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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고니시라니-220화 (220/225)

220화 후계자 결정(4)

나와 츠키나가가 조선에 다녀오는 동안, 카미나가도 썩 괜찮게 내 빈자리를 채운 듯했다.

딱히 지친 기색도 없었고, 같이 마중을 나왔던 마츠나가 히사히데 역시 얼굴이 밝았다.

“카미나가는 쿠보가 떠나 있는 동안, 무난히 쿠보의 자리를 대행했소.”

평가 자체는 츠키나가가 대행을 맡았을 때와 다를 게 없었지만, 어조만 들어봐도 상당한 차이가 있음을 알 수 있었다.

그리고 닌자들이 기록해 놓은 일지 역시 장남이 차남보다 낫다는 것을 보였다.

일지의 내용에 의하면, 중요한 일만 짚어내고, 나머지는 관료들에게 맡겼다고 했다.

“내 뒤를 이어받은 다음에도, 딱 이 정도로만 하면 현상유지는 되겠군.”

지금까지 쌓아올린 그 위에 뭔가를 더 얹을 수만 있다면 최고겠지만, 그게 아니라 본전만 쳐도 괜찮을 터였다.

아직 시간은 많으니, 카미나가에게 부족한 면을 채워 주기엔 충분했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모든 것을 자신이 직접 움켜쥐려는 츠키나가는 내 후계자로 적합하지 않았다.

나는 그렇게 마음을 정하고, 곧바로 중진들을 불러 모았다.

참석자의 필두는 당연히 원로 중의 원로이자 처음 후계 문제를 거론한 마츠나가 히사히데였다.

문관에 해당하는 인사로는 혼다 마사노부와 전현직 시정봉행 두 사람이 들어왔다. 그리고 무관으로서는 야규 무네요시와 시마 카츠타케가 참석했다.

“그간 여기 모인 여러분들도 내가 후계로 많이 고민했다는 것을 짐작했으리라 생각하오.”

내 말을 들은 가신들은 저마다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고 히사히데가 그들의 대표격으로 질문을 던져 왔다.

“마음은 정하셨소이까?”

“그렇습니다, 마츠나가 공.”

나는 고개를 끄덕이며 답한 뒤, 누가 내 뒤를 이을지 선언했다.

“장남인 카미나가를 내 후계로 삼고자 하오. 혹시라도 이의를 제기할 사람이 있다면, 지금이 마지막 기회일 것이외다.”

모두가 고개를 숙일 뿐, 어떠한 반론도 꺼내지 않았다.

그것으로 카미나가가 다음 차례의 사카이 쿠보가 되리라는 사실이 확정되었다.

분위기에 단도리가 박힌 가운데, 혼다 마사노부가 질문을 던졌다.

“하면 둘째 도련님은 어찌하실 생각이십니까?”

“자네가 먼저 질문을 한 걸 보면, 스스로가 달리 생각해 둔 바가 있는 모양이군.”

내가 역으로 되묻자, 마사노부는 선선히 고개를 끄덕였다.

“예, 쿠보.”

“기탄없이 말해 보게.”

발언을 허락했지만, 그는 오히려 확인을 요구했다.

“어떤 내용이라도 상관없습니까?”

“말하기만 하는 거라면, 무엇을 말하든 상관은 없겠지. 판단은 내가 할 것이니, 의견이나 내놓게.”

책임은 내가 진다. 그렇게 이야기하자 마사노부는 절을 올린 다음, 자신의 입을 열었다.

“치워버리셔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첫 마디가 떨어지기 무섭게, 참석자들은 서로를 돌아보며 웅성거렸다. 그리고 히사히데가 노호성을 냈다.

“그게 무슨 소리인가!”

히사히데가 늙었다고 해도, 오히려 늙은 생강이 매운 법.

그 기세는 나조차도 정면으로 받을 수 있을까 싶을 정도로 강렬했다.

하지만 마사노부는 태연하게 자신의 주장을 이어나갔다.

