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82화 공방 검지(4)
“정말이지, 에조치는 너무 춥습니다. 이런 곳에 대체 왜 오신 겁니까?”
“말했잖나. 히데요시, 그자가 무엇으로 기반을 세웠는지 조사하기 위함일세.”
스즈키 시게히데는 그렇게 자신의 부하를 달랬다.
하지만 그도 지금의 상황이 마음에 들지 않기는 마찬가지였다. 다만 한 가지, 여기에서 사금이 대량으로 나왔다는 이야기만이 그의 기대를 지탱하고 있었다.
“뭐, 무식한 놈들이 힘 좀 보여 주니까 바로 무릎을 꿇은 게 아니겠습니까?”
“그 에미시가?”
에미시는 아주 강인한 족속으로 유명했다. 비록 지금은 그 명성이 야인들의 행패에 묻히고 말았지만, 전부터 일본인들은 에미시가 일당백이라며 경계해 왔다.
“이봐, 잘 생각해 보라고. 차라리 막대한 사금으로 구워삶았다고 하면 말이 되지 않겠나?”
“그도 그렇긴 합니다.”
남쪽에서 온 사람들이 수다로 추위를 잊는 동안, 어느새 발걸음은 그들이 목적한 곳에 다다랐다.
“웬 놈들이냐?”
“우리는 사카이 쿠보의 명을 받아 온 사람들이다. 너희들은 누구인가?”
“사카이 쿠보? 그가 누군지 우리는 알지 못한다. 여기는 사르 부족의 땅이니 이방인은 썩 돌아가도록 해라.”
아무래도 그 사이에 다른 자들이 여기를 차지한 모양이었다. 그러나 역시 히데요시의 잔당이 둔갑하고 있는 것일 수도 있었기에, 시게히데는 그들에게 질문을 던졌다.
“혹시 유후이 카무이를 아는가?”
그 이름은 히데요시가 에미시에게 썼던 칭호였다. 그리고 그 질문은 새로운 반응을 이끌어 냈다.
“우휴이 카무이?”
에미시 사람들은 무기를 치켜들고 흉흉한 기세를 흘렸다. 그들의 태도가 바뀐 것을 본 시게히데는 자신이 잘못 건드렸다는 것을 깨닫고, 얼른 다음 말을 꺼냈다.
“우리는 유후이 카무이를 무찌른 사카이 쿠보께서 보내신 자들이다. 그 잔당을 찾으러 왔으니, 혹시 아는 게 있다면 말해주기 바란다.”
이어지는 말을 들은 상대편은 다시 무기를 내려놓았다. 그리고 그들 중에서 한 중년인이 앞으로 나왔다.
“유후이 카무이, 그자는 우리 부족을 내쫓고 부족의 터전을 자신의 땅으로 삼았다. 그의 잔당은 모조리 처치했고, 이제 원래 주인이 돌아온 것이다. 네가 찾는 자들은 이제 여기에 없다.”
이 역시 유키나가, 그 친구가 예상했던 일들 중 하나였다. 만약 손을 잡을 만한 자들이 삿포로라는 땅을 차지하고 있다면, 절대 맞서지 말라고 했다.
“듣던 중 반가운 말이구려. 그렇다면 우리는 친구인 듯하외다. 날씨가 추운데 해가 지고 있으니, 하룻밤 묵을 수 있겠소이까?”
사르 부족은 시게히데의 청을 수락했다. 그리고 고니시 유키나가의 심부름꾼이 늦게까지 설득한 끝에, 그들은 교역을 받아들였다.
* * *
히타치 니이하리를 다스리는 다이조 가문은 18대를 전해 내려온 유서 깊은 가문이었다.
4대본성 중 헤이케의 후예인 그들은, 격동의 시대를 거치면서도 그 대는 끊이지 않았고 꿋꿋하게 살아남았다.
지금의 가주인 키요모토 역시 자신의 가문을 자랑스러워했고, 선조들처럼 훌륭하게 영지를 지켜왔다.
전국시대의 혼란 중에도, 일향종의 잇키 속에서도, 히데요시의 난에도 그는 꿋꿋이 버텼다. 단지 운이 좋았을 뿐이지만, 본인은 그 사실을 알지 못했다.
그리고 지금의 그는 일생일대의 대위기를 겪고 있었다.
“백성들이 또 도망쳤다고?”
“그, 그렇습니다, 주군”
가문과 영지는 보전했지만, 백성들이 떠나는 건 틀어막기가 아주 어려운 일이었다. 가문의 병사들을 모조리 풀어도, 오히려 병사들까지 한 패거리가 되어 떠나는 경우가 부지기수였다.
“그래, 이번에는 어디로 갔다고 하더냐?”
“남쪽이라 했습니다.”
“끙…….”
