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43화 넓어진 천하(2)
쿠파는 실로 든든하고도 따뜻한 음식이었다.
속이 확 풀리면서 눈물콧물이 줄줄 흘러나왔지만, 다나카 상회의 행수는 그런 것 따위는 신경 쓰지 않았다.
고기는 푹 익어서 혀에 닿는 순간 녹아내렸고, 매콤한 향은 기름진 국물과 썩 잘 어울렸다.
“흑흑…… 맛있었다. 쿠파는.”
사부로가 만족스러운 표정으로 쿠파 한 그릇을 뚝딱 비우자, 료스케가 씩 웃으며 입을 열었다.
“부산포 일대에서는 여기 해장국이 일류라 할 만합니다. 국물도 뻑뻑하고 고기도 많이 들었거든요. 불자는 아니시라고 들어서, 여기로 모셨습니다.”
“조부께서 승려이시긴 했는데, 지금 와서는 일가 중 누구도 마음을 두지 않는다네. 나도 마찬가지고. 덕분에 아주 잘 먹었네.”
스모토라고 해서 따뜻한 국물요리가 없는 것은 아니었다.
남만의 향신료가 들어오는 만큼, 매운 맛 역시 제법 흔했다. 육류 역시 요즘은 먹는 사람이 늘어난 상태였다.
하지만 이 셋의 조합은, 사부로를 잠시 황홀경에 밀어 넣었을 정도로 훌륭한 맛을 만들어냈다.
“이거 하나가 얼마라고 했던가?”
“한 그릇에 동화 다섯 닢이었습니다.”
“동화 다섯 닢이라…… 생각보다 싸군.”
사부로는 속으로 가만히 쿠파의 가격을 계산해보았다.
동화 역시 은화와 마찬가지로 무게가 가치를 담보했기에, 규격과 지역은 크게 상관이 없다.
양국은 동일한 무게의 금속을 화폐로 쓰는 만큼, 사실상 일 대 일로 맞대응될 터였다.
동화 오십 닢이 은화 한 닢이 되고, 은화 스무 닢이면 스모토에 흘러들어온 사람이 처음 받는 한 달 노임과 같았다.
집에서 해먹는 밥보다는 훨씬 비싸겠지만, 밖에서 사먹는 식단치고는 가격으로나 양으로나 나쁘다고 할 수 없는 수준이었다.
“맛을 보니 쇠고기가 푸짐하게 들어가고, 거기에 온갖 야채를 고명으로 넣은 것 같았네. 거기에 마늘과 고추가 들어간 모양인데…….”
“바로 보셨습니다. 얼큰한 맛은 고추로 냈다고 하고, 마늘이 고기의 잡내를 잡아 준다고 하더군요. 구체적인 조리법은 주모가 알려준 적이 없습니다마는…….”
“요즘은 일본에서도 간혹 우동에 고추를 썰어 넣는 집이 있기는 하지. 그런데 그보다 훨씬 맵던데, 상당히 많이 쓴 듯하네.”
자극적이라 자주 먹기는 힘들지만, 별미였다. 먹고 나서 시간이 좀 지난 뒤에, 그가 내린 총평이었다.
“어쨌든 속이 풀어진다는 게 무슨 말인지 알겠더군.”
식사가 끝난 이후에는 숙소로 갈 차례였다.
선택지는 두 가지. 하나는 펄펄 끓는 구들방이었고, 나머지 하나는 적당히 탁자와 침상을 놓은 입식 침실이었다.
“아무래도 저긴 좀 덥겠군.”
“좋아하는 사람은 좋아합니다만, 저건 확실히 호불호가 갈리지요.”
사부로와 료스케, 그리고 조선행이 처음이라는 짐꾼 몇몇은 후자를 골랐다. 그리고 자주 다녀봤다는 나머지 사람들은 뜨끈한 구들방으로 들어갔다.
그렇게 하루를 마치려는데, 밖에서 다나카 상회 사람들을 찾는 목소리가 들렸다.
“여기에 전중(田中, 다나카) 상회 사람들이 머무르고 있다 들었소만?”
