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38화 도시의 공기(4)
동양 무역회사의 주주총회가 열렸다.
“이제 표결을 시작하지요. 첫 번째 안건입니다. 선박의 신규 건조에 찬성하시는 분들은 자신의 패를 들어주시기 바랍니다.”
사회자의 요구에 따라, 참석자들이 자신의 의사를 표시했다.
이번에는 구체적으로 셀 필요조차 없었다. 포르투갈 상인들을 제외한 모든 주주들이 일제히 자신의 패를 치켜들었다.
“선박의 신규 건조에 관한 건은 통과되었습니다.”
조선이야 왕실이 공식적으로 무역에 나서고 있는 판이다. 그리고 명의 경우에도 해금령과 그에 따른 단속은 허울에 지나지 않았다.
그러나 그것만으로는 치솟아 오르는 수요에 감당하기가 어려워지고 있었다. 아무리 명이 대국이라고는 하나, 밀무역은 고작해야 절강과 복건, 오문(澳門, 마카오) 등 남중국에 한정된 상태였다.
조선 역시 자국의 물산으로 수요와 공급을 충당하고 있는 상황이었다. 게다가 ‘동무’의 대주주이자 주요 거래처이기도 했기 때문에, 그만한 배려를 할 필요가 있었다.
결국 ‘동무’가 선택할 수 있는 길은 두 가지였다. 이해관계가 맞는 세력을 끌어 모아 북경의 문을 열어젖히거나, 동북아 밖으로 발을 뻗거나.
- 명의 황제가 두문불출하고 있어, 나라꼴이 말이 아니라 합니다. 이 기회에 해금령을 철폐시켜 보면 어떻겠습니까?
포르투갈 상인들은 총회에서 그렇게 사람들을 설득하려 했다. 하지만 최대 주주이자 ‘동무’의 경영자 겸 배후 권력자라고 할 수 있는 고니시 유키나가의 한마디로 기각되었다.
- 거인을 깨울 필요는 없다.
명의 내부 정세가 아무리 혼란에 빠졌다고는 해도, 세계 제일의 덩치가 어디 가지는 않는 법. 원정이면 몰라도 북경 앞바다가 위협받는 상황에서는, 능히 백만을 동원할 저력이 있을 터였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원료의 수급 문제를 방치하고 있을 수는 없는 일이었다.
목면은 목화를, 비단은 생사를, 그 외에도 많은 상품들은 저마다 필요로 하는 재료를 요구했다.
- 그렇다면 상품의 가격을 좀 더 올려야 할지도 모릅니다.
이 같은 반론에 ‘동무’의 대주주는 좀 더 먼 곳을 짚었다.
- 인도에서 수급해 오도록 하지.
그 말을 들은 포르투갈 상인들은 반발하고 나섰다.
인도야말로 그들이 독점적으로 점유하고 있는 돈줄 중의 돈줄. 동양에서 움켜쥐고 있는 마지막 꿀이나 다름없는 존재였다.
하지만 이미 그들은 대형 사고를 친 전적이 있었고, 그 결과로 많은 것들을 내놓아야만 했다. 포르투갈 식민지 내에서 교역할 수 있는 권리 또한 그중 하나였다.
- 인도는 너무 멉니다. 아직 동양 무역회사의 역량으로는 접근하기 버거울 겁니다.
- 갤리온 선단이 있지 않나.
- 고작 그정도로는 스모토에서 원하는 만큼을 충족시키기 어렵지 않겠습니까?
- 그렇다면 배의 숫자를 늘리면 그만이로군.
포르투갈 상인들로서는 자기 꾀에 자기가 넘어간 꼴이었다.
명에서의 판로를 넓혀 보겠다고 ‘동무’를 등에 업으려다, 되레 자신들의 이익을 내주어야 할 판이 되고 만 것이다.
하지만 포르투갈 본국의 사정도 그리 좋은 편은 아니었기에, 그들은 순순히 길을 내주어야만 했다.
그나마 그들 또한 동양 무역회사의 지분을 지닌 주주라는 점에서, 이익금의 일부를 받을 수 있다는 점에 위안을 삼는 것처럼 보였다.
