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내가 고니시라니-167화 (167/225)

167화 악연의 끝(3)

“군대를 세 갈래로 나누겠다.”

쾌진격 닷새 만에 오슈 전역을 병탄한 하시바 히데요시는 그렇게 공언했다.

지금까지 한 덩어리였던 에미시 삼만과 무사 오천, 그리고 이천의 야인 기병과 일천의 기마 무사는 그 의도에 따라 셋으로 나뉘어졌다.

에미시 전사 일만과 무사 오천으로 구성된 1군. 시나노의 산지를 거쳐, 오와리로 진격한다.

에미시 전사 일만과 기마 무사 일천으로 구성된 2군. 호쿠리쿠로 진격하여, 기나이를 북에서부터 압박한다.

에미시 전사 일만과 야인 기병 이천으로 구성된 3군. 간토를 휩쓸어 고니시 유키나가의 동맹을 격파하고, 협공을 미연에 방지한다.

그가 이렇게 결정한 데에는 세심한 판단이 뒷받침하고 있었다.

1군이 진격할 시나노. 이곳은 천하에서도 손꼽히는 산악지대였다.

기병이 제 위력을 발휘하기 어려울 터, 그렇다면 차라리 보병 전력을 강화하는 편이 낫다.

그렇게 생각한 히데요시는 1군에 무사들을 몰아주었다.

그리고 가장 먼저 기나이에 닿을 2군. 이들은 천하에 하시바군의 얼굴 노릇을 해야 했다.

에미시 전사는 어쩔 수 없다 쳐도, 야인 기병을 여기에 투입하기에는 적절치가 않았다.

그러나 명마를 타고 있는 무사들의 모습이라면 이야기는 달랐다.

실전에서는 퇴보한 상태라고는 해도, 옛 전설은 언제나 동경의 대상이 되는 법.

말을 타고 싸웠던 옛 시대를 재현하는 그 자체만으로도, 하시바군이 단순한 역도가 아니라는 선전이 가능할 터였다.

마지막으로 간토를 휩쓸 3군. 동국 무사의 땅이라고 하면 당연히 간토였지만, 되레 이 지역의 다이묘들은 기회주의적인 성향이 강했다.

박쥐처럼 굴었던 호조 가문부터, 우에스기의 뒤통수를 쳤던 자들까지. 히데요시는 그들을 아예 압도적인 힘으로 짓밟아 버리는 게 낫다고 여겼다.

그리고 야인 기병이야말로 그 역할을 맡기기에 제격이었다.

이러한 방침을 들은 부하들은 반론을 제기했다.

“아군의 숫자는 적고, 적은 일본 전역의 지배자나 다름없습니다. 혹여 각개격파를 당하게 되는 건 아닐지…….”

일리가 있는 주장이었다.

고니시 유키나가가 본격적으로 병력을 끌어모은다면, 하시바군의 전력은 곧장 따라잡을 수 있을 터였다.

그러나 그렇기 때문에, 하시바 히데요시는 특별한 수단이 필요하다고 생각했다.

“각개격파라……. 우리야말로 적을 그렇게 상대하고 있는 것이 아니었나?”

아직 유키나가에게 고개를 숙인 다이묘들은 결집하지 못했다.

그리고 자기 영지에서 운명을 기다릴 뿐, 어떤 조직적인 움직임을 보이지 않는 상태였다.

적어도 지금까지는 그러했고, 고니시 유키나가 본인이 돌아오기 전까지는 이러한 상황이 지속될 가능성이 높았다.

“고니시군은 방어전에 아주 능하다. 아군이 결집해서 한 방향으로만 간다면, 주저앉기 십상이지.”

“그도 그렇긴 합니다만…….”

“다행히도 우리는 기병이 있다. 세 갈래로 나눈다고 해도, 적을 상대하기는 어렵지 않을 것이다.”

그 말에는 모두가 동의할 수밖에 없었다.

지금까지 승승장구한 근간에는, 도이(刀伊)의 땅에서 온 군마의 역할이 상당했다.

그리고 고니시 유키나가조차도 이 강력한 중기병을 상대할 방법은 마땅치 않을 터였다.

“우리는 유키나가, 그자가 병력을 결집하기 전에 기나이로 들어가야만 한다.”

“과연, 주군의 말씀이 옳겠습니다.”

이제 반론은 쑥 들어가 버렸고, 인선을 정할 일만 남았다.

히데요시를 따르는 자들은 침을 꿀꺽 삼키며, 누가 어디로 가게 될지 기대하는 모습이었다.

첫 번째로 불린 사람은 이시다 미츠나리였다.

“미츠나리, 너는 마에다 공과 같이 2군을 맡아라.”

“옛, 주군.”

“에치젠에서부터 쿄토에 이르는 땅에는 명가가 많다. 그들을 잘 설득하도록.”

미츠나리는 이 자리의 사람들 중에서도 몇 안 되는 책사형 인물이었다. 어떤 의미로는 히데요시 본인보다도 더욱 적합한 인선이 될 터였다.

