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16화 천하경영(4)
“이게 무슨 문서인가?”
내 질문을 받은 시정봉행, 토오루는 고개를 조아리며 말했다.
“쟁송입니다만…….”
“그거야 자네 선에서 해결하면 될 일이 아닌가?”
이제 스모토는 포화 상태라, 사카이 도성 인근까지 그 범위가 넓어지고 있었다.
그 수많은 사람들이 쏟아내는 사건사고도 그에 비례해서 늘어났다.
소매치기에 이르기부터 상회 하나를 뒤엎을 횡령까지. 술에 취해서 벌이는 싸움부터 같은 지역 출신이랍시고 뭉쳐서는 날뛰는 조폭짓까지.
각각의 문제가 나라를 뒤집거나 무너뜨릴 만한 대사건은 아니었지만, 모두 합치면 족히 하늘을 뒤덮을 수 있지 않을까 싶을 정도였다.
그 모든 것들을 내가 직접 확인할 수는 없었기에, 시정봉행 이하의 관료진 선에서 해결되도록 체계를 짜놓았다.
그러나 토오루는 이 쟁송을 내가 맡아야 한다고 가져온 것이다.
“대체 누가 무슨 일로 다투고 있기에?”
내가 질문을 던지자, 시정봉행은 즉시 전말을 설명하기 시작했다.
“일전에 나카사키에 공단을 세우지 않으셨습니까.”
“그랬지. 예상보다도 훨씬 성공적인 것으로 알고 있는데.”
스즈키 시게히데의 주도 하에 만들어진 증기기관을 도입한 나카사키 공단. 아소 산의 철과 히젠의 석탄을 활용하기 위해 추진한 사업이었다.
아직은 대부분이 노동집약적인 산업구조였기에, 거기에 투자하지 않으려는 상인들을 구슬리느라 꽤 고생했던 기억이 났다. 거기는 깡촌으로 통했으니까 말이다.
“무슨 문제라도 생겼나?”
“공단에 생긴 문제는 아니고, 거기에 투자했던 상회들이 올린 진정서입니다.”
“거기야말로 새로운 돈줄이 되었을 것인데 무슨…….”
나는 그렇게 말하며 토오루가 올린 문서를 확인했다. 그리고 웃을 수밖에 없었다.
“하, 제정신으로 하는 소리들인가?”
“자기들 딴에는 억울해하는 모양입니다만, 일단은 쿠보께 직소를 원하기에.”
나는 문서함에서 나카사키 공단에 관한 보고서를 꺼냈다. 거기에는 누가 직접 투자하고 누가 상회의 일부를 분리해서 파견했는지 따위가 적혀 있었다.
그리고 과연 전자에 속하는 사람들은 진정서의 명단에 존재하지 않았다.
“분사를 취소하고 다시 자기네 자본금으로 넣어달라니, 이 무슨 미친 소리인가.”
나는 그들에게 투자만 제안했을 뿐, 어떠한 강요도 하지 않았다.
물론 돈만 내겠다는 것은 나도 받아들일 수 없었기에, 반드시 사업체를 세워야 한다는 조건이었지만.
재차 말하지만 거부해도 상관없는 제안에 불과했다.
그러나 상인들은 다르게 생각했는지, 일단 수락을 해놓고 온갖 미사여구로 조건을 달았다.
- 그럼 공장은 좀 싸게 불하해주시지요.
이런 제안은 애교로 봐도 될 정도였다.
- 이것저것 벌여놓은 사업이 많은지라……. 나카사키에 세워질 사업체는 저희 상회와 분리를 해두고 싶습니다.
이런 요청이 가장 많았다.
어차피 적자만 볼 가능성이 높으니, 투자금은 내 비위를 맞추기 위한 뇌물 비스무리한 걸로 치겠다는 속셈이 엿보였다.
물론 나는 두고 보자고 고개를 끄덕여주었지만 말이다.
그리고 실제로 닌자들을 통해서 지켜본 바, 일족의 망나니 아들을 위한 명함 겸 연금 취급이면 성실한 축에 들 지경이었다.
적당히 양자를 보내거나, 마음에 들지 않는 행수를 보내놓고 독립시키는 경우가 일반적이었던 것이다.
“이따위로 할 거면 처음부터 거절이나 할 것이지.”
“그것도 말처럼 쉬운 결정은 아니었을 겁니다.”
“아니, 왜? 내가 강요라도 했나?”
“쿠보는 단순히 사카이 쿠보라는 직함으로 설명이 불가능하시지 않습니까. 당장의 지위를 생각해보시지요.”
시정봉행의 말이 틀리진 않았기 때문에, 나는 그냥 입을 닫았다. 전임자하곤 달리 꽤 강직한 친구라서 믿음직스러웠지만, 이런 부분이 가끔 아플 때가 있었다.
