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48화 넓어진 천하(7)
쿄타로는 고니시 수군을 이끌고 에조치의 북쪽 끝자락으로 향했다.
그는 물론이고 주군의 닌자조차도 까닭을 알 수는 없었지만, 명을 받은 이상 그대로 움직이는 것이 그의 역할이었다.
목적지에 거의 도착했을 때, 견시를 맡은 병사가 보고해왔다.
“바닷가에 나무로 된 성 하나가 지어져 있습니다.”
“걸려 있는 깃발은?”
“그게…….”
쿄타로의 재촉을 받은 병사는 말꼬리를 흐렸다.
“깃발이 없나?”
“그게 아닙니다. 처음 보는 가몬(家紋 가문, 상징)이었습니다.”
“설명이라도 해봐라.”
“동그라미 안에 호리박이 그려져 있었습니다.”
그 말을 들은 쿄타로는 병사에게 답을 하는 대신, 고개를 끄덕였다. 역시 여기에는 하시바 히데요시가 있었다.
판단을 마친 그는 함대에 지시를 내렸다.
“목적지에 적이 있는 것이 확인되었다. 곧바로 적진을 들이칠 것이니, 각 군선은 병사들의 채비를 마치도록.”
그러나 아무리 계속해서 접근해도, 하시바 히데요시의 군진은 조용하기만 했다. 마침내 화포의 사거리까지 닿았을 때, 쿄타로는 망설이지 않을 수 없었다.
“일단 척후를 보내야겠군.”
작은 배 몇 척이 바다 위로 내려졌다. 그리고 정찰을 나간 병사들은 백기를 든 사람들과 같이 돌아왔다.
“너희들은 누구냐?”
쿄타로의 질문을 받은 병졸들은 고개를 조아리며 말했다.
“저희는 도토야 공의 병사들입니다. 지금 대장께서는 먼 길을 떠나셨고, 저희들에게는 알아서 하라는 말만 남기셨습니다.”
그들은 그렇게 말하며, 순순히 항복 의사를 밝혔다.
* * *
고니시 유키나가의 힘은 상업에서 나오고, 그 중추에는 조선과의 교역이 있다. 도토야 조세이와 하시바 히데요시가 내린 결론이었다.
예전에는 명나라를 움직여보려 했지만, 간접적인 수단으로는 한계가 명백했다. 그리고 이제 에조치로 올라간 뒤, 도토야 조세이는 다른 방법을 찾아 나섰다.
아무리 에미시가 일당백의 강병이라고 해도, 그들의 힘을 규합한 것만으로는 충분하지 않을 터였다. 히데요시가 에조치에 숨어서 힘을 키우는 동안, 조세이는 다른 세력에게 손을 뻗었던 것이다.
험한 여정을 거쳐, 그는 가까스로 도이(刀伊, 여진족)의 땅에 닿았다. 그리고 다행스럽게도, 조선을 싫어하는 부족과 만날 수 있었다.
“울라부의 승리를 축하드립니다.”
“아, 그래. 멀리 왜국에서 왔다고 했나?”
조세이의 접견을 허락한 울라부의 족장, 부간은 시큰둥한 표정이었다. 하지만 아쉬운 쪽은 도토야 조세이였기에, 그는 아랑곳하지 않고 인사를 올렸다.
“사실 승리라고 할 것도 없지. 같잖은 아부는 집어치워라.”
“그렇다면 본론부터 말씀드리지요. 조선의 철포, 아니 조총에 대항할 무기를 드리겠습니다.”
“호오…….”
세상에 공짜는 없는 법이고, 황야에서는 더더욱 그러했다. 아무리 멀리서 온 손님이 좋은 말을 속삭인다 해도, 그에 따른 대가는 결코 가볍지 않을 터였다.
하지만 조선의 조총에 대항할 무기가 있다면, 그 대가는 얼마를 주어도 좋으리라.
그렇게 생각한 부간은 일단 상대의 말을 들어보기로 했다.
“이곳의 사정에 꽤나 밝은 모양이군.”
“그보다는 조선을 흔들고자 할 뿐입니다. 무너진다면 더욱 좋겠지요.”
“뭐, 조선이 무너져? 으하, 으하하하핫! 좋다. 이야기를 들어보지.”
울라부 족장의 허락을 받은 조세이는 자신들의 사정을 적당히 설명했다.
“재밌는 말이로군. 너희가 전쟁에서 이기려면, 조선이 무너져야 한다?”
“그렇습니다. 근래 들어, 조선군의 화기 사용이 늘지 않았습니까? 전부 저희 주군의 적인 고니시 유키나가가 가져다 준 것들입니다.”
방문객의 말을 들은 부간은 자신의 턱을 쓰다듬었다.
그렇잖아도 요즘 조선군은 적극적으로 조총을 사용하는 모습을 보였다. 그의 친구였던 니탕개 역시 조총의 일제사격에 쓰러지지 않았던가.
