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18화 후계자 결정(2)
나는 사카이 쿠보라는 직함보다는 도시의 관료제를 정비하고, 부를 쌓아 올린 것이야말로 내 힘이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아들들은 쿠보직 자체를 권좌이며 나의 상징 같은 것으로 보는 눈치였다.
한 마디씩 말할 기회를 주자, 아들들은 각자 자신의 야망을 드러냈다.
“소자는 최선을 다할 뿐입니다.”
장남인 카미나가는 자신이 유리하다고 생각하는지, 짧고 간결하게 말했다.
풍겨오는 분위기처럼, 무사다운 기질도 적지 않게 느껴졌다. 아무래도 아내가 무가의 여식이었던 만큼, 그대로 키운 모양이었다.
하지만 부모가 모두 같은데도 불구하고, 둘째인 츠키나가에게서는 무사보다 문사 내지 선비의 인상이 더 크게 눈에 띄었다.
“아버님께서 주신 기회를 결코 놓치지 않겠습니다.”
물론 갈망은 문무를 떠나서, 오히려 카미나가보다도 강하게 드러냈지만 말이다.
한쪽이 2인자나 일족의 중진 정도에 만족하고, 나머지 하나를 보좌해 주면 좋으련만. 그건 역시 부친으로서의 기대에 불과한 듯했다.
“이제부터 너희들은 나를 따라다니면서 각자 지닌 능력을 보여 주었으면 한다.”
당장 정하지는 않을 것이고, 당분간은 지켜보며 결정할 것이다. 그렇게 선언하자 두 아들들의 반응은 약간 엇갈렸다.
첫째는 살짝 긴장한 기색을 내보였고, 둘째는 아주 자신만만한 얼굴이었다.
그 이유는 오래 가지 않아서 금방 드러났다.
“이미 아버님께서 법을 세워두셨으니, 그대로만 하면 되지 않겠습니까?”
카미나가도 기초적인 소양은 갖춘 상태였지만, 딱 그 정도에 불과했다. 반면, 츠키나가의 시야는 꽤 넓은 편이었다.
“그런 선에서 해결될 문제였다면, 아버님께 올라오지도 않았으리라 생각합니다. 마땅히 맥락을 따져서 살펴야 한다고 봅니다.”
관심사도 통치자로서는 츠키나가가 더 적합해보였다.
카미나가는 주로 군사나 군기담, 검술을 좋아하는 편이었다. 하지만 츠키나가는 물류와 법령, 그리고 돈의 흐름에 폭넓은 이해를 갖춘 듯했다.
그렇게 솔빈으로 출발하기 하루 전까지 지켜본 바로는, 아무래도 내 마음이 둘째에게 기울고 있었다.
하지만 고작 며칠간 지켜본 것만으로 모든 것을 헤아릴 수는 없는 노릇이었기에, 나는 일단 둘을 불러 앉혔다.
“이제 내일, 나는 솔빈으로 출발할 것이다. 너희 둘 중 하나가 나와 동행했으면 하는데, 누가 같이 가겠느냐?”
“소자가 따르겠습니다.”
이번에는 츠키나가가 머뭇거리는 사이에, 카미나가가 즉답했다.
“그런가.”
“아버님께서 자리를 비우신 동안, 소자가 스모토를 지키고 있겠습니다.”
과연 둘째의 눈치가 좀 더 빨랐다. 스모토에 남는 사람이 내 대리인이 되리라는 것을 알고 있는 눈치였다.
당연한 말이지만, 내 대리를 맡는다는 것은 후계에 한 발짝 더 다가선다는 것을 의미했다.
물론 히사히데에게는 비밀로 하라고 단단히 단도리를 쳐 놨으니, 츠키나가 스스로가 알아차렸을 가능성이 높았다.
둘째에게도 측근과 친구가 있으니, 같이 의논한 결과일 수도 있었다. 하지만 그렇게 영리한 사람을 곁에 두었다는 것도 역시 통치자로서의 소질일 터였다.
나는 고개를 끄덕이며, 두 아이들의 눈치를 가만히 살펴보았다.
츠키나가의 말을 듣고 후회할 법도 했지만, 카미나가의 얼굴은 오히려 평온했다.
“그럼 카미나가는 짐을 꾸려두고, 츠키나가는 마츠나가 공을 찾아가도록 해라.”
* * *
“그래서 고민일세.”
솔빈으로 가는 배 위에서, 나는 지금 내가 골치아픈 부분을 혼다 마사노부에게 적당히 털어놓았다.
“분명 장자승계가 원칙이나, 통치자로서의 재능은 둘째가 더 나은 것 같단 말이지. 자네는 어떻게 생각하나?”
