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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고니시라니-189화 (189/225)

189화 내 일본에 도쿄도특허사무국은 없다(2)

“쿠보, 다시 한 번만 생각해주십시오.”

알메이다 교장과 프로이스 신부, 두 루이스가 나란히 찾아왔다. 한동안 자기 일에만 전념하고 있었던 그들이 온 이유야 뻔했다.

주주 중에서 국적을 따지자면 에스파냐와 포르투갈의 숫자가 가장 많았다. 유럽 상인들 중에서 가장 큰 지분을 차지하는 부류 역시 그들이었다.

그러나 어디까지나 ‘유럽인’이라는 틀 내에서만 그러했고, 전체 지분을 놓고 보면 역시 과반은 넘지 못했다.

반면, 내가 직접 갖고 있는 지분과 움직일 수 있는 지분, 거기에 조선 왕실의 것까지 합치면 저울추는 확 기울 터였다.

정 안되면 그렇게 강행할 생각이었는데, 저 두 부류를 제외한 나머지 유럽인들이 전부 찬성파가 되면서 반대파들의 몸이 달아오른 것이다.

방문객들은 나온 찻잔을 드는 것조차 잊어버린 채, 곧바로 입을 열었다.

“아무리 생각해도 이건 섭리에 어긋나는 행동입니다.”

“교리가 아니더라도 생각을 해 보십시오. 모두가 누리던 자연을 갈라 소유권을 정하는 일이 아닙니까? 엄청난 탐욕을 불러일으킬 사안입니다.”

프로이스는 철저히 교리적으로 접근했지만, 그래도 알메이다는 학교의 교장이라는 위치 때문인지 나름대로의 근거를 갖춰서 안건의 철회를 설득하려 했다.

“무슨 이야기를 하는지는 알겠소이다. 그러나 이미 이 안건이 올라간 그 자체로 호랑이 등에 올라탄 것이나 다름없소.”

그러나 그들이 내게, 그리고 도시에 공헌한 바가 크다 해도, 지금 그들의 요청은 들어주기가 곤란했다.

아예 모르고 살았으면 몰라도, 이제 그 개념이 알려진 이상 어떤 식으로든 이전으로 돌아가기는 어려울 터였다.

반대파가 꺼내든 으뜸패인 두 사람이 힘없이 돌아가고, 날이 바뀌면서 다시 총회가 이어졌다.

“찬성!”

“반대!”

“폭군!”

“배금주의자!”

다음 날로 이어진 총회에서도 지리한 대치만 이어졌다. 역시 에스파냐인과 포르투갈인, 이 두 부류가 결사적으로 반대하고 나섰고, 나머지가 반대에 반대하는 형국이었다.

그렇잖아도 다른 할 일이 많은데 여기에만 매달려 있을 수는 없는 노릇이라, 나는 토론을 중단하게 했다.

“이대로는 결과가 나지 않을 것 같으니, 무의미한 토론은 그만두지.”

표결에 붙이겠다고 하자, 반대파들이 벌떼같이 들고 일어났다.

“말도 안 됩니다!”

“재고해주십시오, 쿠보!”

저들이 이렇게까지 버티는 이유는 간단했다. 안건의 세 번째 항목,

‘해당 내용에 동의하지 않는 국가에 속한 사람은 자신의 권리를 보장받을 수 없으며, 새로운 내용의 등록 또한 불가능하다.’

만약 비토라도 놓았다가는 오히려 그 뒤가 심히 더러워지게 될 것은 불 보듯 뻔한 일. 자신이 내키지 않는다면 다 같이 못하게 막아야 했던 것이다.

결국 마닐라 총독의 대리인이 나가버렸고, 그 뒤를 따라 상관 대표를 비롯한 해당 국적의 상인들도 우르르 자리를 비웠다.

물론 사전에 말을 맞춰두었기에 그다지 놀랄 일은 아니었다. 두 루이스가 돌아간 뒤, 다시 늦은 시간에 에스파냐와 포르투갈의 상관 대표들이 찾아와서 언질을 해둔 상태였다.

- 이미 대세가 기울었다는 것은 압니다. 하지만 저희도 저희 폐하께 드릴 말씀이 있어야 하니, 무례를 양해해주십시오.

- 이해하네. 어차피 표결에 의해 정해질 일이니, 뒤끝만 없다면야.

그렇게 반대파가 빠져버린 투표는 순조롭게 안건의 통과로 끝을 맺었다.

*       *       *

조선은 이미 자국의 생물종 조사가 끝났다고 했고, 이쪽도 최소한 반 이상은 마친 상태였다.

그러나 다른 나라에 이 소식이 전해지려면 족히 몇 달은 있어야 할 터였고, 유럽의 상인들은 쾌속선을 내어 본국에 이 소식을 전달하기 바빴다. 적어도 유럽에서 반응이 오려면 그 두 배만큼의 시간이 필요했으니, 그 동안만큼은 조용하리라 생각했다.

그런데 잠시 잊어버리고 있던 쪽에서 서신이 날아왔다.

