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내가 고니시라니-181화 (181/225)

181화 공방 검지(3)

“참으로 엉망이군.”

이순신은 마을을 살펴보며 혀를 차기만 했다. 그도 풍문으로 동쪽 지방이 피폐해졌다는 소문을 들은 적은 있었다. 그러나 막상 부임하고 보니 정말 참담하기 그지없을 정도였다.

“그래도 이런 상황이니 내게 맡기신 거겠지.”

그는 그렇게 중얼거리며, 경공방과의 대화를 떠올렸다.

- 조선에서는 장수도 목민관을 할 때가 있다지?

- 그런 편입니다.

- 잘 된 일이로군. 자네가 목민관 노릇을 좀 해주어야겠네.

- 저는 일본인이 아니며, 공방의 밑에서 백의종군을 하는 신세가 아닙니까.

- 바꿔 말하면 내가 마음대로 일을 맡길 수 있다는 게 아니겠나.

백의종군은 보통 1년을 넘기지 않았다. 고작해야 서너 달 정도면 해제가 되어 원래의 품계로 돌아오곤 했다.

물론 이번은 다소 특별한 경우였고, 특별히 2년의 기한이 정해져 있었다. 그러나 역시 지방관을 맡기에는 다소 부족할 터였다.

- 그렇다고는 해도 제가 맡을 수 있는 기간은 이제 1년을 겨우 채울 수 있을 뿐입니다.

관찰사쯤 되고 보면 직접 목민을 하기보다는 하급 수령의 관리감독을 위주로 하기 때문에, 1년이나 2년으로 임지를 바꾼다.

현감이나 군수 같은 경우에는 그 임기가 5년으로 정해져 있었다. 경공방이 그에게 요구한 역할도 이쪽에 가까웠기에, 처음에 이순신은 이 제안을 거부하려 했다.

- 내겐 그 1년이 중요하다네. 그래도 한 번의 과정을 온전히 밟을 수 있는 기간이 아닌가.

소서행장은 그에게 지방관으로서의 업무를 정립해달라고 요구해 왔다.

- 일본의 사정은 자네도 알고 있겠네만, 제대로 된 지방관을 세우기가 무척이나 어려운 실정일세. 딱 1년만 부탁하네.

모든 업무와 행사를 기록으로 남기라는 요구는 조선에서도 해 왔던 일이었기에 그리 까다롭게 여기지 않았다.

단지 그는 일본 사람이 아니었기에, 아주 이질적인 백성들을 다스려야 한다는 것이 다소 부담스러웠을 뿐이었다.

그러나 그 모든 걸림돌은 공방이 알아서 치워 주겠다고 장담했고, 결국 그는 석성국(石城国, 이와키)의 전촌(田村, 타무라)이라는 지역의 군수 자리를 받아들였다.

이순신이 오면서 우려했던 것들은 정작 큰 문제가 되지 않았다. 그보다는 피폐해진 마을을 재건하는 일이 더욱 급했다.

“본디 지방관의 업무는 수령칠사라 하네. 그러나 지금은 농사와 양잠을 진흥하는 것조차 불가능하고, 학교를 세운다 해도 누굴 가르칠 수조차 없겠지. 게다가 저런 지경에 부역과 군정을 시행할 수도 없음이니, 급한 것부터 해야 할 것일세.”

“예, 카미(守 수, 여기서는 군수) 나으리.”

경공방이 붙여 준 서리들이 고개를 숙이며 답했다. 모두가 주본(洲本)에서부터 따라온 자들이었다.

그가 요구받은 일은 재건 그 자체보다도 지방관 업무의 정립이었고, 이순신은 그에 따라 서리들을 지도하듯이 명령을 내렸다.

방금 수령칠사를 운운한 것도 그 일환에 가까웠다.

그리고 이순신은 서리들 중 하나를 지목하며 구체적인 지시를 내리기 시작했다.

“도도, 자네는 병사들을 이끌고 마을을 순찰하며 보호하되, 절대 백성들이 놀라게 해서는 안 될 것이네.”

서리 중에는 도도 다카도라도 있었다. 경공방은 그를 붙여 주면서 말하길, 근성이 있는 자라고 했다. 특히 이순신과 함께하면 그 성품이 배가 될 것이라고 했는데, 아직까지 이순신은 그 이유를 알지는 못했다.

“명을 받듭니다.”

도도 다카도라가 나간 뒤에도 이순신은 서리 하나하나를 부르면서 일을 맡겼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남은 자가 있었다.

“이시다, 미츠나리라고 했던가.”

“그렇습니다.”

미츠나리 역시 도도 다카도라가 잡힐 때, 같이 잡혀왔다.

