 능력에도 감탄했지만, 실제 현장에서 겪어보니 자신의 평가가 부족했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세은은 그저 각성자 중에서 강한 축에 드는 사람이 아니었다.
절대적인 강자.
수많은 몬스터들이 세은의 손짓 한 번, 시동어 한 번에 단숨에 녹아내리는 건 이제 놀랍지도 않을 지경이었다.
이지호는 지금 꿈을 꾸는 거 같았다.
각성자의 보유 숫자 및, 그 개개인의 무력이 국력이 되어 가고 있는 국제 정세에서 세은의 존재는 한국에 커다란 힘이 될 것이 분명했다.
물론 이상하게도 본인은 그런 사실을 드러내고 싶어 하지 않지만, 아직 세상의 단맛을 보지 못해서 그런 것이라고 이지호는 판단하고 있었다.
‘돈? 명예? 여자? 아무리 능력 있는 남자라도 가지고 싶은 게 있는 법이야.’
당장 국가안보원의 넘버 원 각성자로 평가받는 김영한 역시 서채연의 마음을 얻지 못해서 전전긍긍하고 있는 상황이 아니던가.
세은도 무엇이 되었든 원하는 것을 쥐어주면 넘어올 것이라고 이지호는 생각했다.
이지호가 앞으로 세은을 어떻게 회유할지 고민하고 있을 때, 갑자기 거침없이 이동하던 세은의 걸음이 멈췄다.
“잠깐.”
세은의 시야에 들어온 것은 초원의 끝자락부터 끝없이 이어진 울창한 밀림이었다.
물론 초원 옆에 밀림이 있을 수는 있지만, 정확히 선을 그은 것 같은 풍경이 세은의 신경을 끊임없이 건드렸다.
“설마…… 여기에 단탈리안이 있는 건가?”
“단탈리안이요?”
세은의 혼잣말에 채연이 대답했지만, 그는 채연의 말을 무시하고 생각에 잠겼다.
아무래도 이 인위적인 자연환경 자체가 단순히 게이트 때문이라고 하기에는 이상한 점이 있었다.
자연환경의 변화가 너무 극단적인 것도 하나의 이유였지만, 그것보다 밀림의 안이 확연하게 탐색이 되지 않는 점이 더욱 그러했다.
이곳이 단탈리안의 영지와 연결된 게이트라면 앞으로 남은 70명의 마왕들이 모두 게이트와 연결되었을 가능성이 있었다.
그렇다면 지금 지구의 각성자들의 수준으로는 절대로 게이트를 막아내지 못할 것이 분명했다.
특히, 별다른 능력이 없는 안드로말리우스와는 달리, 단탈리안은 미래에 일어날 일과 일어난 일을 알 수 있는 권능이 있었다.
예전에 마왕들을 물리칠 때 가장 고전했던 마왕 중에 하나가 바로 단탈리안이었다.
‘물론, 지금이야 힘으로 밀어버리면 그만이지만.’
다만 문제는 마왕을 상대하면서 별 힘이 없는 일행들을 지킬 수 있는지 여부였다.
그러나 이내 곧 세은은 그런 걱정을 털어버렸다.
이미 한 번씩은 잡아봤던 마왕들.
여기까지 와서 일행이 걱정되어 되돌아간다는 것은 다시 이곳으로 와야 한다는 것을 뜻했다.
시도도 해보지 않은 채 돌아간다는 것은, 더 귀찮은 일에 휘말릴 수도 있다는 소리였다.
대신 세은은 밀림으로 들어가기 전에 일행들에게 다시 한 번 경고를 주었다.
“지금부터는 특히 조심하길 바랍니다.”
“밀림 안에 뭐라도 있습니까?”
이지호가 일행을 대표해서 세은에게 물었다.
세은은 그의 물음에 고개를 끄덕이며 진지하게 대답했다.
“아마 마왕 단탈리안이라는 놈이 있을 수도 있습니다.”
“마왕? 마왕이 설마 그 마왕입니까?”
“흐음. 아마 그 마왕이 맞을걸요?”
하지만 아직 마왕은커녕 오우거도 본 적 없는 사람들에게 마왕에 대해서 설명하려니 그 위험이 제대로 전달되지 않았다.
결국 세은은 최대한 알아들을 수 있게 마왕에 대해 설명해 주었다.
“총 72마왕이 있는데, 이들이 몬스터들의 정점이라고 생각하면 됩니다.”
“몬스터들의 정점이라고요……?”
세은의 설명에 일행의 표정에 불안감이 깃들었다.
