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내가 고니시라니-170화 (170/225)

170화 악연의 끝(6)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쿠보.”

스모토에 입항했을 때, 나를 맞이한 사람은 혼다 마사노부였다.

“마츠나가 공은?”

“군대를 이끌고 시나노국으로 가셨습니다. 지금쯤이면 오와리국을 지나겠군요.”

“하시바 히데요시가 자신의 군대를 셋으로 나누었다고 하던데?”

간토는 당분간 버려둘 수밖에 없다고 해도, 시나노 방면만 막을 수도 없는 노릇이었다.

오히려 호쿠리쿠 지방을 지나 스루가로 들어오는 쪽이야말로, 목에 들어온 칼이 될 터였다.

그러나 마사노부는 대수롭지 않게 답했다.

“쿠보의 안배 덕에 일이 수월하게 풀렸습니다.”

“그게 무슨 말인가?”

알아듣지 못할 이야기였다. 그러나 마사노부가 내민 쪽지 하나로 모든 의문이 날아가버리고, 새로운 의문이 머릿속에 들어섰다.

“소에키 선사께서 보낸 편지라고……?”

“그렇습니다.”

지금쯤 한창 일향종을 개혁하는 일에 치중하고 있을 사람이, 전쟁과 무슨 관련이 있다는 것인가 싶었다.

일단 나는 받아든 쪽지부터 펼쳤다.

[소승은 카가국에 머무르며, 삿된 무리에 미혹된 중생들에게 불심을 되돌리기 위해 노력하고 있었습니다. 다행히 많은 이들이 혼간지 교단을 벗어났고, 지금은 이곳 카가국에 새로운 정토를 만들어가던 차였습니다.]

여기까지는 대강 아는 내용이었다.

켄뇨가 쓰러진 뒤에도 그 잔당의 숫자는 상당했다.

그들 중 대다수는 현지의 다이묘에게 고개를 숙였지만, 일향종이 직접 지배하다시피 한 영지도 있었다.

그게 바로 카가였다. 육로로는 아사쿠라 가문의 영지를 지나야 하지만, 해로를 이용하면 토벌은 그리 어렵지 않은 일이라 보았다.

당시에는 이미 소에키가 머무르고 있었기에, 정보도 얻을 겸 닌자들을 파견했고, 그들로부터 뜻밖의 소식을 들을 수 있었다.

이미 켄뇨의 일족은 모조리 죽거나 추방되었고, 소에키의 제자들이 일종의 합의제 정권을 수립한 상태라고 했다.

그게 소에키 본인이 지배자가 된 게 아니냐 싶었지만, 돌아가는 사정을 살펴보니 정말로 그런 식의 통치가 이루어지고 있었다.

굳이 건드려서 벌집을 쑤시고 인연을 악연으로 만들 이유는 없었기에, 그대로 감시만 하라고 지시하고는 더 이상 신경 쓰지 않았다.

그런데 그 소에키가 지금 카가국의 백성들을 동원해서 하시바군을 막겠다고 했다.

[근자에 하시바 히데요시가 다시 분란을 일으켜 천하를 예전으로 되돌리고자 한다고 합니다. 카가국의 백성들은 그걸 용납할 수 없기에, 모두가 무기를 들고 일어섰습니다.]

그리고 세 갈래 병력 중 두 번째를 막겠다는 내용이 마무리로 적혀 있었다.

“일차로 소에키 선사께서 막겠다고 하셨고, 아케치 공께서 조약에 가입한 무가들을 규합하러 떠났습니다.”

내가 편지를 다 읽었을 때, 마사노부가 그렇게 말했다.

확실히 그는 물론이고 마중 나온 다른 이들의 표정에서도 긴장감이 과하게 느껴지지 않았다.

“뿌려둔 씨앗이 무성하게 자랐으니, 참으로 기쁜 일이 아닐 수 없군.”

