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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고니시라니-183화 (183/225)

183화 공방 검지(5)

히사히데가 보낸 서신은 간만에 큰 웃음을 주었다.

“하하하하, 참으로 맥아리가 없는 자가 아닌가.”

다이조 키요모토가 마츠나가 히사미치에게 시비를 걸었다가, 기세에 눌려 깨갱하고 물러났다고 했다.

닌자들을 시켜 살펴보니, 역시 다이묘라고는 해도 보잘것없는 수준의 영지를 지닌 자에 불과했다. 특기할 만한 것은 꽤 문벌이 좋다는 것 하나 정도였는데, 지금 그런 거나 봐주고 있을 시대는 아닐 터였다.

“그나저나 병사들을 풀어서 백성들의 이동을 막고 있다고 하는데, 상인들의 통행에는 지장이 없는가?”

“예, 주인님. 통행증을 제시한 사람은 곧바로 통과시켜 준 것을 보면, 반기를 들려고 했던 것은 아닌 듯합니다.”

조사를 마치고 돌아온 이치로가 그렇게 답했다.

“아주 어리석은 자는 아닌 모양인데……. 그래서 지금은 어떻게 지내고 있다던가?”

“9할로 올려 받았던 세금을 4할로 감면하고, 병력의 숫자도 대폭 줄였다고 합니다. 허리띠를 졸라맨 것이겠지요.”

이치로의 보고서에 그 수치가 정확하게 나타나 있었다. 다이조 가문은 그간 병력을 오백가량 유지하고 있었는데, 이번에 감축하면서 이백 언저리를 밑돌고 있다고 했다.

그리고 인근의 다른 다이묘들 역시 사정은 비슷한 것으로 드러났다.

“힘으로 맞붙을 수는 없으니, 안으로 파고드는 모양새로군.”

“가문을 유지하려면 별 수 없지 않겠소이까. 차라리 영지를 처분하고 상경한 자들이 현명한 것일지도 모를 일이오.”

동석하고 있던 마츠나가 히사히데도 한마디를 보탰다.

영지를 매매하거나 담보로 잡는 과정에서 히사히데가 실무진의 뒤를 봐주고 있었으니, 누구보다도 그 사정을 잘 아는 사람일 터였다.

“그보다도……. 이젠 좀 마음이 놓이는군.”

“사에몬자(右衛門佐 좌위문좌, 마츠나가 히사미치의 별명.)도 숙장이 아닙니까?”

“그게, 내가 보기엔 아직도 미숙한 면이 많아서 말이오.”

그는 자신의 아들이 이웃 다이묘와 시비가 붙었다는 소식을 들었을 때, 흥미로움과 심각함이 반쯤 섞인 표정을 보이고 있었다.

그러나 서신을 전부 읽고 난 뒤에는 씩 웃기만 했다.

“쿠보께 자기 영지를 받아갔다고 했을 때는 사실 걱정이 많이 되었소이다.”

정작 히사미치도 히사히데가 삼인중과 싸울 때 일익을 담당했던 장수였지만, 아직도 자기 부친의 눈에는 어려 보였던 모양이었다.

대화가 사적인 방향으로 새려던 것을 잡은 사람은 검지봉행이라는 직위로 총책임을 맡은 혼다 마사노부였다.

“그나저나 말입니다. 나니와 조약에 가입하는 기준은 석고 일만 석의 무사가 아니었습니까?”

“그랬지. 그러고 보니, 인구도 줄고 세율까지 낮췄다면, 그 기준에 못 미치게 되는 자들도 제법 많아졌겠군.”

“어떻게 하시겠습니까?”

이번 기회에 한바탕 물갈이를 하자는 이야기였다.

“일단 두고 보세. 그렇게 칼부터 대고 볼 일은 아니야. 일단 집계부터 보도록 할까.”

“예, 쿠보.”

나는 검지 보고서를 펼쳤다.

“총 1,843석이라…….”

다이묘들 중 극히 일부는 검지를 받아들이지 않았지만, 그들의 수치는 오차범위 내일 정도로 미미했다.

그보다도 내가 기억하는 태합검지의 총량과 의외로 차이가 크지 않았다는 게, 더욱 눈에 띄었다.

“생각보다 좀 적군. 역시 히데요시 때문인가?”

“그런 듯싶습니다.”

그는 자신이 들고 있는 보고서를 뒤적거리며 말했다.

“지방 단위로 묶어서 합을 내보았는데, 유독 간토와 오슈 전체의 석고가 생각보다도 훨씬 더 적었습니다. 호쿠리쿠도 사정은 조금 비슷합니다만…….”

