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71화 악연의 끝(7)
“후쿠시마 공이 죽었다고……?”
가까스로 살아 돌아온 기마 무사 하나가 소식을 전하자, 이시다 미츠나리는 망연자실한 표정으로 주저앉았다.
비록 마사노리가 미츠나리를 좋게 보지는 않았다 해도, 2군의 장수들 중에서는 으뜸패라고 할 수 있었다.
그런 그가 함정에 당한 이상, 2군이 교토에 닿기는 사실상 불가능한 일이 되고 말았다.
“하…….”
아사쿠라 요시카게를 잡았을 때만 해도, 미츠나리의 마음은 교토에 가 있었다. 그러나 지금은 그의 눈앞이 캄캄하기만 했다.
그때 병사 하나가 군막으로 들어와 새로운 소식을 알렸다.
“광신도들이 후쿠시마 공의 목을 내걸고, 아군을 조롱하고 있습니다!”
“숫자는 얼마나 되던가?”
“오만 정도 되어 보였습니다.”
오만. 미츠나리는 전령의 말을 곱씹었다. 적은 전부 몰려나왔고, 하시바군은 이제 에미시 전사 일만이 전부였다.
이제 가망이 없는 싸움이 되겠지만, 그렇다 해도 당장 발을 빼기도 곤란했다.
‘섣불리 후퇴했다간, 도리어 발목을 잡혀 몰살당하고 만다.’
절망한 가운데에서도 그렇게 판단을 내린 미츠나리는 일전을 각오하기로 마음먹었다.
“적은 이제 반으로 줄었다. 그리고 아직 아군은 일만이나 남았다. 한바탕 싸워 볼만하지 않은가!”
그는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서 호기롭게 외쳤다. 미츠나리의 원래 성격과는 거리가 먼 행동이었지만, 그에게는 주장으로서 휘하 부대를 안심시킬 의무가 있었다.
이미 대강의 사정을 파악하고 있는 무사들은 그걸 보고 오히려 좌절과 긴장이 뒤섞인 얼굴이 되었으나, 에미시 전사들에게는 그 모습이 충분한 효력을 발휘했다.
“드디어 우리가 나설 때로군!”
이미 결말이 난 싸움을 오래 끌 이유는 없었기에, 미츠나리는 곧바로 전 병력을 들어 출격시켰다.
* * *
소지는 전장이 돌아가는 양상을 가만히 살펴보았다.
적은 고작 일만. 그러나 그 일당백이라는 에미시 전사의 이름값만큼은 명불허전이었다.
“크하하! 죽어, 죽어!”
“혼자서 상대하지 마라! 여러 형제가 동시에 맞서야 한다!”
숫자로만 따지자면 다섯 배의 격차가 있었다. 그러나 싸움은 거의 대등한 방향으로 흘러갔다.
하시바군은 자신들의 강점을 살리기 좋은 자리에서 버티고 있었다. 그들을 끌어낼 방법은 없었기에, 결국 일향종 무리는 공수가 뒤바뀐 싸움을 해야만 했다.
“3번대가 교대를 요청했습니다.”
“알겠네. 3번대의 자리에는 11번대를 넣도록 하지.”
정면 대결 중에는 다치기가 쉬워도, 죽는 경우는 그다지 많지 않았다. 일향종은 아군이 다치면 뒤로 빼내고 다른 병력을 투입하는 식으로 에미시 전사를 상대했다.
그러나 벌써 십여 개의 소부대가 교대했고, 예비대의 숫자도 이제는 거의 다 떨어져갔다.
‘이대로는 전사자가 나온다.’
사람 위에 사람 없고, 사람 아래에 사람 없다. 그게 소에키의 방침 중 하나였다.
피해를 각오하고 싸운다면 적을 몰살시키기는 어렵지 않겠지만, 소지의 스승이 그걸 원하지 않았다.
적이 결사적으로 달려든다면 이쪽 역시 결사적으로 달려들어야 하지만, 이제 하시바군의 움직임은 퇴각을 위해 발버둥치는 것에 가까웠다.
벌써 형제들 중 일만이 다쳤다. 그간 승승장구했다고는 해도, 역시 정면대결은 곤란한 것이 아닌가.
하지만 여기에서 적을 살려 보내면, 그만큼 사카이 쿠보가 곤란해 질 터였다.
거기까지 생각이 닿은 소지는 계속 망설이다가 결국 병력을 물리기로 결정했다.
‘여기서 이쪽의 손실이 커지면, 그만큼 나중이 힘들어지겠지. 우린 하시바군이 지나가지 못하게 막았다. 그걸로 충분할 것이다.’
소지는 꽹과리를 치게 했다.