그렇게 가장 중요한 안건이 끝난 뒤에는, 무엇을 가져갈 것이냐가 새로운 논쟁거리가 되었다.
“스모토의 목면은 세계 제일이니, 그걸 가져갑시다.”
“조선에서 가져온 인삼과 호피, 도자기야말로 가장 인기가 아니겠소?”
“그림 종류가 가벼우면서도 비싸게 팔 수 있다고 하더이다.”
여러 상품이 물망에 올랐지만, 궁극적으로는 크게 두 종류의 대립이라고 할 수 있었다.
공산품이냐 사치품이냐.
모두의 입장이 갈린 문제였다. 심지어 남만 상인들조차 저마다 취급하는 상품에 따라 생각을 달리했다.
* * *
“쿠보, 어찌하는 게 좋을까요?”
의외로 난제라고 할 수 있었다.
단순하게 생각하면, 그냥 시세를 따라서 가장 차익이 많이 나는 물목을 가져가면 그만 아니냐고 할 수도 있는 이야기였다.
하지만 현실은 게임이 아니다. 지난번의 정보를 토대로 거래를 준비한다고 해도, 당장 도착했을 때의 시세는 또 다른 문제인 것이다.
그러니 무엇을 가져가느냐는 결국 해당 품목을 취급하는 상인들의 목소리에 따라 달라질 수밖에 없었다.
논쟁을 벌이던 사람들이 일제히 입을 다물고, 시선을 내게 돌렸다. 결국 내게 결정을 맡기겠다는 의미였다. 그 책임도 지라는 뜻도 동봉한 것이었지만.
물론 어려울 건 없는 이야기였다.
“지분에 따라 결정하도록 하지.”
“예? 그게 무슨 말씀이신지…….”
사람들은 내 말을 얼른 알아듣지 못했다. 아직까지 지분에 의한 결정권이라는 건 이들에게 익숙지 않았다.
“가진 지분에 따라서 전체 화물의 비중을 결정하자는 이야기일세.”
여기 모인 사람들은 대부분 할과 푼으로 셈이 가능할 정도의 지분을 가진 주주들이었다. 그러니 거기에 맞춰서 화물칸을 할당하는 건 크게 문제가 되지 않을 터였다.
그렇지 않은 경우는 대체로 이익금의 배당을 기대한 사람들이니, 애써서 그들의 목소리를 반영할 필요는 없었다.
아니, 애초에 그들은 이 안건을 중요하게 여기지 않는 눈치였다. 오히려 지루한 논쟁이 단번에 끝나자, 반기는 기색을 감추지 않았다.
“역시…….”
“깔끔하게 정리가 되는군요.”
참석자들은 모두 내 말에 고개를 끄덕이며 동의의 뜻을 표했다. 자기가 투자한 만큼의 결정권을 지니게 된 셈이었으니, 누구도 불만이 있을 수가 없었다.
가장 중요한 두 가지 안건이 끝나자, 슬슬 총회가 파하는 분위기였다.
“혹시 더 제안하실 게 있으십니까?”
누구도 자신의 패를 들지 않았다. 그걸로 이번의 주주총회는 마무리되었다.
* * *
며칠 뒤, 공장을 경영하는 일족들이 내게 접견을 요청해 왔다. 그중에는 포르투갈 사람도 하나 섞여 있었다.
“쿠보의 덕으로 원료를 수급하는 문제는 해결이 되었습니다마는…….”
“역시 인력이 문제인 모양이군.”
“바로 보셨습니다.”
나 역시 그 문제를 모를 수가 없었다. 협정을 체결했던 무사들이 내게 달려왔던 이유도 결국은 인구 유출에 관한 문제가 아니던가.
지금 아와지, 그리고 그 중심에 있는 스모토는 은과 사람을 블랙홀마냥 빨아들이고 있는 상태였다. 하지만 은은 몰라도, 사람은 여전히 부족했다.
사실 유입을 늘리려고 한다면, 아직 수는 많았다. 다만 그 이후의 부작용이 막대할 것이 문제일 터였다.
“그래, 이렇게 찾아온 걸 보니 인력 문제를 해결할 묘안이라도 있는 모양이구려?”
