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41화 도시의 공기(7)
“그게 무슨 말이오?”
모리 테루모토는 그렇게 반문했지만, 그 스스로도 짐작이 가는 바가 없지 않았다.
덩치가 크다는 것은 곧 강력한 힘을 끌어 모을 수 있다는 이야기였지만, 동시에 관리하기가 까다로워진다는 것과도 통했다.
모리 가문 같은 경우에는 테루모토의 두 숙부가 든든히 떠받쳐주고 있는 상태였다. 하지만 후대로 간다면? 다시 가신들과의 관계를 재정립해야 할 터, 그때도 지금처럼 운이 좋으리라는 보장은 없었다.
주인이 생각에 잠겨 있는 사이, 손님이 자신의 말을 이어나갔다.
“다른 다이묘들은 근래 들어 소출이 부쩍 늘었다고 하더이다.”
미요시 마사야스는 그렇게 운을 뗀 뒤, 아케치 미츠히데를 만났던 일을 이야기했다.
“우마노카미께서도 익히 아시는 바겠지만, 아케치 공 역시 쿠보의 신실한 동맹이 아니었소이까.”
그 말을 들은 테루모토는 같이 전장에 섰던 기억을 회상하며, 고개를 끄덕였다.
“그랬지요.”
“지금은 휘하의 무사들을 모두 독립시키고, 그 스스로도 나니와 조약에 가입한 상태요.”
그렇게 말하는 마사야스의 얼굴에는 씁쓸함이 스쳐지나가고 있었다.
그에게는 미요시 가문의 마지막 후예로서, 옛 가신들을 온전히 받아들이지 못하는 자신에 대한 회한이 없지 않았다.
미요시 마사야스는 그 감정을 차 한 잔에 흘려보내며, 이야기를 계속했다.
“그런 이유로 지금 아케치 공의 영지는 고작해야 카와치 일국에 지나지 않소이다. 농지 면적만 가지고 비교를 하자면, 아와쯤 될까…….”
모리 테루모토도 이야기를 들으면서 비교할 만한 지역을 머릿속으로 떠올렸다.
시코쿠의 아와라면 네 개 국 중에서는 가장 비옥하고 살기 좋은 땅이다.
아마 아키국(安芸国 안예국, 오늘날의 히로시마 일대) 정도면 마사야스가 든 예시와 비슷할지도 모른다고 생각하며, 묵묵히 듣기만 했다.
“내가 아와에서 거둬들이는 세수는 이십만 석 정도요. 옛날과 크게 다르진 않소. 그런데 아케치 공은 카와치 일국에서만 사십만 석을 걷는다고 하더구려.”
“사십만?”
“그렇소. 사십만. 아케치 공이 직접 말한 것이니 허언은 아니라 생각하외다. 아마 달리 신경 쓸 것이 없으니, 영지의 개발에만 힘쓴 결과가 아니겠소이까?”
테루모토는 목을 축이기 위해 찻잔을 들었다. 하지만 아직 뜨거웠기에, 곧바로 따라버리고 차갑게 식힌 차를 새로 따랐다.
영지를 경영하는 무사의 한 사람으로서, 부러운 일이 아닐 수 없었다.
그 모습을 지켜보던 마사야스는 다시 쓴 웃음을 내비쳤다.
“우리도 언젠가는 그렇게 영지를 개발할 수도 있을 거요. 하지만 가신들을 관리해가면서 그렇게까지 하기엔 역부족이지 않겠소?”
테루모토는 자신도 모르게 고개를 끄덕였다. 하지만 그는 손에 쥔 것을 놓을 수가 없었다.
자신의 조부인 모토나리가 평생 일군 가업이 자신의 대에 와서 꽃을 피웠다. 그것을 다시 흩어놓기에는, 부끄럽지 않다 할 수 없는 일일 터였다.
“우마노카미도 마찬가지일 거라 생각하오만, 나는 가업을 흩을 수가 없더구려.”
“그러니 공장이라도 들여와야 한다는 말씀이시오?”
“그렇소. 다행히 아직 우리와 쿠보의 신뢰는 깨지지 않았으니, 해봄직한 일이라 생각하오만…….”
결국 마사야스도 자신이 없으니 테루모토를 찾아온 셈이었다.
그나마 아직 기회가 있을 때, 같이 발을 맞춰서 어려운 이야기를 해보자. 그런 의도로 모리 저택을 방문한 것이다.
“그럼 아와지국의 상인들 중에서는 몇이나 공장의 이전을 타진했소이까?”
“미쿠모 일족이라는 자들이 공장 열 개를, 타카마치 일족이라는 자들은 일곱 개를 옮길 수 있다 하더이다.”
“그게 어느 정도나 되겠소이까?”
테루모토는 설명을 듣고도 구체적인 규모를 가늠하지 못했다. 그는 평생을 다이묘로만 살았기에.