“어쨌든, 답은 내리도록 하지. 불가하다고 전하게. 분리시켜 달래서 원하는 대로 해줬더니, 이제 와서 무슨 변덕이란 말인가.”
“그리 전하도록 하겠습니다, 쿠보. 아, 공단의 동력원에 관해서 묻는 사람들도 있었는데, 어떻게 할까요?”
시정봉행도 질문을 던지며 자신도 궁금하다는 기색을 감추지 않았다. 그만큼 증기기관이라는 물건은 특별할 터였다.
그동안 공장에서는 인력이나 축력을 주로 이용했다.
가끔 수력을 도입하려고 시도하는 경우도 있었지만, 안타깝게도 일본의 하상계수도 조선 못지않게 차이가 커서 불가능에 가까웠다.
아마 비와호에 댐이라도 지을 수 있다면 또 모를까. 본격적으로 수력을 활용할 만한 입지도 흔치는 않았다.
“공개할 수 없는 영역의 물건이라고 전해두게.”
“특허로도 보호하기 어려운 겁니까?”
“당연하지.”
나는 일언지하에 호기심을 끊어버렸다.
“아깝군요. 상용화를 시킬 수 있다면, 좀더 다양하게 활용할 수 있을 거라고 생각했습니다만…….”
“원리 자체는 특허 등록을 해두지 않았나. 다만 그걸 버틸 만한 소재가 문제겠지.”
투입되는 물과 석탄, 그리고 모락모락 솟아나는 김.
이 세 가지만 보면 누구라도 원리 자체는 짐작이 가능할 터였다. 소모하는 물자의 흐름 자체는 누구라도 접근할 수 있는 정보기도 하고.
게다가 증기기관 자체도 최초 등장은 고대 이집트인지 그리스인지는 헷갈리지만, 어쨌든 내가 최초는 아니었다.
다만 얼마나 효율적으로 굴릴 수 있느냐는 별개의 이야기겠지만 말이다.
시대를 앞선 천재라는 레오나르도 다빈치.
그도 결국 자신이 발명한 물건들을 상용화까지는 못하지 않았던가.
원리 자체는 얼마든지 가능하다고 해도, 그걸 뒷받침 할 수 있는 소재가 없으면 망상에 불과했다.
그리고 증기기관 역시도 마찬가지. 꾸준히 발생하는 동력을 견딜 수 있는 소재를 만들 수 있는 곳은 오직 하나, 시마바라의 비밀 공방 밖에 없었다.
“공개된 것을 토대로 재현은 할 수 있겠지.”
“대체 어디에서 뭘 만들어내신 겁니까?”
“나중에 알게 될 걸세.”
실제로 증기기관을 모방하려고 애쓰는 기술자들도 많이 나왔다고 했다.
스모토의 다른 상회들은 물론이고, 필리핀의 총독부에서도 특허 내용을 토대로 모작을 시도했다던가.
기관 내부의 압력을 견딜 수 있는 대형 솥을 만드는 것은 어렵지 않겠지만, 그 동력을 뒷받침할 부품은 결코 만들 수 없을 터였다.
“지금은 알려고 하지 말게.”
“어쩔 수 없지요. 그럼 증기기관은 당분간 나카사키 안에서만 쓰게 하실 생각이십니까?”
나는 말없이 고개만 끄덕였다.
* * *
무이사시쿠르, 아이누의 언어로는 ‘글 쓰는 남자’. 부족의 다른 청년들과는 달리, 글과 숫자를 좋아해서 붙은 이름이었다.
족장의 아들이었던 그는 지금 부족의 대표로서 쿠보와 만나기 위해 스모토로 건너왔다.
“여기가 스모토라는 곳이오?”
그리고 스모토의 풍경을 하나도 빠짐없이 눈에 담기 위해 연신 고개를 돌렸다. 그 모습을 본 안내인이 이해한다는 듯이 입을 열었다.
“그렇습니다. 에미시, 아니 아이누 사람이 손님으로 이곳에 온 경우는 아마 무이사시쿠르 공이 처음이겠지요.”
처음에는 그도 아이누 사람의 기개를 보여주겠노라 다짐했지만, 이렇게 많은 사람과 건물은 그도 처음 보는 것이었다.
“그럼 전에도 아이누 인이 오긴 왔다는 이야기구려?”
“뭐, 그렇지요. 썩 좋은 일은 아니었지만.”
그 말을 들은 무이사시쿠르는 안내인이 무슨 말을 하는지 알아차렸다. 동족이라고 부르기도 아까운 자들, 히데요시라는 망종을 따랐던 사람을 이르는 말일 터였다.