* * *
하시바 히데요시가 직접 이끄는 본대에 오천의 병력이 늘어났다. 그러나 영내 분위기는 희망보다는 좌절 쪽으로 기울어 있었다.
“죄송합니다, 주군.”
이시다 미츠나리는 스스로를 묶어서 하시바 히데요시의 앞으로 나갔다.
- 차라리 할복을 할 것이지, 저게 무슨 꼴불견인가.
무사들은 그렇게 수군거렸지만, 히데요시는 물끄러미 미츠나리를 내려다보기만 했다.
얼마간의 시간이 지나고, 히데요시가 입을 열었다.
“대체 무슨 일이 있었던 건가? 소식은 들었으나, 책임자의 입으로 직접 들어야겠네.”
적장 마츠나가 히사히데가 고니시군 일만을 이끌고 하시바군 본대를 막아섰을 때, 히데요시는 속으로 쾌재를 불렀다.
그러나 역시 상대는 믿는 구석이 있었고, 전황은 수렁으로 빠져 들어갔다. 이제 호쿠리쿠 방면에서 역공이 들어오지는 않겠지만, 이미 때는 늦어 있었다.
“처분은 그 뒤에 내릴 것이니, 소상히 고하도록.”
히데요시의 명이 떨어지자, 미츠나리는 눈물을 뿌리면서 그간 있었던 일을 말했다.
“소에키……. 그자가 거기에 있었나?”
소에키라는 이름은 히데요시 본인에게도 낯설지 않았다.
그의 주군, 오다 노부나가는 종종 다회를 열었고, 소에키의 사형인 이마이 소큐와도 교류가 있었다.
만약 고니시 유키나가가 없었더라면, 그의 주군은 순조롭게 이마이 소큐와 그 사제인 소에키를 회유했을 터였다.
“일향종을 뿌리 뽑지 않은 게 수상하다 했더니, 아예 통째로 집어 삼켜?”
히데요시의 외침은 사실과 다소 어긋나기는 했지만, 결과만 놓고 보면 그렇게 차이가 있는 것도 아니었다.
광신도마저 끌어들인 상인놈이라니. 히데요시는 등에서 식은땀이 흐르는 것을 느꼈다.
이제는 시나노를 뚫어 봐야, 그 뒤에 더 어려운 싸움이 기다리고 있을 터였다. 이미 고니시 유키나가는 돌아왔고, 그의 동맹들이 계속해서 증원을 보내고 있다고도 했다.
거기까지 생각이 닿은 히데요시는 결단을 내렸다.
“핫토리 공, 전에 부탁했던 것을 진행해 주게.”
“정말인가?”
“나는 주군의 유지를 받들려는 것이지, 그 핏줄에 얽매여 유지를 그르칠 생각이 없네.”
노부타다는 다소 아까웠지만, 그 역시 인질로 잡혀 있어서는 곤란했다. 히데요시가 이 문제를 해결하려면 보통 수단으로는 쉽지 않았다.
그렇게 마음을 정리한 그는 장수들을 소집했다.
“나는 이제 간토로 물러날 생각이다.”
“하오면 오와리는…….”
“포기한다.”
최종 결정권자가 그렇게 정하자, 반론은 나오지 않았다.
간토도 남쪽은 늪지대에 가깝지만, 그 위로는 기병을 움직이기 좋은 환경이었다. 거기에서 버티면서 변화를 기다리는 것만이 히데요시에게 남은 유일한 선택지였다.
그는 이어서 세부적인 사항을 지시했다.
“도도 다카도라라고 했던가.”
“부르셨습니까.”
“네가 뒤를 맡아라.”
지목된 사람은 그 명을 받아들였으나, 다른 사람들은 그렇지 않았다.
“하시바 공, 다시 생각해 주십시오. 저자는 사세에 따라 주군을 계속 갈아치운 자입니다.”
추격을 차단하는 일은 가장 위험하지만, 동시에 가장 믿을 수 있는 사람이 맡아야만 했다.
그런 점에서 지금의 인선은 부적절하다는 것이 중론이었다.
“이봐, 히데나가.”
“예, 형님.”
“네 생각은 어떠냐?”
원래 도도 다카도라는 히데요시 직속이 아니라, 그 동생인 히데나가를 따르다가 합류한 인사였다.
질문을 받은 히데나가는 고민할 필요도 없다는 듯이 당장 입을 열었다.
“도도 공은 믿을만한 사람입니다. 비록 소속을 자주 바꿨다고는 하나, 결코 배신한 것은 아닙니다.”
“나도 그렇게 생각했다. 하지만 다른 사람들이 불안해한다면, 조금 방법을 바꿔야겠지.”
히데요시는 고개를 끄덕이며 동생의 주장에 동의했다. 그러나 다른 이들의 반발을 무마시키기 위해, 다른 조치를 덧붙였다.
