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85화 공방 검지(7)
내 이름으로 시행된 검지를 공표할 날이 왔다. 참석자들의 면면은 평소와 크게 다르지 않았으나, 귀빈석의 자리 하나는 당사자가 아닌 대리인이 와 있었다.
“자네는, 나가타다라고 했던가?”
처음에 내게 헨키를 요청한 이름. 하지만 내가 굳이 허락하지 않았어도 나름 아부를 한답시고 한 글자(行, 나가)를 가져와서 나가타다(行忠)라고 정했다던가.
하지만 지금 그의 태도는 이름과 약간 거리가 있었다.
겉으로는 필사적으로 공손한 모습을 가장하고 있기는 했다. 그러나 눈에서 불똥이 튀는 걸 보면, 내 선물이 제법 효력을 발휘한 모양이었다.
“예, 쿠보. 아버님께서 미령하셔서, 부득이하게 제가 대신 왔습니다.”
“안타까운 일이군. 내가 말하긴 좀 그렇지만, 미카와노카미도 한창 때가 아니었나.”
내가 도쿠가와 이에야스보다도 많이 젊은 편이이긴 했지만, 이에야스 역시 아직은 지천명보다 불혹이 가까운 나이였다.
오히려 다이묘로서는 완숙하여 최절정기에 가까운 시기라 할 수 있었기에, 갑자기 앓아눕는다는 것부터가 정상적이라고 하기는 좀 곤란했다.
“그래, 병명이 뭐라고 하던가?”
“머리에 풍을 맞으셨다고…….”
머리에 풍이라면, 간단히 줄여서 두풍이라고도 하는 그거 아니었나? 가장 유명한 환자는 역시 삼국지의 조조인 그 병 말이다.
“저런, 두풍이라니. 도쿠가와 공의 어깨가 무겁겠군.”
“걱정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미카와노카미가 갑자기 쓰러졌다는 이야기를 듣고, 나 역시도 근심이 크다네. 도쿠가와 가문도 명색이 동국을 담당하는 한 축이 아니겠나.”
나는 그렇게 말하며, 차를 한 모금 삼켰다.
“참으로 안타까운 일일세. 의원의 처방은 어떻던가?”
“섭생을 조심하고, 가급적 담백한 음식으로 배를 채우라 하였습니다.”
나가타다도 이제는 좀 더 평안해 진 얼굴을 하고서, 자신이 아는 대로 내 질문에 답했다.
“담백한 음식이라……. 하기야 미카와노카미는 덴뿌라를 아주 좋아했다고 들었네. 입맛에 맞는 음식을 즐기지 못하게 되었으니, 참으로 아쉽겠군.”
“아버님께는 쿠보의 마음을 잘 말씀드리겠습니다.”
“음, 잘 부탁하네.”
의외로 나가타다는 폭발하는 일 없이 납작 고개를 숙이는 눈치였다. 나는 거기에 속을 마저 긁어 보았다.
“그러고 보니, 츠다 공이 안부를 전해 달라고 하더군.”
내 말을 들은 나가타다의 눈이 화등잔만 하게 커졌다.
서신의 모양새야 도쿠가와 가문과 오랫동안 거래한 상인이 넌지시 단서를 던져주는 형식이었지만, 사실은 내가 시킨 일이었다.
그래, 그것도 나다. 대충 이런 의미를 담아서 나지막하게 속삭이자, 나가타다의 반응이 좀 더 볼만해 졌다.
얼굴이 창백해 졌다가 곧바로 시퍼렇게 변했다. 붉게 변하는 중간 과정 없이도 저렇게 될 수가 있구나 하면서 구경하는데, 나가타다가 떨리는 목소리로 입을 열었다.
“쿠보, 너무 하십니다.”
“뭐가 말인가?”
“저희 가문을 이렇게 핍박하실 수가 있습니까?”
“핍박이라니. 동국에 새로운 쿠보가 세워지려면, 도쿠가와와 호조, 이 둘쯤은 희생해야 균형이 맞지 않겠나?”
이번에는 다시 나가타다의 얼굴에서 핏기가 쑥 빠져나갔다. 놀리는 맛이 있는 친구였다.
“그, 그걸 어떻게……!”
“제법 괘씸하다고 생각했지만, 그래도 이번 일은 딱 여기까지로 넘어갈 걸세. 앞으로는 선을 넘는 일이 없었으면 좋겠군.”
나는 절망하는 나가타다를 뒤로 하고 내 자리에 앉았다.
예정대로 검지 내역은 공표되었고, 거기에 불만을 제기하는 무사는 나오지 않았다. 그리고 입수한 첩보 그대로, 동국 무사들 중 하나가 입을 열었다.
“쿠보, 그리고 이 자리에 모이신 모든 다이묘 여러분, 소생이 잠시 드릴 말씀이 있습니다.”
