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내가 고니시라니-155화 (155/225)

155화 공성계(4)

무사가 배를 가르는 행위에도 그 밑바탕이라는 것이 존재한다. 그 토대가 없다면, 어리석음의 극치로 치부될 뿐이었다.

도성의 저자에서 수백의 무사가 집단으로 셋푸쿠를 한 것 역시 그러했다.

세상 사람은 모두 여섯 개의 다리만 건너면, 통한다고 했던가.

나니와쿄에는 각지를 다스리는 다이묘의 일가붙이가 거주하고 있었고, 그들 중 상당수가 집단 자해극을 목격했다.

목격자로부터 한 다리만 건너면 도성의 주민 전부를 아우르다시피 했기에, 한동안 낭인들의 행위는 좋은 이야깃감이었다.

“보기 드문 구경거리긴 했는데, 왜 그랬답니까?”

“뭐, 전하의 충량한 신하 어쩌고 하던데…….”

“전하께 무슨 변고라도 생겼던가?”

이런 식으로 사람들의 입이 모이는 자리라면, 어떤 식으로든 거론되었다.

하지만 낭인들의 행위가 좋은 쪽으로 평가되는 경우는 많지 않았다. 아니, 거의 없었다고 봐도 좋을 터였다.

“그렇게 보기에는 말이지…… 우리 조카가 신궁에서 서리로 일하는데, 전하께서는 평소와 다름없이 지내신다더군.”

“이 나라의 지존이라는 분이 끼니 걱정을 하던 때가 고작해야 선왕 때의 일일세. 지금은 신궁에서 떠받들어지고 있는데, 무슨 근심이 있으시겠나.”

국왕의 거취에 주목하는 사람들은 이 정도 이상으로 관심을 보이지 않았다.

다이묘나 그 가족들쯤 되고 보면, 그래도 왕실에 대한 인식이 조금 다를 수도 있을 터였다.

하지만 결국은 통명으로 내세울 수 있는, 명예로운 관직을 내려주는 존재. 옛 덴노와 지금의 국왕에 대한 인식은 그 수준에 불과했다.

그리고 고요제이 국왕 역시 마찬가지였다.

“얼마 전에 후원에 도둑이 침입했다 들었다. 경비가 자기 일을 소홀히 한 것은 아닌가?”

“그보다는 전하의 자비를 악용한 자들의 소행이었사옵니다.”

“그게 무슨 말인가?”

“신궁의 일부를 객사로 고친 일이 있었사온데…….”

신관 중 하나의 설명을 들은 사네히토는 찌푸린 얼굴로 고개를 끄덕였다.

멀리서 참배를 위해 온 사람들을 위한 배려가, 이런 결과를 낳았으니 불쾌하지 않을 수 없었던 것이다.

하지만 그중에도 낭인들의 목소리를 전달하려던 자도 없지 않았다.

“아니옵니다, 폐하. 그들은 모두가 폐하께 충성을 다하려 했을 뿐이옵니다.”

“그게 무슨 말인가?”

키타바타케 토모노리, 예전에 고니시 유키나가를 대적하려 했던 자가 입을 열었다.

그는 허울만 좋은 신관직을 받고, 신궁 한 구석에 유폐된 상태였다. 그러나 아주 눈과 귀가 없는 것은 아니었다.

심유경이 다녀간 이래, 덴노는 국왕으로, 폐하 호칭은 전하로 바뀌었지만, 그는 여전히 옛 명칭을 고집했다.

“그들은 폐하를 모시고 고니시 유키나가 토벌의 조서를 받으려 한 것이었사옵니다.”

그 목소리에는 열의가 있었으나, 정작 그 말을 받는 쪽의 반응은 영 신통치 않았다.

“또 과인을 이용할 야심가들이 나왔던 게로군.”

“폐, 폐하?”

“그렇잖은가. 경이라면 그래도 변함없는 모습을 보여주고 있으니, 나름대로 신뢰가 가네만…….”

사네히토는 고개를 가로젓기만 했다.

그래도 그 역시 대세를 바꿔 보겠다고, 한때 궁을 박차고 나가 군대를 끌어 모은 적도 있었다.

하지만 정작 그 휘하에 모인 세력들은 진심으로 충성을 다하지 않았다. 오히려 자기 입맛대로 잿밥을 탐하기만 했을 뿐, 정말로 덴노를 받들기 위해 온 자는 찾아볼 수 없었다.

“과인을 위해 목숨을 바칠 생각이 있다면, 적어도 그런 방법은 옳지 않았다.”

국왕은 딱 그만큼만 말하고는, 이 주제를 불문에 부쳤다.

그러나 모든 사람들이 아주 부정적으로 보기만 한 것은 아니었다.

“참으로 훌륭한 무사들이다. 명예를 아는 자들이라면, 저 정도는 할 수 있어야지!”

이번에 할복을 시도한 자들은 대부분 연배가 높지 않았다. 가장 나이가 많은 자가 이립을 갓 넘겼고, 보통은 겐보쿠(元服 원복, 관례.)를 치른 지 오년을 넘기지 않은 상태였다.