호쿠리쿠 중에서 옛 우에스기의 영지였던 에치고는 히데요시가 점령했던 땅이었다. 부유하기로는 나름 중상위권에 속할 터였지만, 지금은 예상치의 반 토막도 나오지 않았다.

그리고 마사노부가 굳이 호쿠리쿠를 덧붙인 까닭은 그뿐만이 아닐 터였다. 히데요시의 난이 끝난 이후, 카가국은 다시 비협조적으로 돌아섰고, 검지에도 응하지 않았다.

“광신도들을 두고 볼 수만은 없지 않겠습니까.”

“거기도 일단 지켜보기만 하세.”

“쿠보, 정에 기울어지실 일은 아닙니다.”

마사노부는 내가 카가국을 방치하다시피 하는 것이 못마땅한 눈치였다. 그러나 내 생각은 조금 달랐다.

“글쎄, 내가 소에키 선사 때문에 놔두는 거라고 생각하나?”

“아닙니까?”

이제는 종종 마사노부도 입바른 소리를 하기 시작했다. 어쨌든 내가 원하던 변화였기에, 그걸 굳이 지적하지는 않았다.

“단지 소에키 선사 때문이었다면, 켄뇨를 쓰러뜨린 직후에 바로 카가부터 제압했을 걸세. 거긴 일종의 실험장이라고 해 두지.”

“실험장, 입니까?”

“그렇네. 걱정은 말게나. 종교에 기반을 둔 자들은 퍼지는 데에도 한계가 있는 법이니.”

“하긴, 가톨릭의 교세가 요즘 크게 늘었으니, 일향종이 득세하기는 어렵겠군요.”

이번에 검지를 추진하면서, 가톨릭 교회의 도움도 많이 받았다고 했던가.

나는 말 한마디를 슬쩍 흘리기만 했지만, 마사노부는 그걸 아주 잘 주워 먹었다.

호적을 집계하는 과정에서, 그는 각지에 퍼진 선교사들의 도움을 많이 받았다고 했다.

단지 세례성사와 종부성사, 그리고 혼인성사의 내역만 살펴도 인구와 가호가 철커턱하고 나와 주니, 그만한 자료가 또 없을 터였다.

나중에 프로이스 사제도 따로 자리를 마련해야겠다고 생각하며, 나는 다시 논의의 방향을 원래대로 돌려놓았다.

“어쨌든 본론으로 돌아오지. 이런 저런 요인이 끼기는 했어도, 예상했던 총량치와 크게 다르지 않으니, 다른 지방의 세입이 꽤 큰 모양이군.”

“예, 쿠보. 지방별 합으로 따지자면, 긴키의 석고가 단독으로 삼분의 일을 차지하는 형국입니다.”

과연 그 말대로였다.

물론 긴키 지방은 전통적인 범위에 호쿠리쿠를 제외한 추부 지방을 합친 것이기도 했지만, 그렇다 해도 산출된 규모가 상당했다.

긴키가 단독으로 약 육백만 석을 내고 있었고, 그 뒤를 이어 규슈와 주코쿠가 각각 사백만과 삼백만가량으로 집계되었다.

그리고 시코쿠도 벽촌이라는 인식과는 달리, 이백만 석 정도로 크게 약진한 상태였다.

나머지는 약 이백오십만 석 정도였는데, 간토와 오슈, 호쿠리쿠를 전부 합친 것에 해당했다.

“이만하면 정식으로 공표를 해도 좋겠군.”

생물종 조사는 여전히 끝나지 않았지만, 검지 그 자체는 전국시대가 완전히 끝났다는 신호이기도 했다.

“언제로 하시겠습니까?”

“다이묘들이 모일 시간은 있어야 하니, 한 달 뒤로 잡도록 하지.”

“예, 쿠보.”

검지에 대한 이야기는 완전히 마무리가 되었고, 논의에 참석했던 자들은 하나둘 자신의 저택이나 집무실로 돌아갔다.

그리고 이치로는 마지막까지 남아 있었다. 직속 닌자가 남아 있는 걸 본 마사노부 역시 자신이 있어야 할 자리를 깨닫고 여전히 앉아 있는 상태였다.

“이제 모두 나간 모양이군.”

“예, 주인님.”

그는 한 번 더 주변을 살핀 다음, 내 앞에 부복했다.

“도쿠가와 이에야스에 관해 조사한 결과입니다.”

그는 두루마리 하나를 내놓았다. 도쿠가와 이에야스, 그리고 그 아들인 나가타다의 동향이 적힌 보고서였다.

그리고 마지막 장에는 내가 별도로 조사를 시키지 않았던 이름이 올라와 있었다.

“호조 우지히데인가.”

