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8화 명군을 막아 보세(2)
연합수군을 동원해서 발해만 여기저기를 들쑤셔봤지만, 반응은 영 신통치가 않았다.
제법 번화하다는 천진(天津)조차도 명나라 수군의 군선만 바글바글했을 뿐, 다른 어떤 움직임도 없다고 했다.
“다른 항구들은 어떤가?”
“마찬가지로 드나드는 배는 없고, 모두 군선들 뿐이었습니다.”
척후의 말대로라면, 명나라 수군은 해역을 지키기보다는 전력을 온존하고 있다가 한바탕 싸울 기회를 노리고 있을 가능성이 높았다.
보고를 받은 뒤, 연합수군의 수뇌부 중에서 가장 입을 연 사람은 모리 수군의 우두머리인 킷카와 모토하루였다.
“항구에 틀어박혀 있다면, 차라리 잘 된 일이 아닙니까? 명나라 수군의 전력이 분산된 셈이니, 각 항구를 돌면서 격파해버립시다.”
단순하게 생각하자면 그의 말이 옳았지만, 지리적인 조건을 따지자면 다소 위험이 따를 터였다.
“가장 가까운 항구인 내주(莱州 라이저우)조차도 발해만에서 꽤 깊이 들어가야 하네. 섣불리 들어갔다가 사방에서 포위라도 당했다가는 피해가 제법 크겠지.”
지금 발해만 내에서 명나라 수군이 정박해 있는 항구는 모두 세 곳이었다.
북경의 외항 노릇을 하는 천진, 산동성 북부 해안가의 내주, 마지막으로 요동반도의 창끝과도 같은 자리에 위치한 삼산(三山).
이 세 항구의 위치가 꽤 절묘해서, 어느 한 곳을 치는 동안 나머지 두 곳에서 출격한 수군이 포위망을 형성하기 좋은 모양새였다.
내가 반대의견을 내놓자, 미요시 마사야스가 다른 대안을 물어왔다.
“그렇다면 쿠보께서는 어찌 하는 게 좋다고 생각하십니까?”
“생각해보면 이 발해만 자체가 거대한 항구나 마찬가지가 아닌가. 연합수군은 당분간 만 입구를 봉쇄하면서 참다 못한 명나라 수군이 기어나오기를 기다리는 게 나을 듯싶네.”
군의(軍議)에 참석한 수뇌부 대부분은 내 말을 듣고 납득한 눈치였지만, 역시 킷카와 모토하루는 아쉽다는 의견을 피력했다.
“너무 소극적인 계책이라 생각합니다. 그래도 꽤 먼 길을 왔고, 명나라의 눈과 귀를 이쪽으로 끌어오는 게 목적이라 하지 않으셨습니까?”
“명나라는 어쨌든 그 체급만큼은 거대한 나라가 아닌가. 게다가 화약을 적극적으로 사용하는 편이기도 하니, 섣불리 맞붙었다가는 역으로 피를 보기 쉬울 걸세.”
“그도 그렇습니다만…….”
거대한 덩치의 혈관을 끊어놓았으니, 우회로마저 틀어막는 정도면 충분할 터였다. 운하를 복구하는 일도 보통 대사업은 아닐 것이고 말이다.
그렇게 마지막으로 소수 의견마저 설득한 뒤, 연합수군은 조선으로 뱃머리를 돌렸다.
* * *
“아니, 공방께서 여기까지 직접 오셨습니까?”
“전하께 약조했던 일을 지키다보니 말이오.”
삼화현에서 나를 맞이한 사람은 비변사 부제조라고 하는 곽재우 한 사람이었다.
도제조는 다른 정승급이 겸직하는 게 보통이라는 것을 생각하면, 그가 실질적인 수장이나 마찬가지였다.
비변사의 위상이 어느정도인지는 알 수 없지만, 지금 평양에 지휘부를 꾸리고 있는 것을 보면 제법 힘이 있는 기구인 듯했다. 적어도 판서같은 당상관급이거나 혹은 정승의 말단쯤은 되지 않을까 싶었다.
원래 역사대로라면 임진왜란이 터질 때까지 벼슬도 하지 않고 있다가 의병을 일으킬 사람이 그런 자리에 있다는 게 조금 이상했지만, 명종이 오래 살면서 바뀐 일인가 하고 생각하면 그다지 어색하지도 않았다.
나는 곽재우와 서로의 정보를 교환했다.
강남을 공략하고 명의 대동맥 노릇을 하는 대운하를 끊어놓았다는 것, 그리고 보바이가 일으킨 반란은 조선에 희소식일 터였다.
“원래는 이십만을 예정했다 했으나 지금은 십만으로 줄었으니, 공방의 안배가 빛을 발한 모양이군요.”
“십만?”
“예, 공방. 지금 요양성에서 십만대군이 압록강으로 오고 있다 합니다.”
곽재우는 과연 긍정적인 반응을 보였지만, 역시 명의 대군이 오고 있다는 것은 좋은 소식이 아니었다.