- 형님, 그간 평안하셨습니까. 이 누르하치 아우가 인사 올립니다.

인사말과 추억을 담은 미사여구를 쫙 빼고 용건만 보자면, 그 역시 특허 제도를 도입하고 싶으니 관련 내용을 의논하러 스모토를 찾아오겠다는 것이었다.

그리고 다음 선단이 녹둔도에 다녀왔을 때, 누르하치도 모습을 보였다.

전에는 여진족의 부락 하나를 이끄는 추장으로 보기에도 초라한 모습이었다면, 지금은 제법 위세가 당당했다.

“오랜만입니다, 형님!”

“어서 오게나.”

그런 그도 스모토의 성세에는 눈이 휘둥그래졌다.

“여기가 형님이 다스리는 나라군요. 화려하기로는 조선의 도성이나 명나라의 경사(京師)를 능가하는 것 같습니다. 오, 색목인들도 무척이나 많고…….”

내가 알기로 누르하치는 평생에 바다를 건넌 적이 없을 터였다. 그러니 배멀미에 지쳐 있을 법도 했는데, 아주 쌩쌩한 모습으로 도시의 이곳저곳을 구경했다.

“생선도 여러 종류가 다 있군요.”

“아무래도 여기는 바다가 가까우니 말일세.”

“저 큼직한 바퀴는 또 뭡니까?”

“물을 끌어올려서 멀리 흐르게 하는 장치라네.”

마냥 그의 구경을 안내해주고만 있기에는 다른 일들이 많았기에, 나는 따로 사람을 붙여주고 돌아왔다.

다음 날, 보고를 받으니 야시장까지 알차게 즐기고 객사로 들어와서 늦잠을 자고 있다고 했다. 나는 만찬을 같이 하자고 전언을 남겼다.

다행스럽게도(?) 누르하치는 때에 맞춰 일어나서 나를 찾아왔다.

“어제는 아우가 정신이 팔려서 중요한 일을 잊고 있었습니다.”

“아닐세. 나야말로 아우가 모처럼 왔으니 좋은 것들을 구경시켜주고 싶었다네.”

“맛있는 것들도 아주 많더군요. 그 야시장에 온통 달콤한 것들 천지였으니, 제 입이 생전에 이런 호강을 해본 적이 없었습니다.”

“그건 길거리에서 파는 싸구려고, 오늘은 이 형이 주방에 힘 좀 쓰라고 했으니 기대해도 좋을 걸세.”

“오, 형님 말씀만 믿겠습니다.”

그가 오기 전에 미리 연락을 준 덕에, 최상급의 재료들을 갖춰두고 있었다. 그래도 아우를 자처하면서 알아서 굽힌 사람이 왔는데, 평생 기억에 남을 정도의 상차림은 내야 하지 않겠는가 말이다.

내가 심부름꾼에게 지시하자, 가이세키의 순서대로 음식들이 나오기 시작했다.

“처음은 전채일세. 이것으로 배를 채우는 것은 아니고, 입맛을 돋우는 용도이지.”

“그렇습니까?”

누르하치는 첫 번째로 나온 해파리 냉채를 한 입에 털어 넣었다.

“음, 맛이 괜찮군요.”

그는 아쉬운지 입맛을 다셨지만, 이게 전채라는 말을 듣고 참는 눈치였다. 나는 서둘러 다음 음식을 내오게 했다.

“이건, 생선조림이군요.”

“그렇다네. 도미를 숙성시켜서 조려낸 것이지.”

그러나 누르하치의 반응은 시큰둥했다. 그 모습을 보고서야 한 가지 일화가 떠올랐다.

오다 노부나가조차도 천하를 쥔 뒤에 식성으로 빈축을 사지 않았던가.

생각해보면 이렇게 한두 입씩 나오는 방식에도 생소할뿐더러, 상대의 입맛에는 맞지 않을 터였다.

모처럼의 귀빈이니 최선을 다해 준비해야 한다고 생각했으면서, 정작 상대의 취향은 고려하지 않고 있었다.

나는 조용히 심부름꾼을 불러서 새로운 지시를 내렸다.

“주방에 가서 상차림을 바꾸도록 전달해라. 지금처럼 정통으로 차리지 말고, 한 상 가득, 푸짐하게 차려오라고 말이다. 그리고 간을 세게 하고, 해산물보다는 고기 위주로.”

“예, 쿠보.”

과연 다음에 나온 음식부터는 누르하치의 표정이 달라졌다.

“이야, 역시 대단하군요, 형님!”

“많이 들게나.”

여진족의 추장이 식사하는 방식은 실로 호쾌하기 그지없었다. 오랫동안 일본식에 익숙해진 나도 가슴이 뻥 뚫리는 느낌을 받았다.

정신없이 술과 고기를 먹고 난 뒤, 누르하치는 배를 두드리며 기분 좋은 표정을 지었다.

“역시 형님이십니다.”

“만족스러운 모양이니 나도 기분이 좋군.”

“그게 아니라, 중간에 상차림을 바꾸지 않으셨습니까?”