거기에 모리 테루모토에게도 그쪽으로 원군을 보내도록 전해두었다.

오는 길에 보았던 그의 영지도 병력을 소집하느라 분주했으니, 늦지 않게 도착할 수 있을 터였다.

“그렇다면 내가 할 일은 어떻게 뒤를 받쳐줄 것이냐가 되겠군.”

“미요시군은 나흘 뒤에 나니와쿄로 온다고 했습니다.”

그리고 조약에 가입했던 무가들 중 적극적인 자들은 이미 나니와쿄에 들어가 있다고 했다.

“지금 도성도 아주 복잡합니다. 동쪽에서 피신해온 자들도 상당하고, 조약에 가입한 무가 중에서 적극적인 자들이 병력을 이끌고 온 상태입니다.”

“그런가.”

“그동안 고생 많았네. 일단 나니와쿄 성 밖에 막부를 꾸려야겠군.”

“스모토에서 전쟁을 총지휘하실 생각이 아니셨습니까?”

마사노부는 의외라는 표정을 지으며 말했다.

물론 스모토와 나니와쿄는 그다지 멀리 떨어져 있지 않았다. 만약 이번 전쟁을 단순히 나와 하시바 히데요시의 결전으로 끝낸다면, 그렇게 해도 상관없었다.

그러나 이왕 벌어진 일, 최대한으로 뽑아먹자면 그렇게 해서는 안 될 터였다.

“아직 다이묘들의 마음은 그렇게까지 견고하지만은 않잖나.”

이 전쟁은 모두의 전쟁이 되어야 했다.

“일단 나니와쿄에 들어와 있는 자들을 정리해보게.”

“그 명단은 여기 있습니다.”

마사노부도 내 뜻을 알아차린 눈치였다. 말이 나오기가 무섭게, 미리 작성해둔 명단을 꺼내놓았다.

“지역별로 크게 편차가 있군.”

“역시 발등에 떨어진 불이냐, 아니면 강건너 불구경이냐의 차이가 아니겠습니까.”

역시 예상했던 것과 크게 다르지 않았고, 마사노부도 대수롭지 않다는 표정을 지으며, 돌아가는 양상을 평했다.

간토 지방의 다이묘들은 이미 전쟁 중이었다.

가주의 목이 날아가고 나니와쿄에 와 있던 후계자가 세워진 경우도 적지 않았다. 그들은 조약에 따라, 영지의 보전을 재확인받기를 원하는 눈치였다.

그들은 나니와쿄의 저택에 쌓았던 가산을 털어, 용병까지 모으고 있었다.

호쿠리쿠 지방은 문자 그대로 혼란의 난맥상 그 자체였다.

일단 지역의 패자였던 아사쿠라 가문이 지금은 각 계파별로 찢어져서 이전투구를 벌이고 있었다. 조약에 가입한 상태에서도 나름 가문의 이름으로 뭉쳤던 그들은, 이제 더 이상 단일 세력이라 보기 곤란했다.

시코쿠, 그리고 산요와 산인은 그다지 신경을 쓸 필요는 없었다.

애초에 이 전쟁에서는 후방이기도 했고, 그 지방의 주인인 미요시와 모리는 동맹으로서 병력을 소집 중인 상태였다.

츄부 지방의 사정도 비슷했다. 원인은 달랐지만.

마츠나가 히사히데가 빠르게 손을 쓴 덕에, 오다 가문과 그 가신 세력은 불씨가 되기 전에 잡혔다.

그리고 도쿠가와 이에야스는 너구리같아 찜찜하기는 해도, 당장은 내 편을 들고 있었다.

그는 적어도 이쪽에 승산이 충분한 상황에서 등을 돌리지는 않을 터였다.

큐슈는 애초에 모리와 미요시가 남북으로 갈라먹고, 서쪽은 내 직할령이나 다름없는 상황. 참전을 희망한 다이묘가 적을 수밖에 없었다.