하지만 마사야스는 한때 스모토의 주민이었던 적도 있었다. 그래서 공장 하나의 가치를 대강이나마 알았다.
“내가 아직 스모토에 머무를 적에 본 바로는, 공장 하나가 족히 일만 석만큼의 가치가 있다는 이야길 들은 적이 있소.”
이 설명대로라면, 십칠만 석에 해당하는 사업체가 아와지국 밖으로 나오고 싶어한다는 이야기였다.
물론 실제로는 그보다 훨씬 더 큰 세입원이었지만, 마사야스의 지식은 거기까지에 불과했다. 어쨌든 돈이 되는 것만은 사실일 터였다.
장차 선례를 잘 만들어놓기만 하면, 계속해서 흘러나오도록 유도할 수도 있을 터. 거기까지 생각이 닿은 테루모토는 자신의 수염만 쓰다듬었다.
주인의 마음이 동하는 것을 눈치 챈 손님은 조심스럽게 설득을 재개했다.
“우리가 쿠보 몰래 힘을 키우겠다는 것도 아니고, 가서 이야기나 해보자는 것이올시다.”
“흠…….”
“쿠보가 거부했을 때는 물러나면 그만 아니겠소? 게다가 먼저 이야길 꺼낸 자들은 스모토의 상인들이었으니, 우리가 짊어질 부담은 생각보다 크지 않을 것이외다.”
만에 하나 정치적 부담이 발생한다고 해도, 밀고로 넘겨버리면 된다. 이런 이야기는 나름대로의 설득력이 있었다.
“좋소. 그럼 내일 스모토로 건너가 봅시다.”
* * *
“공장주들이 이전을 희망했다고 하셨소?”
모처럼 나를 찾아온 모리 테루모토와 미요시 마사야스는 눈치를 보다가, 자신들이 찾아온 목적을 밝혔다.
“그렇습니다, 쿠보.”
“좋을 대로 하시오.”
“역시 그렇군……. 예?”
내가 거부하리라 생각했는지, 두 다이묘는 상당히 당혹스러워했다.
“그렇잖아도 요즘 노예까지 들여오겠다고 하는 판이외다. 말도 외양도 다른 자들을 받아들이는 것보다는 나을 듯싶구려.”
“저, 정말이십니까?”
“귀공들도 상당히 고심한 듯한데, 뭘 그리 어렵게 이야기를 하시오. 그래, 몇이나 옮기고 싶다고 했소이까?”
두 사람은 모두 합쳐 열일곱 개의 공장이 이전을 희망한다고 이야기했다.
“좋소. 오늘이나 내일, 언제든 시간을 비워놓을 테니, 그들과 같이 오시구려.”
승낙을 받은 테루모토와 마사야스는 얼굴에 웃음을 띤 채, 공장주들을 데리러 나갔다. 그리고 잠시 후, 그들은 제대로 된 공문서를 작성했다. 공장의 이전을 확정짓는 내용이었다.
두 다이묘가 자신들의 영지로 돌아가기 위해 집무실을 나간 뒤, 다시 세 사람이 나를 찾아왔다.
여전히 책사 겸 상담역을 맡고 있는 혼다 마사노부와 시정봉행인 사오토메 토오루, 그리고 이제 은퇴를 앞두고 있는 마츠나가 히사히데였다.
“쿠보께서 시키신 대로 했습니다만…….”
“아무리 동맹이라고는 해도 이렇게까지 해줄 필요가 있습니까?”
“예전에 한솥밥 먹던 친구들이 혜택을 보는 건, 나름대로 좋은 일이오만…….”
내막을 알고 있는 세 사람은 여전히 우려를 표했다.
애초에 마사야스를 찾아왔다던 공장주는, 내가 시정봉행을 시켜서 말을 흘려둔 자였다.
지나치게 무사들에게 호의를 베푼다. 지금 내 앞에 선 세 고위 관료들은 그렇게 생각하는 기색이었다.
“차라리 노예를 모두 쿠보의 소유로 들여와서, 각 공장에 임대하는 식으로 하는 편이 낫지 않겠습니까?”
“음? 그것도 꽤 신선하고 좋은데……. 진작 말하지 그랬나.”
“농으로 넘기실 일이 아닙니다.”
마사노부는 내가 농담을 한다고 여겼지만, 정말 시정봉행의 제안은 나름대로 괜찮은 구석이 있었다. 아마 상중하를 매긴다고 한다면, 중책쯤은 되지 않을까.
“쿠보, 너무 저들에게만 좋은 이야기라 생각합니다. 물론 동맹에게는 충분히 호의를 베풀 수 있습니다. 하지만 다른 무사들에게까지 그러시는 건…….”
책사는 계속해서 나를 설득하려 했다. 하지만 이미 했던 이야기의 반복이었기에, 나는 손을 들어 더 이상의 말을 막았다.
그리고 이유를 설명해주었다.