그러나 세은은 환하게 웃으며 일행들의 불안을 털어주었다.
“뭐, 제가 있으니 별일 없을 겁니다. 그래도 혹시 모르니 절대 뒤처지지 마세요. 앞으로 나서지도 말고요.”
“네, 알겠습니다.”
“잠깐만요!”
일행에게 주의를 준 세은이 밀림 안으로 들어가려 할 때, 채연의 목소리가 그를 붙잡았다.
“왜요?”
“당신은 어떻게 이렇게 게이트에 대해서 잘 알고 있죠?”
예상치 못한 채연의 질문에 세은은 순간 당황했지만, 이내 채연의 입장을 이해했다.
이들의 입장에서는 살아서 나온 적이 없다고 알려진 게이트.
그리고 알려진 적도 없는 마왕이라는 존재에 대해서 세은이 어떻게 이렇게 자세한 정보를 가지고 있는지 궁금할 것이 당연한 사항이었다.
어떻게 세은은 게이트에 대해서 이렇게 잘 알고 있는지, 그리고 왜 이런 능력과 지식을 가지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처음 게이트가 지구에 발생했을 때 모습을 드러내지 않았는지.
이지호도 게이트에 들어와서 가장 궁금했던 것이지만, 묻지 못하고 있던 사항이었다.
세은에게 물어봤자 대답해 주지 않을 것도 같았거니와, 굳이 민감한 질문을 해서 관계를 상하게 할 필요를 느끼지 못했기 때문이었다.
그러나 채연은 세은이 이런 힘을 가지고 처음부터 나섰다면, 최대한 민간의 피해를 줄였을 거란 생각에 분노하고 있었다.
세은은 그런 채연의 기분을 파악하고는 오히려 채연에게 반문했다.
“내가 없어서 몬스터를 못 막았나요?”
“그건 무슨 말이죠?”
“굳이 내가 필요했냐는 말입니다.”
너무나도 당당한 세은의 말에 채연의 말문이 순간적으로 막혔다.
채연이 보기에는 정말로 세은은 자신의 잘못이 없다고 생각하고 있었다.
예상치 못한 대답에 멍한 채연의 모습에 세은은 피식 웃음을 지었다.
그리고는 입을 열어 계속 말을 이어나갔다.
“뭐, 이해합니다. 민간인이 꽤 죽었죠. 처음에.”
만약 세은이 채연과 같은 입장이었어도 똑같이 화가 났을 것 같았다.
마치 막을 수 있는데 막지 않은 것처럼 느껴질 테니까 말이다.
“하지만 첫 번째, 게이트가 열릴 것이라고는 알지 못했습니다. 두 번째, 그 사실을 알았을 때는 이미 몬스터 웨이브가 일어난 상태였죠.”
말을 하면서 세은의 주변에서 신성력이 움직이기 시작했다.
우웅― 우웅―
게이트에 들어와서 가장 강력하게 발하는 세은의 힘에 일행의 표정이 딱딱하게 굳었다.
“그리고 세 번째…….”
이내 오른손에 신성력이 모이기 시작했다.
찬란하게 빛나는 빛의 구가 세은의 손에서 회전해 나갔다.
그때가 돼서야 일행들은 밀림에서 무엇인가가 땅을 울린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에일린. 홀리 웨이브.”
강렬하지만 투명한 빛의 파도가 세은의 앞으로 몰아치며 밀림의 앞을 막아섰다.
쿠웅!
동시에 수많은 중, 대형 몬스터들이 밀림에서 쏟아져 나오다, 신성력의 파도에 막혀 튕겨 나갔다.
“제가 처음부터 있었다면, 여러분들이 과연 스스로 노력을 했을까요?”
사실, 세은은 부모님 때문이 아니었다면, 세상이 멸망 직전이 아닌 이상 지금도 나서지 않았을 것이다.
채연을 비롯한 일행들은 압도적인 세은의 능력에 또다시 놀라고 있는 중이었다.
“마지막으로 네 번째. 저는 이 모든 몬스터들을 상대한 경험이 있습니다. 물론, 어떻게 그럴 수 있었는지는 말할 수는 없죠.”
그리고 다시 세은의 손에 빛의 검이 생성되었다.
“제 말을 믿지 못하셔도 상관은 없습니다.”
세은이 몸을 돌려 신성력의 파도에 막혀 있는 트롤과 오우거 같은 몬스터들을 바라보았다.
이런 고위 몬스터들이 있는 것을 보아하니…… 아무래도 단탈리안이 있는 것이 확실해 보였다.
“하지만, 제 능력이 충분히 증명해 줄 수 있을 것 같네요.”
