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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고니시라니-211화 (211/225)

211화 합구필분(2)

천조의 땅에서는 모든 물산이 나지만, 그렇지 않은 것도 없지는 않았다. 다만 생활에 필수품은 아니었기에 크게 불편함이 없었을 뿐이었다.

그러한 것들 중 하나가 바로 오향(烏香)이라는 약재였다.

아직은 그 중독성은 알려지지 않았고, 오직 만병통치약으로 이름을 날리고 있는 귀물. 그게 세간에서 오향을 보는 인식이었다.

평소에도 부자나 권세가들만이 누릴 정도로 비쌌지만, 지금은 아예 없어서 못 구하는 물건이 되고 말았다.

고작해야 섬나라 더 멀리에서 오는 것이 전부였는데, 황제가 쇄국령을 내려 그조차도 살 수가 없게 되었던 것이다.

무릇 천하를 좌지우지할 위치에 있는 사람이라면, 이러한 것을 보고 쇄국령이 깨졌다는 의심을 해야 할 터였다.

그러나 탐욕스러운 자는 법을 위반한 것보다도 그 가치에 더 주목했다.

“아니, 이걸 어디서 구해온 것인가? 분명 쇄국령 때문에 못 구할 물건이 되었을 터인데…….”

“글쎄, 열 손이 한 도둑을 잡지 못하는 법이니, 어딘가에 쥐구멍은 있지 않겠나. 나도 우연찮게 얻은 것인데 우리 태감 나으리 생각이 나서 가져온 것이지.”

“오오, 역시 친구와 술은 오래 묵을수록 좋은 법이지. 고맙게 받겠네.”

네 친구는 지금 일본 어딘가에 붙잡혀 있지만 말이지. 단조는 속으로 딴 생각을 품으며, 오향으로 가득 채운 상자를 넘겼다.

“아, 이걸 잊을 뻔했군. 그 상인에게 같이 받아온 건데, 여기에 채워 넣고 불을 붙이면 더 깊게 즐길 수 있다고 하더군.”

“뭐라고 부르는 물건인가?”

“곰방대라고 하던가. 대충 그런 이름이었는데……. 여기 대통에 오향을 담고 불을 붙인 다음, 물부리를 입에 물어서 연기를 빨아들이면 된다고 했네.”

섬라국에서는 이렇게 하는 모양이더라. 뭐든 원산지에서 쓰는 방식이 최고인 법이었기에, 위충현은 친구가 권하는 대로 했다.

곰방대에 불을 붙이고 빨아들이자, 오향의 연기가 아주 깊이 환관의 폐 속으로 빨려 들어갔다.

“흐으으음. 띵호와!”

“그리 좋은가?”

“좋다마다, 게다가 연기를 허망하게 날리지 않고 온전히 들이마실 수 있으니, 그야말로 극락을 경험하는 기분일세.”

여태껏 명나라 사람들이 오향을 즐기는 방법은 단순했다. 아직 곰방대라는 게 없는 시절이었고, 단순히 끓여서 먹거나 화로에 태워서 연기를 마시는 정도였다.

그러던 사람에게 곰방대는 그야말로 천상의 연단로나 다름없었다.

“흐으으읍, 크으……. 자네도 즐겨보지 않겠나?”

환관은 옛 친구에게 정으로 오향을 권했지만, 그 실체를 아는 입장에서는 날벼락 같은 소리였다.

다섯 번째 단조는 짐짓 겸양을 가장하며 한사코 호의를 거부했다.

“아닐세. 송충이는 솔잎을 먹어야 산다고 하더군. 나 같은 서민이 어찌 오향 같은 귀물을 쓰겠나.”

“예끼. 이 친구야, 내가 한 마디만 하면 황상께서 그럴듯한 자리 하나를 내주시지 않겠나.”

“그럼 이렇게 돌아다닐 수가 없지 않은가. 자네도 바깥 이야기를 전해줄 사람이 하나는 있어야지.”

가끔 이렇게 귀물도 전해주고 말이야. 닌자가 그렇게 속닥거리자, 위충현도 일리가 있다는 듯이 고개를 끄덕였다.

“나중에라도 생각이 동하거든 언제든지 이야기하게나.”

“그럼세.”

오향을 만끽하는 환관을 뒤로 하고, 닌자는 조용히 그의 집을 빠져나왔다.

“과연 향은 좋구만. 그런데 저게 대단히 해로운 독이라니……. 그것도 참독 소리를 들을 정도로. 그다지 믿기지는 않지만, 빈 말을 하시진 않았겠지.”

그 이후로도 닌자는 종종 친구를 가장해서 환관을 찾아갔다.

- 처음에는 활기가 넘칠 것이니, 그 동안에 황제에게도 진상하도록 꼬드겨라.

과연 닌자들의 주인이 말한 대로 되어가고 있었다. 위충현은 아주 기운찬 모습으로 친구를 맞이했고, 그러한 상태가 천년만년은 갈 듯한 기세였다.

“오향을 좀 더 가져올 수는 없나?”

