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내가 고니시라니-179화 (179/225)

179화 공방 검지(1)

사카이 쿠보가 검지를 실시한다. 이 소식이 알려지자 은밀하게 회합을 벌인 자들이 있었다.

“어서 오시오, 우마노카미. 미카와노카미도 안에서 기다리고 있소이다.”

“이런, 약간 늦었구려.”

모리 테루모토는 저택의 주인인 미요시 마사요시의 안내를 받으며 다실로 들어섰다. 주인이 말한 것처럼, 안에는 도쿠가와 이에야스도 자리한 상태였다.

참석하기로 한 사람들이 모두 모였음에도 불구하고, 장내는 고요하기만 했다.

서로가 무슨 의도와 목적으로 왔는지는 잘 알고 있었지만, 그 구체적인 수단은 까마득할 뿐이었기 때문이다.

차주전자가 펄펄 끓고 숯이 하얗게 타도록, 그들은 묵묵히 앉아만 있었다. 그러다가 이 갑갑한 분위기를 참다못한 마사야스가 먼저 말문을 꺼냈다.

“우리가 여기에 숯불 구경이나 하자고 모인 것은 아니지 않소이까.”

애초에 마사야스의 저택이 회합 장소로 정해진 이유도 그의 의도와는 다소 거리가 멀었다. 단지 그의 영지가 세 사람 중에서 가운데에 위치했기 때문일 뿐.

그나마 마사야스 본인도 뭔가 이야기를 할 필요는 있다고 생각했기에, 흔쾌히 자신의 저택을 제공했던 것이다.

“우마노카미가 처음으로 이야기를 꺼냈으니, 어찌하고자 하시는지 말씀을 먼저 하시구려.”

세 사람이 의견을 모아야 한다. 그렇게 가장 먼저 주장했던 사람은 저택의 주인인 마사야스도, 쿠보의 동맹 중 마지막으로 합류했던 이에야스도 아니었다.

오히려 그들은 사카이 쿠보에게 항거의 뜻으로 비칠 수 있는 이 자리를 껄끄럽게 생각했다. 다만 나머지 두 사람 역시 어엿한 군웅 중 하나였고, 자신의 영지에서는 왕이나 다름없는 권력을 누리던 차였다.

그 기반이 얼마나 되는지 까발리는 일은 찜찜할 수밖에 없었다. 그러나 총대를 매는 것은 부담스럽기에, 회합을 제안했던 모리 테루모토에게 슬쩍 팔밀이를 하려고 했다.

그러나 테루모토도 쉽게 꼬리를 내주지는 않았다.

“검지는 중요한 일이니, 뭔가 이야기를 할 만한 게 있지 않을까 하여 만나자고 했던 것이오.”

검지까지 끝난 순간, 사카이 쿠보의 입지는 그대로 완전하게 굳어진다.

여기 있는 사람들이 세금을 내거나 하는 것은 아니었기에, 얼마가 산출이 되든 의미가 없는 것은 아닐 터였다.

“사실, 나는 검지는 시기상조라고 생각하오. 아직 동국의 상처도 아물지 않은 판에, 벌써부터 가호를 셈하고 토지를 측량한다니……. 얼마나 많은 노고가 들겠소이까.”

그러나 처음 회합을 제안했던 자로서 아무 말도 하지 않고 넘길 수는 없었는지, 그는 자신의 생각을 곱게 포장해서 내어놓았다.

“그야 쿠보께서 다 감안하고 결정하신 일이 아니겠소이까. 더구나 동국의 복구가 최우선이 될 거라고 천명하셨다는 이야기도 있었소.”

마사야스는 그렇게 발을 빼려 했다. 체면 때문에라도 회합에 참여는 했지만, 쿠보에게 반기를 드는 것으로 비치는 것은 사양이라는 태도였다.

“그렇게만 보실 일은 아니외다. 지금도 동국의 민심은 박살이 난 상태인데, 여기서 검지를 실시한다고 생각해보시구려. 잇키가 일어나도 이상하지는 않을 거요.”

테루모토의 말에도 일리는 있었다. 이들은 검지를 껄끄러운 정도로만 여기지만, 직접 세금을 내야 하는 백성들의 입장에서는 치가 떨릴 일이기도 했다.

“이런 중대사는 신중하게 접근해야 한다고 간언하고 싶지만, 나 혼자서는 역부족이라 공들을 청한 것이오.”

모리 테루모토와 미요시 마사야스, 두 사람이 열띤 토론을 벌이고 있는 가운데, 도쿠가와 이에야스는 잠자코 찻잔을 기울였다.

결국 이 자리에서 결론이 나지는 않았고, 그들은 다음을 기약하며 각자의 영지로 돌아갔다.

*       *       *

“너는 어찌 생각하느냐?”

자신의 성으로 돌아온 도쿠가와 이에야스는 장남을 불러다 질문했다.