그는 처음에 전향하려 하지 않았다. 그러나 하시바 히데요시가 오다 노부타다와 노부카츠를 암살하려 했다는 이야기를 들었을 때는 망설이기 시작했고, 마지막에 보인 추태를 목격하고는 끝내 돌아섰다.

그러나 도도 다카도라와는 달리, 이시다 미츠나리는 공방의 사람들에게 경계를 사고 있는 상태였다. 그리고 이순신 역시 그를 온전히 신뢰하지는 않았다.

“자네는 내 옆에서 업무와 행사에 관한 모든 내역을 기록하도록 하게.”

“예, 카미.”

당연히 도주의 우려를 감안한 결정이었지만, 동시에 가장 중요한 일을 맡긴 것이기도 했다.

그가 생각 외로 학식이 뛰어난 것도 이유 중 하나였지만, 무엇보다도 소서행장의 언질이 있었다.

- 이시다 미츠나리는 길을 잘못 잡았을 뿐, 본시 문관에 가까운 인물이네. 본인의 의지도 상당하고, 무단보다는 문치에 기울 자이니 신경을 좀 써 주게나.

이순신은 지금도 일본인의 속내는 알기가 어렵다고 생각했다. 한 길 사람 속은 모른다지만, 이들은 그런 경향이 너무나도 컸다. 그렇다고는 해도 언질까지 받은 이상, 공방의 말에 따라 그를 눈여겨볼 참이었다.

업무를 나눈 뒤, 그는 먼저 그간의 통치가 적힌 장부부터 확인했다.

“아까 우리가 지나온 촌락이 미하루라고 했던가.”

“예, 카미.”

“언뜻 보아도 오십 호(戶)를 넘기지 못할 터였는데 어찌하여 여기에는 오백 호로 적혀 있는가?”

지금까지 임시로 타무라군의 통치를 맡았던 토착민 중 하나가 그 질문에 답했다.

“조사를 하기조차 난망하여, 이전의 기록을 그대로 쓰고 있었습니다.”

“하면 세금은 그대로 오백 호만큼을 걷으려 했겠군.”

“그렇지는 않습니다. 쿠보께서 하명하시기를, 카미께서 오기 전까지는 도적떼가 출몰하는지만 확인하라 하셨기에…….”

이순신은 한숨을 내쉬었다. 그나마 상황이 더 악화될 만한 것은 없었지만, 공방이 왜 그를 보냈는지를 새삼 깨달았다.

“지금까지 가호(家戶)를 조사할 생각은 없었는가?”

“따로 명이 없는 이상, 임의로 조사를 시행하는 것은 월권입니다. 게다가…….”

“게다가?”

“글과 숫자를 아는 사람도 원체 드문데다가, 이번에 상당수가 죽어나갔기에…….”

역시 알만한 이야기였다. 이 나라는 무사들이 다스린다고 했다. 그리고 이들은 붓을 잡는 경우가 드물었고, 보통 창칼을 먼저 익혔다.

근기(近畿, 긴키)나 서국 일대는 그래도 식자가 많은 편이었지만, 이런 벽지에 그만큼의 식자가 있기를 바라는 것은 억지일 터였다.

그날의 일과가 끝난 뒤, 이순신은 서리들을 불러 모아서 맡긴 일을 조금씩 사정에 맞게 고쳤다.

대부분은 가호를 조사하는 것을 우선시하는 방향으로 바꾸었고. 도도 다카도라 역시 마을의 규모를 셈하라는 지시를 받았다.

*       *       *

무자년(1588년) 7월 초하루, 맑다.

- 치소에 나가 공무를 보았다. 가호를 새롭게 조사하게 했다.

무자년 7월 초이틀, 맑다.

- 치소에 나가 공무를 보았다.

무자년 7월 초사흘, 맑다.

- 일본의 세금은 너무나도 과중한 것이 아닌가 싶다. 지금까지의 장부를 살펴보니, 남아 있는 기록에는 8할이 대부분이었다. 가끔 흉년이 든 해에는 6할로 낮아지기도 했지만, 이래서는 사람이 살 수 없을 듯했다.

무자년 7월 초나흘, 맑다.

- 등당고호 밑의 병졸 하나가 백성을 속이고 콩 닷 되를 갈취했다. 당사자는 참하고, 그 책임자인 등당고호는 곤장 다섯 대를 쳤다.

무자년 7월 초닷새, 맑다.

- 등당고호 밑의 병졸 하나가 백성을 위협하여 소금 한 되를 빼앗았다. 당사자는 참하고, 그 책임자인 등당고호는 다시 곤장 다섯 대를 쳤다.

…….

무자년 7월 열하루, 흐리다.

- 등당고호가 스스로를 묶어 죄를 청해 왔다. 병졸이 죄를 저질러 직접 참했다고 했다. 사실을 확인해 보니, 그의 말과 다르지 않아 방면했다.

