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13화 천하경영(1)
“다섯 번째가 오향을 더 많이 보내달라고 요청해왔습니다.”
“혹시 그 스스로가 쓰고 있을 가능성은?”
“어떠한 중독의 징후도 없었다고 합니다.”
위충현에게 붙여 놓았던 닌자는 자신의 일을 충실하게 해내고 있는 듯했다.
“30근이라……. 조금 많기는 해도 예상을 벗어나진 않았군. 다음 편에 좀 더 넉넉하게 보내도록.”
“예, 주인님. 그런데…….”
“뭐지?”
“오향이 참독 소리를 들을 만큼 그렇게 무서운 것이었습니까?“
이치로도 한때는 약종상의 사환 노릇을 했으니, 약재에 대해서는 대강 알고 있을 터였다. 아니, 오히려 닌자라서 온갖 종류의 독에는 능통했다.
그러니 내가 사치품이자 귀한 약재로 대우받는 오향을 참독이라고 했던 게 이상했던 모양이다.
“혹시 다섯 번째 단조가 의문을 제기하던가?”
“그렇진 않습니다. 오히려 그는 주인님의 모략에 놀란 눈치였습니다만, 저는 아직도 모르겠습니다.”
파견 나간 닌자는 바로 옆에서 표적이 실시간으로 망가지는 것을 목격했을 터, 그러나 이치로는 아직 그럴 기회가 없었다. 없는 게 더 좋겠지만.
어쨌든 합당한 의문이었기에, 나도 고개를 끄덕였다.
“사실 직접 경험하지 않으면 알 수 없는 일이지. 그래서 나 역시 오향의 사용에 관해서는 철저히 단속하는 편이고.”
내 답을 들은 닌자는 고개를 수그렸다. 그러나 여전히 의문은 해결되지 않은 듯한 눈치 같았다.
“혹시 망가지는 걸 보고 싶은 상대가 있다면, 한번 먹여 보도록. 아, 미카와에 들어갔던 자들 중 몇몇의 낌새가 이상하다고 했던가?”
“예, 쿠보. 교차검증한 결과, 일부가 조금씩 실제와 어긋난 정보를 보내고 있었습니다.”
꽤나 골치 아픈 일이로군. 나는 무심코 턱을 쓰다듬었다.
하지만 오향이라 부르는 귀물(貴物)이 사실은 귀물(鬼物)이라는 걸 보여 줄 기회이기도 했다.
아직도 도쿠가와 가문은 야심을 완전히 버리지 않았다. 공공연하게 이쪽을 적대시하지는 않았지만, 어떻게든 눈과 귀를 가리려고 들었다.
오히려 적극적으로 받아들임으로써 신뢰를 쌓으려고 하는 미요시 가문과는 대조적인 태도였다.
“그럼 이 기회에 너도 그 효능을 좀 봐 놓는 게 좋겠지. 배신의 정황이 뚜렷한 자들에게 포상할 명분을 만들어서, 오향을 먹이도록.”
“예? 옛, 주인님.”
“그러나 다른 사람에게 퍼뜨리지는 못하도록, 지급량에 유의해야 할 것이다.”
내 지시를 받은 이치로는 재차 부복했다. 백문이 불여일견이라 했으니, 직접 보면 참독이 얼마나 사람을 망가뜨리는지 알 수 있겠지.
“그러면 도쿠가와 가문에도 오향을 흘려 넣습니까?”
“아니. 그자는 자신의 욕망에 충실한 것뿐이다. 참독을 먹어야 할 만큼 큰 죄를 지은 건 아니지. 그냥 감시만 하면 된다.”
“예, 주인님.”
도쿠가와 가문은, 그리고 아직도 숨이 붙어 있는 너구리는 꽤 거물이라, 섣불리 손을 대기는 어려웠다.
쿠보가 순순히 고개를 숙인 자에게 잔인하게 굴었더라. 이런 인식이 퍼져버리면, 그것도 꽤 골치 아픈 일이니까.
