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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고니시라니-149화 (149/225)

149화 넓어진 천하(8)

히데요시가 틀어박혀 있었다던 얌왓카나이에 보냈던 쿄타로는 쾌속선편으로 사정을 알려왔다.

그가 포로들에게 얻어낸 정보는 그다지 영양가가 있다고 할 수 없는 것들이었다.

아니, 적어도 그들이 음지에 숨어들었다는 걸 확인했다는 점에서만큼은 소득이 있기는 했다.

“하시바 히데요시는 진작에 어디론가 떠나버린 상태였고, 도토야 조세이도 배를 타고 북쪽의 섬으로 올라갔다고?”

오다 노부나가의 옛 부하는 여전히 행방을 찾을 수 없었고, 도토야 조세이 역시 고기잡이 배로 떠나서 돌아오지 않았다고 했다.

에조치, 그러니까 홋카이도에서 더 위로 올라갔다면……. 사할린으로 건너갔다는 이야기였다. 물론 살아 있을 때의 이야기겠지만.

여러 장수들 역시 동석한 상태에서 이 이야기를 들었고, 그중에서 시마 카츠타케가 가장 먼저 입을 열었다.

“쿠보, 지금이라도 에조치 전역을 샅샅이파헤치면, 뭔가는 나오지 않겠습니까.”

단순하게 생각하면 그게 간단한 방법일 터였다. 다만 그대로 실행에 옮기기에는, 너무나 심각한 장애물이 가로막고 있었다.

나는 고개를 저으며, 카츠타케에게 그의 주장이 불가능한 이유를 말했다.

“가능하다면 자네의 말대로 하는 게 가장 좋겠지. 그런데 말일세. 혹시 에조치의 넓이가 얼마나 되는지 아는 사람 있나?”

내 질문을 받은 참석자들은 저마다 자기 추측을 내놓았다.

“고작해야 시코쿠 정도나 되지 않겠습니까?”

“에미시들이 쫓겨간 곳이니, 그보다 더 작을 수도 있겠지요. 어쩌면 여기보다 좁을지도 모릅니다.”

“의외로 넓을 수도 있소. 아마 큐슈와 맞먹을 수도 있겠지.”

아직까지 에조치는 일본인에게 전인미답의 땅이나 다름없었다. 당연히 제대로 된 사정을 파악하는 이가 있을 리 만무했다.

하지만 그래도 사실에 가까운 추측을 내놓은 사람도 없지는 않았다.

참석자들 중에는 상경하러 왔다가 그대로 불려온 난부 노부나오라는 자도 있었다. 그가 들은 바를 이야기했다.

“제 가신 중 하나가 배를 띄워보았는데, 가장 남쪽인 마츠마에로부터 열흘을 넘게 가도 동쪽의 끝을 볼 수 없었다고 했습니다.”

“관선이었나?”

“아마도……. 북방의 바다는 험해서, 변재선이나 회선으로는 건너기가 어려우니 말입니다.”

그 말을 들은 참석자들은 입을 다물지 못했다.

이 시대의 일본인에게 에조치란 에미시들이 쫓겨간, 살기 어려운 땅에 지나지 않았으니 말이다.

에도 시대에도 홋카이도 최남단에 영지를 두었던 무사는 한동안 무석(無石, 세입이 없음.) 취급을 받았다고 했던가.

석고를 세력의 크기로 가늠하는 시대에 아예 없는 사람으로 간주된 셈이었으니, 그것만으로도 인식이 얼마나 처참한지 짐작이 될 정도였다.

사람들이 현실을 받아들일 수 있게 잠시 시간을 둔 뒤, 나는 카츠타케에게 다시 질문을 던졌다.

“그러니까 자네의 말은, 그 광대한 땅을 샅샅이 뒤지자는 이야기로군.”

“소장이 에조치의 사정에 어두워, 실언을 했습니다.”

“아닐세. 모르면 그럴 수도 있지. 하지만 어쨌든 에조치를 마냥 버려둘 수는 없잖은가.”