무자년 7월 열이틀, 소나기가 오다.

- 치소에서 일하는 하인 하나가 공방에게 받았던 거울을 깨뜨렸다. 엄히 주의를 주고 불문에 붙였다.

…….

무자년 7월 열닷새, 비가 그치다.

- 다시 군졸의 비리가 빈번하여, 다섯의 목을 치고 등당고호는 곤장 스무 대를 쳤다. 등당고호가 억울함을 호소하며, 치소의 하인이 거울을 깨뜨린 일을 거론했다. 실수와 범죄는 엄히 구분해야 하기에, 등당고호를 계도했다.

…….

…….

…….

무자년 11월 초사흘, 맑다.

- 늑대가 마을을 습격했다. 순찰 중이던 병사들이 총포를 쏘아 내쫓았다. 다행히 피해는 없었다.

무자년 11월 초나흘, 맑다.

- 전촌군 각지에 늑대가 창궐하여 병사들을 소집했다. 이미 우마의 피해도 적지 않았고, 더러는 죽은 사람도 있었다. 산지를 돌며 맹수를 사냥했다.

…….

…….

…….

기축년(1589년) 3월 열하루, 흐리다.

- 마을에서 기르는 소의 숫자를 셈했다. 송아지까지 모두 합하여 수효가 두 배 가까이 늘었다.

기축년 3월 열이틀, 비가 오다.

- 겨울잠에서 깬 곰이 마을을 습격했다. 죽거나 다친 사람은 없었으나 소 다섯 마리가 상하고 한 마리가 물려갔다.

기축년 3월 열사흘, 비가 그치지 않는다.

- 치소에 나가 공무를 보았다.

기축년 3월 열나흘, 마침내 비가 그치다.

- 병사들을 소집하여 곰을 사냥하게 했다. 굴에 소의 뼈가 있었기에, 얼마 전 마을을 습격한 곰이라는 것을 알 수 있었다.

…….

…….

…….

기축년 4월 스무이틀, 맑다.

- 공방이 치계를 확인하고 군대를 보냈다. 유해조수는 토벌이라며, 많은 철포수가 산으로 올라가 맹수를 사냥했다.

…….

기축년 5월 초하루, 맑다.

- 일본에는 호랑이가 없으나, 곰이나 늑대, 들개 따위의 맹수는 아주 많다. 공방이 보낸 군대는 곰을 족히 열 마리도 넘게 잡았고, 죽은 늑대의 숫자는 셀 수 없었다.

기축년 5월 초이틀, 맑다.

- 들개의 우두머리를 잡았다. 주민들은 개 대장이라고 불렀는데, 과연 우두머리를 잃은 무리는 뿔뿔이 흩어졌다. 도도 다카도라가 새끼를 맡았다, 조금 큰 놈을 살생환이라 하고, 작은 놈을 견야차라 하려 했으나, 흉한 이름이었기에 복실이와 복돌이로 바꾸라 했다. 일본인의 감성은 알기가 어렵다.

기축년 5월 초사흘, 맑다.

- 치소에 나가 공무를 보았다

…….

…….

기축년 6월 스무하루, 맑다.

- 치소에 나가 공무를 보았다.

기축년 6월 스무이틀, 맑다.

- 치소에 나가 공무를 보았다.

*       *       *

“한 해가 참 빨리도 지나갔군.”

이순신의 임기도 거의 끝났다. 내일이면 새로운 군수가 올 것이라 했고, 그도 그리운 조선으로 돌아갈 날이 가까워졌다.

“카미 나으리의 다스림이 아니었다면, 지금도 저희는 여기저기를 떠돌며 빌어먹고 살았을 겁니다.”

“쿠보의 의지가 있었으니, 그렇게 나빠지지는 않았을 것이네. 그리고 마땅히 해야 할 일이었으니 내게 고마워할 일은 아닐세.”

“그래도 죽을 것이 살게 되었으니, 이 은혜를 어찌 잊는단 말입니까.”

타무라군의 각 촌락에서 온 촌장들이 눈물을 글썽였다. 그러더니 이순신에게 상자 하나를 내밀었다.

“이제 떠나시는 마당이니 선물을 받으셔도 되지 않겠습니까. 저희들이 마음을 모아서 드리는 겁니다.”

“나는 이것을 받을 수 없네. 아직 마을이 옛 모습을 찾지 못했다 하니, 정히 내게 고마운 마음이 있거든 재건에나 힘쓰도록 하게나.”

“카미 어른…….”

다음 날, 이순신은 왔던 모습 그대로, 아니 그보다도 더 단촐한 행장으로 주본을 향해 발걸음을 옮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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