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53화 공성계(2)
명목상 주인이 허수아비인 것과는 별개로, 나니와쿄도 이제 한 나라의 수도라는 지위에 걸맞은 도시가 되어 있었다.
모든 다이묘들은 일가붙이를 여기에 두어야 했고, 강제로 늘어난 인구도 나름대로 제 역할을 했다.
도성이 번화해지면서, 하루에도 수백에서 수천에 이르는 사람들이 성문을 드나들었다. 그중에서 수상한 자를 걸러내는 것이 북문의 수문장, 코지로의 업무였다.
“어디서, 무슨 일로 왔지?”
“단바 출신이온데, 친척어른을 뵈러 왔습니다.”
꾀죄죄한 몰골의 사내가 그렇게 자신의 내력을 고했다. 나니와쿄를 드나드는 자는 대체로 무사거나, 혹은 그들을 상대하는 상인이었다.
간혹 지금처럼 시골에서 비빌 언덕을 찾아 올라오는 자들이 없지는 않았으나, 이런 경우는 대체로 신원이 불확실했다.
지금 같은 상황에서는 대처법이 따로 있었다. 코지로는 문밖으로 가리키며, 타이르듯이 말했다.
“일단 성 밖의 마을에 머무르면서, 자네가 찾아온 사람에게 소식을 전하게. 신원이 불확실한 자는 들여보낼 수가 없네.”
“예? 하, 하지만…….”
“자네 같은 경우가 많아서, 성 안에 소식을 전해줄 사람이 따로 있다네. 그러니 거기에서 기다리도록 하게나.”
수문장은 그렇게 한 사람을 돌려 보낸 뒤, 다음 차례를 불렀다. 이번에는 다소 남루하기는 해도, 정갈한 차림의 무사였다.
“어디 사는 누구며, 무슨 일로 오셨소?”
“이 사람은 노토의 류진에서 온 하타케야마 요시나리라 하오. 신궁에 기도를 드리러 왔소.”
코지로는 방문자를 위아래로 훑었다. 당당한 무사의 복색인 만큼, 의심할 여지가 보이지 않았다.
“도성에서는 허가 없이 칼을 패용하실 수 없소. 그러니 여기에 맡기고 보관증을 받아가시구려.”
“칼은 신궁에 봉납하기 위해 가져온 것이외다. 이제 난세는 끝났으나, 몸에 걸린 죄가 많으니…….”
설명을 들은 코지로는 고개를 끄덕였다. 전란이 사라지면서, 이렇게 찾아오는 무사들도 심심치 않게 보이곤 했다.
지금 같은 경우에는, 주의를 당부하고 들여보내는 것이 관례였다.
나니와쿄의 주민 대부분은 다이묘와 관련이 있는 자들이었다. 다시 말해서, 상당수가 무사로 평생을 살았다는 이야기와도 통했다.
다이묘들이 모두 사카이 쿠보에게 고개를 숙이는 모양새였지만, 공식적으로는 협정을 체결한 각 무가는 쿠보와 대등한 위치에서 협력하는 모양새를 갖추었다.
차후 어떻게 변할지는 알 수 없으나, 당장은 그들에 대한 배려와 절충이 나니와쿄의 분위기였다.
“그렇소이까. 봉납을 위해 오셨다 하니, 말씀드리는 것이오만…….”
“도성에서는 칼을 뽑는 것이 금지라고 들었소. 이 사람은 조용히 기도만 하고 갈 것이외다.”
“아신다니, 따로 말씀을 드리지는 않으리다.”
무사는 간단하게 목례를 한 뒤, 성 안으로 들어갔다.
이 외에도 상인이며, 다이묘의 친척 등 여러 방문자들이 코지로의 손을 거쳤다. 오늘도 그는 족히 수백 명을 성 안에 들이거나, 혹은 내보냈다.
이제 해는 기울어서 성문을 닫을 때가 되었고, 코지로가 이끄는 부대의 근무 시간도 끝을 향해 가고 있었다.
성문을 닫아거는 것까지 그의 임무였기에, 수문장은 슬쩍 해시계를 확인했다.
“이제 슬슬 준비를 해야겠군.”
코지로가 그렇게 말하자, 상관의 눈치를 살피던 부하들이 성문에 다가갔다. 일찌감치 일을 마치고 퇴근하고 싶은 것은, 모두가 원하는 바였다.
그렇게 마음이 풀리고 있는데, 코지로의 부장인 노부노리가 입을 열었다. 그의 손에는 성문을 드나든 사람들의 명부가 들린 채였다.
“수문장, 보고드릴 게 있습니다.”
“이제 일도 다 끝나 가는데 무슨 보고?”
수문장은 귀찮다는 듯이 말했지만, 손은 착실하게 명부를 받아들고 있었다.