물론 이 시기의 관례는 20세를 지켜서 하지도 않았다는 부분까지 생각하면, 정말 시마 카츠타케의 생각처럼 새파란 애송이들의 소행이었던 것이다.

그들과 비슷한 연치거나, 혹은 그보다 어리지만 머리는 좀 컸다고 자부하는 소년들이 대체로 그런 모습을 보였다.

그러나 긍정적인 평가는 금세 묻혀 버렸다. 정확히 말하면, 주변 사람들이 그 입에 빗장을 질러 놓았다는 것이 더 맞을 정도였다.

“정말로 죽은 자가 없다는 건, 알고 있나?”

“그건 고니시군이 방해를 했기 때문…….”

“방해? 성공할 기미라도 있어야 방해겠지! 배를 한번 푹 찔러 놓고는 벌벌 떠는 것들, 살려놓는 걸 방해라고 하나?”

보통은 이 정도로 끝났지만, 끝까지 박박 우기는 경우도 없지는 않았다. 그러나 이 경우도 아예 기세에 눌리는 추세였다.

“어리석은 소리! 대체 언젯적 이야기를 하는 것이냐?”

이 정도면 꽤 점잖은 타이름이었고, 과격한 어른들은 치기 어린 애송이들의 등짝에 여래신장을 날렸다.

“어이구, 어이구! 이 녀석이 뭔 말을 하는 게야! 불한당 같은 소리 하지도 말아!”

애초에 나니와쿄에 거주하는 무사들은 행세께나 하는 사람들이었으니, 굳이 낭인들의 처지를 공감해 줄 이유가 없었던 것이다.

“잡혀 온 자들의 용태는 어떤가?”

“대부분이 가벼운 상처였던지라 쉬이 나을 겁니다. 다만 몇몇은 장을 잘못 찔러 똥독이 오른지라…….”

“푸합! 콜록콜록…….”

하필 그 보고가 들어왔을 때는, 시마 카츠타케가 혼다 마사노부와 같이 차를 마시고 있던 중이었다.

그나마 카츠타케는 보고를 듣느라 입에 아무 것도 담지 않은 상태였지만, 옆에서 느긋하게 차를 마시고 있던 마사노부가 입안에 머금은 액체를 격하게 뿜어버리고 말았다.

“크, 크하, 크하하하핫! 똥독이 올라? 죽을 정도인가?”

“그렇지는 않았습니다. 다만 다른 자들보다 오랜 기간 정양시켜야 할 줄로 압니다.”

“녀석들이 뭐 이쁘다고 온전한 모습까지 만들 어가면서 내보내나? 적당히 걸을 만하면 바로 방면시켜.”

카츠타케는 시원하게 지시를 내렸다. 하지만 정작 그 명을 받은 부하는 우물쭈물하기만 했다.

“문제 있나?”

“중죄를 저지른 자들입니다. 그런데 바로 풀어준다는 것은…….”

“쿠보께서 떠나시기 전에 정해 둔 바일세. 걱정할 거 없이 그대로 행하시게.”

사래가 들린 것을 가까스로 수습한 마사노부가 그렇게 말했다.

“쿠보께서…… 말씀이십니까?”

“그렇다. 믿겨지지 않는다면, 그냥 내가 책임지도록 하지.”

직속상관의 호언장담까지 떨어진 다음에야, 부장은 비로소 지시를 이행하러 나갔다.

*       *       *

정신을 차린 요시나리는 가까스로 고개를 들어, 주변을 확인했다.

하지만 어두워서 아무것도 보이지 않았기에, 그는 입을 열어서 방향 없는 질문을 던졌다.

“여기가…… 어디요?”

“죄인들을 심판하는 염라전이다!”

그러나 답은 금방 돌아왔다.

염라전이라는 말을 들은 요시나리는 고개를 떨구었다.

아아, 나는 죽었구나. 그래도 대의를 위해 죽었으니 다행이다. 이제 어떻게 될 것인가. 나를 위해서 누가 불공을 드려 줄까.

그 짧은 시간에 거기까지 생각하고 있는데, 밖에서 간수가 껄껄 웃으며 자신의 말을 고쳤다.

“농이다. 놀랐다면 미안, 하진 않군. 여긴 나니와부(府)에 속한 감옥이지. 끌려오는 내내 정신을 잃었던 모양이구만.”

“감히 사람을 놀려!”

“제대로 배도 가르지 못한 죄인 주제에 목청만 크구만.”

그 말을 들은 요시나리는 자신의 얼굴에 열이 오르는 것을 느꼈다. 하지만 그에게도 할 말이 없지는 않았다.

“제대로 된 카이샤쿠를 받았다면…….”

“오호, 그래? 배도 제대로 가르지 못해서, 뒤에 있던 친구가 쩔쩔 매기만 하던데? 혹시 셋푸쿠가 어떤 건지 잘 모르나?”

요시나리가 아무리 뻗대려 해도, 이어지는 사실 확인의 향연에는 어쩔 수 없는 노릇이었다.

하지만 입이 조용해지니, 이번에는 배가 우렁찬 소리를 냈다.

“하, 배는 고픈 모양이군. 하기야, 무사 나으리도 먹지 않으면 못 살지.”

