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나는 교황이다-4화 (4/225)

# 4

1. 게이트를 닫는 남자(4)

“이게 전부인가?”

세은의 생각보다 적은 인원에 자동적으로 입에서 의문이 튀어나왔다.

자신에게 있어 사람이 적으면 적을수록 편하지만, 이 정도일 줄 생각하지 못했다.

이미 많은 각성자들이 자신의 힘을 확인했기 때문이었다.

그러나 지금 세은의 시야에 들어오는 각성자는 스무 명은커녕, 채 다섯 명도 채우지 못했다.

‘뭐, 덜 귀찮고 좋기는 한데…….’

그러나 그런 세은의 말을 불만으로 들은 이지호는 다급히 세은에게 변명했다.

“그, 그게 아니라. 아무래도 세은 씨의 능력을 상부에서 다 믿지 않다 보니…….”

몇 번의 게이트 내부 진입 실패에다가, 안보원 안에서의 권력 다툼 등으로 벌어진 일이었다.

사실 이 와중에 게이트 분야의 실장인 이지호가 게이트 내부로 들어가겠다고 하니, 정적들의 무수한 공격이 비처럼 쏟아지는 상황이었다.

거기에 직접 이지호의 사무실에서 세은의 능력을 겪어봤던 각성자들조차 직속상관의 명령에 따라 게이트에 참여하는 것을 원천적으로 봉쇄당했다.

그리고 분명 게이트를 두려워해 참여하지 않은 인원들도 있을 터였다.

현재 세은을 중심으로 이지호가 진행하는 게이트 토벌전에 참가를 신청한 인원은 이지호와 박동원을 포함한 그들의 직속 부하 한 명.

그리고 한 명은…….

“정말 이 사람이 그렇게 대단한 사람인가요?”

올림픽 양궁 금메달리스트, 그리고 그 사실보다, 뛰어난 외모로 유명한 서채연이었다.

서채연은 의문스러운 눈빛으로 세은을 바라보며, 이지호에게 질문을 던지고 있었다.

올림픽 금메달리스트로서의 인지도와 빼어난 외모, 각성자로서의 뛰어난 능력을 바탕으로 정부에서 국민들의 앞에 내세운 메인 홍보 모델 각성자였다.

그런 만큼 국가안보원 내에서도 딱히 파벌을 두지 않고 혼자서 지원을 다녔는데, 덕분에 이지호의 설득만으로도 토벌전에 참가를 하게 되었다.

근본적인 원인을 없애기 위해서이자, 채연 개인적으로도 이지호의 참가에 가능성이 있다 판단해 따라온 것이기도 했다.

그러나 막상 와서 보니 자신과 나이가 비슷한 또래 남자 한 명이 있을 뿐이었다.

채연의 눈에 점점 불만이 차는 것을 느낀 이지호는 혹여 세은이 기분 나빠하지 않을까 전전긍긍했다.

그러나 오히려 채연이 기분이 나빠서 빠지면 편한 것은 세은이었기 때문에, 세은은 굳이 채연을 신경 쓰지 않았다.

“자, 그럼 실장님. 브리핑 하시죠.”

연장자로서의 기본 대접으로 세은은 이지호에게 존댓말을 사용했다.

그러나 태도가 전혀 공손하지 않다는 사실은 같은 공간에 있는 누구나 느낄 수 있었다.

“아, 예. 그럼 공룡 능선 게이트 토벌 작전에 대한 브리핑을 시작하겠습니다.”

오히려 이지호 실장이 더욱 조심스럽게 행동하는 모습이 눈에 확 들어왔다.

채연을 제외한 인원들은 이 상황을 당연하게 여기고 있었다.

채연만이 매우 불편한 표정으로 세은을 바라보고 있었다.

그러나 당사자인 이지호가 받아들이고 있기에 다른 사람이 나서서 뭐라고 하기에 애매했다.

“일단 설악산 국립공원 공룡 능선에 생긴 게이트는 국내에 제일 먼저 나타난 게이트와 다른 점이 없습니다. 다만, 아직 몬스터 웨이브가 나타나지 않아서 민간인들의 설악산 입산만을 통제하고 있는 상태입니다.”

솔직히 이지호는 자신이 목격한 세은의 능력이라면 브리핑조차 필요 없음을 알고 있었다.

하지만 안보원 내에서의 정치 싸움에는 이런 귀찮은 절차도 필요했다.

적어도 이런 절차대로 진행하면 절차를 무시해서 실패했다는 공격은 막을 수 있으니까.

“그러므로 게이트 안에는 웨이브 전의 몬스터가 많을 것이라고 생각됩니다. 하지만 게이트 내에 들어가서 살아나온 사람이 현재는 없기 때문에 모든 것이 추측에 불과합니다.”