도쿠가와 나가타다. 그는 이에야스가 신임하는 장남이었고, 노부나가가 살아 있을 적에는 매우 경계했던 무사였다.

원래대로라면 노부나가의 명으로 자결했어야만 했겠지만, 흐름이 달라지면서 그도 여전히 살아 있었다.

“우마노카미와 발을 맞추는 게 좋지 않겠습니까?”

원래 그가 쓰던 이름은 노부나가(信長)에게서 한 글자를 받아온 노부야스(信康)였으나, 지금은 유키나가(行長)에게 아부하는 의미로 이에야스가 직접 나가타다(行忠)라고 정했다.

그러나 이름은 가문의 편의에 따라 정해지기도 하는 법이었고, 나가타다는 자신의 이름값에 걸맞는 행동을 하지 않았다.

모리 테루모토와 행동을 같이 하며 고니시 유키나가의 영향력을 깎아내자. 그게 나가타다의 견해였다.

“그런가…….”

아들의 견해를 들으며, 이에야스는 한숨을 내쉬었다.

나가타다는 오다 노부나가에게도 경계를 살 정도로 뛰어난 무사였지만, 아무래도 모략 면에서는 이에야스 스스로보다 못했다.

도쿠가와 이에야스는 고니시 유키나가보다도 나이가 많았다. 아무리 두견새가 울기를 기다린들, 울기 전에 죽어 버리면 무슨 의미란 말이던가.

더구나 상대는 두견새를 실컷 먹여 놓고 새장을 떠나지 않게 만들 것이니, 결코 이에야스 생전에 기회는 영영 오지 않을 터였다.

그렇다고는 해도 달은 차면 기우는 법. 도쿠가와 가문의 후계자는 아주 영민했고, 기대를 걸어볼 만했다.

고니시 유키나가와 천하를 다투었던 오다 노부나가조차도 나가타다만큼은 경계했으니, 다음 대를 기약해도 좋다고 여겼던 것이다.

그러나 신뢰했던 아들의 안목이 고작 이 정도라면, 결코 나가타다는 유키나가를 넘어서지 못할 터였다.

“지금 내가 하는 말은 유언이나 마찬가지니, 새겨듣도록 하거라.”

“아버님?”

나가타다는 부친이 뜻밖의 이야기를 꺼내자 놀랐지만, 그러거나 말거나 이에야스는 자신의 말을 이어나갔다.

“너는 칼을 들고 천하를 다투는 일이라면 나보다 잘 해낼 것이다. 그러나 계략만큼은 그렇지가 못하니. 절대로 사카이 쿠보를 적대하지 말거라.”

그게 도쿠가와 가문의 성세를 이어나가고, 미카와에서 카이에 이르는 네 개국을 지킬 방법이다.

이에야스는 장남에게 그렇게 말한 뒤, 스모토로 갈 채비를 꾸렸다.

*       *       *

조선은 협상의 내용대로, 소 일백 마리를 보내왔다. 수소가 열 마리에 암소가 구십 마리. 번식시키기에 적정한 비율이었다.

“아주 훌륭하군. 이렇게 눈망울이 순한 녀석은 처음 보네. 전하께도 감사의 말씀 전해주게나.”

예정대로 그들은 내가 매입한 영지로 보냈다.

아마 다른 무사들도 성과를 확인한 뒤에는 조선의 소를 앞을 다투며 매입하려 할 터였다. 그렇게 동국은 재건되고, 나는 개량한 품종을 팔아 돈을 벌고. 그야말로 일거양득이 아니겠는가.

그렇게 일처리를 마치고 나니, 도쿠가와 이에야스가 나를 기다리고 있었다.

“쿠보, 긴히 드릴 말씀이 있습니다. 장차 행하시려는 검지를 거부하려는 움직임이 있는지라…….”

모리, 미요시, 도쿠가와, 이 셋이 은밀하게 회동했다. 이 소식은 닌자들을 통해 들은 이야기였지만, 구체적인 내용은 알아낼 수 없는 상태였다.

보나마나 뻔한 이야기가 오고갔을 게 뻔했기에, 굳이 추궁할 필요가 없었을 뿐이었다.

하필 이에야스가 밀고하러 왔다는 것은 뜻밖의 일이었지만, 나는 호기심을 억누르고 이에야스를 치하했다.

“알겠소, 미카와노카미. 공의 정성은 내 기억하리다.”

“재차 말씀드리지만, 저와 저희 가문은 영원히 쿠보께 충성을 다할 것입니다.”

어쨌든 손에 쓸만한 패 하나가 또 들어왔으니, 곱게 간직했다가 휘두르면 그만일 터였다.

시일은 흘러서 검지에 관한 내용을 정식으로 공표하는 날이 되었다.

동맹인 세 가문은 귀빈석에 앉아 있었고, 나머지 무사들 역시 정해진 자리에 앉아서 내 말만 기다리고 있었다.