억양이 일본인의 것이었기에, 사부로와 료스케는 동양 무역회사의 심부름꾼이라고 짐작했다.
“내가 다나카 상회의 행수요. 누가 날 찾소?”
“아, 안에 계셨군요. 저희 선장님께서 드릴 말씀이 있다고, 내일 배를 방문해 달라고 하셨습니다.”
“긴박한 일인가?”
아무리 조선과의 교역이 흔하다고는 해도, 타지에서는 항상 조심할 필요가 있는 법. 사부로는 자신도 모르게 목소리를 낮추어, ‘동무’에서 온 사람에게 질문을 던졌다.
하지만 상대는 그리 대수롭지 않은 듯한 태도를 보였다.
“그럴 일이 뭐가 있겠습니까. 그저 일정상에 사소한 변화가 생겨서 말입니다. 다나카 상회에서 오신 분들은 예정대로 움직이셔도 될 겁니다.”
“배가 부산포를 떠나 있게 될 모양이군요.”
료스케 역시 잘 아는 듯한 모습이었다. 심부름꾼이 떠난 뒤, 사부로는 상회 서기에게 질문을 던졌다.
“동양 무역회사의 배가 부산포를 떠난다는 게 대체 무슨 말인가?”
“별 일 아닙니다. 원래 부산포에 열흘을 머무르기로 하지 않았습니까?”
“그렇지.”
보통 상품의 매매는 하루아침에 끝나지 않았다. 원래 사부로도 들고 온 상품을 모두 팔기까지 약 사나흘은 걸리리라 예상하고 있었다.
그리고 이 돈으로 다시 상품을 사려면, 오늘처럼 운이 좋지 않은 이상은 역시 사나흘이 족히 걸릴 터였다.
“그 열흘 동안 배가 마냥 정박해 있을 수도 있지만, 잠시 다른 곳으로 떠나 있을 수도 있지요.”
조선에 대한 경험이 풍부한 서기는 종종 있는 일이라고 설명했다.
“대체로 조선 왕실에서 운송 의뢰를 맡긴다고 하더군요. 행수어른께서도 아시다시피, 남만양선이 짐도 많이 싣고 속도도 빠르잖습니까. 그러니 급할 때는 자주 이용하는 모양입니다.”
“그런 경우도 있었군.”
물론 방금 다녀간 심부름꾼이 직접 사정을 설명할 수도 있을 터였다. 하지만 그건 서로에 대한 예의가 아니었기에, 직접 초청을 한 것이었다.
“아무래도 나는 조선에 온 게 이번이 처음이니 말일세. 덕분에 내일 놀라지는 않겠군.”
설명을 듣느라 다시 시간이 늦어졌기 때문에, 사부로는 곧장 잠자리에 들었다. 그리고 다음 날, 그는 초청받은 대로 자신이 타고 온 배를 찾아갔다.
“이레 동안 부산포를 떠나있을 예정이라, 미리 말씀드리는 바입니다. 여러분들의 일정에는 차질이 없도록 할 것이니, 안심하고 장사에 힘써주시기 바랍니다.”
전날, 료스케가 설명한 그대로였다. 다른 참석자들 역시 한두 번 있는 일이 아니라는 듯, 태연한 모습을 유지하고 있었다.
“이번에는 어디로 다녀오실 예정이십니까?”
질문이 나왔지만, 역시 날씨라도 물어보는 듯한 평온한 어조였다. 사부로가 보기에도, 이런 일은 무척이나 흔한 듯했다.
“북쪽 야인과의 접경지대에 무기를 전달해달라고 하더이다.”
사부로는 편안하게 차를 마시고 있다가, 야인과의 접경지대라는 말을 듣고 눈을 번쩍 떴다.
요즘은 나니와쿄에서 모피가 유행하고 있지 않던가!
마침 조선에서 건너오는 것이 상등품 취급을 받고 있는 상태였다. 예전에 그가 듣기로, 조선의 모피는 대부분 북쪽에서 난다고도 했다.