쿠로다 시메온이라는 자였다. 원래 그도 사카이 시절에 아군의 하급 장교로 있었지만, 우지히데에게 병력을 붙여주면서 아예 그쪽으로 넘어간 사람이었다.
그리고 지금은 어쨌든 일만 석 이상의 다이묘라는 자격으로 나니와 조약에 가입한 무사이기도 했다.
원래 이름은 쿠로다 요시타카. 원래의 역사에서는 나름 유명한 책사였지만, 안타깝게도 내 진영에는 그가 설 만한 자리가 없었다.
가입한 시점이 그리 오래되지 않았으니, 분명 코가 쿠보를 세우는 문제에 한 표라도 더 거들기 위함일 가능성이 높아보였다
그리고 그들의 계획은 우지히데가 전봉당하고 이에야스가 쓰러진 지금도 그대로 밀고 추진되는 것 같았다.
“음, 시메온 공이었군.”
“기억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쿠보.”
“그래, 시메온 공이 할 말이란 게 무엇인가?”
내가 그의 발언을 허락하자, 시메온이 재차 입을 열었다.
“지금 검지의 결과를 살펴보니, 동국의 많은 지역에서 세입이 크게 줄어 있었습니다.”
“그랬지.”
“그리고 나니와 조약의 가입 기준은 한 해의 석고가 일만 석을 넘기는 것이었습니다.”
그가 말을 할수록, 동국 무사들이 앉아 있는 자리가 웅성거렸다.
“저 역시도 그렇고 말입니다. 분명 제가 봉록을 받았을 적에는 일만 오천 석이었는데, 검지를 하고 보니 오천 석에도 미치지 못하더군요.”
그렇게 일장연설을 한 쿠로다 시메온은 목이 마른지, 준비된 냉차로 목을 축였다.
“나니와 조약에 가입할 적에, 쿠보께서는 무가들의 보호를 약속하셨습니다. 지금도 유효한지 알고 싶습니다.”
나는 시메온의 질문에, 짐짓 심각한 표정을 지으며 턱을 쓰다듬었다.
“흠, 확실히 난제로군. 분명 나는 조약에 가입한 무가의 보호를 약속했네. 하지만 말일세. 기준에 미치지 못한다는 것은, 달리 말하면 약정된 의무를 다하지 못함을 의미하지 않겠나.”
동국에 영지를 둔 다이묘들의 동요가 더욱 심해 졌다. 그리고 시메온이 슬쩍 입꼬리를 올리더니, 본론을 꺼냈다.
“하면 달리 드릴 말씀이 있습니다.”
“말해보게.”
“어쨌든 석고 일만을 넘는 세력이면 쿠보의 보호를 받을 수 있는 것이 아닙니까.”
나는 시메온의 질문에 고개를 말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다면 기준에 미달하게 된 무가들이 서로 힘을 합쳐서 기준을 넘기게 되면, 다시 조약이 유효한 것으로 인정하실 수 있으십니까?”
“못할 것도 없지. 좀 더 구체적으로 말해 보게.”
“코가 쿠보를 탈락하게 된 무가들의 대표로 세우고, 단일 세력을 확립하여 새로이 조약에 가입하면 어떻겠습니까?”
이번에는 동국의 다이묘들이 고개를 끄덕이며 공감대를 형성하고 있었고, 역으로 미요시 마사야스와 모리 테루모토가 서로를 보며 질겁하는 표정을 내보였다.
아케치 미츠히데 역시 나만 바라보면서 안 될 일이라고 필사적으로 고개를 내젓고 있었다.
“그리 하게나.”
“하지만 쿠보, 예? 소생이 분명…….”
“나는 괜찮다고 했네.”
내가 시원스럽게 허락해 버리자, 역으로 시메온이 크게 놀라고 있었다.
“코가 쿠보 밑으로 들어갈 자들을 취합해서 내일 다시 이야기를 하도록 하지.”
* * *
검지 공표에서 이어진 회의가 끝나고, 곧바로 모리 테루모토와 미요시 마사야스, 그리고 아케치 미츠히데가 내 집무실로 달려왔다.
“쿠보, 무슨 생각이십니까!”
“일단 앉지.”
그들의 표정은 당황으로 가득 차 있었으나, 내가 침착한 태도로 자리를 권하자 흥분이 조금 가라앉는 듯했다.
“쿠보,”
이번에는 아케치 미츠히데가 총대를 메고 있었다.
“갈가리 찢어놓고 동국 무가를 억누르는 것이 쿠보의 방침 아니었습니까? 지금 코가 쿠보의 재흥을 허락하시면…….”
“그게 정말 코가 쿠보의 재흥이라고 생각하나?”
내가 되묻자, 세 사람은 다시 생각에 잠겼다. 나는 그들의 생각을 돕기 위해, 몇 마디를 더했다.