분명 누르하치는 일본 말을 할 줄 모를 터였다. 그러니 내가 심부름꾼에게 어떤 지시를 내렸는지도 몰랐을 것인데, 어떻게 눈치를 챈 모양이었다.

“그걸 어떻게 알았나?”

“저도 눈과 귀가 있고 소문이란 걸 듣는 사람입니다. 일본에서 귀빈을 대하는 방식이 어떤 것인지도 조금 조사를 해봤지요.”

“그럼 아까의 그 떨떠름한 기색도……?”

“예, 형님의 그릇을 좀 보고 싶어서, 이 아우가 무례하게 굴었습니다.”

그러니까, 지금 누르하치는 자신이 나를 시험했다고 말하고 있었다.

“형님 덕에 부족이 풍요로워졌지만, 저를 어떻게 생각하시는지는 여전히 확신을 못했지요. 적당히 써먹다 버릴 패인지, 아니면 정말 저를 아우로 생각하시는지 궁금했습니다.”

“허, 그랬군.”

지금 누르하치의 여진족은 아예 녹둔도 건너편에 새로운 항구를 지어서 교역하는 중이었다. 그러나 그것만으로는 온전히 신뢰하기 어려웠던 듯했다.

이해하지 못할 행동은 아니었다. 여진족이란 조선과 명 사이에서 줄타기를 하며 살아가는 족속이니까. 그렇다고 순수하게 선량한 피해자인가고 보면 그것도 아니지만.

어쨌든 누르하치 본인부터가, 명에 적극적으로 협조했던 조부와 부친을 한 번에 잃어버리지 않았던가.

나는 고개를 끄덕이며 이해한다는 표정을 지었다.

“충분히 그렇게 생각할 수 있네.”

“감사합니다, 형님!”

온전히 나를 신뢰하기 시작한 누르하치는 부족의 사정을 설명하며, 이쪽과 좀 더 긴밀한 연결고리를 만들려 했다.

특허 제도의 도입 역시 그 일환으로 보였다. 비록 군사적인 협력이 명시된 것은 아니지만, 이권이 달린 문제이니 오히려 여기에 주목을 한 것이다.

나와 동맹을 체결한다면, 누르하치가 위험에 빠졌을 때 도와줄 수 있는 존재도 나 하나뿐일 터였다. 그러나 누르하치까지 동양 무역회사의 질서에 들어온다면, 거기에 관련된 모든 세력이 그를 도울 수도 있었다.

과연 중원을 먹어치운 왕조의 건국자다운 지략이었다.

“이제 보니, 아우의 심계가 아주 깊군, 아주 현명한 방법일세. 내가 짊어져야 하는 부담도 훨씬 적겠고…….”

내가 그렇게 칭찬하자, 누르하치는 멋쩍은 듯이 웃었다. 이럴 때는 또 순박해 보이는 것이, 정말 속을 알기가 어려웠다. 그러나 그의 계책이 온전하게 빈틈이 없지는 않았다.

“아우의 생각은 잘 알겠네. 주식을 새로 발행하는 일은 그리 어렵지 않으니, 구하는 것 자체는 문제가 되지 않겠지.”

“감사합니다, 형님!”

“아직 그런 말은 이르네. 내 이야기를 좀 더 들어보게나. 자네가 주주가 된다고 해서 그게 끝이 아닐세.”

현대의 주식회사도 개미 하나의 목소리는 별 영향을 주지 못했고, 지금도 사정은 마찬가지였다. 아니, 오히려 각종 보호 장치가 없는 지금은 오히려 묻혀버릴 가능성이 훨씬 높았다.

나는 장밋빛 미래를 꿈꾸는 누르하치에게 그 부분을 지적했다.

“그래도 동양 무역회사를 움직일 정도가 되려면, 상당한 지분을 갖춰야 할 걸세. 매입 자금은 충분한가?”

“그건 다 대책이 있지요.”

“혹시 내게 돈을 꾸려는 거라면……?”

“이 아우를 그렇게 대책 없는 사람으로 보셨습니까? 아니, 물론 형님의 도움이 필요한 것은 사실이지만 말입니다, 그래도 상부상조할 방법이니 한 번 들어나 보고 결정하시지요.”

현물로 갚아나갈 것이니, 새로 발행할 지분을 살 수 있는 돈을 마련해달라. 그게 누르하치의 제안이었다. 그로서는 나름 최선의 방법을 짜낸 모양이었지만, 내가 보기에는 쉽지 않을 듯했다.

“현물? 내가 자네 세력을 알고 있는데, 무슨 소리를 하는 겐가. 자네가 이끄는 건주위의 일개 부족, 그리고 울라부를 전부 합쳐도 부족할 걸세.”

내가 우려를 표했지만, 누르하치의 얼굴은 편안하기만 했다. 그리고 과연 그는 믿는 구석이 있었다.

“언젯적 말씀을 하시는 겁니까? 이제 조선과 명 사이에 있는 모든 여진족은 모두 저를 따릅니다. 이만하면 충분하지 않겠습니까.”

“뭐?”

누르하치는 약 20년의 시간을 뛰어넘은 모양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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