명나라는 자신들과 조선이 상잔하여 힘을 빼는 것을 원하지만, 이대로 가면 여진족이 조선에 눌리는 게 먼저가 될 가능성이 높았다.
족장이 귀를 기울이는 모습에 힘을 얻은 조세이는 계속해서 말을 이었다.
“저희는 화약을 제공해 드릴 수 있습니다. 그리고 그 대가로 여진족의 준마를 받아가고 싶습니다.”
원래 그는 울라부와 단순히 협력 관계를 맺으려 했다. 고니시 유키나가의 관심이 조선에 쏠리기만 해도 다행이라고 생각했던 것이다.
하지만 여진족이 싸우는 모습을 본 뒤, 그는 생각을 달리했다.
여진족의 군마는 모두가 명마였다. 아무리 기마 전투가 쇠락한 시대라고는 해도, 무사에게 좋은 말은 곧 보물이나 다름없었다.
울라부의 부락에서 굴러다니는 짐말조차도, 오다 노부나가가 탔던 명마와 맞먹을 정도였다.
“흠, 화약의 대가로 말을 주는 건 어렵지 않지. 하지만 바다를 건너는 건, 별개의 이야기가 아닌가. 무슨 수로 가져갈 셈이지?”
“아무르 강 하구로 보내주시면, 알아서 가져가겠습니다.”
그렇게 말한 뒤, 조세이는 부하를 시켜 궤짝 하나를 가져오게 했다.
“이번이 초행이라 많이 가져오지는 못했습니다. 우선 가져온 일백 근을 받으시고, 나중에 다시 거래할 기회가 있기를 바랍니다.”
부간은 화약을 받고, 그에 해당하는 수량의 마필을 조세이이게 넘겼다. 그리고 진짜 의도를 물었다.
“그리고 조선을 계속 공략해달라는 이야기렷다?”
“바로 보셨습니다. 저희 주군과 족장님께서 서로의 적을 공략한다면, 어찌 이기지 못하겠습니까.”
“좋군, 좋아.”
울라부의 족장은 흐뭇한 표정을 감추지 못했다.
* * *
베르나르두는 처음 보는 바다를 헤치고, 에조치의 쿠슈르(오늘날의 쿠시로)라는 곳에 도착했다. 하지만 여기에는 아무 것도 없었다.
고작해야 바다표범 무리가 끼룩끼룩거리며 노닐 뿐, 사람은커녕 원숭이 그림자조차 보이지 않았다.
포르투갈 선장은 초조함을 감추며, 길잡이로 붙은 자에게 질문을 던졌다.
“여기에서 얼마나 기다려야 한다고?”
“닷새마다 순시하신다고 하셨소이다.”
“그래, 닷새. 딱 그만큼만 머무를 거요. 물론 전달하지 못해도, 계약금을 물러줄 수는 없소이다.”
베르나르두는 명예를 갈구하는 탐험가가 아니라, 황금을 원하는 상인이었다.
같이 온 자가 막대한 계약금을 넘겨주지 않았다면, 애초에 이렇게 멀리까지 오지 않았을 터였다.
“그건 걱정하지 마시오. 여차하면 귀공은 유키나가에게 달려가면 그만이잖소.”
“아무리 그래도 고객의 정보를 내다 팔 수는 없지. 내가 받은 계약금에는 비밀 엄수도 들어 있는 셈이니까.”
“그리 생각해 준다면야.”
마에다 토시이에는 그렇게 말하며, 고개를 돌려 먼 산을 바라보았다. 하시바 히데요시가 여기에 있다고 했다.
고니시 수군은 에조치의 서쪽과 북쪽 바다에만 집중하고 있다 했으니, 걸릴 염려는 없을 터였다.
미리 준비를 해 왔기에, 베르나르두와 그 부하들은 야영을 준비했다.
배에서는 불조차 함부로 피우기 어려운 법. 따뜻한 잠자리는 뭍에서 누릴 수 있는 호사가 아니던가.
준비해 온 석탄을 태우고, 일부는 바다표범 사냥에 나섰다.
그렇게 이틀이 지나고, 한 무리가 그들에게 접근해왔다. 두툼하고 알록달록한 털옷을 입은 것이, 영락없는 에미시의 복색이었다.
베르나르두 일행은 바짝 신경을 곤두세운 상태였기에, 곧바로 대치 상태에 들어갔다. 하지만 다행스럽게도, 그들이야말로 토시이에가 찾는 자들이었다.
“웬 놈들이냐?”
“우리는 우휴이 카무이 족장님의 부하다. 너희야말로 부족의 땅에 들어온 이유가 무엇인가?”
그 말을 들은 토시이에가 앞으로 나섰다.
“나는 우휴이 카무이 족장을 찾아온 마에다 토시이에라고 한다. 가서 전하면 알 것이다.”