“노력은 해보겠네만……. 무슨 일로 그러는가?”

“폐하께 올릴 생각일세.”

드디어 닌자가 원하던 이야기가 나왔다. 황제에게 진상할 것이니 더 가져오라는 요구. 그러나 그는 흔쾌히 수락하는 대신, 환관의 몸을 더 달아오르게 만들었다.

“흐음……. 그렇게나 많이 말인가?”

“어려운가?”

“어렵진 않겠지. 밀수꾼을 더 족치면 되니까. 하지만 오향이 대량으로 황궁에 들어가면, 쇄국령을 어겼다는 의심을 받지 않겠나?”

일리가 있는 걱정이었기에, 위충현도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나 단념한 것은 아니었다. 오히려 그가 위충현이 적극적으로 어려움을 해결하려 나선 것이다.

“그건 내가 알아서 함세. 요즘 폐하께서는 도사들과 불로불사의 연단에 심취하셨는데, 이 오향이야말로 불로불사의 명약이 아니고 뭔가.”

“옳은 말이로군. 그럼 최대한 마련해보겠네.”

*       *       *

“계획대로.”

내가 서신을 읽고 나서 무심코 중얼거리자, 누르하치가 질문을 던졌다.

“그게 무슨 말씀이십니까?”

“나중에 말해주겠네. 듣고 나면 아우도 통쾌할 걸세. 그런데 일국의 왕이 이렇게 자리를 비워도 되는가?”

지금 스모토에서는 삼국의 회의가 한창이었다.

여기는 내 본거지인만큼 나는 별 상관이 없었고, 조선은 하성군을 보낸 상태였다. 그러나 누르하치는 본인이 직접 와 있었다.

“제가 없는 동안은 슈르하치 녀석에게 맡겨놨습니다. 그리고 사실 제가 여기 오는 게 아국에는 더 큰일이니까요.”

“그도 그렇군.”

주션은 식량을 자급자족하지 못하는 환경이다. 그리고 부얀을 산하로 받아들이면서 그 수요는 더 크게 늘어나고 있었다.

가까운 조선도 요즘은 대동법을 시행하네 모내기를 도입하네 하면서 산출을 늘리는데 힘쓰고 있었지만, 역시 잉여물자가 많이 나오지는 않았다고 했다.

결국은 이쪽과의 관계가 주션의 숨통과 직결된 문제였기에, 누르하치의 말도 나름대로 일리가 있었다.

본인이 칸이라고 눌러앉아서 여기로 대리인을 보내는 것 자체는 문제가 되지 않을 터였다.

하지만 그 대리인이 누르하치보다도 더 깊은 친분을 쌓는다면? 역으로 그가 주션의 최대 실권자가 될 수도 있는 것이다. 누르하치의 친족이라면 최대 찬탈도 가능할 거고.

원래의 역사에서도 결국 누르하치의 친동생, 슈르하치는 형의 손으로 숙청을 당하지 않았던가.

그러니 정권의 안정을 생각한다면, 누르하치의 입장에서는 스스로가 직접 오는 편이 나을 터였다.

나는 고개를 끄덕이고 일상적인 대화를 이어나갔다.

“그래, 요즘 주션의 사정은 좀 어떤가?”

“형님 덕에 승승장구지요. 그 오만한 몽골 녀석들도 굶고는 살지 못하니까 말입니다.”

나는 식량을 누르하치에게 넘기고, 누르하치는 그 식량의 분배를 조율하는 것으로 초원을 장악하고 있었다.

이제는 그도 부얀 외에 다른 의동생들을 여럿 거느리고 있었고, 그 세력을 기반으로 명나라를 공략하고 있다고 했다.

“그거 아십니까? 우리가 쓰는 화포를, 명나라 녀석들은 동이포라고 하면서 두려워한답니다.”

“동이포, 동이포라 했는가, 하하하! 하긴 장성에 의존했는데 그게 무력화되고 있으니, 그럴 법도 하군.”

“그렇지요. 거점을 공략하긴 어렵지만, 그 기나긴 벽에 구멍을 뚫는 것쯤은 쉽지요.”

아무리 대국이라고는 해도 이름부터가 만 리에 이르는 장성을 다 틀어막는다는 것은 불가능했다.

십만 대군이라고 해도 그들 전부를 일 보 간격으로 세우면 십만 보다. 일 보가 일본 기준으로 약 1.5 미터 정도 되니까, 그걸 환산하면 대강 십오만 미터, 그러니까 백오십 킬로미터밖에 되지 않는 것이다.

만리장성은 킬로수로 따져도 이만을 넘는다고 했으니까, 빼곡하게 지키려면 이천만은 있어야 한다는 이야기다.

“그런데 정말로 장성을 넘을 생각인가?”

“못할 건 뭐겠습니까, 형님.”

누르하치의 야심은 이제 중원으로 향해 있는 듯했다. 물론 그게 이쪽이나 조선으로 튀어나오면 문제겠지만, 사실 중원을 차지하는 것도 장기적으로는 주션에 바람직하지 않을 터였다.