그러니 갈 수만 있다면, 사부로 본인에게는 다시없을 기회일 터였다.
살짝 눈치를 살피던 사부로는 손을 들어, 선장에게 질문을 던졌다.
“혹시 따라갈 수 있겠습니까?”
“북변에 말이오?”
“그렇습니다.”
사부로의 질문을 받은 선장은 잠시 자신의 수염을 쓰다듬었다.
이렇게 가외로 생기는 일은 상당히 벌이가 좋았지만, 다나카 상회 역시 동양 무역회사의 주주였다. 당연히 그가 편의를 봐주어야 하는 대상이기도 했다.
하지만 북쪽 국경지대는 물건을 사들이기는 쉬워도, 팔기는 어려울 터였다. 게다가 다나카 상회는 주로 사치품에 해당하는 것들을 가져왔으니, 더더욱 그러할 수밖에 없었다.
생각을 정리한 선장은 사부로를 만류했다.
“물론 가시는 건, 문제가 되지 않을 거요. 하지만 가져오신 물건들은 다 팔고 가셔야 하지 않겠소? 배는 당장 오늘 오후에 떠날 예정이외다.”
“그건 제가 알아서 할 것이니, 같이 가게 해 주시지요.”
하루 만에 다 팔아치웠다고 하면, 질시의 눈초리가 없을 수 없는 법. 사부로는 짐짓 만용을 가장했다.
아니, 사실 만용이 아니라고 할 수도 없는 일이었다. 초행길에 한층 더 낯선 곳으로 가겠다는 이야기였으니 말이다.
“좋소. 그럼 이 사람과 같이 부산포 첨사를 만나도록 합시다.”
결국 동양 무역회사 선단의 수석 선장은 못 이긴 척 사부로의 청을 받아들였다.
다른 상회의 행수들은 그 모습을 보고 수런거렸지만, 그렇다고 해서 같이 나서거나 혹은 사부로를 뜯어말리는 사람이 나오지는 않았다.
부산포 첨사도 선선히 북변에서 쓸 통행증을 발급해주었다. 그동안 선장은 사람을 시켜, 다나카 상회의 사람들을 배로 불러들여, 시간을 아낄 수 있도록 배려까지 했다.
“그러니까, 지금 ‘동무’의 선단을 따라서 북변까지 가시겠단 말씀이십니까?”
“그렇네. 북변에 가서 모피를 사올 수만 있다면, 이번 상행은 대성공이 될 걸세.”
“물론 우리는 현찰을 쥐고 있으니, 괜찮기는 하겠습니다마는…….”
료스케는 석연치 않은 눈으로 자신의 상관을 보았다. 하지만 이미 그가 갈 길은 정해져 있었다.
* * *
키요스 성에서 약간 떨어진 나카가와 정(町). 한때는 외부인의 출입을 막았던 이 마을에서도 이제는 남만인을 어렵지 않게 찾아볼 수 있었다.
유흥가에서도 몇몇 점포가 남만풍으로 꾸며진 상태였다.
무사 한 사람이 그중 한 술집에 들어가, 구석진 자리에 앉았다.
선객이 이미 있었지만, 무사는 신경 쓰지 않는 태도였다. 정확히 말하자면, 그를 찾는 것이 목적이었다.
“이 베르나르두에게는 무슨 볼일이시오?”
“소문을 들으니, 돈만 주면 무엇이든 한다고 들었소만.”
그렇게 말하며 베르나르두를 찾는 사람은, 대체로 돈이 될 만한 이야기를 가져오게 마련이었다.
하지만 아쉬운 사람 역시 그를 찾는 사람일 수밖에 없는 법. 베르나르두는 여전히 입에 시가를 문 채, 물끄러미 불청객을 보기만 했다.
“사업 이야기를 하기에는 그리 좋지 않은 장소 같은데.”
“일단 해보시구려.”
옛날 같았으면, 감히 무사에게 이렇게 대하는 사람은 없을 터였다. 사실 지금도 평민은 여전히 그런 처지를 벗어나지 못했지만, 남만 상인은 조금 이야기가 달랐다.
