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46화 넓어진 천하(5)
“지목하셨던 자들에게는 모두 감시를 붙여두었습니다만, 그중 하나가 이미 종적을 감추었다고 합니다.”
이치로는 석연찮은 표정으로 보고해 왔다. 내가 감시를 명했던 자들은 아직 이름이 알려지지 않은 편이었고, 영지도 작은 규모거나 혹은 없는 상태였다.
원 역사에서는 오대로니 오봉행이니 하며 이름을 날린 자들이었지만, 지금은 고작해야 일개 무사에 불과했다.
“누구지?”
“마에다 토시이에라는 자였습니다.”
거론된 이름 역시 원래대로라면 거물이 될 만한 자라고 할 수 있었다. 하지만 그에게는 약점이 하나 존재했다.
“그 가족들은 어디에 있나?”
“아내와 자녀들은 그대로 오와리에 거주하고 있었습니다.”
“일단 토시이에의 행방을 계속 추적하도록 하고, 아내 되는 사람에게 감시를 붙여 두도록.”
나는 그렇게 말한 뒤, 명단을 죽 훑어 내렸다.
토요토미 히데요시의 오봉행, 그러니까 핵심 실무 관료였던 자들은 대부분 잠잠한 듯했다.
아사노 나가마사는 여전히 오다 본가의 무사였다. 마시타 나가모리와 이시다 미츠나리는 히데요시의 동생이자 하시바 가문의 영지를 다스리고 있는 히데나가를 섬기고 있었다.
그리고 나츠카 마사이에라는 자는 니와 나가히데를 섬기다가, 요즘은 장사로 생업을 바꾸었다. 최근에는 여송에 다녀왔다고 했다.
마지막으로 마에다 겐이는 여전히 승려로서, 나니와쿄로 옮긴 천태종 본산에서 공부 중이었다.
가장 신경 쓰이는 오다 본가와 하시바 히데나가 쪽에는 이미 감시를 붙여 두었고, 지금은 잠잠했다.
토요토미 히데요시의 고명을 받았던 오대로는 더 말할 것도 없었다.
그 필두였던 도쿠가와 이에야스는 자기 가문의 군대를 여기저기에 흩어서 파견한 상태였다.
모리 테루모토와 코바야카와 타카카게는 그대로 모리 가문이라는 독자적인 세력을 유지 중이었다.
우에스기 카게카츠는 진작 죽었고, 우키타 히데이에는 히데나가가 보살피고 있다고 했다.
그리고 토시이에는 이미 다루었으니 생략.
명단을 보며 조용히 생각에 잠겨 있자니, 이치로가 먼저 내게 질문을 던졌다.
“혹시 달리 얻으신 정보라도 있으신지…….”
이가류의 수장은 내 눈치를 살폈다. 정보 담당은 항상 그의 몫이었고, 자신이 알지 못하는 내용을 토대로 지시를 받는 게 불안했던 것 같았다.
“소문을 들었을 뿐이다. 지금 하시바 히데요시가 에조치에 숨은 상태 아닌가. 신경이 쓰여서 말이지.”
감시대상들의 삶은 많이 바뀌었지만, 그래도 오다 노부나가나 하시바 히데요시와 관련이 없지 않았다.
이치로는 내 말에 수긍한 듯 고개를 숙였다.
* * *
한 차례 홍역을 치른 사부로는 아침 일찍 일어나, 다리를 절룩거리며 피혁상을 찾아갔다.
“먼 길을 오신 손님이시구려. 어제는 욕 보셨소.”
이미 어제 있었던 일이 성내에 파다하게 퍼진 모양이었다. 사부로는 울고 싶은 마음을 억누르고 태연을 가장했다.
“크흠, 초행길에는 온갖 일이 다 생기는 법 아니겠습니까.”
“그도 그렇소. 무엇을 사시려오?”
상대도 멀리서 온 사람을 일부러 모욕할 의도는 없었기에, 곧바로 본론에 들어갔다.
“이왕 멀리까지 나왔으니, 여기서 유명하다는 모피를 좀 사가려고 합니다.”
“모피도 여러 가지가 있지. 가장 흔한 것들은 여우나, 토끼, 늑대, 사슴 같은 것들이고…….”
조선 상인은 자신이 가지고 있던 가죽들을 차례차례 내보였다.
조선의 북쪽 국경은 매우 추웠기에, 그에 비례해서 모피의 질도 나쁘지 않았다. 하지만 사부로는 고개를 젓기만 했다.
방금 거론된 것들은 일본에서도 구하기가 어렵지 않은 종류였다.
상인이라면 당연히 특별한 상품을 가져와서, 이문을 크게 남기는 게 당연한 일이었다.
“좀 더 특별한 건 없습니까?”
“아, 그렇군. 바다 건너에서 왔다고 했지. 그렇다면 이건 어떤가? 며칠 전에 들어온 산달(山獺, 담비) 가죽이라오.”