얼마 전에는 백성들이 북쪽의 타무라군(郡)을 바라고 달아난 적이 있었다. 거기는 사카이 쿠보의 영지였다.
최근 이슌신이라는 자가 대관(代官)으로 있다고 하던데, 그의 통치 때문에 아주 살기가 좋아졌다고 했다. 그 소문이 백성들을 들뜨게 했던 것이다.
한 번은 사람을 보내고 그 다음에는 자신이 직접 가서 따졌지만, 결과는 신통치 않았다.
- 글쎄, 귀공의 말은 잘 알겠소만, 정말로 귀공의 영지에서 왔다는 증거가 있소이까?
달아난 백성들은 영악하게도 이름까지 싹 바꾸고 타무라의 주민이 되어 있었다.
- 글쎄, 쇤네는 이 마을에서 줄곧 살아왔는지라…….
분명 그렇게 말한 자는 성 아랫마을에 살았던 료이치였다. 그러나 이미 저쪽에서는 말을 맞춰 놓고 있었기에, 키요모토의 주장은 억지로 취급될 뿐이었다.
그렇게 허탕을 친 키요모토는 비슷한 처지의 무사들과 힘을 합쳐야만 했다.
- 이렇게 된 이상, 타무라로 가는 길을 틀어막읍시다!
- 옳소!
감히 쿠보의 직할령에 손을 댈 수는 없었지만, 백성들의 이동을 차단하는 것 정도라면 충분히 가능한 일이었다.
이 방침은 의외의 성과가 있어서, 니이하리보다도 훨씬 더 남쪽 지방에서 올라온 유랑민을 붙들어 놓는 성과도 거두곤 했다.
그걸로 끝이었으면 좋았을 것인데, 키요모토의 치세를 위협하는 존재는 타무라의 이슌신만 있는 게 아니었다.
북으로 가는 길을 막아 놓으니, 이제는 남쪽으로 달아났단다. 그래도 이번에는 절대 감출 수 없는 증거를 만들어 놓은 상태였다.
“이번에는 반드시 놈들을 붙들어 와 일벌백계로 징치할 것이다!”
* * *
마츠나가 히사미치는 기분 좋은 나날을 보내고 있었다.
그의 부친인 히사히데는 자신의 영지를 반납하고 쿠보의 중신이 되었지만, 그는 자신의 터전에 대한 욕심이 없지 않았다.
그러던 차에 사카이 쿠보가 영지 수여를 제안했다.
- 자네, 영지를 가져 볼 생각은 없나?
- 저, 정말입니까, 쿠보?
- 원래는 자네 부친에게 말을 꺼내려 했지만, 한사코 받으려 하지를 않아서 말이야.
히사히데는 영지 경영 따위는 귀찮을 뿐이라고 말하곤 했다.
하지만 후손된 입장에서는 당대로 끊길 봉록보다는 토지가 더욱 매력적이었다. 히사미치는 항상 자신의 부친이 쿠보 밑에 들어가면서 영지를 반납했던 것을 아쉽게 여기고 있었다.
- 시모사국에 이만 석을 줄까 하는데, 어떠한가?
- 감사합니다, 쿠보!
시모사국은 긴키의 다른 지역에 비하면 벽지 중의 벽지라고 할 수 있었지만, 히사미치에게 석고 이만 석이라는 규모만큼은 아주 만족스러웠다.
사카이 쿠보 밑에서 일했던 다른 장수들 역시 저마다의 토지를 받았다. 쿄타로는 자신의 고향이었던 가즈사국에 일만 석을, 그리고 야규 무네요시는 시모사국에 일만 오천 석을 지닌 다이묘가 되었다.
영지의 경영은 히사히데가 말했던 것처럼 그리 까다로운 일도 아니었다. 쿠보가 붙여준 대관들은 유능했고, 그들에게만 맡겨도 막힘없이 영지가 굴러갔다.
“아니, 어떻게 세금을 고작 3할만 받는단 말입니까? 이러고도 유지가 될 수 있을지…….”
“문제 있나?”
“있고말고요. 이래서는 무사들 녹봉도 주기 어려울 겁니다. 3할만 받으라고 말한 자들은 모조리 내치시지요.”
지역의 유지 중 하나는 세금을 3할로 낮추자고 한 대관들이 쿠보의 감시역이라고 주장했다. 영지는 내려주었으나, 그 힘을 깎아내리기 위해 술수를 쓴 것이라는 이야기였다.
“주의하셔야 할 겁니다. 자고로 힘 있는 신하는 팽 당하는 법이 아니겠습니까.”
그러나 내쳐진 쪽은 쿠보가 붙여 준 대관이 아니라, 그 반대편에 있던 자였다.
“아주 재밌는 말을 하는군. 자네가 감히 마츠나가 일족과 쿠보를 이간질하려 하다니.”