“미츠나리.”
“예, 주군.”
“네 목은 필요가 없다. 도도 다카도라에게 메츠케로 붙여줄 것이니, 공으로 죄를 씻어라.”
그 결정을 들은 장수들은 적잖이 동요했지만, 반론을 제기하지는 않았다.
‘무능한 자와 믿을 수 없는 자를 묶어서 버림패로 쓰시는 게로군.’
그렇게 생각한 자들은 이제 남기로 정해진 두 사람을 안쓰럽게 여겼다.
그러나 정작 다카도라 본인은 자신 있는 얼굴로 군령을 받아들였다.
* * *
“오다 노부나가의 아들들을 독살하려 했다고?”
“그렇습니다. 지금 자객을 심문하고 있으니, 곧 결과가 나올 겁니다.”
마츠나가 히사히데는 아침에 눈을 뜨자마자 기가 막힌 소식을 들었다.
“어디 놈이었나?”
“물증은 나오지 않았으나, 닌자들의 말로는 코가류의 면모가 엿보인다 했습니다.”
그 말을 들은 히사히데는 순식간에 전말을 알아차렸다.
“히데요시, 그자가 기어이 자기 주군의 대까지 끊어놓으려 한 모양이군.”
“그게 무슨 말씀이십니까?”
옆에서 듣고 있던 야규 무네요시가 이해할 수 없다는 듯이 히사히데에게 질문했다.
“코가닌자의 소행이라는 말을 듣고도 모르겠나?”
“하지만 어디까지나 심증일 뿐입니다.”
“물론 정황 증거들 뿐이긴 하지만, 내가 히데요시라도 그랬을 걸세.”
“하, 하지만…….”
무네요시는 상관의 억측에 반론을 제기하려 했으나, 그 역시 쉬운 일은 아니었다.
만약 인질이 독에 당했다면, 결국 세간의 시선은 그들을 억류하고 있는 쪽에 몰리게 될 터였다.
“그들 둘이 죽어도 나중에 내세울 대안은 많지. 노부나가의 아들이 한 열 명쯤 되던 거로 기억하는데…….”
그리고 어릴수록 이쪽에서 손을 대기도 곤란할 수밖에 없었다. 결국 무네요시는 상관의 말에 납득하고 말았다.
“그보다도 말이야, 이런 독수를 썼다면 이제는 슬슬 도망치려는 게 아닌가 싶네.”
“저 역시 그리 생각합니다만, 어디로 가겠습니까? 다시 에조치로 가려고 해도, 이미 해역은 봉쇄됐으니 독안에 든 쥐 신세일 겁니다.”
“하지만 쥐새끼도 궁지에 몰리면 고양이를 문다더군. 아마 간토로 후퇴하겠지.”
하시히데가 그렇게 말한 뒤, 두 사람은 간토에서 들려오는 소문을 떠올렸다.
잔인한 도이 기병이 휩쓴 자리는 모조리 쑥대밭이 된다고 했다. 소위 ‘인마합일의 요괴’에 관한 이야기도 그들을 가리키는 것이었다.
“도이의 입구(刀伊の入寇)가 옛 일이라고만 생각했는데, 히데요시는 꽤나 심한 짓을 저질러 놓았군.”
한 번도 외적의 침입을 받지 않은 신의 땅, 카미카제의 전설은 사실 허구에 가까웠다.
정말로 몽골인들은 풍랑에 보급이 끊겨 허덕였지만, 그 이전의 침입자들은 대단히 위협적이었다.
그리고 지금의 야인 기병들의 행태는 일본인들이 품고 있었던 옛 공포를 되살리기에 충분했다.
“하지만 단순히 소문에 불과할지도 모릅니다. 호쿠리쿠로 간 하시바군은 격퇴되지 않았습니까.”
“그건 모를 일이지. 거기엔 야인 기병이 없었다고 했으니. 어쨌든 우리도 추격을 준비해야겠네그려.”
히사히데는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쿠보가 자리를 비운 동안, 그가 믿을 수 있는 숙장이자 인척으로서 모든 일을 도맡아야 했다.
하필 그때를 노려 히데요시가 침공했을 때, 그는 어깨 위에 올려진 책임감에 질식할 것만 같은 느낌을 받았다.
그러나 이제는 그러한 중압감도 사라졌다.
“이번 전쟁이 끝나면 무조건 은퇴해야겠어.”
“그거 위험한 말씀 같은데요.”
“전장에 안 나가면 그만 아닌가.”
아직 전쟁이 끝난 것은 아니었지만, 그가 나서기에는 너무 늙고 지쳤다.
나머지는 젊은이들이 알아서 하라지. 같은 생각을 한 두 사람은 서로를 마주보며 씩 웃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