“그렇게 코가 쿠보가 세워지면, 실세는 누가 되리라고 생각하나?”
“그야 당연히…….”
이번에는 미요시 마사야스가 입을 열다가 도로 닫았다.
다들 고만고만한 세력으로 쭈그러든 상태에서 실세가 새로 정해지기까지는 얼마나 많은 변수가 있을 것이며, 그걸 각자의 입맛에 맞게 고치려면 또 얼마나 많은 암투가 생겨날 것인가.
거기까지 생각이 닿은 사람이라면, 섣불리 장담하기는 어려울 터였다.
“생각해 보게나. 저들 하나하나가 입을 열면, 각자는 한 마디씩 하지만 내게는 수백 마디가 된다네.”
내 말을 들은 테루모토는 무릎을 치며 말했다.
“어렵고 골치 아픈 일은 새로 세워질 코가 쿠보에게 팔밀이를 하실 생각이시군요.”
“과연.”
마사야스도 고개를 끄덕였다.
“신임 코가 쿠보 밑으로 들어갈 무가들 중 몇몇은 이미 포섭해 둔 상태라네. 아무리 덩치가 커진들 한뜻으로 움직이지 못한다면 무슨 쓸모가 있겠나.”
“역시 쿠보십니다.”
나머지 두 사람은 이제 안심하고 있었지만, 아케치 미츠히데는 영 마음에 들지 않는 듯한 표정을 짓고 있었다.
“그렇다면 결국 또 다른 희생양이 생겨날 뿐이 아닙니까.”
미츠히데는 아시카가 가문의 마지막 적손이 총알받이 신세가 된다는 것을 받아들이지 못하는 눈치였다.
“희생양? 어째서 희생양이 되겠는가?”
“당연히 그렇지 않겠습니까. 코가 쿠보라는 깃발 아래에서 온갖 음모가 난무할 것이니…….”
“그렇게 걱정이 된다면, 아케치 공이 신임 코가 쿠보에게 도움을 주면 되지 않겠나.”
“저는 기나이에 있고, 코가 쿠보는 동국에 자리를 잡지 않겠습니까.”
미츠히데의 우려는 이미 대책이 마련된 상태였다.
“아시카가 가문의 마지막 적손은 이미 내 손에 있다네.”
“예?”
“그리고 정식으로 코가 쿠보에 취임하게 되면, 도성에 저택과 치소를 마련해 줄 것일세. 불측한 마음을 먹은 자들이 어찌 할 수 없다는 이야기지.”
내 설명을 들은 미츠히데도 한결 마음의 짐을 덜어놓은 듯했다.
“코가 땅에 코가 쿠보가 없는 셈이지만, 아무려면 어떤가.”
“제가 잠시 쿠보를 의심했습니다.”
“그럴 수 있지. 그만큼 자네는 신의 있고 충성스러운 사람이라는 거니까.”
그렇게 내부적인 의논이라 쓰고 설명이라 읽는 절차가 끝나고, 다음 날 코가 쿠보의 존재는 정식으로 추인되었다.
동국에 영지를 두었던 다이묘들은 한시름 덜었다는 표정을 짓고 있었고, 오직 호조 우지히데와 도쿠가와 나가타다만이 불만을 삭일 뿐이었다.
나니와 조약은 이제 기나이와 추부 일대에 이르는 무가들의 집합으로 축소되었고, 아예 옵서버로서만 참가했던 모리와 미요시까지 정식으로 참여하는 ‘제일본대명 연석 회의’가 새로이 출범했다.
구성원은 오히려 간소해 졌다. 나와 모리 가문, 미요시 가문, 그리고 도쿠가와 가문에 새로 코가 쿠보로 취임한 아시카가 쿠니우지(足利国氏)라는 자까지, 도합 다섯이 전부였다.
“앞으로, 잘 부탁드립니다.”
쿠니우지는 곱상하게 생긴 자였다. 그러나 한편으로는 강단 있는 성격이 엿보이기도 했다.
“갑자기 코가 쿠보직을 맡으셨으니, 어려움이 많으실 겁니다. 불편한 것이 있으면 편히 말씀해 주시지요.”
역시 신참을 챙기는 것은 아케치 미츠히데였다.
어쨌든 연석회의가 성립했다는 걸 제외하면 달리 안건은 없었기에, 그대로 인사치레만 마치고 해산했다.
“쿠보, 긴히 아뢸 말씀이 있습니다.”
그렇잖아도 곧바로 스모토의 치소로 향하려는데, 시정봉행 토오루가 황급히 내게 달려왔다.
“무슨 일인가? 마침 치소로 가려던 차였네만.”
“추잔의 사신이라는 자가 쿠보를 뵙고 싶다 합니다.”
“추잔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