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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고니시라니-214화 (214/225)

214화 천하경영(2)

결과에 놀란 무네요시는 자신의 제자에게서 칼을 뺏어든 다음, 자신이 직접 휘두르려 했다.

주변에서 그의 무례를 지적하려 했지만, 나는 눈짓으로 제지하고 가만히 지켜보았다.

콰직.

오우야. 역시 검호는 검호라는 걸까. 혹은 피로누적일지도 모르지만, 어쨌든 철판이 완전히 찌그러졌다. 여전히 칼은 멀쩡했지만.

무네요시는 그렇게 자신의 손으로 결과를 확인하고 나서야 겨우 정신을 차린 듯했다. 그는 곧바로 칼을 내려놓고, 내 앞에 무릎을 꿇었다.

“너무나 놀란 나머지 결례를 저지르고 말았습니다, 쿠보.”

“아닐세. 내가 자네 입장이라도 그랬겠지. 이해하네. 그래, 소감은 어떠한가?”

내 질문을 받은 무사는 여전히 믿기지 않는 듯 고개를 젓다가 겨우 답했다.

“대체 저건 무엇으로 만든 물건입니까?”

“그냥 철일세. 재료보다는 기술의 문제겠지.”

“허어, 놀랍기 짝이 없는 물건입니다. 그런데…….”

무네요시는 연신 감탄을 내뱉다가, 문득 실망한 기색을 내보였다.

“이제 좋은 검은 그다지 쓸모가 없지는 않게 되었잖습니까. 이런 것들로 무장을 한들, 무명소졸의 철포를 상대하지 못할 텐데요.”

“옳은 말일세. 단순히 검이나 찍어낸다면 그렇게 되겠지.”

“하면……?”

“꼭 좋은 쇠로는 칼만 만들어야 하나? 좋은 소재는 그 자체로 훌륭한 도구인 법이지.”

거기까지만 말했지만, 무네요시도 자신의 영역이 아닌 부분까지 굳이 알려고 하지는 않았다.

나는 야규 도장의 스승과 제자에게 약속했던 이상의 상금을 주어 돌려보냈다. 그리고 다시 시게히데와 자리를 옮겼다. 닌자의 보고를 받을 때 쓰는 암실로.

“시게히데, 이건 세상에 공개할 수는 없을 것 같다.”

“역시 그렇겠지.”

실무를 맡았던 장본인도 고개를 끄덕였다.

어지간한 기술이라면 특허를 걸고 수수료나 따먹으면 그만이겠지만, 이건 시대를 뛰어넘는 가치가 있었다.

“시마바라는 완전히 금역으로 봉하고, 기술자들도 거기에서 나올 수 없다. 맞지?”

“대신 봉록과 연금을 후하게 내리고, 그 자녀들도 원하는 직업을 얻을 수 있도록 조치를 취할 거야.”

“무사나 관리를 지망해도?”

“상관없어. 관리를 지망하면 오히려 이쪽에 강하게 종속되는 셈이니까 더 낫지. 그리고 무사는 뭐, 당사자에게 그다지 좋은 선택은 아닐 걸.”

내가 생각해 두었던 대책을 듣자, 시게히데는 혀를 내둘렀다.

“하긴, 후한 듯하면서도 빈틈없는 고용주시군.”

“너도 알겠지만, 이 기술은 그만큼 중요해.”

앞으로는 작고 복잡한 부품이 많이 필요해질 텐데, 쇠를 두들겨가면서 만들 수는 없는 노릇이니 말이다.

결국은 주조로 뽑아내는 게 최선이고, 그러려면 순수한 철을 완전히 녹여내는 기술이 선행되어야 했다.

“마침 시마바라의 운젠 산은 가끔 분출하는 화산이니, 안전을 이유로 금역을 설정해도 의심을 받진 않겠지.”

“설마 그것까지 염두에 뒀던 거야?”

“그렇다고 해 둘까.”