“얼마 전, 그가 도쿠가와 이에야스의 저택에 초대된 적이 있었습니다. 그리고 그 이후부터 우지히데는 동국의 무가들과 빈번하게 접촉했습니다.

우지히데가 만났던 대상은 역시 영지의 인구와 세입이 대폭 꺾인 다이묘들이었다.

“호오……. 꽤나 재밌는 짓을 벌이고 있었군.”

도쿠가와처럼 전부터 세력이 상당했던 가문은 누가 누구를 만났다는 정도밖에 알 수 없었다. 그러나 나니와 조약에 가입할 수 있는 기준을 가까스로 넘긴 경우라면 이야기는 달랐다.

우지히데는 다이묘들을 초대하기도 했지만, 본인이 직접 찾아간 적도 많았다. 그런 경우가 바로 구체적인 내용을 엿들을 기회였다.

“무가들의 불안감을 부추기고 있었군.”

“그런 것으로 보입니다.”

이 약삭빠른 자는 사방이 혼란스러운 중에도 은밀하게 쇼군가의 마지막 생존자를 확보해 두고 있었다.

“아시카가 가문의 적손이라……. 하지만 이제 골동품만도 못한 신세가 아닌가.”

“하지만 동국의 무가들은 적잖이 동요하는 기색이었습니다.”

“그야 그렇겠지.”

아까 마사노부도 언급했던 것이었지만, 히데요시의 난을 거치면서 동국의 많은 가문들이 나니와 조약의 기준에 못 미치는 규모로 내려앉았다.

그리고 그들은 나니와 조약에서 강제로 축출될까 두려워하고 있었다.

조약에 가입했던 당시에는 그래도 석고가 일만을 넘겼던 자들이, 지금은 가까스로 오천 석이나 될까 싶은 상태였다.

이 정도면 그래도 피해가 덜한 편이었고, 아예 일천 석 미만으로 주저앉고 만 자들도 상당했다.

그러니 아예 새로운 공의체를 세우고, 그걸 통해서 나니와 조약의 가입을 유지한 거나 다름없는 상황을 만들겠다는 구상이었다.

그렇다고는 해도 무가들이 택하려는 수단은 너무나도 멍청했다.

“아시카가의 마지막 생존자를 코가 쿠보로 다시 세운다라…….”

정식으로 코가 쿠보의 존재를 폐지하지는 않았으니, 말이 안 되는 것은 아니었다. 그러나 하필 사카이 쿠보에게 코가 쿠보를 들이밀겠다고 하면, 그걸 내가 어떻게 봐야 할까.

마사노부가 내 심기를 알아차린 듯, 먼저 질문을 던졌다.

“어찌하시겠습니까?”

“무가들이 부화뇌동하는 것도 이해는 가지만,”

내가 말을 끊자, 마사노부는 침을 꼴깍 삼켰다.

“경고는 남겨야겠지.”

“그렇다면 역시 도쿠가와 이에야스를 불러들이시겠습니까?”

“물론 뿌리를 캔다면 그쪽에 있기야 하겠지만 말일세. 이 너구리가 굴에 박혀서 여우를 조종하고 있으니, 남들은 그걸 알지 못하고 있지 않은가.”

“하면……?”

지금 수면 가까이에 있는 것은 호조 우지히데였지, 도쿠가와 이에야스는 아니었다. 그러니 일벌백계로 다스릴 대상도 우지히데일 터였다.

나는 우지히데에게 많은 것을 베풀어 주었지만, 그는 번번이 실망만 안겨 주었다.

“일단 우지히데를 불러들이고, 개역과 전봉을 준비시키도록 하지.”

“저, 전봉입니까?”

누군가는 책임을 지게 해야 한다. 마사노부 역시 동의하는 바였지만, 내가 꺼낸 수단은 생각지 못한 눈치였다.

“그렇네. 다른 자는 몰라도 그 자의 터전은 내가 마련해 주다시피 했으니, 내가 가져가는 것도 당연하지 않겠나.”

마침 남아도는 영지는 아주 많았다. 그중 하나에 우지히데를 처막을 생각이었다.

“그렇다면 이에야스는 어찌하시겠습니까?”

“요즘 벌이는 사업이 많다고 하더군.”

도쿠가와 가문은 진작에 병력을 줄이고, 공장을 미카와에 유치하는 식으로 대거 투자를 하고 있었다.

역시 내 노선에 적극 동참하는 것 같아서 좋게 봤더니, 뒤로 음험한 수작이나 부리는 모양새였다.

“거상들과 이야기를 좀 해 봐야겠군.”

“과연…….”

마사노부는 내가 무엇을 하려는지 짐작한 듯했다.

“너구리가 아무리 영리해도, 굴을 막아 버리면 그만이 아니겠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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