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19화 후계자 결정(3)
과연 내가 솔빈에 다녀온 동안에, 둘째인 츠키나가는 어떻게 하고 있었을까.
잠깐 사이에 스모토가 확 바뀌어 있으리란 기대는 당연히 하지 않는다.
만약 그게 실제로 일어난다면 오히려 츠키나가에게 실망하게 될 터였다. 어떤 부작용이 나타날지 모르니 말이다.
그리고 영특한 모습을 보여주었던 둘째가 엄한 짓을 해놓을 거라고는 생각하기 어려웠다.
배에서 내렸을 때, 츠키나가와 마츠나가 히사히데가 마중을 나와 있었다.
“다녀오셨습니까, 아버님.”
“그래, 수고 많았다. 그간 별일은 없었으냐?”
“다행히 아무 일 없이 지나갔습니다.”
내 질문을 받은 츠키나가는 담담하게 대답했다. 하지만 떠나기 전과 비교해보면, 안색이 약간 파리한 것처럼 보였다.
“네 얼굴에는 별일이 있는 듯한데…….”
“아버님께서 걱정하실 정도는 아닙니다. 그저 소자가 의욕이 앞서서 약간 무리를 한 것이니, 마음 쓰지 마십시오.”
“음, 알겠다.”
나는 치소로 돌아와서 그간 수고했던 아들들에게 약간의 휴가를 주었다.
솔빈에 다녀온 카미나가에게나 내 빈자리를 대신했던 츠키나가에게나, 힘든 일이기는 모두 마찬가지였을 터였다.
그리고 곧바로 히사히데를 호출했다.
“제가 없는 동안, 츠키나가는 어땠습니까?”
“흠, 일처리는 무난하게 한 듯싶소. 하지만…….”
“하지만……?”
말꼬리를 흐린 것이 미심쩍었지만, 히사히데는 끝을 이어서 말하지 않았다.
“아니오, 쿠보. 쿠보께서 직접 보시는 편이 낫겠지. 궁금한 것이 있다면, 호위 닌자들에게 확인하는 게 나을 거요.”
“호위 닌자……?”
“내게까지 발뺌할 셈이오? 하긴 그것도 나쁘진 않지만……. 츠키나가 주변을 호위하던 닌자들이 평소보다도 수가 늘었고, 아주 분주하게 움직이더구려.”
그는 내가 안배해놓았던 바를 눈치 챈 모양이었다.
“이런, 역시 마츠나가 공의 눈은 속일 수가 없군요. 그래도 공이 본 바를 듣고 싶습니다.”
"나는 이 문제에 원론적인 이야기밖에 할 수 없소. 그리고 츠키나가는 정말로 무난하게 업무를 보았소이다.“
히사히데는 그렇게만 말하고 휘적휘적 나가버렸다.
조선 같은 경우라면 사관이 붙어서 온갖 행적을 기록으로 남겼겠지만, 스모토에는 그런 제도가 존재하지 않았다.
그나마 비슷한 역할을 수행할 수 있는 존재는 그림자처럼 붙어서 호위하는 닌자들이었다.
나는 솔빈으로 떠나기 전, 그들에게 츠키나가의 모든 언행을 기록하게끔 지시해둔 상태였다.
“자신의 영향력을 확대해볼 법도 한데, 모두가 조심스러워하는 모양이군.”
혼다 마사노부도, 마츠나가 히사히데도 모두가 말을 아꼈다. 다른 이들의 행동도 크게 다르지 않았다.
내가 두 아들들에게 기회를 준 것 자체가 후계 논의를 물 위로 끌어낸 셈이었다.
이런 상황에서 한 마디라도 해서 자신의 영향력과 지위를 높여보려 할 법도 한데, 의외로 그런 사람은 없는 듯했다.
“그래서 더 믿음직스럽지만……. 어쨌든 지금은 그간 있었던 일부터 알아봐야겠네.”
나는 히사히데가 권했던 대로, 츠키나가의 호위를 맡겼던 닌자를 호출했다.
“두 번째 단조가 인사 올립니다.”
“무슨 일로 불렀는지는 알겠지?”
“예, 주인님.”
그는 품에서 두툼한 책을 세 권이나 내놓았다.
“둘째 도련님의 언행을 기록한 것들입니다.”
“맡긴 기간이 그리 길지는 않았을 것인데……?”
“동시에 두 사람이 기록하게 했습니다. 그리고 나머지 한 권은 그 둘을 대조해서 종합한 것이지요.”
나도 모르게 저절로 혀를 내두르고 말았다.
“평소에 정보를 수집할 때도 이런 식으로 하나?”
“최우선 순위의 특급 임무는 그렇게 합니다.”
“알았다. 이만 나가보도록.”
닌자가 부복하고 나간 뒤, 나는 곧바로 일지를 펼쳤다.