히사미치로서는 감시역이 붙었다고 해도 거리낄 게 없었다. 이제는 전국시대도 끝났다. 설령 일본이 다시 전란에 휩싸인다고 해도, 쿠보가 패배하지 않는 이상 그의 영지는 무사할 터였다.
지역 유지는 영주의 분노를 사서 숙청되었다. 그렇게 간사한 자는 뿌리를 뽑고, 영지민들의 존경을 받으며 지내고 있었다.
그런 와중에 불청객이 접견을 요청해 왔다.
“손님이 왔다고?”
“예, 주군.”
마츠나가 히사미치는 턱을 쓰다듬었다.
“다이조 키요모토라 하던데, 어찌할까요?”
“그게 누군데?”
“북쪽에 니이하리 군을 다스리는 다이묘인데, 매우 유서 깊은 가문의 후예입니다.”
이웃의 영주가 찾아왔으니, 아주 문전박대를 할 수는 없는 노릇이었다. 더구나 그의 부친은 항상 처신을 조심하라고 했다.
“일단 들여보내 봐.”
키요모토라는 자는 잔뜩 굳은 얼굴로 성의 응접실에 들어왔다.
“그래, 무슨 일이시오?”
“내 백성들이 귀공의 영지로 도망쳤소이다. 그들을 붙잡아서 넘겨주시오.”
그 말을 들은 히사미치는 얼마 전에 받았던 보고를 떠올렸다.
유랑민들이 대거 그의 영지로 들어왔다고 했던가. 그게 키요모토의 백성들인 모양이었다. 물론 손님의 말이 맞다면 말이다.
히사미치가 뭐라고 말하기도 전에, 다이조 키요모토가 못을 박듯이 먼저 입을 열었다.
“나는 백성들에게 인두로 흔적을 남겨두었소이다. 그러니 감출 생각은 마시오.”
“호오?”
처음에는 히사미치도 앞뒤를 따질 생각이었다. 정말로 유랑민이 니이하리에서 왔다면, 까짓 거 돌려보내지 못할 것도 없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지금 키요모토의 태도가 그의 속을 건드렸다.
“백성을 돌려달라고?”
“그렇소이다.”
“내가 왜?”
영지의 백성은 영주의 자산이나 마찬가지니, 돌려달라는 건 이해를 할 수 있는 영역이었다. 그러나 그 태도가 너무나도 불손했고, 무엇보다도 사람에게 인두를 찍었다는 게 마음에 들지 않았다.
마츠나가 가문도 히사히데의 대에 일어난 무가였고, 이전에는 일개 평민에 불과했다. 그리고 히사미치 역시 그 사실을 아주 잘 기억하고 있었다.
“얼마나 멍청하게 굴면 영지의 백성들이 고향을 등지고 탈주한단 말인가.”
“뭐, 뭐라고?”
“바보라고 했소이다. 영지 관리도 제대로 못하는 머저리가 꼴에 귀는 있는 모양이군?”
히사미치의 면박을 들은 키요모토의 얼굴이 창백하게 되었다가, 붉게 달아올랐다가, 마지막으로 시퍼렇게 변했다.
“가, 감히 이럴 수가 있소이까! 쿠보도 아와지로 도망친 백성들은 곱게 돌려보내 주기로 했는데, 어찌 그 졸개 따위가 옛 법도를 거슬러…….”
“옛 법도라, 뭔가 착각하는 모양이군. 아와지는 아와지고, 여기는 내 영지야.”
주인이 눈을 빛내자, 손님은 멈칫했다. 그 기세를 몰아서 히사미치는 자신의 말을 이어나갔다.
“내가 사람을 보내서 네 땅의 백성들을 끌어온 것도 아니고, 그들이 자기 발로 도망친 걸 나더러 어쩌란 말이냐.”
그 역시 쿠보의 중신으로서, 당시에 어떤 이야기가 오고갔는지 잘 알고 있었다. 그리고 동시에 아케치 미츠히데하고도 친분이 있어, 그에게 많은 이야기를 듣곤 했다.
아케치 미츠히데 역시 자신의 영지를 개명적으로 통치했고, 이와 비슷한 일이 제법 많았다는 이야기도 종종 해 주었다.
상인들이 유랑민을 숨겨 주는 것은 그 배후에 있는 쿠보에게 따질 빌미가 되지만, 백성이 직접 도망쳐 온 것은 그렇지가 않았다.
이런 경우에는 두 당사자가 합의를 하는 게 보통이라고 했던가. 과거에는 대체로 전쟁 내지는 결투로 승부를 보았다고도 했다.
“네 녀석도 무사라면, 칼을 뽑아라. 아니면 당장 군대를 일으켜 한번 붙자.”
“히, 히익!”