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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고니시라니-139화 (139/225)

139화 도시의 공기(5)

수요와 공급의 법칙은 어디에나 통용된다. 인력 또한 마찬가지. 공장이 노동력을 필요로 하는 만큼, 노임도 상승할 수밖에 없었다.

물론 통치자의 입장에서는 이쪽이 훨씬 나았다.

한 사람의 은화 천 닢보다는 열 사람의 은화 백 닢이 더 활발하게 움직이지 않던가.

그런 점에서 노예의 대량 도입은 언 발에 오줌 누기 정도는 되어도, 내가 원하는 방향은 아니었다.

갓 흘러들어온 뜨내기의 한 달 치 노임은 약 은화 스무 닢 전후. 옛날에 비하면 열 배, 스무 배 오른 셈이다.

물가를 감안하면 예나 지금이나 실질적인 가치는 별 차이가 없긴 하지만.

노예는 그 자체로 최초 비용이 발생한다. 그리고 어쨌거나 최소한의 먹이고 입히는 것 역시 공짜는 아니다. 공장을 경영하는 입장에서는 단지 멋대로 휘두르기 좋다는 점에서 나은 것일 뿐인데, 차후에 생겨날 부작용은 상당히 큰 편이다.

왕권이 좀 커졌다 싶으면 바로 노비 문제에 손 댄 이유도 다 이런 것에서 기인하는 것이다.

물론 이쪽은 농민의 토지 이탈과 세수의 감소와 관련된 문제지만, 노예는 존재 자체로 인건비에도 악영향을 미친다.

하지만 역시 세금은 모두가 싫어하는 것. 내 이야기를 듣자마자 방문객들은 하나같이 난색을 표했다.

“한 해에 백 닢의 세금을 매기겠다고 하시는 건, 조금…….”

하지만 아직까지 벌어지지 않은 일을 가지고 미리 말할 수는 없는 노릇, 나는 다른 이유를 댔다.

“노예들이 들어오면, 그거로 끝날 문제인가? 나 역시 이 땅의 통치자로서 마땅히 관리감독을 해야 하니, 그에 따르는 비용이라 말했네.”

“명이나 조선에서 들어오는 노예도 금지된 판에, 멀리서 들여오는 비용도 생각을 좀 해주시면…….”

조선은 아예 왕실이 교역에 직접 나서고 있으니, 이쪽으로서도 나름대로 성의를 보이는 차원에서 족족 송환하고 있다.

명의 경우에는 알아서 만력제가 태업을 해주고 있는 상황이다. 역시 자극하지 않는 차원에 심유경의 입지도 올려줄 겸해서, 명나라 해적과 그들이 주관하는 노예 매매를 적극 단속하는 중이었다.

저들도 가까운 곳에서 노예를 수급할 길이 막혔으니, 아프리카까지 손을 뻗으려 한 것일 터였다. 하지만 지나칠 정도로 잔머리를 굴리려는 모양새가 보기에 좋지 않았다.

“그런 것들까지 신경써줘야 하나? 자네들이야말로 지나칠 정도로 내 입장을 생각하지 않고 있잖나.”

“그래도 노예가 들어오면 곧 저희들의 재신이 되는데, 어련히 알아서 잘 관리하겠습니까.”

어련히 알아서 잘. 그게 안된 사례가 좀 있지.

“자네들이 기억하는지는 모르겠네만, 예전에 공장주들에게 번거로운 부분을 맡겨놓았다가 크게 데일 뻔한 적이 있었다네.”

마침 찾아온 사람들을 둘러보니, 당시에도 공장을 경영했던 장본인이거나 혹은 그 일족인 자들이 몇몇 있었다.

“지금이야 경비대는 전적으로 내가 고용하는 형식이지만, 아직 사카이에 머무르던 시절에는 각 공장주들이 각자 편성하는 구조였지.”

