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내가 고니시라니-152화 (152/225)

152화 공성계(1)

“유성룡과 이순신을 달라?”

“예, 전하. 아주는 아니고, 잠시만 빌리면 되겠습니다. 조선에도 나쁜 일은 아니지요.”

조선의 국왕은 내 제안을 듣고, 알 수 없다는 표정을 지었다.

“동지사는 그렇다 치고, 녹둔도 만호는 어찌하여?”

“그 장수 덕에 우리 사람이 억울한 일을 겪지 않게 되었으니, 사례도 할 겸 말입니다.”

나는 그렇게 말한 뒤, 그들을 데려올 수 있는 명분을 이야기했다.

“지난번 동양 무역회사의 총회에서 특허에 관한 이야기를 했습니다만, 아직 완전히 정비된 것은 아니잖습니까.”

“음, 하성군에게 들은 바가 있다. 각국의 습속이 모두 다르니, 서로 맞출 필요가 있겠지.”

조만간 스모토는 물론이고 부산과 여송에 특허 사무국을 개설하기로 정한 바가 있었다.

“유성룡이라는 신하와 그 당여 몇 사람, 그리고 서인 중에서 청렴한 자를 뽑아서 보내주시지요.”

“알겠네. 하지만 여전히 녹둔도 만호에 관한 이야기는 듣지 못했군.”

“전하께서 어찌하시느냐에 따라 달라질 수 있겠지요.”

나는 그렇게 말하며, 냉수로 목을 축였다.

왕이 이일과 서인을 어떻게 할 것이냐에 따라, 이순신에 대한 처분도 달라질 수밖에 없었다.

그들을 단칼에 쳐내려고 한다면, 이순신은 처벌 대신 중용이 기다리고 있을 터였다. 하지만 국왕이 완만하게 연착륙을 택한다면, 어떤 식으로든 이순신은 처벌을 받아야 했다.

하지만 현명한 왕이라면, 정국의 불안정보다는 온건한 방식을 택할 가능성이 높았다.

“일단 이순신이라는 장수는 처벌을 피할 수 없으리라 봅니다만……. 어느 정도의 수준을 생각하고 계십니까? 아마도 보직해임 정도가 될 듯한데.”

“보직해임?”

“아, 백의종군 말입니다.”

내 말을 들은 왕은 고개를 끄덕였다.

“그 정도가 적당하겠지. 달도 차면 기우는 법인데, 한 당파의 사람만 계속 쓸 수는 없는 법이니.”

“이번에 그 여진족들 사이에서 발견되었다던 자가 영 마음에 걸려서 말입니다. 길잡이도 필요하고……. 이왕 백의종군을 시키실 거라면, 몇 년 정도는 제게 붙여 주셨으면 합니다.”

“단순한 역도는 아닌 모양이군.”

역시 왕으로서 산 세월이 길어서인지, 단순한 일이 아님을 짐작하는 눈치였다.

“뭐, 그렇습니다. 반항도 그 정도쯤 하면 숙일 때도 되었지 싶은데, 타국에서 발견되었다고 하니 말입니다.”

“역도를 발본색원하는 일은 중요하지. 하지만 왕도 도성에서 백리 밖으로는 나오지 않는 법인데, 공방도 그렇지 않겠는가?”

내가 북변으로 올라가겠다고 하니, 조선의 국왕이 오히려 우려를 표해왔다.

사실 나도 이순신을 데려오는 선에서 멈출 생각이었다. 겸사겸사 조선 내부의 사정도 좀 살펴보고. 이런 일은 남의 눈을 빌리기보다는, 내가 직접 봐야 했으니 말이다.

하지만 조세이로 추정되는 자가 있다는 말을 듣고, 생각을 바꿨다.

만주까지 올라가서 뭔가를 꾸미고 있을 정도라면, 이제는 이 질긴 악연을 끊을 필요가 있었다.

*       *       *

일단의 무리가 기요스 성의 문을 두드렸다.

비록 지금은 영지를 잃고 몰락한 낭인이었지만, 모두가 겐지를 자처하는 당당한 무사들이었다.

그들을 가엾게 여긴 노부타다는 밥이라도 한 끼 먹여서 보낼 생각으로, 그들의 방문을 받았다.

하지만 그는 곧 후회하지 않을 수 없었다.

“간레이, 이번이야말로 더없이 좋은 기회요. 다시 폐하를 모시고, 동국의 무사들을 규합해야 하오이다!”

“그렇습니다. 공이야말로 진정한 동국 무사의 동량이 아니십니까.”

기요스 성의 손님들은 어느새 노부타다에게 거병을 요구해왔다. 하지만 성의 주인이 보기에, 그들의 생각은 무모하기만 할 뿐이었다.

“그만들 하시구려. 나는 더 이상 간레이가 아니외다. 이제 천하의 대세는 기울었으니, 모두 자중하기 바라오.”

“무사들의 대망은 이미 모였습니다. 저희와 같이 가시지요.”