하카타를 비롯한 큐슈의 북쪽은 모리 가문이 차지하고, 남쪽은 미요시 가문이 가져갔다. 그러나 류조지를 정벌한 뒤, 서부는 내가 여전히 쥐고 있었다.

궁벽한 끝자락의 땅 한 토막에 관심을 보이는 사람은 그다지 많지 않았다. 하지만 대강의 사정을 알고 있는 나는 여기야말로 미래가 있다고 생각했다.

“어쩐지……. 아소 산 서쪽을 끝까지 다른 두 가문에게 넘기지 않은 이유가 있었어?”

옛 류조지 가문의 영토는 내가 직접 관리하고 있었고, 그 외의 군소 무가들은 나니와 조약의 틀로 묶어 놓은 상태였다.

나중에 일본의 질서가 다이묘 연석 회의로 개편되고 동국에 코가 쿠보가 다시 세워진 이후에도, 그들은 여전히 나니와 조약의 그늘 아래 머무르고 있었다.

“근데 나중에 그 지역의 무사들이 시비를 걸지 않겠어?”

“채굴권은 이미 받아 놨어. 다른 권리들도 마찬가지고. 그들도 지주 겸 지역 유지 노릇에 만족하기로 했고.”

“철저하시군.”

기술자들의 처우에 관한 이야기가 끝난 뒤, 나는 서랍에서 종이 한 장을 꺼냈다.

“그건 또 뭐야?”

“이제 시마바라에서 뽑아내는 철로 해야 할 것들. 간단하게 원리만 표시해 둔 거니까, 실물 제작은 가서 기술자들과 의논해 보도록 해.”

“할 일이 늘었군.”

시게히데가 말은 그렇게 해도, 새로운 지식의 등장은 반기는 눈치였다. 물론 전신전령으로 거부해도 사직은 시켜 주지 않을 거지만 말이다.

내가 내민 종이를 살피던 그는 곧바로 의문을 제기했다.

“근데……. 이게 말이 돼?”

거기 그려져 있던 것은 증기기관의 원리였다. 물론 구체적인 내용이야 시게히데와 시마바라의 기술자들에게 맡길 생각이었기에, 문자 그대로 원리만 담겨 있었다.

이전까지의 제철기술로는 흉내밖에 못 내겠지만, 지금이라면 내구도는 충분할 터였다.

“어떤 점에서?”

“가벼운 연기 따위로 동력을 얻을 수 있다니, 믿기지가 않아서 말이야. 화약을 넣으면 또 몰라도.”

처음 보는 사람은 그렇게 생각할 수도 있긴 했다.

아니, 오히려 지금 시게히데가 말한 건, 내연 기관의 원리에 가까웠다. 철포도 결국은 탄을 밀어내는 원시적 내연기관이었으니까.

하지만 그 폭발력을 견뎌낼 수 있는 소재는 아직 만들 수 없을 터, 일단은 증기기관이 만들기는 더 편하다.

“나중에는 그럴 수 있을지도 모르지. 하지만 아직은 아니야.”

“흐음…….”

자신의 턱을 쓰다듬으며 의심스럽게 보는 시게히데에게, 나는 간단하게 원리를 설명했다.

“냄비에 물을 넣고 끓이다 보면, 뚜껑이 뒤집어질 때가 있지.”

“그건 알겠는데……. 생각해보니까 일리가 있는 것 같기도 하고?”

“실패해도 뭐라고 할 사람은 없으니까, 일단 만들어는 봐.”

“그렇게 할게. 근데 이것도 역시 특허로는 넣지 않을 셈이야?”

나는 기술자의 질문에 고개를 끄덕였다.

“한 발짝은 앞서 나가고 있어야 하니까. 조선이나 주션에 대해서도 말이지.”

*       *       *

전란이 끝나고 무사들을 모두 끌어내리면 한가로울 줄 알았는데, 오히려 업무의 양은 나날이 늘어나고 있었다.

닌자들에게 천하의 정세를 보고받고, 시마바라의 연구를 감독하고, 다이묘 연석 회의도 조율해야 했다.

