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54화 공성계(3)
“감히 금역을 넘보다니, 보통 배짱 넘치는 자들이 아니군.”
시마 카츠타케는 손에 든 칼을 건들건들 흔들면서, 담을 넘은 낭인들을 비웃었다.
그의 평소 모습과는 다른 태도였다. 한껏 늘어진, 상대가 괘씸함을 느낄 정도로 오만하게 보일 정도였다.
오랫동안 그를 따랐던 노병들은 눈앞에서 벌어지는 모습을 보고, 자기들끼리 조용하게 수군거렸다.
‘우리 대장 원래 저랬나?’
‘도발하시는 거잖아.’
‘저렇게 밉상인 모습은 처음인데…….’
카츠타케 본인도 그렇게 말하는 것을 어렴풋이 들었다.
하지만 여기 모인 자들은 대부분이 피라미도 못 된 잔챙이들에 불과했다. 제대로 된 전장을 경험해 본 적도 없는 모양새였고, 고작해야 치기어린 풋내기가 평가의 상한선이었다.
그러나 스스로의 민망함을 억누른 결과, 나름대로의 소득은 없지 않았다.
오백여 명의 낭인들 중, 몇몇이 눈이 뒤집힌 채로 칼을 뽑아 달려들었다. 물론 그들을 처치하기에는 한 명당 일 초도 아까웠지만.
카츠타케의 검광이 한번 번뜩일 때마다, 두셋의 애송이들이 죽어나갔다. 그렇게 일곱의 목없는 시체가 생겨나고서야, 겨우 침입자들은 현실 감각을 깨우쳤다.
“도, 도망쳐!”
“사람 살려!”
겁에 질린 낭인들은 뿔뿔이 흩어져 달아나기 시작했다. 그러나 그들은 스스로 생각했던 것보다도 훨씬 쉽게 달아날 수 있었다.
“비켜라!”
“어딜 감히!”
“죽어! 죽어……!”,
제대로 된 판단조차 불가능해진 일부는 든든하게 세워진 방패만 하릴없이 두들겨댔다. 그러나 병사들은 그같은 발악을 막기만 할 뿐, 제압을 위한 어떠한 행동도 하지 않았다.
“어이쿠야. 너무 매섭다.”
“대장이 오실 때까지 버티기만 해야겠다.”
카츠타케 휘하의 병사들은 불경 외듯이 형식적인 비명을 내지르며, 낭인들을 일정한 방향으로 유도했다.
그러나 이미 침입자들 중 대부분은 이성을 잃었고, 몰이사냥의 형식 그대로 끌려갔다.
사냥감 쪽은 필사적이었지만, 그들을 사냥하는 쪽은 위아래가 모두 맥이 풀릴 지경이었다.
아무리 뼈대가 좋은 집안에서 뛰어난 검술 사범에게 배웠다고는 해도, 젊은 낭인들은 실전 감각이 전무했다.
그에 비해 카츠타케가 이끄는 병사들은 고니시군 중에서도 정예 중의 정예였다. 숱한 전장을 넘어선 경험이 있는 노병들은 대수롭지 않게 치기어린 칼날을 맞받았다.
그렇게 낭인들은 스스로가 눈치채지 못한 사이에, 후원의 정문으로 가고 있었다.
“무, 문이다! 어서 빠져나가자!”
“역도들이 후원을 나가려고 한다. 어서 잡아라.”
그러나 그들이 신궁의 후원 밖으로 나왔다고 해서, 호구를 벗어난 것은 아니었다. 나니와쿄를 경비하는 고니시군이 이미 거리에 쫙 깔려 있는 상태였다.
“역도들이다, 잡아라!”
그들 역시 한쪽을 터놓고, 낭인들을 정해진 방향으로 몰아갔다.
“헉, 헉…….”
“시바 공, 이쪽이오!”