“그건 무력과 관련된 문제가 아닙니까. 그리고 지금은 말씀하셨다시피…….”

“그리고 시민들에 관한 문제도 그러했지. 내가 신경 쓰지 못하고 있는 사이에, 무슨 일이 벌어졌던가?”

어떻게든 틈새를 비집고 들어오려던 공장주들은 입을 다물었다.

지금도 그렇지만, 전에도 인구 유입은 절실한 문제였다.

최대한 좋은 환경을 조성해서 사람들이 찾아오게끔 만들어두려 했더니, 그 중간 단계에서 공장주들의 배만 불려놓지 않았던가.

“내가 자네들에게 청렴을 요구하진 않을 걸세. 그건 자네들의 역할이 아니니까. 하지만 탐욕을 위해서 선을 넘지는 말게.”

“하지만 쿠보, 저희들이 내는 세금도 막대하지 않습니까. 그럼에도 불구하고 쿠보께서는 저희들을 옥죄기만 하십니다.”

“정말 그렇게 생각하나?”

“아닙니까?”

나름대로 기회라고 생각했는지, 그 길이 좁혀지자 발버둥치는 모양새였다. 하지만 내 눈에는 추태에 불과했다. 실소를 막기가 어려울 정도의.

“뭘 했기에? 물론 돈을 들여서 공장을 세우는 일은 중요하지. 하지만 방식 면에서 어떤 개선이 있었다는 이야기는 그다지 들어보질 못했군.”

“그게 중요합니까?”

“중요하다마다. 내가 어릴 적에 직조와 관련된 기물을 내놓았지. 그리고 상당한 발전을 기대했건만, 그때와 크게 다르지 않잖나. 그러고도 뭘 했다고 이야기할 수 있는가?”

아주 발전이 없는 것은 아니었다. 하지만 근본적인 틀 자체는 그때를 벗어나지 못한 상태였다.

“그거야 어쩔 수 없는 일이 아닙니까. 지금은 그때와는 많이 다릅니다.”

“어떤 점에서?”

내 질문을 받자, 마츠야 준케이는 억울하다는 듯이 입을 열었다.

“당시의 쿠보께서는 동업자들을 모아서 압도적인 금력으로 앞서 나가셨습니다마는, 저희들은 그렇지가 못합니다.”

“말해보게.”

“저희들이 지금은 한 마음으로 쿠보를 찾아뵈었지만, 사실 여기 있는 사람들끼리도 서로 경쟁이 없을 수는 없습니다.”

맞는 말이었기에, 나는 고개를 끄덕이며 다음 말을 재촉했다.

“그런데 새로운 방식을 고안해봐야, 다른 이들이 베껴가기만 합니다.”

그리고 수중에 자본을 많이 들고 있는 사람이 개선된 설비를 늘려버리면, 되려 밀려버리게 된다.

마츠야 준케이는 반쯤 하소연을 섞어서 그렇게 말했다.

역시 일리가 있는 이야기였다. 한동안 다른 다이묘들을 상대하느라, 내정에 대한 관심을 최소화한 대가인 듯했다.

방문객들을 둘러보니, 준케이의 말에 동조하는 사람이 반 정도였고, 살짝 인상을 찌푸리며 불편한 기색을 감추지 못하는 사람이 또 반쯤 되었다.

공장주들 사이에서도 들고 있는 총알의 수량에 따라서 입장이 다르다는 이야기일 터였다.

“그렇군. 이야기는 잘 들었네. 좀 아쉽군. 그런 분쟁이 생길 만한 일에 나를 찾아오지 않다니.”

“그야…….”

준케이는 말꼬리를 흐렸지만, 무슨 말이 생략되었을지 대강 짐작할 수 있었다.

내가 상인 집안 출신이라고는 해도, 이제는 저들을 통치하는 입장. 그리고 일본의 상인 계층이 통치자를 보는 시선은 가히 트라우마라고 해도 과언이 아닐 터였다.