“글쎄요…….”
마사노부는 말을 아끼는 눈치였다.
“자네가 말한다고 해서 그대로 하진 않겠지만, 의견이나 좀 들어보고 싶군.”
“딱히 떠오르는 건 없습니다만, 저는 삼국지를 아주 좋아합니다.”
뜬금없는 취향고백에, 나는 그의 눈을 정면으로 바라보았다. 하지만 무슨 뜻을 담아서 말한 것인지는 금방 알아차릴 수 있었다.
“그중에서도 가후를 특히 좋아하는 모양이군.”
“네, 뭐 그렇지요.”
일본 사람들은 대체로 조조를 좋아한다. 그리고 그 조조에게는 지금의 나와 비슷한 일화가 있다.
장남이라고 할 수 있는 조비와 서열로는 뒤처지는 아들인 조식을 두고 후계자를 고민했던 이야기 말이다.
조조의 측근인 가후는 그런 조조에게 유표의 아들들이 어떻게 되었는가를 생각하라고 하면서, 은연중에 조비를 밀어주었다. 어쩌면 원칙에 근거한 행동에 불과했을지도 모르지만.
“자네 말은 잘 알겠네. 하지만 지금 우리가 사는 시대와 공간은 고대 중국이 아니라, 지금의 일본일세.”
“본질적인 면은 크게 다르지 않은 것 같습니다만…….”
“그리고 무엇보다도, 조위는 오래가지 못했지. 뒤를 이은 사마씨의 진나라도 마찬가지고.”
그리고 내가 생각하기에, 삼국지 이후의 중국이 빠르게 5호 16국으로 넘어간 까닭은 조비에게 있었다.
성급하게 헌제에게 양위를 받아내고, 부족한 정통성을 때워 보겠다고 귀족들에게 너무나 많은 이권과 특혜를 뿌렸으니까 말이다.
그 빈틈을 이용해서 사마씨가 또 찬탈하고, 사마씨는 제위를 굳건히 하겠다고 귀족들을 또 띄워 주고.
그렇게 악순환으로 국체가 약화된 상황에서, 북방 유목민에게 털리지 않았던가.
물론 조식이라고 해서 딱히 다를 것 같지도 않긴 하지만, 어쨌든 삼국지의 고사를 그대로 적용하기에는 무리가 따른다는 것이다.
내가 이런 생각들을 하느라 입을 다물고 있던 것이 마사노부에게는 불쾌함으로 보였는지, 그가 재빠르게 입을 열었다.
“물론 저는 두 분 아드님 중에서 어느 분이 되셔도 상관없습니다만, 그저 빨리 후계를 굳혀 주시기만을 바랄 뿐입니다. 다른 이들도 마찬가지지요.”
“음?”
“사실 쿠보께서 불혹이 되신지도 고작해야 1년밖에 지나지 않았지요. 하지만 후계자를 정하시기에는 다소 늦은 감이 있습니다.”
누가 뒤를 이을까 서로 눈치만 보고 있다가, 이제는 서로 유력한 쪽에 붙으려고 한다는 이야기였다.
“그리고 제가 삼국지의 고사를 꺼낸 까닭은, 그저 원론적으로 장자 승계가 옳다고 생각했기 때문입니다.”
“자네 혀가 무척이나 길어졌군.”
“쿠보께서 뜻을 정하지 못하신 듯하니, 그저 조심할 뿐이지요.”
결국은 내가 모든 것을 결정하고, 그 결과도 온전히 내 책임으로 지고 가야 한다는 이야기였다.
“자네 말도 옳네. 하지만 성급하게 정할 일은 아니지.”
“하지만 몇몇 관료들은 이미 두 번째 아드님을 후계로 세우신 것이 아닌가 하기도 합니다.”
내가 자리를 비운 사이에 대리를 맡겼으니, 그렇게 볼 수도 있을 터였다.
“어쨌든 둘째 녀석이 좀 더 유리한 고지에 있다는 것은 부정할 수가 없군.”
“언제쯤 결정하실 생각이십니까?”
“글쎄……. 일단 스모토로 돌아간 뒤가 되지 않겠는가.”
마사노부는 밤바람이 차다며 들어갈 것을 권하고, 자기도 선실로 들어갔다. 그러나 나는 파도소리를 들으며, 좀 더 고민에 잠겼다.
* * *
솔빈에서는 우리 일행을 성대하게 환영했다. 누르하치가 직접 나왔고, 인파도 상당히 많았다.
“어서 오십시오, 형님. 근데 옆에는…….”
“큰 아들일세. 카미나가라고 하지.”
내가 두 사람을 서로 소개하자, 카미나가가 먼저 고개를 숙이며 인사했다. 그리고 누르하치도 기분 좋게 받았다.