어디에나 고니시군이 있었지만, 그 한쪽에는 뚫린 길목이 존재했다. 그렇게 가까스로 인적이 드문 구석에 들어간 낭인들은, 겨우 한숨을 돌렸다.
“이제 겨우 따돌린 건가……?”
그러나 그들에게 주어진 여유는 극히 짧았다. 딱 숨만 돌릴 정도. 그만큼의 시간이 지나면, 매복하고 있었던 고니시군이 모습을 드러냈다.
“역도들이 여기 있다!”
마침내 지쳐서 나가떨어진 낭인들이 나오기 시작했다.
그런 경우에는 칼을 빼들고 죽여달라는 식으로 휘둘러댔지만, 고니시군은 어렵지 않게 최후의 발악을 억눌렀다.
“네놈들에겐 명예로운 죽음 따윈 없을 것이다!”
지금의 그들은 영지에서 쫓겨난 낭인에 불과했지만, 어엿한 명가의 말예인 몸. 태어나서 걸음마를 할 때부터 검을 잡았고, 목숨보다 명예가 중요하다는 것을 배워왔다.
그 실체가 어떻든, 고니시군이 외치는 함성은 도망자들의 마음을 무겁게 했다.
전쟁에 참여한 경험이 조금이라도 있었다면, 그들은 이것이 함정이라는 것을 눈치 챘을 터였다.
하지만 그러한 것을 알지 못했기 때문에, 오히려 낭인들은 계속해서 도망치고 숨었다. 그렇게 고생한 끝에, 후원의 담을 넘었던 자들은 가까스로 추격을 뿌리쳤다.
적어도 당사자들은 그렇게 생각하고 있었다.
나니와쿄는 그 터가 매우 넓었고, 뒷골목 역시 그러했다. 도망자들은 어느새 한 구석에 모여 있었다.
요시나리도 그 중 하나였다.
“쇼니 공도 무사하셨구려!”
“천하에 두려울 게 없다던 고니시군도 별것 아니더이다. 명가의 후예를 무명소졸 따위로 막을 수 있었겠소?”
“당연한 말씀이오.”
그렇게 조금 숨을 돌리고 몸이 편해지자, 그들은 이제 겨우 앞날이라는 것을 떠올렸다.
“이제 어찌하면 좋겠소?”
“하늘은 기어이 올곧은 무사의 마음을 저버리는가!”
낭인들에게 앞날이란 없었다. 오백 여명에 달하던 숫자는 이제 반토막이 난 상태였다.
붙잡힌 동지들은 당당한 포로라기보다는 상갓집 개처럼 끌려가다시피 했고, 그러한 모습은 풋내기 낭인들에게 다시없을 두려움을 심었다.
그렇게 서로의 얼굴만 보고 있는데, 한 사람이 분연히 일어서서 외쳤다.
“나, 단조! 당당한 한 사람의 무사로서, 어찌 쥐새끼처럼 숨어지내야 한단 말이오!”
“그럼 달리 방법이 있소이까?”
“옥쇄하여 우리의 의지를 보입시다.”
거론된 방법은 셋푸쿠(切腹 절복, 통칭 할복.)이었다. 그 단어를 들은 일부는 겁에 질린 표정을 지었지만, 몇몇은 크게 고개를 끄덕였다.
“좋소, 내가 앞장서리다!”
“용기 있는 무사시구려. 공의 카이샤쿠(介錯 개착, 할복한 사람의 목을 쳐주는 행위.)는 내가 해드리겠소.”
그렇게 한두 사람이 나서자, 분위기는 굳어졌다.
“하지만 할복을 한다 해도, 이런 쓸쓸한 뒷골목에서 하면 누가 알아주겠소?”
“옳은 말이오.”
“하지만 이미 사방에 고니시군이 깔려 있는데…….”
과연 고니시군이 낭인들을 순순히 할복하도록 내버려둘 것인가. 그 의문에 대해서는 누구도 자신 있게 말하지 못했다.