애초에 고니시군에서도 신임 받는 최정예여야만, 나니와쿄에서 복무가 가능했다. 적어도 부하의 보고를 흘려듣지 않을 정도는 되어야 한다는 이야기였다.
“평소하고 똑같잖나?”
“그게 말입니다. 봉납을 하러 온 무사들의 숫자가 어제오늘 크게 늘어나 있었습니다.”
“흠……. 알았다. 교위 나으리께 그렇게 말씀드리면 되겠지?”
코지로가 수문장이라고는 해도, 일개 조장 정도에 불과했다. 경비에 중대한 차질이 생긴다 하더라도, 책임을 질 만한 위치는 아니었다.
그의 역할은 방금 부장이 그에게 했던 것처럼, 수상한 것을 발견하면 위에 보고하는 것으로 끝이 날 터였다.
교대가 끝난 뒤, 병사들은 막사로 돌아가고 코지로는 그의 상관을 찾아갔다.
“무슨 일인가?”
마츠나가 히사미치. 사카이 쿠보 밑의 군 봉행이자, 군무를 맡은 최고참 관료의 아들이 나니와쿄의 북문 교위였다.
도성은 한 면이 바다로 막혀 있었기에, 성문을 맡은 교위는 그 말고도 셋이 아닌 둘이 존재했다.
“보고드릴 것이 있었는데, 잠시 후에 다시 오겠습니다.”
코지로는 황급히 집무실을 나가려 했다. 그는 감당하기 어려운 선객이 이미 와 있었기에. 하지만 상황은 그가 원하는 대로 돌아가지 않았다.
“자네는 마츠나가 공 휘하의 수문장이 아닌가. 괘념치 말고 할 일을 하게.”
“아, 알겠습니다, 사콘.”
그 선객이란 나니와쿄의 경비 총책임을 맡은 시마 카츠타케였다.
그의 별호인 사콘은 사에몬노카미(左衛門督 좌위문독). 궁중의 성문을 담당하는 관직이다. 물론 어디까지나 사사롭게 붙인 통명에 불과했기에, 그가 정말로 덴노의 신하였던 적은 없었다.
하지만 사카이 쿠보가 조선으로 떠나기 전, 그를 통명 그대로의 자리에 앉혔다.
“근래 들어, 신궁에 자신의 칼을 봉납하겠다며 찾아오는 무사들이 늘었습니다.”
“그럴 수도 있겠지. 이제 전란이 벌어질 일은 없으니.”
“물론 그렇기는 합니다만, 어제부터 그 숫자가 비정상적으로 증가한 추세였습니다.”
코지로는 그렇게 말하며, 그의 부장이 작성한 명부를 내놓았다.
북문 교위인 마츠나가 히사미치는 그걸 받아서 훑어본 뒤, 곧바로 옆에 있는 시마 카츠타케에게 넘겼다.
“흠……. 과연 그렇군. 눈썰미가 예리한데.”
“소장이 아니라, 소장의 부하 중 하나가 발견한 것입니다.”
“그걸 전달하는 것이 바로 자네의 몫이지. 알겠네. 이만 가보게.”
그것으로 코지로의 수문장으로서 할 일은 끝났다. 그가 나간 뒤, 시마 카츠타케는 자신의 턱을 쓰다듬었다.
애초에 도성의 경비대장 같은 일은, 그에게 걸맞지 않았다. 전장에 나가서 적장의 수급을 취하고 깃발을 뺏는 것. 그게 카츠타케가 가장 원하는 일이었다.
히사미치는 잠시 그의 눈치를 살폈다.
아무리 그가 군 봉행의 아들이라고 해도, 지금은 카츠타케의 지휘를 받는 몸. 자신의 판단을 강하게 내밀기는 곤란했다.
아니, 오히려 부친의 후광을 등에 업으려 한다는 말이 나올지도 모를 일이었기에, 그는 행동거지에 주의를 기울였다.
“언제쯤 저들이 움직이겠습니까?”
“나라면 진작에 행동에 나섰겠네만…….”
그들은 이미 낭인들의 움직임에 대비하고 있었다.
“숫자만 보면, 이미 오백 명 가량이 도성에 들어와 있네. 당장 움직여도 이상할 건 없어.”
“모두가 사콘 같은 무위를 지닌 것은 아닙니다.”
“글쎄……. 습격의 묘를 살린다면, 정말 오백이면 충분한 숫자가 아니겠나.”
카츠타케가 말하는 내용은 긴박하기 짝이 없었지만, 그 어조는 느긋하기만 했다.
“나니와쿄의 경비를 맡은 사람은 나지만, 실질적인 얼굴은 북문교위인 자네일세. 그러니 아무것도 모르는 척, 마음의 준비만 잘 하고 있게나.”
도성의 정문이라고 하면, 보통은 남문을 말하는 경우가 많았다.