“오오, 장래가 기대되는 청년이군요. 역시 장남을 후계자로 세우신 겁니까?”
내부 사람이라면 몰라도, 이제 누르하치도 어엿한 주션의 지배자였다.
그런 사람에게 이쪽의 사정을 공공연히 떠들 수는 없었기에, 나는 적당히 넘어갔다. 그런데 칸의 반응은 예사롭지 않았다.
“조선에서도 세자가 온다고 합니다. 아무래도 이번 회합은 후계자들의 모임이 되겠군요.”
“그런가.”
누르하치가 이쪽의 사정을 알고 말했을 리는 없을 터였다. 그냥 시운이 맞았을 터였다.
그리고 큰아들 쪽을 슬쩍 살펴도, 그저 무심한 표정만이 드러나 있을 뿐이었다.
“어느 쪽이든 괜찮겠지.”
내 자리를 이으려면 내치도 중요하지만 그 이상으로 외부와의 관계도 챙겨야 하니까 말이다.
그걸 노리고 따라오겠다는 거였다면, 역시 생각을 달리 해볼 수 있었다.
이번 회합에서는 딱히 중요한 안건이 나오지는 않을 터였다.
그보다는 정기적으로 자리를 마련하고, 삼국의 결속이 느슨해지지 않도록 친목을 도모하는 목적이 강했다.
조선에서는 보통 하성군을 정사로 파견해왔지만, 이번에는 그가 부사였다. 아까 누르하치가 말한 대로, 세자가 정사인 모양이었다.
“반갑습니다, 공방.”
“조선의 세자시군요. 예전에 뵌 듯한데, 벌써 이렇게 크셨습니다.”
“이제는 국무를 보셔도 좋을 연치가 되셔서, 전하를 대신해 오신 것입니다.”
옆에 있던 하성군이 설명을 보탰다. 그러고 보니 지금의 조선 국왕은 꽤 늙었고, 세자도 늦둥이였던가.
새삼 내가 자식들을 너무 신경 쓰지 않고 있었다는 것을 깨달았다.
“흐음…….”
“아니, 형님. 무슨 고민을 그리 골똘히 하십니까?”
“아닐세. 그보다도 명나라를 공략하는 일은 어떻게 되고 있나?”
“늘 똑같지요. 그래도 장성의 경계가 나날이 약화되는 것을 보면, 언젠가는 넘을 수 있다는 희망이 생깁니다. 형님께서 명나라 내부에 공작을 펼쳐주신 덕이지요.”
누르하치는 시종일관 저자세를 유지했다.
“그리고 전에 말씀해주셨던 것 말입니다만…….”
“어떤 것을 말하는 것인가?”
“우리 주션의 정체성 말입니다.”
“아, 그 이야기로군.”
그냥 흘려들은 줄 알았는데, 그래도 계속 염두에 두고 있었던 모양이었다.
“아들들 중 하나는 주션에 남겨서 독립시켜놓을까 합니다.”
“그게 자네 뜻이라면야.”
누르하치도 나름대로 후계에 대한 결정을 끝내놓은 듯했다.
그와 대화를 나누면서도 짬짬이 카미나가 쪽을 보니, 역시 자연스럽게 타국의 인사들과 녹아들어 있었다.
“조카도 믿음직하더군요. 앞으로도 우리 주션과 형님 가문의 우호는 마음을 놓아도 되겠습니다그려.”
“그렇다니 다행이군.”
누르하치의 말을 들을수록, 저울추는 다시 평행으로 맞춰지고 있었다.
과연 둘째 녀석은 스모토에서 어떻게 하고 있을까. 내 빈자리를 충실하게 메워놓았다면 나는 후계를 누구로 정해야 할까.
내가 고민을 하거나 말거나 시간은 금방 흘렀다. 솔빈에서의 일정도 끝났고, 우리 일행은 다시 스모토로 돌아가는 배에 올랐다.
“네가 생각보다도 타국의 인사들에게 좋은 인상을 심어준 모양이더구나.”
“과찬이십니다, 아버님.”
“혹시 나를 따라오려 한 것이 그걸 위함이었더냐?”
내가 슬쩍 찔러보자, 카미나가는 입꼬리를 씩 올렸다.
“역시 아버님의 눈은 속일 수가 없군요.”
“음?”
“아버님의 빈틈을 채우는 것도 중요한 일이지만, 가장 중요한 것은 타국과의 관계라고 생각했습니다.”
“허어…….”
나는 카미나가에 대한 생각을 고쳐야 했다. 단순히 무사의 기질이 강하다고만 생각했는데, 의외로 속이 깊은 아들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