“그놈의 고려천자가 기어이 고려를 먹겠다고 오는구만.”
“무슨 말씀이십니까?”
그렇게 명나라의 주변을 정신없게 만들어놓고도 끝내 원정을 단행했다는 점에서, 만력제는 역시 고려천자였다. 무심코 그 생각을 일본말로 내뱉으니 마주하고 있던 곽재우가 의아한 눈으로 나를 바라보았다.
역관을 따로 대동하지 않은 상태였기 때문에, 그가 이 말을 알아들을 방법은 없을 터였다.
“별일 아닐세. 명의 황제 욕을 좀 했을 뿐이니, 신경 쓸 거 없네.”
나는 곽재우의 질문에 그렇게 둘러댔다.
“옛날 을지문덕이라는 장군은 여수장우중문시로 수나라를 비웃었다고 했으니, 조선은 명의 황제에게 조선천자라는 칭호라도 바치면 어떻겠나?”
“공방께서는 속도 편하십니다.”
“이십만이 한 번에 몰려온다면 몰라도, 그 반으로 줄었으니 해 볼만 하지.”
곽재우를 따라온 군관 중 하나가 내 말을 듣더니 인상을 쓰면서 따졌다.
“원래는 일본의 전쟁이 아닙니까? 아국은 피를 흘려가며 싸우고 있는데 너무 쉽게 말씀하시는군요!”
“어허, 원 승지.”
묘하게 낯이 익었다. 물론 내가 그를 직접 만나본 적은 없지만, 그래도 이 시대 인물 중에 초상화가 있는 사람이 몇 있었으니 그들 중 하나인 듯했다. 그리고 기억을 더듬어보자면 아무래도…….
“혹시 병마절도사를 지낸 원준량 공의 자제, 원균인가?”
“제 이름은 어찌 아십니까?”
“소문을 들은 적이 있지. 조선의 원균이라는 장수가 그리 명장이라고 말이야.”
지금과는 다른 세계선에서 성웅을 거꾸러뜨린 일본군의 명장이지만.
내 말을 들은 원균이 방금 전까지의 기세는 간곳없고 헤벌쭉한 표정을 지었다.
“뭐, 어쨌든 이게 남의 전쟁이라고 생각했으면, 내가 화약이며 원군이며 보냈겠나. 너무 기분나빠하지 말게.”
“큼, 저야말로 저간의 사정을 생각지 않아 무례를 저질렀습니다.”
곽재우는 그 모습을 보며 고개를 절래절래 흔들고 있었다. 그렇게 대충 원균을 달랜 뒤, 나는 앞으로의 계획을 털어놓았다.
“나는 이대로 발해만을 봉쇄하려고 하네. 그러자면 기항지가 필요한데, 적당한 장소를 빌릴 수 있겠나?”
비변사 부제조는 내심 연합수군의 병력 역시 전선에 투입하러 온 것이 아닌가 하고 기대하는 눈치였지만, 이들은 뭍에 올려서 싸우기에는 좀 아까운 전력이었다.
“아무래도 본토의 항구를 빌리자면 조선 측에 폐가 될 것 같고, 적당한 섬 하나면 좋을 듯싶네. 오다가 보니 가도가 적당해보인던데…….”
“공방께서 필요하시다니 얼마든지 내어드려야지요. 다만 가도에는 목장이 있어, 비우려면 다소 시일이 걸릴 겁니다.”
“아, 그럼 됐네. 적당히 빈 곳이면 아무데라도 상관없네.”
“그런데 무슨 연유로……?”
내가 기항지를 요구하자, 곽재우는 그 이유를 온전히 납득하지 못한 눈치였다. 눈앞에 명의 대군이 있는데, 발해만의 봉쇄가 무슨 의미가 있느냐 싶은 표정이었다.
그러나 내 말을 마저 들은 뒤, 조선의 비변사 부제조는 오히려 놀라움을 감추지 못했다.
“북경을 치시겠다는 말씀이십니까?”
“아, 이 사람, 내 말을 어찌 듣나. 그건 어디까지나 잘 풀렸을 때의 이야기고, 지금은 발해만을 틀어막으면서 명의 수군을 차근차근 부술 생각일세.”
나도 그 장밋빛 희망처럼 북경을 훑고 싶은 마음은 굴뚝같았지만, 연합수군의 전력으로 대륙 한복판에 상륙해서 이삼백리 길을 행군하는 것은 불가능한 일이었다.
그가 내보인 기대치보다는 조금 낮은 목표이기는 했지만, 곽재우의 반응은 긍정적으로 변했다.
“과연 북경이 위협을 받는다고 생각만 해도, 자금성의 황제가 놀라서 움츠러들 겁니다.”
* * *
조선 정벌군 십만. 그 중에서 별동대로 반을 덜어낸 나머지 오만도 결코 적은 숫자가 아니었다.
망령되이 움직이지 말고 조용하고 무겁기를 태산같이 하라. 아직 이순신은 이런 말을 하지 않았지만, 그러한 태도로 일관해왔던 그조차도 속으로는 내심 긴장의 끈을 늦추지 못했다.