“산달이라……. 이렇게 생긴 녀석도 다 있었군요.”
일본에서도 산달이라고 부르는 동물은 있었고, 지금 사부로가 본 것 역시 사촌쯤은 될 정도로 비슷하게 생겼다.
하지만 털이 더 부드럽고, 두툼했다. 상품으로서의 모피는 역시 이곳의 산달이 더 나았다.
“산달을 보여 줬으니, 다음은 이거로군. 이건 수달이라는 짐승의 가죽이오. 아이들에게 입히면 효자로 자란다고도 하지.”
“호오, 그렇습니까?”
피혁상은 수달의 습성을 설명하며, 나름대로의 이야기를 붙였다.
“이 수달이라는 녀석은, 물고기를 잡은 다음에 곧바로 먹지 않거든. 바위 위에 늘어놓은 다음에, 반드시 제사를 지낸다고 하지. 그런 녀석이 효성은 얼마나 또 지극하겠소이까.”
사부로는 그 말을 믿지는 않았지만, 머리 한 구석에 고이 담아 놓았다.
아직 미신을 믿는 사람들은 적은 편이 아니었고, 나중에 수달 가죽을 취급하면서 써먹을 만해 보였기 때문이다.
“혹시 호피는 없습니까?”
“호피? 물론 가끔 들어오기는 하오만……. 들어오는 족족이 내수사에서 먼저 쓸어가 버리기 때문에, 구하기가 쉽지 않소.”
“그건 좀 아쉽군요.”
“하지만 이건 어떻소이까.”
사부로의 요구에, 호피 대신 다른 가죽이 또 나왔다.
“호랑이와 같은 색이면서도 그 무늬가 매화를 닮아, 매화범이라고 하는 짐승의 가죽이외다.”
“음, 표범이군요.”
“아, 이건 알고 있었나?”
피혁상은 일본인이 표범 가죽을 알고 있다는 것을 못내 아쉬워했다. 만약 사부로가 가만히 있었다면, 수달처럼 이상한 설화를 붙였을지도 모를 일이었다.
“아무래도 호피가 들어올 때, 같이 들어오다 보니 말입니다.”
“그랬구려.”
사부로는 다른 피혁상들도 찾아간 뒤, 시세대로 모피를 매입했다. 담비 가죽을 주로 샀고, 거기에 표범 가죽도 사들였다.
“생각보다 많지는 않군요.”
“더 필요하시오?”
“그렇습니다.”
마지막 피혁상까지 들르고도 아직 사부로에게는 돈이 남아 있었다.
“그렇다면 내일이나 모레쯤에 한 번 더 오시구려.”
일본에서 온 상인은 숙소로 돌아오면서, 가만히 남은 날을 세어 보았다.
부산포에서 녹둔도까지 오는데 꼬박 이틀이 걸렸다. 그리고 동양 무역회사의 배는 모레 오후에 떠나기로 되어 있었다. 적어도 그날 아침에는 짐을 부려야 했다.
“이보게, 지로. 혹시 일정상에 변화가 있지는 않은가?”
“아직 별다른 이야기를 들은 바는 없습니다.”
선원의 말은 전과 다르지 않았다. 아직 사부로는 가지고 온 돈의 반밖에 쓰지 못했다. 그 사실이 못내 아쉬웠다.
“모피는 이제 거의 끝난 모양이더군. 말과 모피 말고, 달리 매입할 만한 것이 있을까?”
“글쎄올습니다?”
“그러지 말고, 자네는 그래도 이곳 경험이 많지 않은가.”
그는 그렇게 말하며, 안내인에게 또 은화 한 닢을 건넸다. 역시 선물은 일부 예외를 제외하면, 보편적인 마력이 있었다.
“음……. 약재는 어떠십니까?”
“약재?”
“일본에는 주로 조선삼이 들어옵니다만, 이 지역에서도 인삼은 꽤 저렴하게 사들일 수가 있지요.”
지로가 말한 인삼의 가격은 상당히 낮은 편이었다. 사부로가 듣기에도 인삼을 매입하는 건, 꽤 괜찮은 생각 같았다.
“질은 어떤가?”
“조선삼과 비슷합니다.”
“그렇다면 내일은 약종상을 돌아봐야겠군.”
하지만 다음 날, 그가 말한 대로 되지는 않았다.
여진족과는 또 다른 외모의 사람들이 성 안으로 들어왔다. 그리고 그들은 흔하지 않은 종류의 모피를 대량으로 가지고 왔다는 소문이 퍼졌다.
사부로는 그들과 직접 접촉할 수 없었기에, 전날 돌았던 피혁상들을 찾아갔다.
“마침 잘 오셨소. 그렇잖아도 이 사람들이 희귀한 가죽들을 많이 가져왔다오.”
“그렇습니까? 어디, 좀 봅시다.”
“이건 해달이라는 짐승의 가죽이라는 모양이오.”
조선 상인은 가장 따뜻한 가죽이라며, 새로 보는 모피 하나를 보여주었다.