……
- 마츠나가 히사히데 : 그렇게까지 할 필요가 있겠습니까?
- 츠키나가 도련님 : 이번 기회에 전반적인 흐름을 알아보려는 겁니다.
- 마츠나가 히사히데 : 흠……. 생각이 그러시다면야.
내 대리인의 권위를 세워주기 위함이었는지, 일지 속의 히사히데는 시종일관 츠카나가에게 높임말을 썼다. 뭐, 그게 중요한 건 아니고…….
- 츠키나가 도련님 : 시정봉행, 원래 이랬던 것인가?“
- 사오토메 토오루 : 그렇습니다, 쿠보 대행.
- 츠키나가 도련님 : 좀 더 빨리 할 수는 없겠나?
- 사오토메 토오루 : 관료들을 좀 더 늘린다면 가능할지도 모릅니다만, 지금 상태로는 어렵습니다.
- 츠키나가 도련님 : 그래도 다른 방법이 있을 것 같네. 좀 더 업무에 매진하라 이르게.
어쨌든 일지의 내용은 대강 이런 식이었다. 그리고 닌자들은 둘째가 혼잣말하는 것까지 빠짐없이 적어놓았다.
- 츠키나가 도련님 : 하아, 좀 지치는데……. 그래도 아버님께서 맡기신 일이다. 조금의 허술함도 있어선 안 되겠지.
어, 음. 이런 사람을 예전에도 겪어봤던 것 같은데. 왜 읽는 내가 오한이 들지?
이건 마치, 새로 부임한 소대장이 의욕만 앞서는 그런 거 같은 느낌적인 느낌이군.
아까 안색이 좋지 않았던 것도 평소보다 무리해서인 모양이었다.
- 츠키나가 도련님 : 그래도 보람은 있다. 역시 형님과는 다른 모습을 보여드린 게 유효했어.
- 츠키나가 도련님 : 어머님께서는 나와 형님을 무가의 자제들처럼 키우셨지만, 똑같은 길을 걸어서야 내게 기회가 올 리는 없지.
이건 약간 불쾌하긴 했지만, 어쨌든 둘째 녀석의 판단이 옳기는 옳았다.
솔빈으로 떠나기 전까지, 내 마음은 그쪽으로 기울어 있었으니까.
형을 제치고 내 후계자가 되겠다는 야망?
당장 나부터가 칼로 찍어 누르기보다는 사람들의 욕망을 이용해서 이 자리에 오르지 않았던가.
내 아들들이라고 특별히 이런 부분에 엄격할 필요는 없다고 생각했다.
오히려 일찌감치 길을 찾아냈다는 점에서는 합격점을 주고 싶을 정도였다.
하지만 첫째 녀석에게서도 가능성을 발견한 이상, 기회는 공평하게 줄 필요가 있었다.
* * *
계속해서 두 아들들에게 조금씩 기회를 주어가며 지켜보았다.
물론 내가 일부러 자리를 비울 상황을 만들기도 했고, 실제로 그래야만 하는 경우도 있었다.
다음 삼국의 회합은 한양에서 열렸고, 이번에는 두 아들의 역할을 바꾸기로 했다.
“카미나가, 스모토에는 너를 남길 생각이다. 그리고 츠키나가는 나를 따라오도록 해라.”
다행히 츠키나가도 자신이 한양으로 가는 일에 수행하는 것에 기대감을 보이고 있었다.
지난 번 일지의 내용을 생각하면 연기일까 싶기도 했지만, 의외로 둘째 아들은 조선에서 왔던 사람들과도 교분이 있는 듯했다.
“서애 대감을 뵐 수 있겠군요.”
“허, 그 사람을 아느냐?”
“스모토에 계신 동안, 잠시 배움을 청한 일이 있었습니다.”
역시 자기가 후계로 서기 위한 노력이었을까. 일지의 내용을 떠올려보면, 지금 츠키나가가 하는 말이 무심하게 넘겨지지 않았다.
어쨌든 나는 둘째 녀석을 대동하고 한양에 들어섰다.
이번에도 특별한 안건은 없었고, 삼국의 친목을 도모하기 위한 자리나 마찬가지였다.
“어서 오시오, 공방.”
“오랜만에 뵙습니다, 전하.”
조선의 국왕과 조정은 변함없이 우호적인 모습으로 우리 일행을 반겨주었다.
그리고 누르하치는 이제 정권이 안정되었는지, 자신의 동생인 슈르하치를 대신 보냈다.
“나랏일이 급하여, 부득이하게 제가 대신 왔습니다. 저희 형님 전하께서도 쿠보께 아쉬운 마음을 전해달라고 하셨습니다.”
“어쩔 수 없는 일이지. 원래 창업군주야말로 가장 힘든 자리인 법이니 말일세. 돌아가거든 안부나 잘 전해주게.”
