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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고니시라니-140화 (140/225)

140화 도시의 공기(6)

최초의 상호방위협정은 이제 구체적으로 내용을 가다듬은 뒤, ‘나니와 조약’이라는 명칭으로 정립된 일종의 상설 기구로 자리매김해 있었다.

그리고 지금 ‘나니와 조약’에 가입한 무사들이나 혹은 그 대리인들이 사카이 쿠보의 소집에 응해, 회의실을 가득 채우고 있었다.

거기에 참관인 자격으로 동석한 모리, 미요시, 도쿠가와까지 각자 한 자리를 차지한 상태였다.

“쿠보께선 또 무슨 일로 이리 사람들을 불러 모으신 겐가?”

“글쎄……. 딱히 들은 이야기가 없어서 말일세. 나니와에 들어와 있는 가족들조차도 영 모르겠다는 눈치고.”

대부분의 참석자들은 어떤 일이 벌어질지 모르고 있었으나, 두뇌가 민첩하게 돌아가는 몇몇은 무슨 안건으로 모인 것인지 짐작하기도 했다.

“특허라는 신법을 공표하셨다지? 그렇다면 우리에게도 그걸 말씀하시려는 게 아니겠나.”

“하지만 고작 그런 것만으로 모두 불러 모은단 말인가. 영지에서 여기까지 오가는 것도 상당한 일인데.”

“겸사겸사가 아닐까 싶으이. 몸이 멀어지면 마음도 멀어진다 하지 않던가. 그러니 앞으로도 자주 소집하실 가능성이 적지 않겠지.”

이런 식으로 친근한 사람들끼리 쑥덕거리는가 하면, 눈에 불똥을 튀겨 가며 서로 노려보는 자들도 있었다.

“오, 이게 누구신가. 주가(主家)를 등지고 떠난 외도(外道)가 와 있었군.”

“가신을 지켜주지도 못하는 주군이 어디 주군이던가?”

“뭐라고!”

지역별로 좌석을 배정하다 보니 생긴 일이었다.

오다 노부카츠가 선례를 만든 이후, 대가문 산하에 있던 가신들 중 상당수가 소속을 이탈하여 독자적인 행보를 걷기 시작했다.

먼저 독립을 선언하고 곧바로 고니시 유키나가에게 협정의 이행을 요청하면, 옛 주군이었던 자들은 손 놓고 보고 있을 수밖에 없었던 것이다.

물론 반발이 없지는 않았으나, 들고 일어선 자는 처참한 말로를 맞이해야만 했다.

*       *       *

“야고로, 그자가 감히!”

아사쿠라 카게키라. 가문의 당주인 요시카게의 사촌인 그에게도, 석고가 일만 석을 넘는 가신이 몇 있었다. 그리고 그중 하나인 누쿠이 야고로가 독립을 선언했다.

“군대를 소집하라! 우리 가문의 은혜를 저버린 개새끼를 처단할 것이다.”

“하, 하지만 주군, 그도 ‘조약’에 가입한 자입니다.”

카게키라와는 달리, 그의 부하들은 아직 이성을 잃지는 않았다. 그들이 보기에, 주군의 결정은 위태롭기 짝이 없었다.

그러나 이미 눈이 돌아간 카게키라는 기어이 협정의 파기를 선언했다.

“고니시 유키나가, 그자의 위세가 아무리 하늘을 찌른다 해도 배신자를 도울 수는 없는 것이다! 가문의 영지가 산산조각 나는데, 그깟 협정이 뭐가 대수란 말이냐?”

카게키라의 군대는 빠르게 소집을 끝냈다. 그리고 누쿠이 야고로가 숨은 도바시 성으로 진격을 개시했다.

그러나 천하에는 카게키라와 야고로, 유키나가만 있는 것이 아니었다.

아사쿠라 카게키라의 협정 파기 선언과 출병이 알려지면서, 인근의 무사들도 신속하게 군대를 끌어 모았다.

“요-시, 그란도 시즌이다!”

누가 외쳤는지는 알 수 없으나, 근래 들어 유행하고 있는 남만의 풍속이 반영된 외침 한마디가 이 상황을 대변했다.

한때 오다 가문을 섬겼던 엔도 요시타카와 안도 사다하루, 그리고 얼마 전 사카이 쿠보에게 반발했던 이나바 사다미치까지.

모두가 먹음직스러운 고깃덩이를 물어뜯기 위해, 군대를 출격시켰다.

스모토에서 고니시 유키나가가 전말을 들었을 때는, 이미 카게키라가 역으로 자신의 본거지인 오노 성에 갇힌 뒤였다.

카게키라를 제외한 나머지 아사쿠라 가문의 혈족들은 움직이지 않은 상태였고, 거기에 유키나가의 경고가 더해지니 아무 것도 할 수 없는 처지가 되고 말았다.