거기에 오다 가문의 가신으로서 명망 높은 마에다 토시이에가 같이 간다면, 교토로 가는 길이 쉽게 열릴 가능성도 낮지 않았다.

그게 2군의 인선을 정한 방법이었다.

다음으로 호명된 사람은 가토 기요마사였다.

“너는 3군을 이끌고 간토로 가도록 해라. 가서, 허튼 수작을 부리려는 자들을 모조리 도륙 내 버려라.”

“옛, 주군.”

가장 믿을만한 동시에 가장 호전적인 가신이었기에, 힘을 과시해야 할 자리에는 기요마사로 정해졌다.

마지막으로 1군은 히데요시 본인이 직접 이끌기로 했다. 그리운 오와리로 가는 길이기도 했고, 중간에는 도쿠가와 이에야스도 있었다.

“도쿠가와 이에야스……. 그자가 순순히 이쪽에 서줬으면 좋겠는데.”

그러나 끝까지 방해하려 든다면, 결국 그를 상대할 만한 자는 히데요시 본인밖에 없었다.

“길이 정해졌으니, 우리 모두 교토에서 보도록 하자!”

*       *       *

“적이 셋으로 갈라졌다고?”

“그렇습니다, 봉행.”

마츠나가 히사히데는 굳은 표정으로 보고를 받았다. 평소의 호탕함은 간데없고, 신중함만이 얼굴에 가득했다.

“첫 번째 군세는 시나노로 향했고, 두 번째 군세는 에치고를 거쳐 에치젠으로 향한다 합니다. 그리고 마지막 갈래는 간토를 휩쓸고 있었습니다.”

까다로운 일이 아닐 수 없었다.

당장 쓸 수 있는 병력은 고작해야 오천에 불과했다.

수군을 쥐어짜서 일부를 뭍에 올린다 해도, 최대치는 일만이나 나올까 싶은 상황이었다.

고민 끝에, 그는 일단 두 곳을 막겠다고 선언했다.

“간토는 버린다. 조약에 가입한 무가에게는 탈환을 약속하고, 당분간 내버려둘 수밖에.”

땅이 어디 가는 것은 아니니, 간토의 우선순위가 결코 높지 않았다. 당장의 가장 중요한 것은 핵심지역인 기나이로 쳐들어오는 적을 막는 일이었다.

물론 아예 기나이 깊숙이 끌어들여서 싸운다면 더 많은 병력으로 맞이할 수 있겠지만, 그랬다가는 비와 호 동쪽의 무사들이 전부 돌아설지도 모를 상황.

쿠보라면 몰라도 그 대리인에 불과한 히사히데로서는 그러기가 곤란했다.

적의 첫 번째 갈래 앞에는 도쿠가와 이에야스의 영지가 있었고, 아직 그가 배신할 기미를 보이지는 않았다.

히사히데는 이 점에 기초하여 배치를 정했다.

“아케치 공. 공께서는 병력 칠천을 이끌고 두 번째 갈래를 막아 주시오.”

이쪽은 유서깊은 가문들이 많았고, 동시에 아케치 미츠히데의 고향이기도 했다.

사네히토가 마지막 발버둥을 쳤을 때도, 그의 도움을 얻어 주변 세력을 회유한 바 있었다.

미츠히데 역시 예상했다는 듯이 고개를 끄덕였지만, 이 결정에 아주 납득하는 모습을 보이지는 않았다.

“제가 칠천이나 이끌고 가면, 하시바군의 본대는 어찌하실 생각이십니까?”

최대한 긁어모아 일만이다. 그중에서 칠 할이나 가져간다는 것은, 나머지 한 방향에는 그만큼 빠진 병력으로 싸운다는 이야기일 수밖에 없었다.

“내가 직접 나갈 생각이외다. 도쿠가와 가문의 군대도 만만치 않을 것이니, 삼천을 이끌고 합류하면 충분할 거요.”

“그렇다고는 해도……. 차라리 제게 삼천만 주십시오. 제가 지역의 무사들을 설득하여, 최대한 막아보겠습니다.”

미츠히데의 말은 간곡했지만, 고니시군의 군 봉행은 고개를 가로저었다.

“그들과의 신뢰는 그리 깊지가 않소. 쿠보가 계시지 않는 지금, 그들이 순순히 공의 말을 들으리라 생각하기는 어려울 듯하오.”

그러나 도쿠가와 이에야스는 이미 이 편에 서서 손에 피를 묻힌 상황, 쉽게 등을 돌리지는 못할 것이라는 게 히사히데의 판단이었다.

“그렇다곤 해도 도쿠가와 이에야스도 군웅 중 하나로, 너구리같은 자가 아닙니까.”

이에야스 역시 기회주의적인 성격이 강한 자라는 것은 이 자리의 모든 참석자가 익히 아는 바였다.

아케치 미츠히데의 말은 그 사실을 일깨웠다.

그러나 히사히데는 씩 웃고는 한 사람을 데려오게 했다. 잠시 후, 그가 누구인지는 모두가 알 수 있었다.

“두 오다 공이오. 죽은 노부나가의 아들들이지.”

오다 노부타다와 노부카츠, 이들은 모두 꽁꽁 묶인 채로 끌려온 상태였다.