그리고 원래 여유로운 성품이었던 권율 멀리서 보이는 먼지구름에는 기가 질린 상태였다.
“가볍게 보낸 군대의 규모가 십만이라니, 과연 중원의 힘이란 것인가.”
평양에서 온 파발에 의하면, 명군은 전력을 다하기 어려운 처지일 것이라고 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십만을 동원하는 저력이라는 점에서, 조선의 장수들은 약간의 공포마저 느끼고 있었다.
“노이합적이 보내준 첩보에 의하면, 그나마 반이 압록강 중상류로 올라갔다고 합니다. 이쪽에 가해지는 부담이 적겠지요.”
“나도 동감일세. 잘하면 명군을 조선에 들이지 않을 수도 있겠어.”
십만이 한데 뭉쳐서 밀고 든다면, 의주의 조선군은 물러나지 않을 방도가 없었다. 아마 안주나 평양쯤에서 반격에 나섰을 터였고, 명군의 침입을 허용한 지역은 고스란히 피해를 입었을지도 몰랐다.
그러나 명군이 가까이 다가오면서 확인한 모습에, 권율은 그 판단을 고치지 않을 수 없었다.
“죄다 기병이라고……?”
“전부는 아닙니다만, 기병의 비중이 상당하군요.”
조금 더 침착함을 유지하고 있었던 이순신이 그렇게 권율을 안심시키려 했다. 그러나 그게 말처럼 쉬운 일은 아니었다.
기병 하나의 가치는 보병의 서너 배에 달한다. 그리고 의주를 지키는 일만의 조선군도 대부분이 기병이었지만, 그 뒤로는 대부분이 보병이었다.
“어차피 의주는 내주기로 하지 않았습니까. 이제 감사께서는 다시 평양으로 돌아가도록 하시지요.”
원래 평안 감사는 평양에 머물러 있어야 했지만, 명군을 한번은 두 눈으로 직접 봐야겠다면서 의주로 온 상태였다. 그리고 조선군의 대전략은 차츰차츰 명군의 전력을 깎아가면서 물러나는 것이었기에, 사실 지금 권율이 의주에서 할 일도 없었다.
“알겠네. 부디 보중하시게.”
“저 역시 적당히 싸우다 물러날 것이니 너무 심려치 마십시오.”
이순신은 떠나는 관찰사를 배웅한 뒤, 의주부윤을 불렀다.
“송 부윤.”
“부르셨습니까, 병사 영감.”
“아무래도 의주성에서 오래 버티기는 어려울 듯싶네. 최대한 피해를 입히고 퇴거할 것이니, 화약의 상태를 점검하게.”
“알겠, 습니다.”
당연한 이야기지만, 의주 부윤의 임지는 의주성이다. 자신의 임지에서 물러나야 한다는 것은 장수로서 껄끄러운 일이 아닐 수 없었다. 그러나 이미 방침이 정해진 이상 장수는 거기에 따라야 했다.
그렇게 지시를 내린 뒤, 이순신은 직접 병력을 이끌고 도강을 방해하러 나갔다.
“지금 우리의 행동이 대세에는 크게 영향을 미치지 못할지도 모른다. 그러나 강한 화살도 끝내 부드러운 비단에 막히고, 총탄도 여러 겹의 무명을 뚫지 못하는 법. 우리는 그 한 겹이 되어 적을 어지럽혀야 한다. 갑사들은 나를 따르라!”
이순신이 이끄는 조선군은 명군이 도강해올 자리를 돌면서 견제를 시작했다.
그간 비변사에서는 일격이탈을 위해 온갖 전략전술을 꾀했고, 지금 이순신이 쓰는 병기들 역시 그 일환이었다.
“정해진 자리에 목포(木砲)를 놓은 뒤, 방포를 준비하라.”
무겁고도 비싼 철제 화포를 일회용으로 쓰고 버릴 수는 없었기에, 조선군은 목포라는 것을 고안해냈다. 어차피 한두 번 쓰고 버릴 물건이라면, 나무로 만들어도 괜찮지 않겠느냐는 발상이었다.
일회용으로 쓰는 것 자체가 낭비라는 반론이 있었지만, 조선과 명의 격차를 생각하면 그조차도 감수해야 한다는 쪽이 이긴 결과물이기도 했다.
마침내 명군이 도하를 시작했을 때, 이순신은 목포의 사용을 명했다.
“방포하라!”
콰쾅, 쾅, 쾅!
단 한 번의 포격으로 자신의 소임을 다한 조선의 신무기는 산산이 부서졌다. 그러나 그 효과만큼은 나름대로 기대 이상의 성과를 거두었다.
명군의 뗏목이 부서져나갔고, 뜻하지 않은 포격에 얻어맞은 병사들이 죽고 다쳐나갔다. 그걸 확인한 평안 병사는 다음 명령을 내렸다.
“나쁘지 않군. 좋다, 이제 다음 지점으로 후퇴하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