이미 내가 관료들에게 이야기한 내용은 소문의 형태로 흘러나가 있었고, 대부분의 무사들 역시 이미 아는 듯한 눈치였다.

“이제 전란도 온전히 끝이 났으니, 토지와 호적을 조사하고 새 시대에 맞는 법도를 정하고자 하오.”

이견이 있는 사람은 나와서 자신의 뜻을 말하라. 그런 의미를 담아서 좌중을 둘러보자, 역시 모리 테루모토가 앞으로 나왔다.

“우마노카미는 어떤 고견이 있으시오?”

“아직은 시기상조라 생각합니다. 적어도 백성들이 숨을 돌릴 수 있게 약간의 여유를 주시는 게 좋지 않겠습니까?”

테루모토 역시 그 출신은 명백히 대대로 무사였다. 그런 사람이 민심을 논하는 것을 보면, 역시 히데요시가 어디까지 미쳤는지 새삼 느낄 수 있었다.

그런 것과는 별개로, 과연 도쿠가와 이에야스가 내게 전한 내용과 완전히 일치했다. 모리 테루모토가 가장 먼저 회합을 제안하고, 검지에도 반발하는 기색이라 했던가.

그러나 피해를 복구하려면 먼저 무엇을 잃었는가를 따지는 것도 중요한 일일 터였다.

“그 말도 일리가 있소이다. 그러나 전란의 피해를 복구하려면, 먼저 무엇을 잃었는지부터 셈해야 하지 않겠소. 나는 그걸 하려는 것이외다.”

동국의 무가들은 내 주장에 공감하고 있었다.

그들은 이미 영지를 팔거나 담보로 잡는 과정에서 평가를 받은 상태였고, 여기에 검지에 해당하는 항목을 추가로 조사한다고 해서 불만을 드러내지는 않았다.

그러나 역으로 피해를 받지 않은 지역에서는 은연중에 반발하는 기색이 역력했다. 모리 가문의 영지 역시 서국 제일인만큼, 지금 나선 것도 그 필두에 서 있는 모양새였다.

그렇게 질색을 할 정도라면 굳이 권하고 싶지는 않았다. 결국 손해 보는 건 그들이 될 테니까. 나는 한 발짝 물러서서 새로운 제안을 꺼냈다.

“만약 검지를 원치 않는 다이묘가 있다면, 그의 영지는 측량하지 않겠소이다.”

내가 선선히 양보를 하자, 오히려 반발하던 자들이 놀란 표정을 지었다. 그러거나 말거나, 나는 할 말을 이어나갔다.

“지금 각자의 자리에 참고할 만한 자료를 놓은 것이 보일 것이오. 이번 검지는 특허의 법도와 관련되기도 했고, 각 지역의 생물종 역시 조사하여 등록할 계획이었소.”

그들은 황급히 앞에 놓인 문서를 뒤적거렸다.

거기에는 특수한 품종의 등록과 그 권리에 관한 내용이 적혀 있었다. 그 대목을 확인한 무사들의 반응은 양극으로 엇갈렸다.

동국에 영지를 둔 자들은 조용히 입꼬리를 올렸고, 반발할 낌새를 보였던 자들은 얼굴이 일그러지기 시작했다.

“검지를 받지 않겠다니, 나로서는 어쩔 수 없는 일이오만……. 검지를 받지 않는 지역은 여기에서 제외할 수밖에 없겠구려.”

그래도 역시 테루모토가 머리를 굴리고 있었는지, 다급한 목소리로 내게 질문을 던졌다.

“혹시 기존의 특허에 관한 법도는 어찌 되는 것입니까?”

“당연히 그대로 유지할 것이오. 그러나 생물종에 관한 내용은 이번에 새로 정한 바이고, 조사되지 않은 것을 인정하고 보호할 수는 없지 않겠소이까.”

개인이 만들어낸 창의적인 발상은 온전히 그 사람만의 것이지만, 생물종은 그렇지가 않다.

이즈미국에서 발견된 게 이웃 카와치국에서도 보일 수 있는 법이고, 그 반대가 될 수도 있는 법.

사실 어디에 뭐가 있고, 그걸 어떻게 써먹을 수 있을지는 누구도 알지 못한다. 그러나 사람 마음은 언제나 혹시와 설마 사이에서 갈등하게 마련이었고, 지금 참석자들 역시 마찬가지일 터였다.

만약 옆 영지가 특별하고 유익한 특산물을 먼저 등록해 버린다면, 꼼짝없이 눈뜨고 뺏길 수박에 없다는 이야기. 과연 누가 그걸 좋아할 것인가?

“검지를 희망하는 이는 마지막 장에 서명을 한 다음 제출하면 될 것이외다. 그렇지 않다면 그냥 돌아가면 그만이오. 오늘 공표는 여기까지 할 것이니, 현명한 선택을 바라겠소이다.”

내가 말을 마치자, 모두가 황급히 붓을 놀리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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