오히려 최대한 불명예스럽게 만들어야, 고니시 유키나가의 위상이 올라갈 터였다.
분위기가 다시 냉각되자, 슬금슬금 눈치를 보는 자들이 생겨나기 시작했다.
“일단 지금은 변복하여 도성을 빠져 나가고, 다음에 저자 한복판에서 할복을 하도록 합시다."
"다음이 언제란 말이오?“
“고니시군에게 잡히면 할복도 할 수 없잖소이까.”
그렇게 의견이 분분한 가운데, 처음 나섰던 무사가 다시 입을 열었다.
“여기는 나니와쿄의 니시도리(西通) 뒷골목이오. 그 너머에는 다이묘들의 저택이 모여 있소. 그러니 이 옆의 큰길로 나가기만 하면, 우리의 의기를 천하에 내보일 수 있소이다.”
그 제안을 들은 낭인들은 그럴싸하게 여겼다. 물론 살 길을 엿보던 자들은 낭패를 느꼈지만, 역시 겉으로 드러내지는 않았다.
“시간이 부족할 것이니, 여기에서 셋푸쿠할 사람과 카이샤쿠를 해줄 사람을 정합시다.”
역시 먼저 나섰던 단조라는 무사가 결정할 방법을 제안했다.
단조가 말하길, 셋푸쿠를 할 사람은 동쪽 벽으로, 카이샤쿠를 맡을 사람은 서쪽 벽으로 붙으라 했다.
제안을 내놓은 장본인은, 말을 마치기가 무섭게 동쪽 벽에 붙었다.
그 모습을 본 낭인들 중 하나가 큰 소리로 외쳤다.
“나 역시 살아서 치욕을 볼 순 없다!”
순식간에 분위기는 급물살을 탔다.
셋푸쿠에 자원하는 사람은 용기 있는 무사로, 카이샤쿠를 맡겠다는 사람은 삶을 탐하는 겁쟁이로 몰리는 분위기가 되어 버렸다.
요시나리 역시 동쪽 벽에 섰고, 그와 친했던 시바 야스마사나 도토 아이시테 같은 이도 같은 위치에 등을 기댔다.
적어도 그가 아는 명가의 후예들은 모두 같은 방향에 있었다.
“훗, 겁쟁이들.”
야스마사가 작게 비웃음을 날렸다.
“그렇게 말하지 마시오. 살아서 치욕을 감내하는 게 더 어려울 것이니.”
“그도 옳은 말이구려.”
요시나리는 자신의 숙부가 했던 말을 떠올렸다.
사람의 목은 쉽게 베어지지가 않으니, 카이샤쿠를 하는 사람의 솜씨가 중요하다고 했다. 그렇다면 자신의 목을 맡길 사람에 대한 마음가짐 역시 올곧아야 할 터였다.
인선은 금방 정해졌다. 동쪽 벽은 순식간에 메워졌고, 거기에 서지 못한 사람들은 자연스럽게 서쪽 벽에 서야만 했다.
결정이 나자, 단조가 다시 입을 열었다.
“이제 우리는 당당하고 질서정연한 모습으로 사람들 앞에 나갈 것이외다. 셋푸쿠를 할 사람과 카이샤쿠를 맡은 사람은 각각 짝을 지어 서시오.”
그렇게 대열을 짜고, 낭인들은 세상 당당한 모습으로 거리에 나갔다.
의외로 선두를 맡은 사람은 단조가 아니었다. 닛키 요시무네라는, 옛 아시카가 가문의 분가 출신 무사였다.
단조가 그에게 다가가서 몇 마디를 나눈 뒤, 그가 낭인들의 앞장을 섰다.
다행스럽게도 고니시군은 그들이 나온 골목으로부터, 상당히 먼 거리에 있었다. 무사들은 방해꾼이 다가오기 전에 의식을 치러야 했기에, 빠르게 거리 한복판으로 움직였다.