남문을 지나, 넓게 난 대로를 거쳐 궁성으로 들어가는 구조. 옛 수도인 헤이조쿄(平城京 평성경, 오늘날의 나라 현 나라 시.)와 헤이안쿄(오늘날의 쿄토.)는 물론이고, 타국의 도성을 짓는 법식은 모두가 그러했다.
하지만 나니와쿄의 사정은 조금 달랐다.
신궁은 여전히 남면하고 있었으나, 교통상의 문제로 실질적인 정문은 북문이었기 때문이다.
대부분의 유동인구는 해로를 이용했지만, 육로를 쓴다면 어쨌든 대부분이 북으로 들어와야 했다.
남쪽은 촌구석 취급을 받는 키슈(紀州 기주, 오늘날의 와카야마 현과 미에 현 일부를 일컫는 말.) 밖에 없었고, 거기에서 나니와쿄로 상경할 사람은 그리 많지 않았다.
상관의 타이르는 듯한 어조에, 히사미치는 빙긋 웃었다.
“저도 일군을 이끄는 몸이니 말입니다. 적정이 환히 들여다보이는데도 얌전히 있자니, 마음이 편치가 않습니다.”
“지금은 적을 끌어들이는 게, 자네의 공이 될 걸세.”
* * *
요시나리는 성 안으로 들어온 뒤, 곧장 신궁으로 향했다.
나니와쿄의 신궁은 국왕의 거처이기도 했지만, 동시에 신주 예순여덟 나라의 팔십만 신을 받드는 신관들의 총본산 노릇도 겸하고 있었다.
어엿한 한 종교의 중심지인만큼, 예전의 고쇼(御所 어소, 덴노의 거처)와 완전히 같지는 않았다.
일부는 외부에 개방되어 하나의 종교시설로 기능했다.
멀리서 온 사람들을 위한 객사 역시 존재했고, 이미 그와 뜻을 같이하는 많은 무사들이 거기에 머무르고 있었다.
모두가 봉납을 핑계로, 자신의 무기를 갖춘 상태였다.
“오랜만이오.”
“토야마 공도 이미 와 있었군요!”
못난 놈들은 서로 얼굴만 봐도 흥겹다고 했던가.
그 말을 했던 다른 시대 현인의 의도와는 전혀 다른 풍경이 벌어졌지만, 어쨌든 여기 모인 낭인들은 서로를 반겼다.
애초에 그들은 자신이 못난 것도 몰랐으니 말이다.
“한조 공은 아직 안 왔소이까?”
요시나리는 고개를 두리번거렸지만, 그가 찾는 무사는 보이지 않았다.
“글쎄, 좀 늦으려나 보오.”
“뭐, 공을 나눠먹을 사람이 줄어드는 것도 나쁜 건 아닐 거요.”
누군가가 지나가듯이 말했지만, 요시나리의 반응은 격렬했다.
“그게 무슨 망발이오? 그야말로 무사의 귀감이거늘! 모두가 빌어먹는 신세에 한탄만 하고 있을 때, 뜻을 모으기로 한 게 누구였소?”
“진정하시구려. 내가 듣기로는, 노부타다 님을 모시고 온다고 하더이다. 만약 자신이 늦어지면, 먼저 거사를 치르라는 전언이 있었소.”
동지들 중 하나가 달래듯이 사정을 설명했다.
“진작에 그렇게 말해주었으면, 좀 좋았겠소이까. 헌데, 내일이 거사일이니……. 지금 이 자리에 없다면 어쩔 도리는 없구려.”
요리마사는 그렇게 말하며 한숨을 내쉬었다.
뜻을 가장 먼저 세운 이가 여기에 없다는 것은 아쉽기 짝이 없었지만, 그런 사소한 감정으로 대사를 그르쳐서는 안 될 터였다.
그렇게 자신의 마음을 정리한 뒤, 먼저 도착한 동지들에게 내일 할 일을 질문했다.
“계획은 어찌되오이까?”
“이 담 너머가 바로 폐하께서 즐겨 찾으시는 후원이라 하오. 궁인 중 하나가 동참했고, 내일 폐하를 이리 모셔올 것이라 했소.”
그렇게 조서를 받아내면, 다음은 다이묘들의 저택이 모인 나니와쿄 서쪽으로 갈 것이라 했다.
그들 역시 무사였으니, 어명이 있다면 따를 터였다.
모두가 거사를 위해 숙면을 취하고, 다음 날 일찍 담을 넘어갈 채비를 갖추었다.
그리고 약속한 시간인 정오가 되자, 그들은 일제히 후원에 들어갔다. 하지만 거기에 낭인들의 충성을 받아줄 덴노 폐하는 없었다.
“시간 약속은 그래도 잘 지켰군. 시마 사콘이 기다린 지 오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