거의 모든 사실을 알고 있는 세은이었지만, 굳이 이지호의 말에 토를 달지 않았다.

어차피 세은 본인이 있기 때문에 하급 몬스터들은 있으나 마나한 존재들이었다.

“이번 우리 팀의 결과 여부에 앞으로의 국가 안보가 달려 있습니다. 애국심과 책임감을 가지고 임하도록 합시다.”

나중에 상부에 지금의 브리핑도 서면으로 보고를 해야 했기 때문에 이지호는 국가에 대한 애국심을 언급하는 것을 빼놓지 않았다.

모든 브리핑을 마친 이지호가 돌아와서 자리에 앉아 세은은 자신의 옷매무새를 정리하면서 말했다.

“그럼…….”

세은이 자신의 휴대전화를 확인하면서 자리에서 일어났다.

“얼른 끝내고 올까요?”

* * *

‘게이트에서 압도적인 수준차를 보여준다.’

세은이 게이트 토벌을 받아들인 궁극적인 이유였다.

각성자들과 자신의 압도적인 수준차를 보여주어 어설프게 자신을 옭아매려는 시도를 원천적으로 봉쇄하는 것이 주요 목표 중에 하나였다.

그러기 위해서는 죽일 수 없는 사람보다, 자신의 힘을 여과 없이 보여줄 수 있는 몬스터들이 필요했다.

마침 이지호와 서로의 이해관계가 맞아떨어졌다.

굳이 각성자들을 데리고 갈 필요가 없음에도 토벌 대장 역할을 수락한 이유가 여기에 있었다.

세은에게는 자신의 능력에 대한 보다 확실한 증인들이 필요했다.

나중에 다시 게이트에 들어가게 되더라도 정부의 통제를 받게 되는 일은 미리 사양하고 싶었다.

그러기 위해서 세은은 자신이 가지고 있는 가장 화려한 공격을 쏟아붓기로 마음먹은 상태였다.

“저기가 공룡 능선의 게이트입니다.”

이지호가 가리키는 곳을 확인하니 허공이 갈라진 틈이 확연하게 시야에 들어왔다.

게이트 앞에 멈춰 선 일행의 얼굴에 숨길 수 없는 긴장감이 떠올랐다.

오직 세은만이 늘어지게 하품을 하고 있을 뿐이었다.

“자, 들어가기 전에 딱 하나만 기억하면 됩니다.”

뭐지?

여태까지와는 다르게 진지한 세은의 말에 모두의 고개가 세은에게로 돌아갔다.

세은은 씩 웃으며 모두에게 자신의 말을 전달했다.

“내 앞으로 나오지 마세요. 그로 인해 발생하는 결과는 책임 못 집니다.”

화려한 범위 공격을 하면서 특정 범위만을 배제하는 것은 거의 불가능하니까.

세은은 일행에게 경고를 주고서는 먼저 게이트 안으로 들어갔다.

* * *

처음 게이트로 입장했을 때처럼 어지러움이 머리를 가득 채웠다.

그러나 이내 정상으로 돌아온 시야에 넓은 초원이 나타났다.

“여, 여기가 게이트 안?”

“밖과 별다를 게 없는데요?”

한 발 늦게 세은을 따라 게이트로 입장한 채연과 이지호가 대화를 한 마디씩 뱉었다.

박동원은 가장 마지막에 휴대용 촬영기기로 이 모든 진행 사항을 보고를 위해 촬영하고 있었다.

그들이 생각하던 아무도 돌아오지 못한, 지옥의 아가리 같던 게이트의 이미지는 안으로 들어오자마자 이미 산산이 부서졌다.

“아…… 있으려면 한곳에 좀 몰려 있지. 귀찮게.”

그러나 세은은 여기저기 흩어져 있는 몬스터 무리들의 기운을 느낄 수가 있었다.

시렌 에일린으로 살아왔던 60년 동안 질리도록 느껴왔던 익숙한 몬스터들의 기운이었다.

“분명히 말했지만 앞으로 나오지 마세요. 괜히 휘말리면 도움을 줄 수 없습니다.”

“네, 알겠습니다.”

채연을 제외한 모든 사람들이 심각하게 세은의 말을 받아들였다.

그러나 아직 유일하게 세은의 능력을 목격하지 못한 채연은 세은이 허세를 부린다 생각했다.

채연이 본 각성자들 중, 누구도 그 정도로 강한 힘을 가지고 있지 못했다.

하물며 정부 소속도 아닌 프리랜서가 그 정도 힘을 지니고 있을 것이라고는 생각할 수 없었다.

“자, 그럼 우선 앞에 있는 무리부터 처리하러 가죠.”

일행이 앞으로 조금씩 움직이자 몬스터들 역시 낯선 냄새를 맡았는지 서서히 반응하기 시작했다.

“오크네.”