그나마 학교를 세우고 관료제를 도입하지 않았다면, 온갖 시시콜콜한 일까지 전부 돌보느라 죽어났겠지.

“태평천국에 관해서 세세하게 조사했습니다만, 말씀하신 것과 관련된 징후는 없었습니다.”

그리고 엄한 놈이 튀어나오지 않을까도 걱정해야 했다.

차라리 조선이나 주션에서 건전한 정신을 지닌 환생자가 하나쯤 나왔다면 좋았을 텐데, 하필 의심스러운 대상이 짱-의 사교 집단이라서 문제였다.

왜 짱-이냐고? 중공이 좋게 평가하는 녀석들은 대체로 제정신이 아니었으니까. 그중 하나가 태평천국이었고.

“교리서와 신도들을 상대로 문답을 한 기록입니다. 판단하시는 데에 도움이 될까 하여 가져왔습니다.”

“잘했다. 그런데 교주에 관한 정보는 아직도 없나?”

내 질문을 받은 이치로는 난색을 표했다.

“그저 스스로를 키리시탄이 믿는 신의 둘째 아들이요, 선지자의 동생이라고 하는 것밖에 알아오지 못했습니다. 워낙 밖으로 모습을 드러내지 않는 터라…….”

“그건 꽤 수상하군. 무릇 교주라 하면 신도들에게 모습을 드러내, 그들의 마음을 장악하려 해야 정상이 아닌가?”

“좀 더 알아보겠습니다.”

그러나 내가 여기 앉아서 이치로를 독촉해 본들, 새로운 정보가 더 나올 리는 없었다. 나는 직속 닌자에게 다시 질문을 던지는 대신, 그가 가져온 자료를 펼쳤다.

아직까지 명나라를 전복하려는 징후는 없었고, 유럽 출신 해적들을 배격하는 내용이 전부였다. 그래도 한족은 한족이라는 것일까.

그렇다고는 해도 내가 아는 태평천국은 중앙정부에 반기를 든 반란군으로 끝을 맺었다.

설령 한족과 오랑캐의 차이를 구분한다고 해도, 교주쯤 되고 보면 자신의 지위에 취하지 않을 수 없는 법.

교주가 스스로를 신의 아들이라고 선언한 것을 보면, 역시 태평천국의 난은 시간문제일 터였다.

거기까지 생각이 닿은 나는 이치로에게 다른 내용을 질문했다.

“명나라의 내부 사정은 어떻게 되고 있지?”

“다섯 번째 단조가 위충현을…….”

“그런 것들 말고, 백성들의 생활상 말이야.”

“그게, 조정에 대한 불만은 크게 나오지 않고 있는 상태로 보입니다.”

자고로 백성이란 위에서 쥐어짜면 쥐어짤수록 불만을 품게 마련이다.

물론 정신조차 못 차릴 정도로 들볶아 대면 포기하기도 하겠지만, 거대한 국가는 그렇게 하기도 어려울 터였다.

“자세한 내용은 알지 못하는 것 같군.”

“죄송합니다, 주인님.”

“아니다. 내가 따로 명을 내린 적도 없으니 어쩔 수 없겠지. 지금부터 조사하면 된다.”

“옛.”

그렇지만 추측해 볼 만한 첩보가 없는 건 또 아니지.

“운하의 복구는 어떻게 되어가고 있다던가?”

“그럭저럭 해 나가는 모양이긴 합니다만, 진척이 빠르진 않습니다. 게다가 방해공작도 펼치는 중이니, 사실상 정체되었다고 봐야겠지요.”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결국 저 거대한 나라를 긴밀하게 연결시키는 수단이 바로 남북을 이어주는 대운하가 아니던가.

결국 조세를 운송하는 비용을 감당하지 못하게 되면, 불만이 터질 수밖에 없었다. 그런데 아직은 그 시기가 아닌 듯했다.

“일단 태평천국은 계속 지켜보되, 안에 심어둔 자들을 통해서 불만을 부추기도록 해라. 그리고 백련교도 마찬가지. 소지가 잘 해주고 있긴 하지만, 여론을 끌어올리면 일이 더 빨라질 것이다.”