게다가 에고슈를 해산시키고 찍어 누른 적도 없지 않았으니, 날 방문하는 일이 아주 속편하지는 않았을 가능성이 높았다.

“어쨌든 잘 알겠네. 하지만 노예에 관한 문제는 말을 번복하지 않을 걸세. 하지만 세상사가 그리 단순하게만 돌아가진 않는 법이지.”

“그건 또 무슨 말씀이십니까?”

“들여와 보면 알 걸세. 그리고 새로운 발상을 보호하는 문제는 조만간 다시 자리를 마련하도록 하지.”

*       *       *

에고슈는 이미 해산한지 오래다. 그리고 다른 새로운 기구를 설립해야 할 이유는 느끼지 못했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논의를 할 창구가 없는 것도 아니었다.

지난 공장주들과의 회동 이후, 한 달의 간격을 두고 다시 동양 무역회사의 주주들을 불러 모았다.

“여러분들에게 드릴 말씀이 있어, 임시 총회를 열었습니다.”

‘동무’는 표면적으로는 단순한 돈벌이 수단에 불과했지만, 나름대로 그 영향권이 상당히 넓었다.

스모토와 아와지, 그리고 동맹을 맺은 다이묘들의 영지를 넘어서 조선과 대만, 필리핀까지. 이 일대에서 크게 장사를 벌인다는 사람치고, 주주 아닌 자가 드물었다.

“공방은 무슨 고견이 있어서 이리 자리를 마련했는가?”

하성군이 가장 먼저 질문을 던져왔다.

대체로 주주총회에서는 혈족이나 동업자 등 대리인의 참석이 가능했다. 특히 조선은 시작부터 쓰시마 도주를 대리인으로 세운 상태였다.

하지만 이번 논의는 대리인을 세웠다가 나중에 다른 말이 나올 수도 있었기에, 무조건 당사자가 직접 오도록 했다.

이게 조선의 종친까지 참석한 이유였다.

나는 좌중을 둘러본 뒤, 용건을 꺼내들었다.

“세상에는 소위 비법이라는 게 있습니다. 오랫동안 업을 쌓아온 장인일수록 남들이 알지 못하는 자신만의 지식이 있는 법이지요.”

그러나 그 지식은 아직까지 보호의 대상이 되지 못했다. 그렇기에 비법을 지닌 사람들은 안으로 꽁꽁 숨겨두기만 할 뿐, 밖으로 드러내려 하지 않는다. 그런 이야기를 하자, 참석자 중 상당수가 고개를 끄덕였다.

“하여, 저는 그러한 지식을 고안해낸 사람을 위해, 일정한 권리를 설정하고자 합니다.”

내 이야기가 끝나자, 유럽에서 온 상인 중 한 사람이 질문을 던졌다.

“혹시 특허를 말씀하시는지요?”

“바로 보았네.”

역시 관련 경험이 있는 자들은 곧바로 내 말을 알아들었다.

특허에 관한 최초의 법령은 베네치아에서 나왔고, 개념 자체는 그보다 약간 전에 잉글랜드에서 나왔다고 했던가.

질문자 역시 잉글랜드인으로 추정되는 외양을 지닌 듯했다.

“그렇다면 새로운 방식을 고안해낸 사람 외에는 그 방식을 쓰지 못하게 막는 것이 되겠군요.”

“내 생각은 조금 다르네.”

물론 최초의 특허는 그런 식으로 진행되기는 했다.

왕이 발명자에게 독점적 권리를 허락하고 다른 사람들의 사용은 금하는 것. 원시적인 특허는 이런 방식으로 정해졌다.

하지만 나는 발전을 촉진하고 최대한 확산시키는 것이 목적이었기에, 독점적 권리 부여보다는 사용료 지급의 관점으로 접근할 생각이었다.