“하시바 히데요시가 아주 무리를 했군.”

“역시 최초의 일격에 전부 걸었던 모양입니다.”

“나도 놀라긴 했다네. 순식간에 천하의 사분지일을 밀어붙인 형국이 아닌가.”

그러나 아무리 전술이 좋아도, 기본적인 체급 차이가 크면 결국 승패는 정해지게 마련이었다.

“일단 나니와쿄로 가지.”

*       *       *

코가닌자의 수장, 한조가 직접 하시바 히데요시를 찾았다.

“고니시 유키나가가 복귀했다고 하네.”

“벌써 그리 되었나.”

히데요시는 초조함을 감추려 애썼지만, 그 말에 묻어나오는 짜증은 상대에게 고스란히 드러나고 있었다.

“2군은 여전히 카가에 묶여 있겠지.”

“그렇다네.”

“에이-!”

쾅. 하시바 히데요시는 끝내 탁자를 주먹으로 내리쳤다.

“지금쯤이면 2군은 교토에 입성하고도 남았어! 그런데 미츠나리는 농투성이들을 상대로 뭘 하는 건가!”

“소에키 선사가 나서서 쉽지 않은 모양일세.”

“그렇다고 해도 고작 광신도 나부랭이들을 상대로……!”

십만. 숫자만 보면 상당한 대군이지만, 2군의 전력은 그걸 능가할 터였다.

오합지졸은 아무리 모아봐야 오합지졸이요, 미츠나리에게는 일당백이라는 에미시 전사와 여진의 군마를 태운 기마 무사들을 붙여주지 않았던가.

그러나 정작 그들은 고작 농투성이들에게 붙잡혀, 내내 지지부진하고 있었다.

이런 상황들을 떠올리면 히데요시는 자다가도 벌떡 일어날 지경이었다.

“원래대로라면 분산된 고니시군을 압도적인 격차로 휩쓸었어야 했어! 그런데 이게 대체 무슨 꼴이란 말인가, 무슨 꼴이냐고!”

협력을 기대했던 도쿠가와 이에야스도 그의 뜻대로 움직이지 못했다.

- 마츠나가 히사히데는 나 역시 경계하고 있소. 섣불리 움직이기가 어려울 듯하오.

미리 보냈던 밀사가 받아온 변명이었다. 고니시군이 병력을 나누지 않고 몽땅 이쪽으로 왔으니, 나름대로 타당한 이유이기는 했다. 그러나 결국은 그 너구리 같은 속내는 누구도 모를 터였다.

끝내 두견새는 히데요시를 향해 울어주지 않았다.

“그러나 나는 어떻게든 울게 만들고야 말 것이다.”

키노시타일 때부터 하시바가 된 이후에도 히데요시는 그렇게 살아왔다. 그러니 이번에도 최대한 발버둥 칠 생각이었다.

히데요시가 그렇게 생각하며 속을 가라앉히는 동안, 적진에서 다시 함성소리가 들려왔다. 대충 그에게 모욕적인 내용이 담긴 외침이었다.

“네 주인들이 여기 붙잡혀 있다! 원숭이 종놈은 어서 나와서 무릎을 꿇어라!”

*       *       *

이시다 미츠나리는 처음에는 일향종을 회유하려 했다.

일향종 무리의 함성에는 침입자나 도적 따위의 표현이 많았기에, 거기에 주목해서 싸우지 않고 넘어가려 했던 것이다.

아무리 소에키가 일향종 신도들에게 지대한 영향을 미치고 있다고는 해도, 사람은 자신의 목숨을 아끼게 마련인 법. 협상은 시작부터 문전박대 당하지는 않았다.

그러나 첫 단추만 어설프게 꿰였을 뿐, 이후의 과정은 그가 원하던 방향으로 흘러가지 않았다.

“뭐, 우리가 네 녀석들의 통제를 받으라고?”

“우리도 후방의 안전은 보장받아야 하지 않겠는가.”