“그럼 이어서 보고하도록.”
“다음은 장성 일대에 관한 내용입니다.”
몽골의 체첸 칸, 그러니까 보르지긴 부얀은 누르하치의 선봉장 노릇을 하며, 중원을 공략하고 있었다. 얼마 전에는 영하성을 빼앗아 왔지만, 최근에 도로 빼앗겨 버렸다고 했다.
“병력 손실은 없었고, 약간의 물자만 허비한 모양입니다.”
“그거면 됐지.”
이쪽이 누르하치를 통해서 유목민들에게 물자를 풀고 있긴 해도, 여전히 명나라의 덩치는 넘보기 어려운 수준이었다.
물론 지금처럼 위충현을 통해서 중앙 정부를 식물 상태로 만들어 놓고 있으면 이야기는 달라지겠지만, 당장은 도모하기 어려운 상대였다.
나는 이치로가 지도에 옮겨 놓은 표식을 보다가, 문득 영원성을 떠올렸다.
아직 원숭환은 잘 쳐 봐야 하급 관료에 불과할 터, 그러나 생각이 있는 장수라면 당연히 요동을 겨냥할 수밖에 없었다.
“혹시 산해관이나 그 일대의 정보는 들어온 게 없나?”
“아, 척계광이 죽었다고 합니다. 그 외에는 달리 이렇다 할 만한 움직임은 없다고 했습니다.”
“그렇군. 혹시 모르니 장성 밖에 새로운 요새를 건설하는지 수시로 확인하라고 전하도록.”
아무래도 누르하치는 중원까지 차지하려는 듯했다.
그거야 본인의 야심이니, 엉뚱하게 표출하는 것보다는 낫긴 한데……. 뭐, 아직은 우리 편이라는 게 다행이지. 여차하면 조선을 움직일 수도 있는 거고.
“이제 다음 내용으로 넘어가겠습니다.
나는 고개를 끄덕여서 이치로의 보고를 허락했다.
소에키의 제자, 소지는 순조롭게 백련교와 접촉한 모양새였다. 그들에 관한 이야기를 들을수록, 그들도 꽤 깊이 숨어 있었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소지 선사께서는 광주에서 구강의 여산이라는 곳으로 옮겨 가셨습니다. 거기가 백련교의 본산이라고 했습니다.”
“그런가. 생각보다는 중심지에 있었군.”
그래도 마교의 모티브가 된 집단인데, 저 멀리 곤륜 근처의 천산이나 월남과 인접한 십만 대산에 있지 않을까 싶었다.
하지만 의외로 중원 가까운 곳에서 근근이 맥을 이었던 듯했다.
“소에키 선사의 가르침이 의외로 그들에게 잘 통하고 있는 것으로 보였습니다.”
“그럴지도 모르지.”
“그리고…….”
나는 백련교에 주목했지만, 그 외에도 중원 여기저기에서 수많은 사교가 난립하고 있었다.
가톨릭이 전래되면서 기존의 전통 신앙과 습합이 이루어지고 있다고 했던가. 예수회의 선교 방식은 꽤 유연한 편이었으니, 그래도 이상하진 않았다.
그러던 차에 해적들이 종교 시설만큼은 절대로 건드리지 않았던 것이 꽤 크게 작용했더라는 이야기였다.
“왕삼이라는 자가 문향교(聞香敎)라는 이름으로 사람들을 받아들여 무리를 형성하고 있다고 합니다.”
이치로가 조사해온 교리에 의하면, 특별히 좋은 향기를 누리게 해준다는 명목으로 돈을 받고 신도들을 포섭한다고 했다.
입교하려면 은자를 내야하고, 그 이후로도 다달이 돈을 내야 하는 조건이라던가. 그 내용이 삼국지에 등장하는 오두미도와 크게 다르지 않았다. 그런데, 향기라고?
“이름만 들어보면, 오향이나 그 비슷한 물건을 써서 사람들을 홀리는 것 같은데…….”