사부로가 보기에도 과연 그 말대로였다. 털이 촘촘하게 박혀 있어, 포근함이 수달이나 담비 가죽의 몇 배는 되는 듯했다.
“이런 귀물이 다……. 바로 사지요.”
그렇게 사부로가 다시 상품을 사들이는데, 가죽을 가져온 사람이 그를 가리키면서 뭐라고 말했다.
피혁상은 잠시 그 소리를 듣더니, 사부로에게 다시 통역해 주었다.
“자네와 비슷하게 생긴 사람들을 본 적이 있다고 하네그려.”
“세상에 외모가 유사한 경우야 흔하지 않겠습니까.”
“그런 거 말고, 자네처럼 키가 작고 전체적인 분위기도 비슷하다고 하더군.”
그렇게 말하면서 외모를 묘사하는 내용이, 일본에서 흔히 볼 수 있는 것과 일치했다.
하지만 사부로 역시 방방곡곡을 다녔지만, 저렇게 생긴 사람들은 이번에 보는 것이 처음이었다.
“어디에서 보았는지 물어봐 주실 수 있으십니까?”
“잠시 기다리게.”
두 사람의 대화가 끝난 뒤, 상인이 다시 입을 열었다.
“자기네 마을로 찾아왔다고 하는데?”
“뭐라구요? 그, 그럼…….”
“하지만 물건을 거래하지는 않았다고 하더군. 이 근처까지 같이 왔다가 야인들의 마을에 남았다고 하네.”
사부로로서는 다소 긴장할 수밖에 없는 이야기였다. 하지만 그가 좀 더 일찍 돌아간다면, 경쟁은 피할 수도 있었다.
저들은 북쪽에서 왔다고 했으니, 동양 무역회사하고는 상관이 없는 자들일 가능성이 높았다. 거기까지 생각이 닿은 다나카 상회의 행수는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그런데 서기의 반응은 조금 달랐다.
“그들의 용모파기와 복색을 자세히 알고 싶습니다.”
이번에는 료스케가 품에서 은화를 꺼내더니, 조선 상인과 야인에게 하나씩 찔러 넣었다.
선물을 받은 사람들은 잠시 서로를 보더니, 한참을 대화하기 시작했다. 사부로가 보기에, 이야기가 상당히 길어질 듯한 눈치였다.
“이번 상행에 관계되는 일인가?”
“그렇지는 않습니다. 사적인……. 아니, 저희 일족과 관련된 일이라 말입니다. 늦지 않게 돌아갈 것이니, 먼저 가셔도 좋습니다.”
“알겠네.”
사부로는 고개를 끄덕인 뒤, 짐꾼들과 같이 배로 향했다. 불안한 이야기가 들려왔기에, 미리 상품을 실어두려는 것이었다.
어제 그가 여각에서 들은 소문 중에는, 녹둔도에서 멀지 않은 강 너머 둔전촌에 여진족의 습격이 있었다고 했다.
여기는 성으로 둘러싸여 있어서 안전하다고는 하지만, 배는 성벽의 보호를 받지 못한다.
그렇기 때문에 언제라도 여진족이 쳐들어온다면, 즉시 배를 띄운다는 이야기도 있었다. 물론 안전해지면 다시 돌아온다고도 했지만, 사부로는 쓸데없이 위험을 자초하려 하지 않았다.
다행히도 모든 상품을 배에 실을 때까지는 모든 것이 평온했다.
“이제 다 끝났으니, 어서 숙소로 가서 쉬세나.”
아주 안전을 꾀하자면, 아예 배에서 머무르는 것이 상책일 터였다.
하지만 다른 선택지가 있다면, 흔들리는 선실에서 자고 싶은 사람은 있을 수가 없었다.
그들이 여각에 도착했을 때, 상회의 서기도 돌아온 상태였다.
“소득은 있었는가?”
“예, 뭐…….”
료스케는 뚜렷하게 답을 하지 않고, 말을 제대로 맺지 못했다. 그 모습을 본 사부로는 오히려 안쓰러움을 느꼈다.
“자네 일족의 일에 외부인이 끼어들면 곤란하겠지. 상행에 지장이 되지 않는다면, 굳이 말하지 않아도 좋네.”
“감사합니다, 행수 어른.”
사실 상행에서 독자 행동을 하는 것은, 상회의 규정에 어긋나는 것이었다. 하지만 사부로는 자신이 지은 죄도 있었기에, 훈훈하게 넘겨버렸다.
그렇게 하루를 마무리하려는데, 갑자기 주변이 분주해지기 시작했다. 그러더니 동양 무역회사의 심부름꾼이 그들을 찾아왔다.
“행수 어른, 속히 배로 가셔야겠습니다.”
“무슨 일인가?”
“여진족이 쳐들어오고 있다고 합니다. 자세한 설명은 배에 도착한 뒤에 들으실 것이니, 지금은 서두르시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