말을 마친 세은이 강한 항마력을 지닌 오우거의 목을 노리고 달려들었다.
채연과 이지호를 비롯한 일행은, 압도적인 신위를 보여주는 세은의 말을 믿을 수밖에 없었다.
아니, 세은의 능력은 그의 말에 신빙성을 주기에 차고 넘쳤다.
순식간에 키가 2미터를 넘는 트롤들과 4미터에 육박하는 오우거 무리가 고꾸라지는 모습이 그들의 눈에 들어왔다.
특히 서채연의 눈에 그런 세은의 모습이 강하게 박혀들었다.
* * *
“흐음. 너무 조용한데?”
밀림의 초입에서 트롤과 오우거를 모두 처리한 세은은, 밀림을 입장하고서는 오히려 아무런 몬스터가 나타나지 않는 것을 이상하게 생각했다.
“조용하면 좋은 거 아니에요?”
세은의 의문에 채연이 고개를 갸웃거리면서 말했다.
밀림 초입에서의 질의응답 이후로 채연의 세은을 대하는 태도가 많이 우호적으로 바뀌어 있었다.
세은의 대답이 채연의 마음에 들었기 때문이었다.
세은은 그런 채연을 귀찮아하면서도, 박동원이 촬영하는 보고용 영상 때문에 앞으로의 이미지를 위해 최소한의 대답은 해주고 있었다.
다만 채연이 자신보다 어리다는 사실을 알아낸 세은은 자연스럽게 채연에게 말을 놓고 있었다.
그리고 마땅히 세은을 부를 호칭이 없던 채연 역시 세은을 오빠라고 불렀다.
“여기가 마왕의 영역이라면, 몬스터가 이렇게 없어서는 안 돼.”
“그건 왜요?”
“마왕의 진짜 본거지라고 할 수 있는 마왕성 근처에는 몬스터들이 접근할 수 없으니까. 마왕들은 보통 몬스터들을 하찮게 생각하거든. 그래서 외곽 영역인 이곳에 몬스터들이 몰려 있어야 해.”
“그럼 오빠 생각과는 달리 여기가 마왕의 본거지가 아닐 수도 있는 거 아니에요?”
“아무리 봐도 맞는 것 같은데…….”
밀림의 깊은 곳으로 들어갈수록 익숙한 흑마력이 강하게 느껴지고 있었다.
그런 세은의 추리가 틀리지 않다는 것을 증명하듯, 어느 순간 갑자기 밀림과 어울리지 않는 웅장한 탑이 일행의 앞에 나타났다.
마치 피사의 사탑처럼 원을 그리며 위로 올라가는 모습이 인상적인 탑이었다.
“……단탈리안. 맞네.”
단탈리안이라면 자신이 이곳으로 오는 것을 미리 확인하고 탑의 방비를 탄탄하게 만들었을 가능성이 농후했다.
아니, 몬스터들을 만나지 못한 것을 보니 가능성이 아니라 거의 확신에 가까운 추측이었다.
다만 일행을 여기에 두고 가야 할지, 좁은 탑에 데리고 들어가야 할지 명확한 판단이 서지를 않았다.
미래를 볼 수 있는 단탈리안이 자신의 행동을 어떻게 예언했을지 전혀 감이 잡히지 않았기 때문이다.
결국 탑 앞에서 고민하던 세은은 시야에서 일행들을 떼놓기보다 탑으로 함께 들어가기로 마음을 먹었다.
적당히 힘을 조절해서 국지 범위 공격을 하면 괜찮을 것 같다는 판단에서였다.
괜히 밖에 두고 갔다가 다른 몬스터들에게 당하기라도 하면 낭패였으니까 말이다.
“절대, 절대로 떨어지거나 앞으로 나서지 마세요.”
게이트에 들어와 벌써 세 번째로 일행에게 주의를 주는 세은이었다.
“탑이 좁아서 어떻게 될지 모릅니다. 제가 신경 쓰겠지만 개인적으로도 주의 부탁합니다.”
더 낮은 수준의 공격으로도 지금 세은의 신성력이라면 어지간한 고위급 마법의 위력을 낼 수 있다.
하지만 아무래도 그 효율성과 사용 용도에서 차이가 날 수밖에 없었다.
한 마디로 지금보다는 조금 더 불편하게 공략해야 한다는 의미였다.
“걱정하지 마십시오.”
이지호가 대표로 대답했다.
일행들의 눈빛에 긴장이 어려 있는 것을 확인한 세은은 몸을 돌려 먼저 탑으로 진입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