“지금이라도 칼을 집어넣고 돌아가시오. 쿠보의 눈이 사방에 있다지만, 조용히 숨어지내면 언젠가는 때가 오지 않겠소?”

노부타다는 그들의 요구를 완곡하게 거부했다. 그러나 방문자들 역시 뜻을 굽히려 들지 않았다.

“아직 하늘은 겐지를 버리지 않았습니다. 고니시 유키나가, 그자가 자리를 비운 지금이 절호의 기회란 말입니다!”

한 청년이 그렇게 외쳤다. 하지만 역시 노부타다의 생각으로는, 어리석은 만용에 지나지 않았다.

“그 영리한 쿠보가 대책도 없이 함부로 타국에 나가 있겠소이까.”

“천하가 태평해졌으니, 마음을 놓은 게지요. 이럴 때 무사들의 뜻을 모아 들이치면, 회천도 꿈은 아닙니다!”

저들은 나니와쿄의 덴노에게 조서를 받아내면, 그걸로 끝이라 여기고 있었다. 하지만 그렇게 된다 해도, 무슨 수로 바다를 건넌단 말인가.

아무래도 낭인 생활이 길어지다 보니, 마음에 병이라도 얻은 모양이었다.

그렇게 생각한 노부타다는 축객령을 내렸다.

“오늘은 아무 일도 없었소이다. 모두 그렇게 알고 돌아가시오.”

하지만 순순히 문을 나서는 자는 아무도 없었다. 오히려 서로가 눈을 맞춘 뒤, 허리춤에서 칼을 뽑았다.

“순순히 저희를 따라오시지요.”

“감히 손님으로 대우받은 자가, 주인을 겁박하려 하는가!”

“겁박이라니요. 천하를 바로잡는 일입니다.”

원래 손님의 무장을 맡아서 보관하는 것은 주인의 권리였다. 하지만 그들은 모두가 당당한 명가의 후예였기에, 노부타다는 그들에게 호의를 베풀었다.

그 호의가 독으로 돌아온 모양새가 되고 말았다.

노부타다는 무사들을 꾸짖었지만, 오히려 그들은 빙긋 웃어가며 주인에게 다가갔다.

하지만 낭인들은 뜻을 이루지 못했다.

“개들이 본색을 드러냈는데, 어째 내쫓지 않으랴!”

노부타다의 탄식 어린 외침이 신호였다.

오다 가문의 병사들이 일제히 뛰어나와, 역으로 낭인들을 포위했다.

“설마 했거늘, 기어이 이 몸을 얽매려 하다니. 칼을 버리면 목숨은 살려 주겠다.”

그게 노부타다가 무사들에게 베풀 수 있는 마지막 호의였다. 그러나 낭인들은 여전히 여유로운 모습이었다.

“간레이께서 이러신다고, 겁난을 벗어나실 수 있으실 것 같습니까? 이미 동지들은 행동을 개시했을 겁니다. 폐하께서는 곧 조서를 내리시겠지요.”

“뭐라?”

“없던 일로 하시겠다구요? 간레이야말로 지금이라도 뜻을 돌리면, 패배주의에 찌든 모습은 잊어 드리겠습니다.”

그 당당한 태도는 오히려 설득력이 있을 지경이었다.

하지만 노부타다는 스멀스멀 올라오는 꺼림칙함을 마음 한 구석에 도로 밀어넣고, 병사들에게 지시를 내렸다.

“모조리 베어 버려라!”

그러나 저항은 거셌다.

명색이 인생의 대부분을 칼밥으로 채운 자들인 만큼, 병사들의 숫적 우위는 크게 의미를 보이지 않았다.

하지만 덩치가 큰 거한이 들어오면서, 판세는 노부타다 측이 유리한 방향으로 바뀌었다.

“숙부의 말씀대로 얌전히 지내다보니, 이렇게 신나는 일도 생깁니다그려.”

“나를 겁박해, 사지로 몰아넣으려고 했던 자들이다. 죽어도 억울하지는 않겠지.”

“분부 받듭니다.”

마에다 토시마스(前田利益 전전차익). 케이지 또는 케이지로라는 별명으로도 불리는 장수였다.

원래 그는 자기 숙부인 토시이에를 따라, 에조치로 가려 했다. 하지만 토시이에는 노부타다의 곁을 지키라며, 억지로 그를 남겨놓았다.

토시마스가 나서면서, 낭인들은 모두 목을 잃은 귀신으로 변했다. 그리고 기요스 성은 다시 아무 일도 없던 것처럼 조용한 모습으로 되돌아갔다.

그렇게 상황이 정리된 뒤, 노부타다는 토시마스에게 감사를 표했다.

“덕분에 사지로 끌려가지 않을 수 있었다.”

병사들을 대기시켜 두었던 것 역시 토시마스의 꾀였다.

명가의 후예를 믿어 보려 했던 그의 주군과는 달리, 토시마스는 조심할 것을 권했다. 결국 주군과 부하의 의견이 엇갈린 끝에 나온 합의점은, 식사 대접과 동시에 병사들을 매복시키는 것이었다.