사실 히데요시가 바다를 건넜다고도 볼 수 있는 상황이지만, 만에 하나라는 게 있을 터였다.

세력 다툼에서 밀려난 자가 변방을 전전하다가 화려하게 복귀한다. 전래 동화 따위에서 자주 보이는 이야기의 흐름이 아니던가.

“문제는 우리가 그쪽에 투입할 수 있는 인력에 한계가 있다는 것이지. 일전에 츠가루 해협에 보내두었던 함대도 가까스로 긁어모았는데, 새로 병력을 파견하긴 어렵네.”

내 말을 들은 마츠나가 히사히데가 입맛을 다셨다.

“군축을 너무 일찍 했던 모양이외다.”

“어쩔 수 없지요. 필요 이상의 병력은 그대로 낭비가 되니…….”

표면상으로는 일본 내의 전란은 끝난 거나 다름없었다.

내가 거느리고 있는 육군 병력은 대부분 해산시킨 상태였고, 수군은 요즘 늘어난 해적을 상대하느라 바빴다.

모두가 머리를 굴리고 있는 가운데, 야규 무네요시가 입을 열었다.

“이럴 때 쓰라고 있는 게, 나니와 조약 아니겠습니까?”

“나니와 조약은 상호방위협정이지. 한쪽이 공격을 받고 있을 때, 도와야 한다는 의미일세.”

“쿠보를 적대시하는 자가 숨어서 칼을 갈고 있는 상황입니다. 이게 공격을 받고 있는 게 아니면 무엇이겠습니까.”

무네요시 정도면 나름대로 장수들 중에서는 두뇌파에 속했지만, 그 역시 전술에 경도된 편이었다.

슬쩍 다른 사람들을 살펴보니, 역시 난부 노부나오를 비롯해, 조약에 가입한 당사자들 몇몇은 표정이 좋지 않았다.

하지만 다행히도 내가 뭔가 말하기 전에, 혼다 마사노부가 먼저 설명에 나섰다.

“아직 스모토나 나니와쿄, 혹은 쿠보 휘하의 병력이 공격받은 상황이 아니외다. 하다못해 하시바 히데요시나 도토야 조세이라는 자가 선전포고라도 했다면 명분이 서겠지만, 그렇지 않은 상태에서는 쿠보의 신용만 깎일 뿐이오.”

마사노부는 그렇게 설명을 마친 뒤, 다른 안을 내어놓았다.

“하지만 조약에 가입하지 않은 동맹들이라면 이야기가 달라지지 않겠습니까. 도쿠가와 가문에게 협조를 요청하시지요.”

다른 동맹들은 제쳐놓고 도쿠가와를 바로 언급했다는 점에서, 그 의도가 엿보였다. 하지만 역시 독이 든 성배나 다를 바 없는 수단이었다.

이번에도 나는 고개를 저어야 했다.

“미카와노카미(三河守 삼하수, 도쿠가와 이에야스의 관위.)는 나와 손을 잡은 지 얼마 되지 않았음에도 불구하고, 성심성의껏 병력을 풀어서 돕고 있네. 어찌 험지로 몰아넣을 수 있단 말인가.”

물론 말은 그러했지만, 아직 온전히 믿을 수가 없어서 더더욱 보낼 수 없다는 이야기를 돌려서 한 것에 지나지 않았다.

너구리에게 원숭이와 붙을 기회를 준다? 여러 가지로 심대한 위험이 따르는 계책이었다.

마사노부 역시 말귀가 어두운 편은 아니었기에, 금방 내 뜻을 이해했다.

“역시 쿠보께서는 인의를 아시는 분이십니다. 그렇다면 남은 방법은 하나겠지요.”

이미 보내 놓은 함대를 최대한 잘게 쪼개서 해안을 초계하게 한다. 다음으로 마사노부가 내놓은 계책은 상식적이었다.

결국 이도저도 어렵다면, 정공법이 답이라는 이야기였다.

“어쩔 수 없지. 그리고, 군 봉행.”

“말씀하시오, 쿠보.”