“말 그대로입니다. 후계 구도의 경쟁자는 결국 사고를 일으키게 마련이니, 불온의 싹을 잘라 버려야 한다는 말씀입니다.”

“죽이라는 말을 하는 것인가?”

히사히데도 내심 카미나가를 밀고 있었겠지만, 그렇다고 해서 츠키나가를 죽여야 한다는 것에 동조하진 않았다.

나와 그는 동서지간이다. 이 이야기를 연장시키자면, 카미나가도 츠키나가도 모두 히사히데의 처조카라는 말도 된다.

아무리 후계 구도에서 배제시킨다고 해도, 죽이자는 말은 껄끄러울 수밖에 없을 터였다.

그러나 마사노부는 여전히 태연했다.

“필요하다면 그렇게라도 해야겠지요.”

“감히……!”

분위기는 극단으로 치닫고 있었다.

그대로 내버려둬도 딱히 생산적인 이야기는 나오지 않을 터, 나는 손을 내저어 모두 입을 다물게 했다.

“자, 조용! 조용히들 하시게! 나는 이야기를 들어보기만 하기로 했지, 그대로 따르겠다고 한 적은 없네.”

혼다 마사노부가 어떤 제안을 내놓아도 결정권은 내게 있음을 명확히 하자, 히사히데도 겨우 진정하는 눈치였다.

혼탁했던 장내의 분위기가 수그러든 뒤, 나는 마사노부를 돌아보았다.

“일단 이유나 말해보게.”

“츠키나가 도련님은 야심이 있는 분이라는 것을 아실 겁니다. 저도 몇 번 지혜를 빌려드린 적이 있지요.”

“그렇다면 이 결정 자체에 이의를 제기했어야 하는 것이 아닌가?”

후계구도에서 둘째에게 도움을 준 사람은 당연히 그의 사람일 터였다. 그런 점에서, 마사노부는 자신의 마음을 손바닥 뒤집듯 한 거나 다름없었다.

“혹시 뒤늦게 충성경쟁이나 벌이려는 건 아니겠지?”

“당연히 아니지요. 뒤를 확실히 해 두자는 이야기일 뿐입니다.”

“무슨 뜻인지는 알겠네. 그래도 말일세, 어쨌거나 내 자식이 아닌가. 죽이는 방법은 최대한 피해야겠지.”

나는 그렇게 말한 뒤, 좌중을 둘러보며 이번 논의에 종점을 찍었다.

“다들 카미나가에게 뒤를 맡기는 것에 이의는 없는 모양이군. 이제 돌아가도 좋소. 아, 마사노부 자네는 좀 남도록.”

참석자들은 썰물처럼 빠져나갔다.

내가 지명한 혼다 마사노부만이 자리에 앉아, 기다리고 있었다.

“너무 앞질러 간 건 아닌가?”

“하지만 둘째 도련님은 결국 분란의 싹이 되고 말 겁니다.”

“아니, 그 이야기 말고.”

오늘 중진들에게 발표했던 내용은 딱히 대외비도 아니었다.

내 결정 같은 건 당연히 사람들이 알게 될 거고, 마사노부가 했던 이야기도 일파만파 퍼질 터였다.

“자네가 먼저 침을 박아 버렸으니, 둘째 아이도 어떻게 움직이지 못하겠지. 아닌가?”

“역시 쿠보의 눈은 속일 수가 없군요. 옳게 보셨습니다.”

“하지만 동시에, 츠키나가 그 아이는 스모토에서 살 수 없게 되겠지. 역적 후보로 기정사실이 되고 말 테니 말이야. 아비된 입장에서 그건 불쾌하군.”

마사노부는 질책 아닌 질책을 들은 뒤, 깊게 도게자를 했다.

“이것이 제가 생각하는 최선이었을 뿐입니다.”

나는 한숨을 내쉴 수밖에 없었다.