결국 카게키라의 영지는 마을 단위로 갈기갈기 찢어져 다른 무사들의 차지가 되었다.

*       *       *

이런 식으로 사례가 하나둘 쌓이면서, 고니시 유키나가를 적대시한다는 건 불가능해진 상태였다.

하지만 그렇게 앙금이 생긴 무사들끼리의 원혐은 쉽게 사라지지 않았다.

서로 치를 떠는 사람들이 한데 모이게 되었으니, 분위기가 좋을 수 없는 건 당연한 일이었다.

그나마 여기에 들어오려면 날붙이를 몽땅 맡기고 들어와야 했기에, 칼부림이 일어나지는 않았다.

이제 슬슬 모두가 지루해할 때쯤, 고니시 유키나가가 들어왔다.

*       *       *

나는 특허에 관해 간단히 설명했다.

“그렇다면 등록된 특허를 침해하면 처벌을 받게 된다는 말씀이십니까?”

“그렇네. 하지만 본인이 유익한 신기술을 등록한다면, 오히려 사용료를 받을 수 있게 되는 것일세.”

하지만 참석자 대부분이 그 중요성은 인지하지 못한 눈치였고, 단지 새로운 법으로 받아들이는 듯했다.

그나마 몇몇은 자신들에게 어떠한 이익이 생길지 계산하는 눈치였다.

하지만 여기 모인 자들은 대부분이 단순한 무골. 하라면 하고 하지 말라면 하지 않는 것에 더 익숙한 자들이었다.

어차피 내 입장에서는 그 정도로 이해하면 충분한 일이었기에, 다음 주제를 꺼냈다.

“지금 아와지에는 노동력이 필요하다. 하여 들어와 일할 사람을 모집하고자 한다.”

이미 이나바 사다미치를 비롯한 무사들이 노동력 유출 문제로 반발한 적이 있었다. 그때 상경했던 무사들이 가장 먼저 의문을 제기했다.

“쿠보, 일전에 분명 저희들의 사정을 헤아려 주시기로 하지 않으셨습니까? 하온데 어찌하여…….”

“물론 그 약속은 지켜질 것이네. 몰래 농지를 이탈하는 것을 방조하는 게 아니라, 정식으로 자네들과 계약을 맺고자 함일세.”

내 말을 들은 무사들은 웅성거렸다.

“자네들에게는 수수료를 지급하고, 일하러 올 농민들에게는 적당한 노임을 쳐주겠다는 이야기네.”

공장주들은 노예를 떠올렸지만 결국 그들은 이방인에 불과할 터. 최소한의 언어와 기물을 작동하는 방식을 가르치는 것도 일이고 비용이 될 수밖에 없었다.

그렇다면 적어도 처음부터 말이 통할 만한 사람들을 불러오는 게 순리가 아니겠는가 말이다.

현대에서도 부유한 나라가 빈국에서 일할 사람을 모집하는 경우는 비일비재했다.

당장 파독 광부와 간호사들이 그러했고, 산업연수생 제도라는 것 역시 마찬가지가 아니던가.

물론 노예를 들여오는 것도 그렇게까지 나쁜 선택은 아니었다. 적절한 시기에 법을 바꾸는 식으로 대응하면 그만이니.

하지만 어쨌든 진통이 없을 수는 없을 터, 나은 방법이 있다면 그걸 고르는 편이 낫지 않겠는가 말이다.

지금 아와지국에서 노동력의 수요가 올라가는 현상도, 장기적으로는 일시적 현상에 지나지 않을 터였다.

시장이 안정되면 수요와 공급도 서서히 일치하게 될 것이다. 그때가 오면 오히려 잔뜩 끌어 모았던 노동력이 처치곤란이 될 가능성도 없지 않았다.

그러니 장기적으로 부작용을 가져올 노예제보다는 신축성 있게 노동력을 수급할 수 있는 방식이 더 나을 터였다.

“그렇다면 이 경우는 일전의 합의에서 예외가 되는 겁니까?”

누군가가 손을 들어 발언권을 얻은 뒤, 그렇게 질문해왔다. 거기에 나는 고개를 끄덕여 긍정의 뜻을 표했다.

농민이 자기 소속을 옮기려면 꼬박 한 달을 숨어 지내야 한다. 그것이 이전에 무사들과 새로 약정한 내용이었다.

하지만 일하러 오는 사람이 한 달 이내로 다녀갈 수는 없는 법, 당연히 이 규정을 그대로 적용시켰다가는 누구도 보내려 하지 않을 터였다.

“그대들과 정식으로 계약을 체결해서 보내오는 농민들은 당연히 예외가 될 것일세.”

그렇게 불안 요소를 해명했지만, 여전히 무사들은 꺼림칙한 기색을 감추지 못했다. 그런 중에도 몇몇은 용기 있게 나섰다.

“쿠보의 말씀을 들어서 손해난 적이 없었으니, 이번에도 따르고자 합니다.”