멀리서 고니시군이 뛰어오는 가운데, 요시무네가 저자에 모인 사람들에게 큰 소리로 고했다.
“우리는 진정한 야마토인이며, 덴노 폐하의 마지막 무사다! 그렇게 생각하지 않는 자는 귀를 기울여라!”
“비록 시운이 따르지 않아 고니시 유키나가 같은 상인 놈이 정권을 쥐었으나, 이 나라는 덴노 폐하를 정점으로 하는 무사의 나라다!”
“이제 우리는 힘으로 고니시 유키나가를 처단할 수 없기에, 죽음으로서 우리의 의지를 보일 것이다!”
그렇게 포고한 뒤, 낭인들은 요시무네를 필두로 일제히 자신의 흰 뱃가죽을 드러냈다.
“우리는 지금 죽으나, 뜻은 영원히 살 것이다!”
니시도리를 오가던 사람들의 눈은 일제히 그들에게 모여들었다.
“설마 셋푸쿠를 하려는 것인가?”
“세상에…….”
“얘야, 어서 집으로 가서 사람들을 불러오너라.”
수백의 낭인들이 일제히 꿇어앉은 모습은 나름대로 진풍경을 자아냈다.
사형수가 처형당하는 모습도 좋은 구경거리인 세상에, 집단 할복은 다시 없을 이야깃감이 될 터. 사람들의 이목은 모두 낭인들을 향했다.
“역시 저들도 사람들의 눈은 두려워하는가.”
뒤늦게 그들을 에워싼 고니시군 역시 다른 행동을 취하지는 않았다.
요시나리는 그 모습을 보고, 역시 무사의 의기에 위축된 것이라고 여겼다. 그의 친구들 역시 그렇게 생각하는 기색이 역력했다.
“셋푸쿠!”
닛키 요시무네가 그렇게 외치며, 자신의 배를 찔렀다. 그리고 다른 낭인들 역시 그 뒤를 따랐다.
요시나리와 친구들 역시 뒤질세라 칼을 찔러 넣었다. 그러나 셋푸쿠는 그들이 생각했던 것처럼 달콤하지 않았다.
“허, 헉!”
“으…….”
“어, 어서 목을…….”
셋푸쿠에 자원한 그 누구도, 자신의 행동을 끝맺지 못했다.
단순히 찌르는 것조차도 숨이 막힐 정도로 고통스러웠기에, 그 다음 단계로 넘어갈 수 없었던 것이었다.
“배가 다 갈라지지 않았는데 목을 치란 말이오?”
“바카, 어서 쳐!”
카이샤쿠를 하는 사람도 칼을 휘두르지 못하기는 마찬가지였다. 셋푸쿠란 배를 가르고, 그 안의 자신의 영혼을 내보이는 행위여야만 했다.
그리고 남의 고통은 원래 제대로 인식하기 어려운 법이었다. 낭인들은 고통을 속히 끝내주기보다는, 제대로 의식을 치러야 한다고 여겼다.
그렇게 손발이 맞지 않으니, 낭인들의 할복 의식은 어느새 초보들의 차력쇼 비슷한 것이 되어갔다.
어느새 군중 사이에서 그들을 지켜보던 시마 카츠타케는 흡족한 듯이 고개를 끄덕였다.
애송이들은 애송이일 뿐이었다.
적당히 시간히 흐른 뒤, 오랫동안 그를 따랐던 부장 하나가 입을 열었다.
“이제 때가 된 것 같습니다만…….”
그는 전장에서 숱한 죽음을 보아왔다. 사람의 목숨은 허망하기도 했지만, 의외로 질긴 구석이 없지도 않았다.
적어도 저기 있는 자들 중에서, 정말로 죽을 정도의 행위를 한 자는 없었다.
“그렇지, 녀석들을 살려라. 어차피 저 정도로는 금방 죽지도 않겠지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