무리 생활을 하는 오크들에게 많은 사람들이 당한 기억에, 자동으로 일행의 몸이 긴장으로 뻣뻣해졌다.

그러나 유일하게 태연한 세은은 오히려 휘파람을 불어 오크들을 자신의 방향으로 유인했다.

휘익―!

“미, 미쳤어요? 당신?”

그 상황에 기겁한 채연이 당황해서 소리쳤다.

채연뿐만이 아니라 다른 일행들도 세은의 돌발 행동에 당황하기는 마찬가지였다.

하지만 다른 사람들은 가만히 있을 뿐이었다.

자신들은 오직 세은을 믿고 게이트에 들어왔기 때문이다.

세은은 그런 채연을 가볍게 무시한 채 손을 들어 신성력의 흐름을 따라 휘저으며 시동어를 내뱉었다.

“에일린. 홀리 레인.”

사제들 중에서도 최소 주교 급은 되어야 사용할 수 있는 고급 신성 마법이 세은의 손에서 가볍게 발동되었다.

과거, 사제나 성기사들에게는 마땅한 공격 기술이 부족했다.

결국 그에 따른 위기감에 교단은 마법을 본 따 신성 마법을 연구하기에 이르게 된다.

연구는 성공적이었다.

마법과 닮은 신성 마법은 교단의 새로운 힘이 된 것이다.

여신의 이름을 내뱉음으로써 존재를 선명히 의식에 각인시키고, 믿음을 증폭하여 신성력의 위력을 올리는 방법을 사용했다.

굳이 여신의 이름을 시동어로 사용하지 않는다고 신성 마법이 발동되지 않는 것은 아니었다.

대부분의 사제들은 여신에 대한 존경의 의미로 그녀의 이름을 시동어로 사용했다.

그리고 다른 고위 몬스터도 아닌, 오크 따위를 상대하기에는 시동어까지 사용된 교황의 홀리 레인은 차고 넘쳤다.

마치 장대비가 떨어지듯이 하늘에서 빛의 방울이 우수수 낙하했다.

아무리 빠르게 뛰어도 비를 피할 수는 없듯이 범위 안의 모든 오크가 순식간에 빛의 방울을 맞아 고통의 비명을 지르기 시작했다.

“꾸엑!”

“꾸에에엑!”

언뜻 보기에는 그리 강해보이지 않았지만 방울 하나하나가 강한 관통력을 지니고 있었다.

온몸을 관통당하며 피를 흘리고 있는 오크들과, 그 오크들의 고통에 찬 울음소리를 제외하면, 빛이 비처럼 쏟아지는 아름다운 광경에 일행의 눈에 경이로움이 가득 찼다.

운 좋게 범위에서 벗어난 오크들은 감히 세은에게 달려들 생각을 하지 못했다.

몬스터인 오크들이 세은이 지니고 있는 신성력에 두려움을 느끼고 있는 것이었다.

그러나 도망치거나, 어쩔 줄 몰라 하는 오크들조차 세은은 가만히 놔두지 않았다.

굳이 사람을 해치는 돼지들을 살려둘 필요를 느끼지 못했다.

언젠가 분명 다시 문제를 일으킬 것이 분명했으니까 말이다.

안드로말리우스를 상대했을 때처럼 남은 오크들을 정리하기 위해 손에 빛의 검을 만들어낸 세은은 남은 오크들을 한 마리씩 처리했다.

결국 세은이 오크 한 무리를 모두 처리할 때까지 일행들은 상상조차 할 수 없었던 광경에 넋이 나가 있었다.

오크 한 무리, 대략 오십 마리 정도가 사라지는 데 겨우 10분도 걸리지 않았다.

이렇게 오크들을 쉽게 잡을 수 있다니.

도저히 그들의 상식으로는 이해할 수가 없었다.

그러나 이것은 엄연한 현실이었다.

그들은 그 현장의 중심에 목격자로 서 있었다.

정신을 차리지 못하고 있는 일행을 바라본 세은은 이 정도는 아무 일도 아니라는 듯이 웃으며 말했다.

“그럼 다른 몬스터들도 정리하러 가볼까요?”

“네, 네.”

“…….”

세은이 휘파람을 불 때 가장 먼저 제지했던 채연이 자신도 모르게 고개를 끄덕였다.

이지호와 박동원은 아직까지도 넋이 나가 있는 상태였다.

“최대한 빨리 나가는 것이 서로 좋을 테니 얼른 이동합시다.”

애초에 이런 반응을 예상했고, 또 원했다.

그 때문에 세은은 만족스러운 얼굴로 일행을 재촉했다.

조금은 귀찮지만 여과 없이 자신의 능력을 더욱더 보여주기 위해 이번 게이트는 혼자서 공략할 생각을 하고 있던 세은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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