다테 마사미치였다.

협정의 이용도 그렇고, 상당히 적극적인 모습을 보이고 있었다. 그리고 그 뒤를 따라 아시나 가문과 모가미 가문의 대표가 동의의 뜻을 드러냈다.

역시 신체제를 가장 먼저 활용한 자들의 행보였다.

그렇게 총대를 메고 나선 사람들이 나오자, 긍정적인 시선이 조금씩 늘어나는 듯했다.

“좋네. 내 제안을 따를 사람들은 스모토의 치소로 대리인을 보내도록 하게.”

*       *       *

“노동자를 원한다라…….”

모리 테루모토는 원래 본인이 직접 참관하려 했다.

하지만 뜻하지 않게 풍랑을 만나, 약간 늦게 나니와에 들어왔다. 그러나 일족 중 하나가 대리인으로 참석해 있었고, 자세한 내용을 빠짐없이 가주에게 알렸다.

“그리 나쁜 이야기는 아닌 듯한데, 영 마음에 들지는 않는단 말이지.”

테루모토는 연신 자신의 턱을 쓰다듬었다.

새 시대에 적응하려면, 모리 가문 역시 군대를 줄이고 돈을 벌어야 했다. 그러니 아와지로 노동자를 보내고 수수료를 받는다면, 역시 이익이 상당할 터였다.

하지만 그 제안을 덥석 받아들이자니, 마음 한 구석에서 찜찜함이 경종을 울리고 있었다.

혼자서 한참을 고민하고 있는데, 손님 한 사람이 모리 저택의 문을 두드렸다.

“시코쿠 간레이께서 우마노카미를 뵙고 싶다 합니다. 어찌 할까요?”

“시코쿠 간레이?”

방문객은 미요시 마사야스, 모리 테루모토와 마찬가지로 고니시 유키나가에게 특례를 인정받은 동맹이 방문했다는 이야기였다.

무슨 일로 모리 저택을 찾은 것인지는 알 수 없지만, 방문을 거절할 이유는 없었다.

“들어오시라 해라.”

테루모토는 하인을 시켜 다실을 정리하고, 손님을 맞이하게 했다. 준비가 끝난 뒤, 마사야스가 들어왔다.

“우마노카미께서 입성하셨다기에, 얼굴이나 보자고 왔소.”

“잘 오셨소. 그렇잖아도 나 역시 간레이를 한번 만나고 싶었소이다.”

주객이 서로 자리를 정해 인사를 나눈 뒤, 마사야스가 먼저 용건을 꺼냈다.

“좋은 이야기가 하나 있는데, 아무래도 나 혼자서는 다소 부담스러워서 말이오.”

“쿠보 때문입니까?”

테루모토의 질문에 마사야스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고 본론을 이야기했다.

“우마노카미께서도 아시는 바겠지만, 아와지국에는 공장과 그걸 경영하는 상인들이 무척이나 많소.”

“나 또한 그리 들었소. 게다가 이번에 나니와 조약에 가입한 무사들을 소집한 이유 역시 그와 무관하지 않다고 들었소이다.”

“그런데 공장주 중 몇몇이 시코쿠로 자신의 사업장을 이전하고 싶다고 하더구려.”

여기까지 들은 테루모토는 마사야스가 어째서 자신을 찾아왔는지 알아차렸다.

아와지국의 공장이 사카이 쿠보의 막대한 세입원이라는 사실은 익히 알려져 있었다. 그러니 고니시 유키나가가 반길 리 없는 이야기일 터였다.

마사야스가 테루모토를 찾아온 목적은, 결국 정치적 부담을 나눠서 지자는 제안을 하기 위함이었다.

“쿠보께서 싫어하실 일이라 생각되오만…….”

“하지만 이는 쿠보께도 그리 나쁜 이야기는 아닐 것이오. 사람이 움직이나 일터가 움직이나 근본적인 이치는 같은 게 아니겠소이까?”

나름대로 일리는 있었지만, 테루모토가 보기에는 결국 궤변에 지나지 않았다. 당연히 거절해야 할 제안이었다.

그러나 마사야스가 한숨을 푹 내쉬며 입을 열자, 일단 들어보기로 했다.

“우마노카미께서는 지금의 천하를 어찌 보고 계시오?”

“그야 당연히 난세가 끝나 평화를 누릴 때가 되지 않았소이까.”

“내가 너무 큰 범위를 말했구려. 조금 시야를 좁혀서, 모리 가문의 영지는 어떻소이까?”

천하는 안정되었다. 하지만 모리 가문의 영지는 어떠한가. 이러한 질문에 테루모토는 얼른 답을 내놓지 못했다.

주인이 생각에 잠긴 사이, 손님이 먼저 입을 열었다.

“나는 나니와 조약에 가입하지 않은 우리의 영지가, 오히려 뒤쳐지고 있다고 생각하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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