“대륙에는 이런 말이 있더군. 남쪽의 귤을 북쪽으로 옮겨 심으면, 귤이 아니라 탱자가 된다고 하네. 나는 주션도 그렇게 되지 않을까 두려우이.”

“주션은 결코 은혜를 잊지 않을 겁니다. 제 후손들도 그럴 거고요.”

“그 이야기가 아닐세. 주션의 정체성을 잃고 한족의 일부가 될까 두렵다는 것이지. 옛 금나라를 상고해도 그렇고 말이야.”

“흐음…….”

내 말이 누르하치에게 닿는 게 있었는지, 그는 망설이는 기색을 살짝 드러냈다.

“그럼 달리 고견이 있으십니까?”

“그거야 아우가 정할 일이지. 내가 이래라저래라 하는 건 주션에 대한 내정간섭일세.”

“그 주션의 칸이 접니다, 형님. 기탄없이 말씀을 해주시지요.”

역시 정체성이 주션의 약점이었다. 철을 다루는 기술조차 없어서 뼈로 도구를 만들던 것이 바로 얼마 전의 여진족이었고, 그에 대한 공포가 뼛속 깊이 새겨진 모양새였다.

물론 몽골이 힘으로 지워버린 거나 다름없었지만, 기껏 확립해가는 정체성을 어떤 이유로든 다시 잃게 되는 것만큼은 피하고 싶겠지.

누르하치는 내 쪽으로 몸을 기울였고, 그 눈빛도 아주 간절했다.

“흠…….”

“형님.”

나는 적당히 뜸을 들이고 나서 입을 열었다.

“나라를 둘로 나누게.”

“예?”

“아직 가능성은 적지만 나중에라도 중원을 차지하게 되면, 중원의 사람들과 주션을 분리하라는 이야기일세. 아예 나라를 나누고, 형제들에게든 아들들에게든 분봉을 해버리면 낫겠지.”

내 제안을 들은 주션의 왕은 적잖이 실망한 기색이었다.

“그럼 기껏 중원을 차지한 보람이 없지 않습니까.”

“대신에 주션의 정체성은 지킬 수 있겠지. 한족의 숫자는 너무나도 많고, 주션이 아니라 다른 유목민까지 합쳐도 못 따라가지 않겠나.”

그래도 일리는 있다고 생각했는지, 아주 일언지하에 거절하지는 않았다.

“아직 명나라가 강대하니, 생각할 시간은 많겠지요.”

“그러시게.”

때마침 조선의 대리인, 하성군도 들어왔다. 지금은 주션만의 이야기가 아니라 삼국의 주제를 다뤄야 할 때였다.

“어서 오시오, 대감.”

“오랜만에 공방을 뵙습니다.”

이제는 하성군도 나를 대하는 어조를 바꾸었다.

단순히 조선과 나, 이 둘만 고려하면 아무래도 좋은 일이었지만, 주션의 왕이 나를 형님으로 모시는 이상은 호칭을 바꿔야 한다고 했다.

역시 동방예의지국이라고 생각하며, 나도 하성군에 대한 어조를 바꾸었다.

“모두 모였으니, 본론으로 들어갑시다. 오늘의 안건은…….”

*       *       *

“폐하, 통촉하시옵소서.”

- 통촉하시옵소서!

황제가 정사를 놔버린 뒤로, 명나라에는 계속해서 악재가 겹치고 또 겹쳤다.

북방에서는 오랑캐들이 시도때도 없이 국경을 들쑤셨고, 남방이라고 해서 안전하지도 않았다.

그나마 남만구(南蠻寇)는 절도를 아는 자들인지, 상륙한 지역이 완전히 초토화되는 일은 없었다.

그러나 그 이면에는 사교의 창궐이라는 독버섯이 자라고 있었다.

“폐하, 부디 정사를 돌보시옵소서!”

처음에 명나라 조정의 대소신료들은 어떻게든 나라를 제자리로 돌려놓기 위해 안간힘을 썼다.

그러나 결정적인 순간마다 위충현이 개입해서 모든 일을 틀어지게 만들곤 했다.

결국 황제가 직접 나서지 않으면 고쳐질 수 없는 문제였기에, 신하들은 굳게 닫힌 대전 앞에서 하염없이 통촉을 외칠 수밖에 없었다.

그리고 그들 중에서 참다못한 누군가가 위충현을 규탄했다.

“태감 위충현은 폐하의 성총을 가리는 악적 중의 악적이옵니다! 그를 벌하시고 정사를 바로잡으소서!”

그러나 그 간언이 받아들여지는 일은 일어나지 않았다.

“동창위로 같이 가 주셔야 되겠소이다.”

“가, 감히 환관 놈들이……. 놔라, 이놈들아! 폐하, 폐하아-!”

그렇게 또 한 사람의 대신이 구중궁궐 어딘가에 갇혀버렸다. 신하들은 점차 위충현의 눈치를 보기 시작했고, 목숨마저 버리지 못한 충신들은 더러 낙향하기도 했다.

강대한 천조국은 위에서부터 서서히 썩어가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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