나는 타국의 대표들과 인사를 나누며, 슬쩍 둘째의 기색을 살폈다. 과연 츠키나가는 긴장한 기색이 역력했다.
“너무 긴장하지 말거라. 모두가 우리의 친구요, 동맹이니 말이다.”
“알겠습니다, 아버님.”
그래도 나쁘진 않았다. 지금의 정세대로라면, 현상유지만 할 수 있어도 반은 먹고 들어가는 거니까.
그리고 내가 지금 조선의 국왕과 주션의 칸과 개인적인 친분을 맺고 있긴 해도, 결국은 세력 간의 이해관계로 묶어놓은 상태.
우두머리끼리 조금 밋밋한 관계가 된다고 한들, 지금의 질서가 깨지기는 어려울 터였다.
다행히 둘째 아들의 긴장은 일본에 다녀갔던 사람들이 나타나면서 서서히 풀리는 듯했다.
유성룡은 물론이고, 이순신과도 안면이 있는 모양새였다. 치트공과 안면을 튼 상태라면, 그것도 치트라고 할 수 있겠지.
그렇게 마음을 놓고 있었는데, 정말 사건은 의외의 순간에 터졌다.
“그렇지가 않습니다, 저하!”
2세대끼리 친목을 다지는가 했더니, 어느새 츠키나가가 언성을 높이고 있었다.
그 상대는 다름 아닌, 조선의 세자였다.
“츠키나가, 대체 무슨 결례냐!”
“아, 아버님…….”
다행히 상황은 금방 수그러들었지만, 이미 분위기는 박살나버리고 말았다.
일단 조선의 국왕과 세자에게 사과한 뒤, 우리 일행은 경회루에서 물러나왔다.
“대체 무슨 일이 있었던 것이냐?”
“그게…….”
사건의 발단은 정말 사소한 영역이었다. 학문에 관한 토론을 벌였던 모양인데, 그것까진 괜찮았다.
어쨌거나 조선의 사대부들이란 지식과 토론을 좋아하는 사람들이니까. 이황과 기대승의 사례도 있지 않던가 말이다.
문제는 격화된 상황에서 츠키나가의 태도였다.
“저도 모르게 울컥해서, 조선의 세자에게 면박을 주고 말았습니다.”
“허어…….”
대강의 짐작은 갔다.
여태껏 츠키나가는 형을 제외하면, 거의 모든 관계에 위아래가 있을 수밖에 없었다.
사실 형이라는 존재도 형제간의 서열을 생각하면 아주 동등하지는 않을 터였다.
결국 서열 관계에 아주 익숙한 상황에서, 자신과 동급인 존재에 익숙하지 않았던 것이다.
물론 확정된 지위만 놓고 보면, 세자와 아직 후계자가 되지 못한 아들의 차이는 명확했다.
하지만 조선은 츠키나가에 대한 의전을 세자와 동급으로 했고, 나 역시 거기에 이견을 달지 않은 상태였다. 그게 화근이었던 모양이었다.
“일단 너는 근신하고 있도록 해라.”
“아, 알겠습니다, 아버님.”
조선의 국왕에게는 뭐라고 사과를 해야 할까. 그리고 얼마나 성의를 보여야 할까.
이런 문제로 고민을 하고 있는데, 유성룡이 먼저 객사를 찾아왔다.
“아들을 불민하게 키운 내 탓일세. 전하께 뭐라 말씀을 드려야 할지 모르겠군.”
나는 먼저 고개를 숙였다. 그런데 의외로, 조선의 고관들이 찾아온 목적에 항의는 없는 듯했다.
“그게, 저희 조정에서도 워낙 이견이 분분하여…….”
“무슨 이야기인가?”
“당시 같은 자리에 있었던 시강원의 서연관들이 증언을 했는데, 저희 세자 저하께서도 다소 무례한 언사를 보이셨다고 하더군요.”
그러니 이 일은 불문에 부치는 것이 맞을 것 같다는 것이 조선 측의 입장이었다.
“일전에 제가 주본(洲本 스모토)에 머무를 적에, 차장 공에게 잠시 몇 가지를 일러 드린 적이 있었지요.”
“들은 바가 있네.”
“나름대로 가르침을 드렸다 생각하는 입장에서, 굽힘 없는 선비의 풍모는 크게 책할 일이 아니라 생각합니다.”
“그렇게 보아주니 고마울 뿐일세.”
조선이 이제는 상업을 중시한다고 해도, 본질은 사대부의 나라다. 그리고 사대부란 결국 학문을 궁구하는 선비를 의미했다.
그런 점이 츠키나가에게 적잖이 호의적인 점으로 작용한 것처럼 보였다.
유성룡은 자기도 나름 츠키나가의 스승이라고 괜찮게 본 듯한 기색이었지만, 내 후계자가 그래서는 곤란했다.
“역시 외곬수는 곤란하지…….”
이제는 마무리를 지어야 할 때가 된 것 같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