“예, 주인님.”

만약 태평천국의 교주가 정말로 환생자라면, 아직 크게 바뀐 것은 알지 못할 터였다. 위충현은 나라를 좀먹는 권신이고, 북방에서는 그들이 오랑캐 취급하는 유목민족이 날뛰고 있으니 말이다.

그때 밖에서 다른 닌자가 들어와서 부복했다.

“무슨 일이냐?”

“새로운 소식이 들어왔습니다마는…….”

그는 자신의 직속 상관과 나를 돌아보며 망설였다. 일단은 닌자들의 우두머리가 먼저 받아서 취합을 해야 한다는 것이겠지.

“무엇에 관한 것이기에?”

“태평천국에 관한 겁니다.”

그 말을 들은 나는 자료에서 눈을 돌려, 새로 들어온 닌자를 보았다. 이치로도 내 앞으로 그의 등을 밀었다.

“그렇잖아도 주인님께서 궁금해 하시던 일이다. 직접 말씀드리도록.”

닌자는 복면을 벗고 부복한 뒤, 자신이 가져온 정보를 꺼냈다.

“교주의 조카라는 자와 나눈 문답을 적은 것이라 합니다.”

“교주가 누구인지도 적혀 있나?”

“그렇습니다. 하오나…….”

내가 눈으로 독촉하자, 닌자는 급히 입을 열었다.

“이미 죽은 자라고 하는데,. 자세한 것은 문답의 내용으로 적어서 보내왔습니다. 직접 보시는 편이 나으리라 생각합니다.”

나는 급히 그가 가져온 자료를 펼쳤다. 일단 교주의 이름은 내가 기억하는 것과 달랐고, 그 일족이 홍씨도 아니었다.

유생 출신이라는 것은 원래의 역사와 일치했지만, 그 외에는 모든 것이 전부 달랐다. 딱히 전족을 금하지도 않았고, 교리 상에 평등이라고 할 만한 요소도 없었다.

게다가 가장 큰 사교 집단이라고 해서 경계했더니, 그 숫자는 천여 명도 되지 않았다.

무엇보다도 교주는 병으로 급사한 지 오래고, 그 측근들이 쉬쉬하며 살아있는 것으로 위장 중이라고 했다.

“혹시 잘못 알아온 것은 아닌가?”

내 질문에 이치로가 겉봉을 살피며 대신 답했다.

“그건 아닐 겁니다. 이걸 보낸 자는 일곱 번째 단조지요. 단조의 이름을 받은 닌자는 일을 허투루 처리하지 않습니다.”

“확실한가?”

“예.”

그리고 이어지는 내용을 보면 과연 그럴싸한 이야기였다.

교주의 조카라는 자는 자신의 부친이 교주를 도와 교리를 정립했으며, 그 과정에서 가톨릭의 경전과 도교를 습합한 것이라고 증언하고 있었다.

그리고 보고서의 마지막 장에는 증언자를 어떻게 처리했는지까지 상세하게 기록해놓았다.

“일처리 하나는 확실하군.”

증언자 하나만 죽이고 끝낼 수는 없었기에, 저택 우물에 독을 풀어서 몰살시켰다고 했다. 폐쇄적인 객가 공동체의 특성을 적극 활용한 모양새였다.

그리고 태평천국을 어떻게 활용할지 혹은 폐쇄시킬지를 묻는 것으로, 이 보고서는 끝나고 있었다.

“일곱 번째의 수하들 중 하나를 교주로 세워놓고, 이쪽의 지령을 기다리라고 해라.”

“알겠습니다, 주인님.”

이순신은 한때 동국의 지방관 노릇을 하면서 ‘일본인의 감성을 이해하기 어렵다’고 했던가.

지금 나도 비슷한 생각을 할 수밖에 없었다.

태평천국이라는 이름을 그대로 구현해낸 짱-의 감성은 도대체 알 수가 없었지만, 어쨌든 잘 써먹으면 될 터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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