“정말로 호의를 베푼 거라고 생각하나?”
내 질문을 들은 뒤, 토오루와 히사히데는 곰곰이 생각하는 눈치였다. 그리고 마사노부 역시 궁금함을 감추지 못하는 기색이었다.
“혹시 숨은 뜻이 있다면, 좀 알려주십시오. 가끔 쿠보는 지나칠 정도로 앞서 나가셔서, 제가 따라가기가 힘듭니다.”
“자네 정도의 머리라면 능히 눈치 챌 거라고 생각했는데?”
“무사들의 심리나 병력을 움직이는 일에는 나름대로 자신이 있습니다만, 이런 분야는 그리 밝지 못합니다. 아시잖습니까.”
마사노부는 아예 두 손을 들다시피 하며, 내 설명을 요구했다.
“이케다 군(郡)에 다녀온 자네라면 알 듯도 싶었는데…….”
그렇게 운을 뗀 뒤, 진짜 이유를 밝혔다.
“정식으로 일하러 오는 백성들은 어쨌든 아와지의 환경에 그대로 노출될 걸세.”
“그렇지요.”
“여기에서의 기억을 가지고 돌아가면 어떻게 될 것 같나?”
“하, 쿠보께서는 정말 지독한 분이시오.”
가장 먼저 눈치 챈 사람은 히사히데였다. 나머지 두 사람도 곧바로 인상을 편 것을 보면, 역시 알아차린 듯했다.
“확실히……. 무사들에게 충분히 유예기간을 준다고 해도, 이미 한껏 불려놓은 군대의 규모를 줄이기는 쉬운 일이 아니지요.”
“그리고 돌아간 백성들은 다시 아와지로 들어오려 하거나, 아니면 잇키(一揆 일규, 민란.)라도 일으킬지 모르겠군.”
사람이 오가는 것은 단순한 일이 아니다. 상품은 출발해서 도착하는 것으로 끝이지만, 사람은 말과 생각까지 같이 옮긴다.
이미 소문만으로도 농민들 중 상당수가 도망을 시도하는 판인데, 경험담까지 듣는다면? 그 파급효과는 매우 막대할 터였다.
현대의 북한조차도 외화벌이 일꾼이랍시고 내보냈다가 홍역을 치른 적이 있었다. 그리고 내가 통치하는 지역과 그렇지 않은 지역은 충분히 그만한 격차가 존재했다.
“하지만 쿠보께서는 나니와 조약으로 무가들의 보호를 약속하셨는데, 잇키까지 가기야 하겠습니까?”
토오루는 조심스럽게 낙관에서 비관으로 한 발짝을 뻗어보았다. 하지만 히사히데가 대수롭지 않다는 듯이 논파해버렸다.
“명분은 만들기 나름이라네. 저 카가국에서 설친 일향종 사람들도, 토가시 일족의 한 사람을 허수아비로 세워놨으니 말이야.”
“그, 그런…….”
“아니, 충분히 일리 있는 이야기요, 시정봉행.”
토오루는 반신반의했지만, 마사노부가 히사히데의 말에 무게를 실었다. 그리고는 공장 이전에 관한 건을 다시 질문해왔다.
“하지만 여전히 공장의 이전을 허락한 건, 이해가 가질 않습니다. 하나하나가 족히 이만 석에서 삼만 석에 육박하는 수준이 아닙니까?”
“물론 그렇게 보실 수도 있지만, 어디까지나 전체의 평균을 냈을 때나 그럴 겁니다. 단독으로는 생각하시는 만큼의 가치는 없겠지요.”
이번에는 셋 중에서 가장 신참인 토오루가 마사노부의 우려를 일축했다. 오히려 이런 문제는 그의 영역이었기에 가능한 일일 터였다.
모리 가문이나 미요시 가문의 영지에는 공장의 운영을 뒷받침할만한 기반이 없다.
길도 새로 닦아야 할 것이고, 항만부터 위생시설까지. 사람들을 한데 모아놓자면 어려운 일이 이만저만이 아닐 터였다.
“그 말대로일세. 한동안 미요시 가문이나 모리 가문은 골치 아픈 나날을 보내게 되겠지.”
대신 이 순간을 잘 넘기면, 다이묘가 재벌로 탈바꿈해 있겠지만.
“명색이 동맹인데, 전쟁을 벌일 수는 없잖나. 이런 식으로 군사력을 거세할 수 있으면, 그것도 좋지 않은가.”
아무리 모리가 신의 있는 동맹이고 미요시가 내 입김을 받는 위치라고 해도, 시간이 지나면 그 덩치는 그대로 위협적인 상태로 남을 터였다.
변화의 바람은 외부에서 불어닥치기도 하지만, 내부를 휩쓸 때 훨씬 위력적인 법. 과연 저들은 어떻게 적응할 것인가.
나는 미래에 대한 기대감을 다과 삼아, 찻잔을 기울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