토시이에는 그렇게 말하며, 눈앞의 에미시들에게 깃발 하나를 신표로 건넸다.
만에 하나라도 오다 가문이 연관되어서는 안되는 일이었기에, 그가 내민 것은 하시바의 가몬이었다.
에미시들이 그걸 받아들고 간 다음 날, 바닷가에 하시바 히데요시가 나타났다. 역시 전날 나타난 에미시들과 크게 다르지 않은 복색이었다.
“어서 오시오, 토시이에 공. 고생 많으셨소.”
“주군의 명이니, 나는 그저 따를 뿐이오.”
“아무렴 어떻소. 이 자들은…….”
동료와 반갑게 인사를 나눈 히데요시는, 이제 그와 같이 온 사람들에게 관심을 보였다.
“앞으로 필요한 물자는 이 사람들이 가져올 예정이오. 대금은 준비하셨소?”
“물론이오. 여봐라, 가져온 것들을 넘겨주어라.”
에미시 넷이 묵직한 궤짝 하나를 가져왔다. 그리고 대금을 확인한 베르나르두는 입을 다물지 못했다.
“그 정도면 충분하겠나?”
“무, 물론이지요! 필요한 게 있으면, 뭐든 말씀하십쇼.”
토시이에도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춥고 황량한 에조치에서, 무슨 수로 저렇게 많은 황금을 마련한단 말인가. 누구라도 이 자리에 있다면 그런 생각 밖에 할 수 없을 터였다.
물건값과 운송비를 넉넉하게 받아든 베르나르두는 그대로 떠났고, 토시이에는 남아서 히데요시를 따라갔다.
그가 받은 명은 하나였다. 히데요시의 상태를 확인하고, 돕거나 혹은 손을 끊거나. 노부타다는 토시이에에게 세밀하게 확인할 것을 지시했다.
히데요시 일행은 곧바로 북쪽을 향해 올라갔다.
“도착하려면 멀었소이까?”
“조금만 더 가면 되오.”
“여기서 더 안으로 들어가면, 그대로 산중일 듯한데…….”
날은 어두워지고 있었고, 북쪽의 바람은 차가웠다. 이런 와중에 산으로 들어간다는 것은 위태롭기 짝이 없을 터였다.
그렇게 생각한 토시이에는 미심쩍은 눈초리로 히데요시를 보았다. 하지만 히데요시는 빙긋 웃기만 했다.
그리고 잠시 후, 호수 하나가 그들 앞에 나타났다. 그리고 그 한 구석에는 불빛이 어른거렸다.
“저곳이 내가 본거지로 삼은 곳이외다. 아무래도 고니시 유키나가의 눈에 띄어서는 안 되니, 최대한 깊이 숨을 수밖에 없더구려.”
“고생이 많으시외다.”
“고생이랄 게 뭐 있겠소. 다행히도 이 일대에는 온천이 솟아서, 겨울을 나기도 어렵지는 않았소이다.”
목적지가 들어온 다음은, 발걸음을 옮기가 쉬운 법이었다. 그들은 곧 마을에 도착했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에미시였고, 야마토인은 극히 일부에 지나지 않았다. 하지만 토시이에의 눈에는, 그들이 이 마을의 지배층인 것처럼 보였다.
“백성들의 숫자가 제법 많구려.”
“에미시들을 복속시키는 건, 그리 어렵지 않았소. 물론 야마토의 복색은 버려야 했지만. 이 마을에만 오천 호가 살고 있고, 여기저기 흩어진 에미시를 모두 합치면 족히 삼만 호는 될 거요.”
“삼만 호라……. 생각했던 것보다는 많소만, 여전히 고니시 유키나가를 상대하기에는 부족하지 않겠소?”
고니시 유키나가를 무찌르고, 오다 가문을 우뚝 세운다. 하시바 히데요시가 표방한 바는 그러했다. 하지만 지금 토시이에가 보기에는 그저 무리일 뿐이었다.
에미시가 아무리 일당백이라고는 해도, 삼만 호라면 최대한 쥐어짜야 일만 명의 병력에 불과할 터였다.
아까 화약의 대금으로 지불한 황금이 마음에 걸리기는 했지만, 그것만으로는 히데요시를 온전히 믿을 수가 없었다.
“당연한 말씀이오. 하지만 꼭 에미시만 가지고 유키니가를 상대해야 하는 건 아니지.”
“다른 방법이 있단 말이오?”
“용병을 살 수도 있고, 바다 건너 도이에게 도움을 받을 수도 있소.”
에조치는 단지 춥다는 이유로 버려진 땅이었지만, 그 안에 품은 것들은 많다. 여기야말로 신이 자신에게 내려준 마지막 기회였다.
그렇게 말하는 히데요시의 눈은 형형하게 빛나고 있었다. 그걸 본 토시이에는 자신도 모르게 한 발 뒤로 물러서고 말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