그게 노부타다의 목숨을 살린 결과를 낳았다.

하지만 토시마스가 생각하기에, 아직 위험은 끝이 아니었다.

“아까 녀석들이 했던 말이 마음에 걸립니다. 만약 폐하께서 같은 패거리의 손에 넘어간다면…….”

“내 목도 결코 무사하지 못하겠지.”

지금 노부타다에게 있어 최선의 상황은, 이 사건이 찻잔 속의 태풍으로 끝나는 것이었다.

아무리 쿠보가 트집을 잡으려 해도, 사소한 일로 끝나버리면 노부타다도 안전할 터였다.

하지만 신궁이 범해지는 대사건으로 발전한다면, 아무리 필사적으로 변호하려 해도 의심을 면치 못할 운명이었다.

“지금이라도 당장 나니와쿄로 달려가는 게 좋겠군.”

“아니, 안 됩니다. 지금 가시면 오히려 누명을 쓰시게 될 겁니다.”

“누명은 이대로 앉아 있어도 씌워질 수밖에 없다.”

앉아도 서도 의심을 피할 수 없는 일이라면, 최소한의 발버둥은 치자는 것이 노부타다의 생각이었다.

하지만 토시마스는 엉뚱한 곳을 입에 올렸다.

“주군께서는 스모토로 가셔야 합니다. 이자들의 목을 가지고, 고변하도록 하십시오.”

“그렇군. 지금 가봐야 늦겠어.”

노부타다는 죽은 자들을 쳐다보며, 혀를 한번 찼다. 그걸로 애도는 끝이었다. 이제부터는 속도의 싸움이 될 터였다. 그렇게 판단을 마친 노부타다는 곧바로 항구로 향했다.

*       *       *

“성공하겠습니까?”

“실패한다.”

히데요시의 답은 간결했다. 그의 입에서 나온 말은, 황량한 에조치보다도 살풍경할 지경이었다.

당황한 기요마사는 잠시 말을 잇지 못하다가, 겨우 한 마디만을 다시 입밖에 냈다.

“간레이께서 휘말리시지 않기만을 바라야겠군요.”

히데요시와 기요마사에게 노부타다는 여전히 노부나가의 후계자였다.

“남은 사람들이 있으니 충분하겠지.”

“하지만, 실패할 일을 어째서 꾀하신 겁니까?”

부하의 말을 들은 히데요시는 빙긋 웃기만 했다. 하지만 그것도 잠시, 그는 이내 입을 열었다.

무골인 기요마사를 위한 배려였다.

“유키나가, 그자가 방심하게 만들기 위함이다.”

“방심, 입니까…….”

히데요시 역시 한마디로 기요마사가 이해할 거라고는 생각하지 않았기에, 설명을 이어나갔다.

“본국에서는 대부분의 사람들이 난세가 끝났다고 말한다.”

“그렇긴 합니다만…….”

“하지만 난세가 끝났다고 하기에는, 너무 밋밋하지 않더냐.”

그렇게 말하는 히데요시의 얼굴에는 쓸쓸함이 감돌고 있었다.

“너는 내가 왜 여기에서 고생하고 있다고 생각하느냐.”

“그야, 고니시 유키나가를 쓰러트리기 위함이 아닙니까.”

“간레이께서는 돌아가셨고, 고니시 유키나가는 천하를 쥐다시피 했지. 이대로 돌아가서 고개를 숙인다면, 하시바 가문의 영지쯤은 보전 받을 수도 있었다.”

히데요시의 목소리는 무겁게 잠겨 있었기 때문에, 기요마사는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

“만약 간레이께서 사카이 쿠보와 결전을 벌이시고 그 싸움에서 쓰러지셨다면, 그랬다면 나 역시 난세의 끝을 납득할 수 있었을 것이다.”

그러나 강성한 오다 가문은 허망하게 내분으로 기회를 놓치고 말았다.

가신들이 하극상을 벌이지만 않았어도.

그리고 거기에 일당백이라는 에미시의 대군을 더할 수만 있었다면, 오다 막부를 보는 것도 꿈은 아닐 터였다.

“하지만 그 끝은 너무나도 허망했지. 그걸 인정하지 못하는 사람들은 많다. 많은 무사들은 지금도 자기가 정면대결이 아닌, 등에 비수를 꽂혀서 몰락했다고 생각할 것이다.”

“낭인들이 마지막 발버둥을 치면, 그걸로 끝일 거라 생각하겠군요.”

“바로 그것이지.”

기요마사는 히데요시의 말에 납득했다. 하지만 이 자리에 있는 또 한 사람, 마에다 토시이에는 오히려 불안감을 느끼고 있었다.

‘하시바 공의 뜻은 알겠지만, 낭인들의 발악을 마지막으로 천하의 향방이 그대로 굳어질 수도 있지 않은가.’

하지만 그 역시 오다 가문의 충신이었고, 노부나가의 죽음과 이후의 결과를 받아들이지 못하기는 매한가지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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