“이쪽에서 해치지 않으면 누가 또 당신들을 해친단 말인가?”

미츠나리가 제시한 최소한의 안전장치와 일향종의 입장은 평행선을 달렸다.

그렇게 협상이 결렬된 뒤, 하시바군은 내내 일향종의 습격에 시달려야 했다.

“저기 도적떼가 있다!”

“남의 땅을 침범한 주제에 누구더러 도적이라 하느냐!”

소에키의 제자인 야마노우에 소지는 그렇게 한바탕 욕을 퍼부은 뒤, 곧바로 병력을 물렸다.

“감히 나더러 도적이라고!”

무사들은 자신이 받은 모욕을 참지 못하는 편이었고, 호전적일수록 그런 경향도 컸다.  그런 만큼, 2군에서 가장 사나운 성격인 후쿠시마 마사노리는 유인하기 쉬운 존재였다.

게다가 그는 2군의 기병을 통솔하는 위치이기도 했기에, 추격대 역시 그의 몫일 수밖에 없었다.

“저걸 우리가 상대하긴 어렵지. 이만 물러나자!”

“쥐새끼들이 어딜 감히!”

번번이 놓쳤지만 오늘이야말로 모조리 때려잡으리라. 마사노리는 그런 각오로 일향종 무리를 추격했다.

그러나 그가 고개 하나를 돌기도 전에, 갑자기 바닥이 푹 꺼져버렸다. 마사노리는 물론이고 그가 직접 이끌고 기병들 중 상당수까지 함정에 빠지고 만 것이다.

“이, 이런…….”

“적이 구덩이에 빠졌다!”

아무리 여진의 말이 명마라고 해도, 다섯 길이나 되는 높이를 뛰어넘지는 못했다. 그리고 그가 뭔가 대처를 하기도 전에, 위에서 쏟아져 내린 창의 비에 꿰뚫리고 말았다.

“오늘은 대승이군. 후쿠시마 마사노리도 잡았으니, 이제 이 전쟁도 끝이다.”

함정에 빠진 적을 상대하는 일은 가을걷이보다도 쉬웠다.

위에서 긴 창으로 내리찍고, 마지막으로 숨통이 끊어진 것을 확인하면 내려가 목을 베었다.

소지는 마사노리의 목을 그렇게 얻은 뒤, 자신의 스승에게 돌아갔다.

소에키는 그날도 대웅전에서 불공을 들이고 있었다. 소지가 그 뒤에 조용히 시립하고 서자, 기척을 알아차린 소에키가 질문을 던졌다.

“오늘은 몇이나 돌아오지 못했느냐?”

“모두가 성한 몸으로 돌아왔습니다.”

그 말을 들은 노승은 목탁 두드리기를 멈추었다.

“그게 정말이냐?”

“그렇습니다. 그러고도 대승을 거두었습니다.”

그는 큰 틀만 잡았을 뿐, 실질적인 지휘는 소지 같은 제자들에게 맡겨놓은 상태였다.

전장에서 벌어지는 손실은 피할 수 없는 것이었지만, 소에키는 아직도 그걸 용납하기가 힘들었다.

그리고 오늘, 그가 그토록 원해왔던 답을 받았다..

“다행이로구나. 나무아미타불…….”

십만에 이르던 일향종 무리는 이제 오만으로 줄어들었으나, 살아남은 자들은 모두 정예 중의 정예가 되어 있었다.

“그리고 후쿠시마 마사노리의 목을 가져왔습니다.”

일향종 무리는 이 한 번의 싸움으로 기마 무사의 반절을 쓰러뜨렸다. 아직 에미시 전사들이 남았으나, 그들은 이 기마 무사만큼 위협적이지는 않았다.

“이제 적의 기세가 한풀 꺾이겠구나.”

소에키는 밖으로 나가 동쪽을 한 번 바라본 뒤, 남쪽으로 시선을 돌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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