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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고니시라니-188화 (188/225)

188화 내 일본에 도쿄도특허사무국은 없다(1)

드레이크는 그렇게 말하면서 내게 편지 한 장을 내밀었다.

“그, 명나라의 고위 인사 중에 심유경이라고, 아십니까?”

“전에 사신으로 다녀간 적이 있었네.”

나는 그가 말한 사람의 행적을 떠올렸다. 실상이야 어떻든 그는 자기 황제에게 공을 세웠고, 지금은 품계가 올라갔다고 했던가.

“이 편지를 맡기면서 신신당부했다고 하더군요.”

“자네가 직접 전달을 요청받은 게 아니었나?”

“저도 다른 잉글랜드 상인에게 전달받은 겁니다. 그 사람이 말하기를 자신은 두 번째라 했으니, 저는 아마 세 번째겠군요.”

“그렇군. 여러모로 수고가 많았네.”

잉글랜드의 대해적이 객사로 간 뒤, 나는 심유경의 편지를 펼쳤다.

- 공방이 무슨 생각을 하는지는 모르겠으나, 눈에 띄는 행동은 자제해 주기 바라외다. 왜구들의 기묘한 행동이 세간의 이목을 끌고 있소.

이어지는 내용을 요약하자면, 결국 내 행동이 원인인 것은 맞았다.

*       *       *

“쿠보께서 말씀하신 대로, 명의 돼지들을 가져왔습니다.”

“일단 번식을 시키되, 새끼 때의 무게와 다 자랐을 때의 무게를 빠짐없이 기록하도록 하게.”

그렇게 키운 돼지들은 내가 생각했던 것만큼 크게 자라지는 않았다. 첫 시도가 실패로 돌아간 뒤에야, 나는 중국의 돼지도 여러 품종이 있었다는 사실을 떠올릴 수 있었다.

“아무래도 이 돼지는 아닌 모양이군. 다른 녀석으로 가져오게.”

“예? 아, 알겠습니다.”

그렇게 대강 다섯 번의 실패 끝에, 비로소 원하는 품종을 찾아냈다.

“역시 이 녀석이었군. 돼지는 늪지를 좋아한다고 하니, 에치고나 무사시에 보내도록 하게.”

“예, 쿠보.”

니가타 평야나 간토 평야는 후대에 대규모 농업지대로 유명해지지만, 아직은 개간이 완료되지 않은 상태였다.

소도 일단은 조선에서 온 녀석들로 일단 넘기고, 돼지도 적당한 품종을 구비했으니 필요한 것들은 모두 갖춘 셈이었다.

*       *       *

이런 과정을 거쳐 동국 지역에서는 소와 돼지를 기르게 하고 있었다.

“하긴 안하던 짓을 하면 주목을 받을 수밖에 없기는 하겠지.”

조선은 이제 눈 가리고 아웅하고 있었지만, 명나라는 여전히 해금령을 전가의 보도마냥 휘두르곤 했다.

여전히 교역량 자체가 명나라 조정에 의해 정해지는 상황이었다.

당시의 나는 예전에 왜구 노릇을 했던 자들과 밀무역상을 활용했는데, 그게 오히려 명나라 관원들의 이목을 끌고 말았다.

- 왜구를 완전히 근절하기 어렵다는 것은 나도 잘 알고 있소. 그런데 무슨 이유로 그자들이 돼지만 골라서 탐하는 것이오? 게다가 밀수꾼들의 행동도 마찬가지요. 내게만이라도 속 시원히 말해 주면, 최대한 도움을 드리겠소이다.

심유경의 편지 중간에는 이런 내용도 적혀 있었다.

어쨌든 지금은 그가 황제의 귀에 들어가는 것까지는 막았다고 하니, 이제 당분간 명나라에 아예 접촉을 하지 않는 정도면 충분할 듯했다.

- 원하는 것은 이미 얻었소이다. 심 공의 노고에 감사드리며, 약소하게나마 마음을 전하오.

답신을 간략하게 적은 뒤, 나는 황금 한 궤짝을 심유경에게 전달하게 했다.

*       *       *

“그런 이유로 이제 처음 받은 녀석들과 그 새끼들을 제외하면, 그 이후에 나온 것은 순수한 조선의 소라고 할 수 없을 걸세.”

“쩝, 원래 그러기로 약조한 부분이니 어쩔 수 없군요.”

유성룡은 내 말을 듣고 입맛을 다셨다.

이순신은 진작에 기한을 마치고 귀국했지만, 그는 여전히 남아서 특허와 관련된 사무를 보고 있었다.

“그나저나 이 건에 관한 공표는 언제쯤 하실 생각이십니까?”