“나, 나는…….”

“여기 네놈들을 위해 준비된 식사다. 먹든지 말든지는 알아서 해라.”

어느새 간수는 관솔불을 켜놓은 상태였다. 그리고 요시나리의 눈앞에는 모락모락 김이 피어오르는 우동 한 그릇이 놓여 있었다.

“고작 이런 것으로 나를 회유하려 하지 마라!”

“뭔가 착각하는 모양인데, 이건 대가 없이 주는 거다. 줄때 받아먹어.”

대가가 없다. 그 말이 요시나리에게는 그렇게 달콤할 수가 없었다.

이걸 먹어도 변절하지는 않은 것이라는 판단이 선 뒤, 그는 그릇째 들고 후루륵 들이마시다시피 했다.

그리고 다음 날 아침, 요시나리는 소금만 뿌려진 오니기리를 받았다. 어쨌든 그의 신분은 죄수였기에, 그 사실을 되새기면서 우동 생각을 억눌렀다.

다른 이들의 사정도 비슷했다.

감옥은 창살로 막혀 있었기에, 다른 이들의 상황은 가려지지 않았다. 요시나리의 친구들도 모두 같은 것을 먹었다.

중상을 입은 경우에나 죽이 차려졌고, 대부분 오니기리가 주된 식단으로 나왔다.

그런데 불과 다음 날, 약간의 차이가 생기기 시작했다.

“이보게, 야스마사. 자네 뭘 먹고 있나?”

“이거? 보다시피 우동일세.”

“왜 자네만 그걸 받았느냐는 말이네!”

“글귀 몇 자 적어 주니 주더군.”

“뭐?”

식사가 끝난 뒤, 요시나리는 돌아온 간수에게 정황을 질문했다.

자신의 잘못을 반성한다는 문구 하나. 그것만 적으면 그도 우동을 받을 수 있다는 답을 받았다.

“나는 잘못한 게 없다!”

“그건 내 알 바가 아니지. 내가 받은 지시는 그거야. 문구가 적힌 종이를 받으면, 우동을 내어주어라. 그게 전부라고.”

그 말을 들은 죄수는 자신의 친구를 비난했다. 그러나 말은 공허했고, 매 끼니마다 풍겨오는 냄새에는 농후함이 있었다.

다시 하루가 지나자, 다시 약간의 변화가 생겼다. 끼니때만 되면, 옥중에는 향기로운 음식냄새가 가득했다.

누군가는 텐동을 받고, 다른 누군가는 쿠파라는 것을 먹었다. 생선구이와 미소시루의 냄새도 간간히 풍겨왔다.

결국 냄새를 참다 못한 요시나리도 붓을 놀려서, 간수에게 몇 자를 적어 넘겼다. 그리고 죄수가 받은 대가는 실로 달콤했다.

그가 어려운 것을 적은 것은 아니었다.

단지 문구 하나, ‘나의 죄를 반성한다.’가 전부였다. 무엇을 반성하는지조차 요구받지 않았다.

따끈한 우동이 있는데, 그깟 글귀 한 줄이 대수랴. 심지어 쿠보를 칭송하라는 말도 아니지 않던가.

요시나리는 그렇게 생각하며, 만족스럽게 우동 국물을 들이켰다.

그리고 언제나 처음이 쉬웠다.

미소시루와 생선구이를 위해, ‘치료해 주셔서 감사합니다.’라는 글귀를 써서 넘겼다.

어쨌든 사실은 사실이고, 적에게도 감사할 것은 감사하는 것이 무사의 미덕이 아니던가. 죄수는 그렇게 생각하며, 생선을 살결에 따라 찢어서 입에 넣었다.

쿠파를 위해서는 ‘어리석은 짓을 저지르고 말았습니다.’라고 끄적였다.

‘사카이 쿠보, 고니시 유키나가는 영웅입니다.’라는 문장에는 텐동이 나왔다.

그렇게 요시나리는 옥중에서 정신없이 미식을 즐겼다. 그러다가 문득 자괴감에 빠지고 말았다.

자신은 대체 무엇을 하고 있는가. 처음의 대의는 어디에 가버렸나. 그리고 여전히 고향에서 눈칫밥을 먹고 있을 가족들까지.

그렇게 자신의 처지를 고민하던 죄수는 고민을 거듭하다가 한 가지 사실을 발견했다.

자신은 변절자가 아니라 철부지에 불과했고, 정말로 바보 같은 짓을 저지르고 말았다고.

하지만 여전히 마음속 한구석에서는 다른 울림이 있었다.

목숨보다 명예가 소중하다. 무사의 긍지를 지켜야 한다. 이러한 가르침을 비롯해서 그가 평생 배웠던 것들.

상반된 것 같은 두 가지 입장은 서서히 뒤섞이기 시작했다.

천하란 무엇인가.

무사란 무엇인가.

덴노 폐하는 어떠한 분인가.

사카이 쿠보는 어떠한 자인가.

그리고 새벽이 되었을 때, 요시나리는 자신의 고민을 끝맺었다.

마침내 탕아가 집으로 돌아왔다.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