“닌자 하나를 붙여 두었으니, 조만간 구체적인 내용을 받으실 수 있을 겁니다.”
“알았다. 그 외에 특별한 사항은?”
“광주 일대에도 온갖 사교들이 우후죽순으로 일어나고 있는데, 키리시탄과 습합된 형태가 자주 보인다고 합니다.”
남만인들을 이용해서 그들과 접촉해보면 어떨지. 이런 분석이 섞인 보고였다.
“되기만 한다면 나름 쓸모가 있긴 하겠는데…….”
“진행할까요?”
“아니, 세력이 더 커지기 전에는 지켜보기만 하도록.”
단순히 교리가 비슷하다는 이유로 한 배를 탈 수 있다고 생각한다면, 그건 다소 순진한 판단일 터였다.
아직 일어나지 않은 일이지만, 태평천국이 딱 그런 경우가 아니었던가. 당시에도 서양 세력이 그들과 접촉하려다, 크게 데이고 탄압에 가담하기도 했다.
“규모와 핵심 인사에 관한 것만 파악해두면 될 것이다.”
“예, 그럼 이어서 말씀드리겠습니다. 광동 일대가 특히 혼란스러운 상황인데…….”
폐쇄적인 씨족 집단을 중심으로, 다양한 종교가 번지고 있다고 했다. 객가(客家)라고 분류되는 자들이 가주를 중심으로, 저마다의 신앙 공동체를 형성한다던가.
가톨릭을 고스란히 받아들인 가문도 있었고, 혹은 자기네 입맛에 맞게 변용한 경우도 없지 않다는 모양이었다.
“그 중에서도 가장 교세가 큰 집단은 스스로를 태평천국이라 하는데,”
“태평 뭐?”
나는 순간 귀를 의심했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내 귀는 지극히 정상이었다.
“태평천국이라는 집단입니다. 키리시탄의 교의를 받아들여서 옥황상제를 새롭게 재정의했다고 합니다.”
“오, 맙소사.”
* * *
닌자들이 알아온 내용은 거기까지가 전부였다. 나는 그 교주가 누구인지 확실하게 파악하라고 지시한 뒤, 집무실로 향했다.
애써 태평천국에 관한 생각을 털어낸 뒤, 다음 업무를 보았다.
이번에 찾아온 사람은 스즈키 시게히데, 예전에는 용병집단의 후계자였지만 이제는 스모토의 수석 공돌이가 된 친구였다.
“이걸 좀 봐 줘.”
그가 내민 것은 아무 장식도 붙어 있지 않은 타치(太刀 태도)였지만, 시게히데는 의기양양한 얼굴을 하고 있었다.
“이게 뭐, 아. 그렇군.”
“네 말이 옳았어. 그냥 불순물만 많은 사철인 줄 알았는데, 훨씬 좋은 물건이 나왔더라구. 비젠덴의 장인들도 입을 다물지 못했지. 그 모습을 봤어야 했는데 말이야…….”
내가 기술 개발에 온전히 몰두할 수 있었으면 좋았겠지만, 다른 일들을 생각하면 그런 것들은 부차적인 것에 불과했다.
다행히도 이 사이카슈 출신은 신기술에 관심이 많았고, 덕분에 이런저런 잡다한 일을 맡길 수 있었다.
이제 화약에 관해서는 나도 지식 밑천이 다 바닥났기에, 그에게 새로운 임무를 맡겨놓은 상태였다.
“확실히 석탄이 좋긴 좋더라구. 화력이 너무 강력해서 용광로조차 버티질 못하니, 그거부터 바로 잡아야 했지.”
시게히데는 기분이 좋은지, 21세기의 한 야구 선수와 맞먹을 정도로 이야기를 풀어내기 시작했다.
실제로 그는 유럽에서 온 상인들에게 방법을 수소문하기도 했고, 그 과정에서 상당한 진전이 있었다.