“글쎄……. 조선은 몰라도, 이쪽에서는 꽤 곤란할지도 모르니 말일세. 차라리 양국 간의 밀약으로 두고 있는 편이 어떻겠나?”

나는 턱을 쓰다듬으며 은근한 목소리로 그렇게 제안했다.

지적재산권, 그리고 그 가장 원초적인 형태의 특허는 왕에게 상공업자가 독점적인 지위를 부여하는 형식이었다.

바꿔 말하면, 그 권역 바깥에서는 특허를 존중하라고 강제하려고 해도 그러기가 쉽지 않다는 이야기였다.

조선은 그래도 국경만 관리하면 끝이었지만, 이쪽에서는 특허에 관한 정보가 새어나가는 그 자체를 막기가 불가능했다.

일단 특허 자체는 유럽 상인들에게도 익숙한 개념이었기에, ‘동양 무역회사’의 영향권 내에서 그걸 강제하는 것은 어렵지 않았다.

마닐라 총독도 거기에 동의했고, 포모사에 들어온 상인들 역시 제한적인 조건을 달고 내가 정립한 특허 제도를 받아들인 상태였다.

문제는 생물종에 관한 것이었다.

이 영악하고도 수단방법을 가리지 않는 유럽 상인들이 지금 내가 계획하는 바를 알면 어떻게 악용하려 들 것인가. 그게 가장 조심스러웠다.

애초에 특허라는 것부터가 왕이 자신의 권역 내에서 창안자의 독점적인 권리를 인정해 주는 것이 아니었던가.

이는 바꿔 말하면, 권역 밖에서 특허를 강제하기가 어렵다는 말이었고, 생물종에 관한 지적 재산권 역시 그럴 수밖에 없었다.

그러나 유성룡의 생각은 다른 듯했다.

“쿠보의 말씀에도 일리는 있습니다만, 오히려 늦게 공표하면 남만인들이 원망하지 않을까 싶습니다.”

“그도 그렇군.”

“어차피 모든 것을 손에 움켜쥐고 가기는 어려운 법입니다. 그거 아십니까? 아국은 주본에서 등록된 특허를 준수하고 있지만, 명에서는 아예 대놓고 가져다 쓰는 판국입니다.”

나도 그 이야기는 들은 바가 있었다. 모든 정보가 흘러나간 것은 아니지만, 몇몇 기술은 명나라의 상공업자들이 잘 써먹고 있다고 했다.

- 그깟 잡기, 대국이 써 주는 걸 고마워해야 한다해.

내지는

- 우리 대국은 사람이 더 싸다해.

대충 이런 반응이라고 했던가. 언짢은 일이 아닐 수 없었지만, 유성룡의 말마따나 특허를 준수하라고 강요할 수는 없는 노릇이었다.

어차피 강제할 수 없다면, 아예 시비를 걸 여지를 남겨 놓지 말자는 것이 유성룡의 제안이었고, 그의 말도 이치에 맞았다.

“지금의 특허 제도도 남만인들에게는 상당히 제한적이지 않습니까.”

그 제한적이라는 말은 그들에게 제한적이라는 것이 아니라, 내가 강제하는 것이 제한적이라는 뜻이었다.

그들이 본국으로 가져가서 어떻게 써먹는지는 알 길이 없었고, 얼마만큼의 이익을 남기는지도 마찬가지였다.

그런 이유로 유럽인들에게 사용료를 일시불로 받은 다음, 인도를 기준으로 동쪽에서는 쓰지 못하게 하는 정도로만 제한을 두고 있었다.

물론 유럽의 특허 역시도 마찬가지였지만, 딱히 획기적인 것은 찾아보기가 어려웠다.

“확실히, 어쩔 수 없는 일이지.”

나는 유성룡과 꽤 긴 시간을 들여 의논한 끝에, 다음 주주총회 때 공표하고 생물종 등록에 관한 건을 의제에 올리기로 결정했다.

*       *       *

‘특허와 마찬가지로, 특정한 성격을 지닌 생물 역시 그 품종을 등록하여 독점적인 권리를 인정받을 수 있다.’

‘교배종에 관한 권리는 교배에 사용했던 품종에 관한 권리와는 무관하며, 창안하여 등록한 사람의 권리로 정한다.’

‘해당 내용에 동의하지 않는 국가에 속한 사람은 자신의 권리를 보장받을 수 없으며, 새로운 내용의 등록 또한 불가능하다.’

이 내용을 동양 무역회사의 안건으로 올리자, 총회장은 침묵에 잠겼다.

그 광경을 실시간으로 목격한 유성룡은 나지막한 목소리로 내게 말을 걸었다.

“쿠보, 너무 조용하지 않습니까.”

“다들 머리 굴리기에 바쁠 걸세.”