“예산을 배정할 것이니, 최대한 모병 숫자를 늘리는 방향으로 안을 짜주시기 바랍니다.”

내 지시를 들은 마츠나가 히사히데는 읍하는 것으로 답을 대신했다.

그 외에도 이리저리 처리해야 할 업무는 많았다. 사부로의 일로 잠시 조선에 다녀올 생각이었기에, 최대한 많은 일을 미리 정해 두어야 했다.

*       *       *

북변의 일은 조선의 국왕, 이환에게도 상당한 난제였다.

“녹둔도 만호 이순신은 여전히 자신의 주장을 굽히지 않고 있다고 했나?”

“그러하옵니다.”

내관에게 보고를 들은 이환은 고민하지 않을 수 없었다.

이일은 그가 신임하는 장수였고, 여진족 토벌로 명망도 상당했다.

하지만 저렇게 이순신이 몸이 엉망이 된 상태에서도 말을 바꾸지 않는다는 것은, 분명 곡절이 있을 터였다.

그간의 기록을 살펴본 바, 이환이 본 이순신이라는 장수는 매우 강직하고 청렴한 인상이었다.

하지만 이번 사안은 결코 단순하지 않았다. 단지 함경북도 병마절제사 이일과 녹둔도 만호 이순신이 상반된 주장을 하는 것에서 그칠 문제가 아니었다.

동서 붕당.

이순신의 당파는 뚜렷하지 않았지만, 동인의 중진인 유성룡과 각별한 관계라고 했다. 그리고 이일은 명백히 서인에 속한 자였다.

이환은 자신의 정책에 찬동해 왔던 서인에 마음이 기울어 있었다. 하지만 이번 문제도 그렇게 처리하기에는, 찜찜한 구석이 너무 많았다.

게다가 이제는 조정의 균형을 다시 맞춰야 할 때이기도 했다.

그간 서인에게 너무 많은 무게가 실려 있었고, 그들의 부패는 결코 적지 않았다. 하지만 왕으로서, 신하들에게 놓인 추를 옮기는 것은 매우 골치 아픈 문제였다.

“아직 소서행장이 부산포에 도착했다는 소식은 없는가?”

“그러하옵니다, 전하.”

북병사의 주장에 의하면, 이번 일의 중심에는 천삼랑이라는 일본 상인이 있다고 했다.

아무리 정략적 판단을 더한다고 해도, 그 근간에는 올바르게 파악한 사실이 뒷받침해야 할 터였다.

공방(公方, 쿠보)의 직인이 찍힌 통행증을  가지고 드나드는 자들은, 모두 공방의 보호 아래 있었다. 당연히 천삼랑을 불러오려면, 공방의 협조가 필요했다.

그러나 소서행장은 천삼랑만 보내는 대신, 본인이 직접 오겠노라고 답을 보내왔다. 게다가 그 서신에는 여진족의 발호가 일본국 내의 역도들과도 엮여 있는 듯하다는 추측이 같이 적혀 있었다.

결국 이환이 어느 쪽으로든 결정을 내리려면, 소서행장이 오기를 기다려야만 했다.

“대체 무슨 일이 벌어지고 있단 말인가…….”

적어도 지금의 야인들은 얼마 전까지의 오랑캐로 치부할 수준이 아니었다.

예전에 니탕개를 후원했던 포간(布干, 부간)이라는 자가, 지금은 인근의 부족을 규합해서 세를 떨치고 있다고 했다.

두만강 너머에 배치했던 정착촌은 전부 육진 안으로 물릴 수밖에 없었다. 거기에 번호들이 동요하고 있다는 소식도 들려왔다.

이환은 근래 들어 침식을 제대로 이루지 못했고, 오늘도 마찬가지였다.

결국 잠을 포기한 그는, 새로 들어온 장계와 상소를 펼쳤다. 이번에는 나름 반가운 내용이 그의 눈에 들어왔다.

추장 하나가 협력을 약속해왔다는 장계였다.