“위니사(威尼斯)에서 왔다는 뱃사람에게도 물어보고…….”
시게히데가 수다스럽게 떠드는 동안, 나는 그가 가져온 칼을 뽑아 보았다. 기존의 일본도와는 달리, 하몬도 없이 밋밋한 형태의 칼날이 새하얗게 빛나고 있었다.
“아, 그거 따로 접쇠하지도 않고 그대로 주조해서 벼리기만 한 거야.”
“그래?”
나는 칼날을 위로 가게 든 뒤, 그 위로 손수건을 던져보았다. 부드러운 천은 깔끔하게 잘렸다. 과연 날 부분은 아주 예리한 것이, 다른 일본도와 크게 다르지 않은 듯했다.
시게히데는 내가 강도 대신 예리함을 시험하자, 불만스러운 표정을 지었다.
“그게 중요한 건 아니잖아?”
“성능 비교는 같은 선상에서 해야 하니까 말이지.”
“그건 그래.”
나는 그렇게 달랜 뒤, 갑옷 하나를 준비시켰다. 그리고 야규 도장에도 사람을 보내, 뛰어난 검호 한 사람을 오게 했다.
잠시 후, 무네요시가 제자 하나를 대동하고 직접 찾아왔다.
“찾으셨습니까, 쿠보.”
“음, 좋은 칼이 들어와서 시험을 해 보고자 하네.”
“제가 좀 봐도 되겠습니까?”
“그러시게.”
내 허락을 받은 무네요시는 시게히데가 가져온 칼을 뽑아들었다. 그러나 살피면 살필수록, 그의 얼굴에는 실망한 기색이 역력했다.
“이건 갓 입문한 도제도 만들지 않을 만한 물건 같습니다만…….”
일본도의 상징은 하몬이고, 그 하몬이 없다는 것은 장인이 공을 들이지 않았다는 이야기였다.
그런 점에서, 무네요시의 반응은 충분히 일리가 있었다.
그러나 나는 그대로 시험할 것을 명했다.
“일단 해보게. 사실 내가 직접 해 볼 수도 있는 일이지만, 역시 칼을 잘 다루는 사람이 해야 안전할 듯하여 부른 것일세.”
“명이시라면, 어쩔 수 없지요.”
야규 도장의 문하생은 무표정한 얼굴로, 자기 스승에게 칼을 받아들었다.
“어디에 시험하면 되겠습니까?”
“저 갑옷에 해 보게.”
“쿠보, 재고해 주십시오. 그래도 검을 배웠다는 사람에게 이러한 처사는 모욕입니다.”
무네요시의 말은 저 칼이 쉽게 부러질 거라는 전제를 깔고 있었다.
“일단 해 보게. 시게히데, 몇 번쯤 버틸 수 있겠나?”
“몇 번을 휘둘러도 부러지지 않을걸.”
“그럼 다섯 번으로 하지. 다섯 번을 휘둘러서 저 칼이 부러져 버린다면, 내가 자네와 자네 제자에게 은 한 관을 내리겠네.”
내가 상금까지 내걸자, 무네요시는 순순히 명을 받아들였다.
그의 제자는 잠시 집중한 뒤, 갑옷의 철판 부분을 내리쳤다.
깡!
“아, 아니…….”
철판은 살짝 찌그러졌고, 칼날도 살짝 상했다. 그러나 부러지지는 않았다.
힘을 다하지 않았다고 생각했는지, 무네요시는 자신의 제자를 노려보고 있었다. 야규 도장의 문하생도 어리둥절한 표정을 짓다가, 있는 힘을 다해 재차 내리쳤다.
“흐아아앗!”
깡! 깡! 깡!
쇳소리가 계속해서 울려 퍼졌지만, 결과는 다르지 않았다.
그리고 마지막 일격. 그야말로 혼신의 힘을 쏟은 것이 보이는 동작으로도, 검은 여전히 멀쩡했다.
“대체 이게 무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