‘백성은 살지도 죽지도 못하게 만들어야 한다.’ 바로 혼다 마사노부가 원래의 역사에서 했던 말이다.

그가 낌새를 보였을 때, 나는 엄중히 주의를 준 바가 있었다.

내 뜻을 알아차린 그는 백성에 대해서는 가타부타 말하지 않았지만, 아무래도 표적이 츠키나가에게로 옮겨 간 듯했다.

“여론이 험악해지면, 나는 자네를 어떤 식으로든 처벌할 수밖에 없네.”

“기꺼이 받아들이겠습니다, 쿠보.”

“당분간은 근신하고 있게.”

모신(謀臣)을 돌려보낸 뒤, 츠키나가의 처우에 대해 깊이 고민해야 했다.

“역시 이 문제를 논의할 사람은 히사히데 밖에 없겠군.”

마츠나가 히사히데는 은연중에 카미나가에게 무게를 실어주고 있었다.

하지만 동시에 츠키나가의 안위를 내팽개치지 않을 사람이었다.

아까도 마사노부에게 대놓고 분노를 드러내지 않았던가.

과연 그도 걱정하고 있었는지, 호출을 받자마자 열일을 제쳐 놓고 달려왔다.

“쿠보, 정말로 츠키나가를 강하게 억눌러놓을 셈이오?”

“그건 나도 원하는 바가 아닙니다. 마츠나가 공을 부른 것도, 마사노부가 들쑤셔 놓은 문제를 어떻게 부드럽게 무마할지 논의하기 위해서고.”

내 해명을 들은 히사히데는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쿠보께서 그리 마음을 정하셨다면, 어떤 식으로든 길은 열릴 거라 생각하외다.”

그렇게 머리를 맞대고 의논한 결과, 몇 가지 방법을 끄집어낼 수 있었다.

“시코쿠 간레이에게 양자로 맞이하라는 건 어떻겠소이까?”

“그도 아들들이 있는 것으로 아는데, 순순히 받아들일지…….”

“그게 미요시의 방식이니, 몇 가지를 조율하면 승낙할 겁니다.”

마츠나가 히사히데는 츠키나가로 하여금, 미요시 마사야스의 뒤를 잇게 하자고 했다.

미요시 나가요시도 아들들을 가신의 양자로 입적시켜, 본가를 보좌하는 구조를 구축하려 한 적이 있었다.

하지만 마사야스도 엄연히 적실 소생의 아들들이 있는 몸이었다.

그쪽에서 순순히 받아들일까 싶었지만, 히사히데는 상당히 열정적으로 방법을 꺼내놓았다.

“차기 간레이는 츠키나가로 하고, 차차기 간레이는 다시 미요시 공의 후손이 뒤를 잇게 하면 되오. 그 정도 양보는 받아낼 수 있을 것이외다.”

그렇게 될 경우, 시코쿠를 좀 더 오랫동안, 바짝 엮어 둘 수 있다는 것이 장점이라 했다.

간레이가 된 츠키나가는 기존 시코쿠 세력의 견제를 받을 수밖에 없고, 자연스럽게 카미나가의 도움을 필요로 하게 된다는 논리였다.

“흐음…….”

“내가 가서 직접 설득해보겠소이다.”

히사히데가 직접 발 벗고 나선다면, 충분히 가능성은 있을 듯했다.

나는 고개를 끄덕이며 그에게 맡겨보려 했는데, 밖에서 심부름꾼이 아뢰는 소리가 들려왔다.

“쿠보, 셋츠노카미께서 알현을 청하셨습니다.”

“아케치 공이? 잠시 기다리시라 전해라.”

“그게, 둘째 도련님과 관련된 일로 찾아오셨다고 합니다.”

소문이 빠르긴 빨랐다.

불과 하루도 되지 않아, 나니와쿄 도성에 머무르고 있었을 아케치 미츠히데의 귀에까지 들어갔으니 말이다.

“하여간, 혼다 공의 솜씨는 예리하구려.”