“나는 정말 아무 것도 하지 않았단 말이오!”

노부나가의 차남은 지금도 버둥거리면서 자신의 결백을 주장했다. 그러나 장남은 묵묵히 다른 사람들을 둘러보기만 할 뿐이었다.

“이건 조약 위반이다! 쿠보를 뵙게 해달란 말이다!”

노부타다가 악 쓰는 소리를 배경으로, 히사히데는 다른 사람들에게 설명을 시작했다.

“지금 하시바군에는 오다 가문의 가신이 아주 많소. 하시바 히데츠구도 그렇고, 이시다 미츠나리라는 자나 마에다 토시이에라는 자도 그렇지.”

게다가 저들은 오다 가문의 깃발을 내걸고 있다. 이 사실을 종합했을 때, 이 두 사람은 결코 하시바 히데요시의 행태와 무관할 수 없다.

그게 히사히데가 이들을 죄인 취급하는 이유였다.

“게다가 하시바 히데요시는 죽은 노부나가의 원수를 갚겠노라 표방하고 있소. 정작 그를 죽인 것은 오다 가문의 중신인 시바타 카츠이에와 그 일당인데 말이오.”

참석자 중에는 야규 무네요시도 있었다. 그는 이 말을 듣고 질문을 던졌다.

“그렇다면 노부카츠를 제물로 넘기시겠단 말씀이신지……?”

“그럴 리가 있겠소. 노부나가의 차남은 덤이오.”

정확히 말하자면, 노부타다야말로 부친의 계승자일 터였다. 그리고 히데요시에게 간 자들은 모두 그를 섬기고 있었다.

“나는 노부타다를 인질로 내세울 생각이오.”

“하, 하지만, 아무리 그가 조약을 위반했다고 해도, 인질을 해쳤다가는 오히려 세간의 인식이 나빠질 수도 있습니다.”

아케치 미츠히데의 말에도 일리는 있었다. 노부타다가 무슨 잘못을 했는가와는 별개로, 사람들의 공감대는 원래 이상한 방향으로 흐를 때가 많았다.

단지 조약에 가입한 무사가, 그것도 쿠보 본인도 아닌 부하에게 처단 당했다는 사실 자체가 훗날의 문제가 될 터였다.

그러나 히사히데는 눈을 빛낼 뿐,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오랫동안 그와 한솥밥을 먹었던 야규 무네요시조차도 그 기세에 움찔할 정도였다.

오랫동안 고니시 유키나가를 섬기면서 둥근 모습을 많이 보이기는 했으나, 마츠나가의 진면목은 그렇지 않았다.

그야말로 살모사라는 별호로 이름 높은 사이토 도산의 친우요, 천하인 미요시 나가요시의 해결사였다.

달리 대책이 없는 지금, 그는 얼마든지 독한 수에 손을 뻗을 의향이 있었다.

“쿠보의 손을 더럽힐 수는 없지. 아직 돌아오시지 않은 지금, 내 선에서 처리할 일이오.”

그때 바깥에서 실랑이하는 소리가 들려왔다.

- 잠시만 기다리라 하지 않았소?

- 우리 스승님께서 마츠나가 공께 속히 드려야 한다고 말씀하셨소.

-두고 가면 전달해 주겠다니까!

하필 히사히데 본인의 이름이 담긴 내용이었기에, 그는 밖에서 벌어지는 일에 호기심을 보였다.

“무슨 일이냐?”

“저, 그것이…….”

“시간이 없다. 빨리 말해라.”

재촉을 받은 병사는 우물쭈물하다가 입을 열었다.

“웬 땡중 하나가 봉행께 직접 편지를 드려야 한다고 성화를 부려서 말입니다.”

“땡중? 재밌는 일이군. 일단 들여보내 봐라.”

“예, 옛? 하지만…….”

“내 시간을 계속 뺏을 셈이냐?”

병사는 재차 명을 받은 뒤에야 황급히 돌아나갔다. 그리고 곧바로 승려 하나가 그의 인도를 받으며 들어왔다.

“내가 쿠보의 군 봉행, 마츠나가 히사히데다. 전할 편지가 있다고?”

그 말을 들은 승려는 고개를 조아리며 곱게 접힌 봉투 하나를 내밀었다.

“저희 스승이신 소에키 대사님께서 반드시 마츠나가 공께 전하라 하셨습니다.”

그렇잖아도 다음 연락선편에는 녹둔도로 병력을 보내라고 할 참이었다.

한 오백에서 일천 정도쯤이면 충분할 듯 했는데, 다행히도 지금 덕원에는 일천의 정예 철포대가 온 상태였다.

“물론 돌아가시라고 명하신다면, 어쩔 수 없지요.”

“아니, 아주 잘했네.”

어쨌든 군대가 들어온 것이었기에, 나는 한양에 파발을 띄웠다. 조선에서는 이순신을 임시 감군(監軍)으로 삼는 조건을 달아 허락의 답신을 보내왔다.

그리고 다시 우리는 해안가를 따라 북병영이 있는 경성에 들어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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