“야인들 중에서도 기특한 자가 없지는 않군. 건주위의 노리합적이라…….”

*       *       *

부간이 이끄는 울라부의 기병들은 하산이라는 이름의 개척촌은 눈앞에 두고 있었다.

대부분의 조선인이 개척촌을 버리고 두만강 너머로 도망쳤지만, 남기를 고수한 자들이 없지는 않았다. 하산도 그런 부류에 속하는 마을이었다.

“저긴 조선군도 포기한 마을이다. 마음껏 약탈해라!”

부간의 명이 떨어지자, 여진족 병사들은 저마다 함성을 내지르며 달려나갔다.

“끼얏, 호우!”

“남자는 죽이고, 여자는 겁탈해라!”

그러나 울라부의 예상과는 달리, 여기는 조선군이 존재했다.

경흥부사 이경록이 이끄는 부대는 만반의 준비를 갖추고, 여진족이 오기만을 기다리고 있었다.

“반드시 깃발이 올라간 다음에 쏴야 할 것이다.”

“예, 부사영감!”

경흥 부사 휘하의 병력과 개척민들은 목책에 의지해, 조총과 창으로 여진족을 막는다. 그렇게 시간을 끄는 동안, 두만강 너머에서 출격한 조선의 기병대가 격파한다.

기책이라고 할 것도 없는, 평소대로의 전법 그대로였다.

계속해서 여진 번호가 이탈하는 가운데, 그 기세를 꺾어놔야 한다는 주장이 제기되었다. 북병사 이일 역시 동의한 바였기에, 그가 동원할 수 있는 모든 기병이 불려온 상태였다.

여진족들이 목책에 발이 묶였을 때, 이일이 준비한 조선의 기병대가 출격했다. 그 모습을 본 부간은 퇴각 명령을 내렸다.

“조선 놈들은 항상 똑같이 나오는구나. 모두 말머리를 돌려라!”

족장이 앞장서서 도망치자, 조선군은 기세를 올려 추격했다. 그리고 양측의 거리는 점차 좁혀졌다.

“병사 영감, 아무래도 이상합니다.”

이일의 부하 장수 중 하나가 화급히 상관에게 다가갔다. 그가 보기에, 전장의 상황은 기묘했다.

“뭐가 말인가?”

“여진족이 저렇게 느릴 리가 없습니다!”

조선의 기병들은 충실한 무장을 갖췄고, 여진족은 상대적으로 가볍게 차려 입은 상태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조선군이 빠르게 따라잡는 중이었다.

“과연……. 아군을 역으로 유인하고 있을지도 모르겠군.”

이일 역시 그 주장에 동의했다. 그리고 곧바로 징을 쳐서, 기병들에게 신호를 울렸다. 하지만 그들이 말머리를 돌리기도 전에, 여진족이 먼저 움직였다.

“멍청한 녀석들!”

어느새 부간과 그를 따르는 여진 기병들의 손에는 짧은 총 한 자루가 들려 있었다.

“쏴라!”

요란하게 콩 볶는 소리가 초원에 울려퍼졌다. 그리고 그 횟수만큼 조선군이 낙마했다.

아무리 갑옷을 두껍게 입었어도, 충분히 가까운 거리에서의 사격은 충분한 위력이 있었다.

그 모습을 본 이일은 황급히 예비대를 투입했고, 그 덕에 조선군의 피해가 더 늘어나지는 않았다.

“대, 대체…….”

“보십시오, 장군. 여진족이 조총을 잘라서 쓰고 있었습니다!”

총은 기병을 위한 무기가 아니었다. 말 위에서는 최대한 몸이 편해야 했고, 화기는 상당히 복잡한 무기였다.

그러나 단 한 번의 사격. 그리고 그걸 위한 개조는 조선의 기병에게 적지 않은 피해를 냈다.

“이제는 총까지 사용한단 말인가?”

얼마 전까지만 해도, 여진족은 목책을 부수는 용도로 화약통을 투척하기만 했다. 그러나 이제는 조금 더 발전된 화기로 조선군을 위협하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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