이 안건이 자국에 이익이 되는지 아닌지부터 시작해서, 어떻게 이용할 수 있을지까지.

여기 있는 사람들은 대부분이 상인이었고, 그들만큼 이익에 민감한 사람도 드물 터였다.

하물며 여기 참석한 유럽 상인들은 모두가 만리타향까지 배를 몰고 온 자들이었으니, 결코 보통내기라고 볼 수는 없는 사람들이기도 했다.

잠깐의 침묵이 끝나고, 가장 먼저 입을 연 쪽은 포르투갈 상인의 대표였다.

“이 건은, 조금 받아들이기가 어렵습니다. 세상 모든 만물은 신께서 창조하신 것인데, 어찌하여 그에 관한 권리를 인간이 나눈다는 말입니까.”

“하지만 인위적으로 사람이 특정 형질만 남도록 유도한 짐승도 없는 것은 아니지 않습니까. 이런 경우라면 이 역시 지적 재산이라 할 수 있을 것입니다.”

네덜란드 상인 대표가 그렇게 반론을 제기했다.

정말로 그렇게 생각해서인지 아니면 역시 정치적 문제가 역인 것인지는 알 수 없었지만, 어쨌든 모두가 이 안건에 반대하는 것은 아니었다.

“조선의 학자가 말하기를, 각국의 사람은 기후와 지리의 영향을 받으며 동물 또한 그러하다고 했습니다. 그러니…….”

처음에는 서로가 나름대로 주장을 조리 있게 말하려 했다. 그러다가 결국은 주장을 단편적으로 외치는 방향으로 흘러가고 말았다.

“보편성이야말로 세상의 이치입니다!”

“신께서는 나라 간의 경계를 자연 환경으로써 정하셨습니다!”

가톨릭적 세계관의 보편성 주장부터, 때 이른 자연국경론까지, 갑자기 시대를 뛰어넘은 근거들이 마구 튀어나오기 시작했다.

역시 이익이 걸리면, 사람의 머리는 더 빠르게 돌아가게 되는 것일까.

그런 생각을 하며 유럽인들이 자기 고향의 지구 반대편에서 벌이는 논쟁을 구경하는데, 옆에 앉아 있던 귀빈이 말을 걸어왔다.

“하핫, 개판이군요.”

“동감이네. 조금 뜻밖이기도 하고. 사실 나는 모두가 찬성하거나, 혹은 모두가 반대할 거라고 생각했는데 말일세.”

프랜시스 드레이크, 그는 당분간 내 행보를 구경하고 싶다면서 스모토에 거취를 정했고, 지금 동양 무역회사의 주주총회장에도 들어와 있었다.

잉글랜드 출신 주주의 동행인이라는 자격이 있었기에, 발언은 허락되지 않았지만 어쨌든 참관만큼은 가능했다.

“쿠보께서는 이렇게 갑론을박이 벌어지는 이유를 아십니까?”

“짐작은 하네만, 바다 건너의 사정까지 세세히 알지는 못하지. 아무래도 정치가 엮인 모양이군.”

“바로 보셨습니다. 네덜란드 친구들이 안건에 찬성하는 거나, 포르투갈 녀석들이 반발하는 이유도 결국은 본국의 사정이 크게 작용하는 거지요.”

합스부르크 왕가는 가톨릭의 수호자로서 보편제국을 주장하고 있었고, 거기에서 독립하려는 네덜란드인들은 지역적 특색을 강조한다는 이야기였다.

비단 네덜란드만이 아니라, 잉글랜드 상인들도, 그리고 일부 섞여 있는 프랑스 상인들까지도 포르투갈과 에스파냐의 반대편에 선 모양새이기도 했다.

“가톨릭 신자로 알려지신 쿠보께 이런 말씀을 드리기는 좀 그렇습니다만…….”

“괜찮네. 저기 프랑스 친구들은 가톨릭이 아니었나?”

“아, 저 친구들은 위그노라고 부릅니다. 저처럼 신교를 믿지요. 뭐 어쨌든. 괜찮으시다니 말씀드립니다마는, 이렇게 치열하게 싸우는 데에는 종교도 적지 않은 이유가 될 겁니다.”

역시 보편교회를 자처하는 구교, 거기에 반발하는 신교가 대립하는 상황이라고 했다.

“자화자찬하는 것 같기는 해도, 우리 신교야말로 과학적이거든요.”

21세기에는 어떤 꼴이 되었는지 대충 아는 입장에서, 드레이크의 말이 크게 와 닿지는 않았다. 어쨌거나 신교의 대항마로 등장한 예수회의 도움도 많이 받았으니, 그런갑다 하고 넘어갈 밖에.

갑자기 유럽 각국의 대리전이 되어 버린 총회는 하루로 끝나지 못하고 다음 날까지 이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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