“그자들은 우리 부족과 무관하니 상관없소.”
“흠, 알겠습니다. 이제부터는 다른 사람이 무이사시쿠르 공을 안내할 겁니다. 오늘은 푹 쉬시면서 도시 구경을 하시지요. 쿠보께서는 내일 접견하시겠다고 하셨습니다.”
“알겠소.”
안내인의 말을 들은 아이누 청년은 자신이 여기에 온 이유를 되새겼다.
사실은 그렇게 막중한 임무는 아니었다. 부족과 쿠보 사이에 맺어진 협정을 재확인하고, 그 성세가 얼마나 대단한지 그리고 믿을 만한지 직접 확인하고 오는 것 정도였다.
저들은 삿포로에서 나는 사금을 가져가고, 막대한 식량을 부족에 공급했다.
그러나 언제 태도가 바뀔지는 알 수 없었기에, 족장의 아들인 그가 직접 눈으로 보고 가려 했던 것이다.
잠시 후, 새 안내인이 그의 앞에 나타났다.
“안녕하십니까, 무이사시…….”
“무이사시쿠르요.”
족장의 아들은 새 안내인의 실수를 탓하지 않았다. 어쨌든 그의 이름은 남쪽 사람들이 발음하기에는 곤란한 듯했으니까.
오히려 뜻을 글자에 함축시킨 그들의 이름이 아이누 사람들에게는 더 까다로웠지만, 어쨌든 여기는 그들의 영역이었다.
“아, 죄송합니다, 무이사시쿠르 공.”
“괜찮소. 그보다도 여기에서 가장 가까운 장터를 보고 싶은데…….”
“음, 그럼 곧장 혼마치로 가시지요. 마침 숙소도 그 근처의 객사니, 편하게 구경하실 수 있을 겁니다.”
그의 부족을 찾아온 남쪽의 사람들은 자신들의 풍요로움을 자랑하곤 했다.
자랑처럼 물자가 풍부한 자들이라면, 분명 장터에도 많은 식량이 거래되고 있을 터였다.
그리고 혼마치에 들어선 아이누 청년은 자신의 입을 다물지 못했다.
“여기는 채소를 주로 파는 구역이지요. 조금만 더 가시면 미곡 거래소도 나올 거고, 왼쪽으로 꺾으시면 수산물 시장이고, 오른쪽은 육류를 취급하지요.”
“도대체…….”
바닥에 떨어져서 나뒹구는 채소 찌꺼기의 양만 해도 그의 부족 전부를 먹여 살릴 수 있지 않을까 싶을 정도로 많았다.
한참을 놀랐던 무이사시쿠르는 애써 마음을 가라앉혔다.
남쪽 사람들은 초식동물이라던 말도 있었으니, 채소만 많이 먹는 것일지도 모를 일이었다.
“돌아가는 길에 물건을 좀 사갈 수 있겠소?”
“혹시 드시고 싶은 게 있으시다면, 객사에 연락을 해놓겠습니다.”
“흠, 알겠소.”
부족으로 가져가고 싶다는 이야기였지만, 안내인은 다르게 알아듣고 말았다.
하지만 여기에서 허겁지겁 긁어모으는 모습이나 보여준다면, 오히려 아이누를 업신여길지도 모를 터였다. 자신의 실수를 자각한 족장의 아들은 애써 허세를 유지했다.
“다른 곳도 구경을 좀 해봅시다. 육류 시장을 좀 보고 싶구려.”
요청을 받은 안내인은 손님을 육류 구역으로 이끌었다.
그래도 아이누만큼 고기를 많이 먹지는 않겠지. 부족에는 유능한 사냥꾼들도 많고, 가축도 꽤 키우니까……. 라고 그가 생각했던 것 역시 오판에 불과했다.
아까 보았던 채소만큼이나 많은 고기들이 사방에 널려 있었다.
해산물도, 미곡도 마찬가지였다. 혼마치의 모든 구역을 둘러본 그는 지친 목소리로 안내인에게 질문했다.
“여, 여기가 가장 번화한 곳이오?”
“일단 아와지에서는 그렇지요.”
“아와지라면……?”
“이 섬 말입니다. 바다 맞은편의 도성에서는 이보다 큰 시장도 많지요.”
무이사시쿠르는 배를 타고 오면서, 그가 있는 섬이 그다지 크지 않다는 것 정도는 알고 있었다.
이렇게 작은 땅에 사람들이 바글바글하다는 것도 놀라운데, 이보다 큰 시장도 존재한다니. 도저히 믿기지 않는 이야기였지만, 이미 본 것을 부정하는 것은 불가능했다.
‘절대로 저들을 불쾌하게 해서는 안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