“독점적인 사용도 나쁘진 않겠지. 하지만 사용료를 받고 일반적으로 허용하는 편이, 발명한 사람 본인에게나 사회적으로나 더 도움이 되지 않겠나.”

물론 이 체제가 돌아가도록 관리하는 건 상당한 품이 들어갈 터였다. 하지만 주주들을 불러 모으는 동안 검토한 바에 의하면, 충분히 가능한 일이기도 했다.

세금의 규모나 항목은 이미 충분히 복잡했고, 이걸 토대로 사용료를 책정하면 그만이었기 때문이다.

회의장은 잠시 조용해졌다.

내 제안이 어떤 결과를 가져올지, 자신들은 어떤 이익을 볼지, 그리고 어떻게 행동해야 할지 생각하려면 충분한 시간이 필요할 터였다.

그리고 이 적막을 가장 먼저 깬 사람은 바로 하성군이었다.

“미안하네만, 나는 이해가 잘 되지 않아서 몇 가지 묻고 싶군.”

“말씀하시지요.”

“새로운 발상이라는 것은 그 자체로 세상을 이롭게 하는 것이 아닌가. 그런데 어찌하여 소인배의 기준으로 법도를 정하려 하는 것인지 이해가 되지 않네.”

역시 성리학을 익힌 조선의 사대부다운 질문이었다.

그래도 왜관에서의 교역을 주관하고, 스모토를 다녀가면서 생각이 많이 바뀐 것 같았는데, 역시 기본적인 틀 자체는 아직 변함이 없는 듯했다.

“혹시 제가 올렸던 말씀을 기억하시는지요. 사람들은 욕망을 지닌 존재이고, 모두가 대인군자가 될 수는 없습니다.”

“그리고 모두가 이익을 추구하는 것으로 오히려 공동의 발전을 이끌어낼 수 있다 하였지. 특허라는 것 또한 그런 제도인 것인가?”

“그렇습니다.”

내 답을 들은 하성군은 다시 생각에 잠겼다.

조선의 종친과 문답을 나누는 동안, 다른 참석자들이 새로운 의문을 제기해왔다.

“그런 이야기를 총회에서 말씀하신 걸 보면, 특허가 작용하는 범위를 상당히 넓히시려는 것으로 보입니다. 하지만 그렇게 하려면 관리가 곤란할 것인데, 어찌하실 생각이십니까?”

“여기 계신 분들이 모두 동의하신다면, 각 지역에 특허를 관리할 기구를 설치하고 전권대사를 파견하게 할 생각이외다.”

여기 스모토에 새로 얻은 하카타, 그리고 조선을 담당할 부산포, 유럽인들을 담당할 루손. 이렇게 네 군데를 염두에 둔 상태였다.

차후에 더 늘어날지도 모르지만, 당장 이 정도면 충분히 각지의 특허를 관리할 수 있을 듯했다.

하성군이 자신의 생각을 다 정리했는지, 다시 입을 열었다.

“그렇다면 특허에 관련된 규정은 여기 모인 사람들이 모두 같은 법령으로 지켜야겠군.”

“옳게 보셨습니다.”

“내가 보기에는 상당히 좋은 이야기이네만, 나라의 법과 관련된 문제는 내 선에서 처리할 수 없다네. 아마 다른 이들도 사정은 비슷하겠지.”

그것만으로도 충분히 긍정적인 반응이라 할만 했다.

“당연한 말씀입니다. 그러니 오늘은 충분히 설명하는 자리로 국한하고, 다음 총회 때 결정하도록 하지요.”

동양 무역회사의 임시 주주총회는 다시 한 달을 기약하고 파했다. 그리고 조선에서도, 포르투갈의 필리핀 총독부에서도, 모두 동의의 뜻을 보내왔다.

현재 일본의 질서를 지탱하는 양대 축 중 하나에서의 이야기를 마무리한 뒤, 나는 다시 협정을 체결한 무사들을 소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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