“자리를 옮기지.”
“나라고 해서 무엇이든 하는 건 아니올시다.”
“여기 이야기 값부터 받게.”
무사는 그렇게 말한 뒤, 품속에서 금화 한 닢을 꺼냈다.
“무사 나으리치곤 예의가 있는 분이시군. 좋소.”
이 술집은 베르나르두의 친구가 경영했고, 안쪽 깊은 곳에는 그를 위한 밀실이 준비되어 있었다.
남만에서 온 상인은 그곳으로 무사를 안내했다.
“물론 나라고 해서 아무 일이나 막 하지는 않소. 가령 쿠보의 배를 습격한다거나 하는 것들. 그런 건 목숨이 열 개라도 못할 짓이지.”
“쿠보 몰래 밀무역을 하는 건 어떤가?”
“호오…… 돈만 맞춰준다면야 얼마든지 팔아드리지. 무엇을 원하시오?”
베르나르두는 무사의 말에 흥미를 보였다. 자신이 직접 나설 일만 아니라면, 정말로 그는 돈 될 일은 무엇이든 했다.
“상품은 여기가 아니라 좀 먼 곳으로 보내야 할 텐데, 가능한가?”
“얼마나 먼 곳이오?”
“그건 구체적인 내용이 정해진 다음에 말할 수 있겠군.”
“배 한 척을 하루 움직일 때마다 은 다섯 관씩은 주셔야 되겠소.”
밀거래꾼은 상품의 가격과는 별개로, 운송 거리에 따라 요금을 불렀다.
요즘 통용되는 은화 한 닢은 1냥에 대응했다. 그리고 한 관은 100냥과 같은 무게였다. 다시 말해서, 그는 은화 오백 개를 요구한 셈이었다.
“나쁘진 않군. 화약을 열 관 사려는데, 가능하겠나?”
“보름 뒤에 다시 오시오.”
거래의 물꼬를 튼 무사는 술집을 나와, 자신의 집으로 돌아갔다. 안에서는 평복을 한 닌자 한 사람이 그를 기다리고 있었다.
“이야기는 잘 되셨습니까?”
“시킨 대로 하기는 했네만, 영 탐탁치가 않군.”
“이시다 공께서는 아무리 쿠보라 해도, 천하 만물을 모두 살필 수는 없다고 하셨습니다.”
모든 영주들에게 감시가 붙었다는 건, 공공연한 비밀이었다. 하지만 그 부하들에게까지 같은 수준의 눈을 붙이고 있을 수는 없는 법. 이시다 미츠나리는 그 빈틈을 노렸다.
다행히 코가류는 아직 오다 가문의 품에서 벗어나지 않은 상태였고, 그들을 적극 활용해서 이가류의 눈을 가리는 것만은 가능했다.
“마에다 공, 이 모든 것은 돌아가신 간레이를 위해서입니다.”
베르나르두를 만나고 온 사람은 다름 아닌 마에다 토시이에였다.
그는 아직 오다 가문의 중신은 아니었고, 고작해야 시바타 카츠이에의 일개 부장에 지나지 않았다. 하지만 그런 덕에, 오히려 감시의 눈길로부터는 자유로웠다.
하지만 그 강직함만은 이시다 미츠나리가 주목할 정도였다.
지금의 오다 가문, 정확히는 정통을 이은 노부타다와, 그를 도우려는 미츠나리에게 필요한 사람의 조건은 까다로웠다. 눈에 띄지 않는 위치에 있으면서도 마음이 변치 않을 사람이라야 했다.
그런 점에서 오다 가문에서 쫓겨나고도 초지일관 종군했던 토시이에야말로, 미츠나리가 찾던 자라고 할 수 있었다.
“보름 뒤라고 하셨습니까. 그때는 소인이 같이 가도록 하겠습니다.”
“그러시게.”
토시이에는 스스로가 책략과는 거리가 먼 사람이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지금 그는 주가(主家)를 위해서, 책략의 한복판에 뛰어들 수밖에 없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