“부리는 입장에서 방심할 수 없긴 합니다. 일단 아케치 공도 불러서 용건부터 들어보지요.”

“쿠보의 뜻대로 하시오.”

히사히데도 미츠히데가 찾아온 이유는 궁금했던 모양이었다.

새 방문객과 예를 나눈 뒤, 곧바로 용건부터 요구했다.

“그래, 아케치 공께서는 어떤 고견을 품고 오셨소?”

“츠키나가 공의 일이 급한 것은 알지만, 그 전에 먼저 들어주셨으면 하는 이야기가 있습니다.”

나는 고개를 끄덕여, 미츠히데의 요청을 수락했다.

“실은 코카 쿠보 말입니다.”

그가 털어놓은 이야기는 다소 충격적이었다.

하지만 그럴 수도 있었겠다 싶은 일이기도 했다. 이미 나와 히사히데에게는 나름대로 내성이 있는 주제였다.

“어디, 정리를 해 봅시다. 코카 쿠보로 취임했던 아시카가 쿠니우지가, 실은 여자였다고 하셨소?”

“그렇습니다.”

본래 이름은 쿠니우지(国氏 국씨)가 아니라 우지히메(氏姫 씨희)라고 했다.

어쩐지 첫인상이 좀 곱상하게 생겼더라니. 단순히 불우한 처지에 여위었기 때문이라고 생각했는데, 그쪽도 사정은 복잡했던 모양이었다.

“어떻게든 코가 쿠보라는 이름을 지키고 싶었다고 하더군요.”

옆에서 같이 전말을 들은 히사히데는 예전 일이 떠오른 듯했다.

“이거 참……. 그래서 츠키나가와 혼인이라도 시켜 달라는 이야기인가?”

“이미 둘째 도련님도 처자가 있는 몸이 아니십니까. 그리고 우지히메 님도 스스로를 불우한 처지라 말하면서, 혼인할 생각이 없다고 했지요.”

그저 코가 쿠보로서 아시카가 일족의 제사가 끊어지지 않으면 족하다. 아케치 미츠히데가 가져온 이야기는 대강 이러했다.

“코가 쿠보 자체도 실권이 없는 자리니, 나쁘진 않겠는데…….”

“나 역시도 같은 생각이오.”

이미 후사가 탄탄한 집안에 입적을 강요하는 것보다야, 이해관계가 서로 맞아떨어지는 쪽이 낫지 않겠는가.

제멋대로인 동국의 무가들을 관리하게 되어버린 둘째에게는 조금 미안했지만, 이렇게 하는 편이 모두에게 최선일 터였다.

“좋네, 추진하지.”

그렇게 방침을 정하자, 나머지는 일사천리로 흘러갔다.

츠키나가는 코가 쿠보도 쿠보라며, 순순히 자신의 처지를 받아들였다.

그리고 일부러 논란을 일으켜, 츠키나가를 곤란하게 만들었던 마사노부에게도 적절한 처분을 내릴 수 있었다.

“결자해지라는 말이 있지. 자네는 코가 쿠보를 보좌하도록.”

“어쩔 수 없지요.”

자신을 죽이라고 진언한 사람을 온전히 신뢰하기는 어려울 터, 오히려 감시역이라고 생각할 가능성이 높았다.

그 둘이 힘을 합쳐서 카미나가를 넘어서리라고 판단해 볼 여지는 전혀 없었다.

“쿠보의 솜씨야말로 아주 예리하시오.”

“마츠나가 공도 별말씀을 다하십니다.”

후계구도도 완전히 정리되었다.

내치는 관료제와 이해관계가 지금의 상태를 유지하게 해 줄 것이고, 외교는 카미나가도 충분히 잘할 터였다.

이제 남은 일은 하나밖에 없었는데, 얼마 지나지 않아 기다리던 소식이 들려왔다.

“쿠보, 명나라 황제가 천도를 선언했다고 합니다.”

“올 것이 왔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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