“방법이야 있습니다마는, 쿠보께서 도움을 주셨으면 해서 말입니다.”
공장주들은 무슨 해법을 들고 왔는지, 본론을 꺼내는 대신 내 눈치를 살폈다.
“편히 말해 보시오.”
“외국에서 노예를 좀 들여오고 싶습니다.”
“노예?”
지금 일본에서는 노예의 숫자가 줄어드는 추세이기는 했다.
이전에 비하면 전쟁도 드물게 되었고, 혼란이 줄면서 히닌(非人 비인, 백정이나 상여꾼을 비롯한 천민을 뜻함.)을 잡아다 노예로 파는 경우도 줄어들고 있었다.
오히려 전체적인 농민의 숫자가 감소하면서, 히닌까지 영지민으로 받아들여 경작을 강요하는 편에 가까웠다.
내가 되묻자, 마츠야 준케이라는 자가 입을 열었다.
“여기 파드리노 공이 말하길, 저 멀리 비주(非洲, 아프리카.)에 피부가 검은 사람들이 사는데 힘이 좋아 노예로 많이 팔린다고 합니다.”
방문객들 사이에 끼어 있는 포르투갈인은 노예상인 모양이었다. 그는 고개를 조아리며, 자신의 이름을 ‘앙헬 데 파드리노’라고 소개했다.
이들은 공장에서 필요로 하는 노동력을 충당하기 위해, 노예를 사들이려는 모양새였다.
“필요하면 사다 쓰면 그만이 아닌가. 굳이 날 찾아올 이유는 없는 듯한데.”
단지 거래가 줄어들었다 뿐이지, 아직 노예 매매를 막는다거나 하는 일은 하지 않았다. 애초에 일본은 노예로 파는 수출국의 입장이었지, 수입국의 입장은 아니었다.
“물론 그렇기야 합니다마는, 외국인을 들여오는 문제인지라…….”
마츠야 준케이는 유별나게 고개를 조아리며, 그렇게 말했다. 그 이야기를 듣고 나서야 저들이 무엇을 신경 쓰는지 감이 오는 것 같았다.
아직은 국가 간의 이동이 그리 자유롭지 않은 시대였다. 게다가 일본이라는 나라는 유독 폐쇄적인 성향이 강했다. 그러니 외부에서 사람이 온다는 것 자체가 그리 받아들여지기 어려운 요소일 수 있었다.
그리고 따지고 보면, 노동력이라는 것은 총을 들려주면 곧 군사력이 될 수도 있는 것. 저들이 권력의 눈치를 보는 건 당연한 일이었다.
“아, 그렇군. 그 문제라면 잠시 생각을 해 봐야겠네.”
“예? 예, 예……. 소인들이 멋대로 할 수는 없는 일이니 말입니다.”
노예를 들여온다는 건, 윤리를 제쳐 놓고서라도 꽤 심각한 이야기가 아닐 수 없었다.
가까스로 맞춰놓은 노임 구조에 악영향이 생길 수도 있을 터, 하지만 당장 급한 인력 문제를 때우기에는 또 노예만 한 것도 없기는 했다.
아프리카에서 노예를 들여오는 문제가 어떤 결과를 가져올 것인가. 장기적인 안목으로 이 문제를 논의할 사람이 마땅히 있는 것은 아니었기에, 결국 내가 열심히 머리를 굴려야 했다.
꼬박 차 한 잔을 비우고, 연거푸 세 잔을 비운 뒤에야 답을 낼 수 있었다.
“지금 내 휘하의 수군이 원래 노예들로 시작했던 거, 혹시 알고 있나?”
“꽤 유명한 이야기가 아닙니까. 하지만 그들은 어디까지나 일본 태생이고…….”
저들의 의도는 이제 명확해졌다.
노예는 일정 기간이 지나면, 그러니까 자기 몸값만큼의 일을 하면 해방되어야 했다. 법령으로 정해진 것은 아니었다. 고니시 수군이 전례를 만든 이래 생겨난, 암묵적인 관례 같은 것이나 마찬가지였다.
몸값이 저렴하다면 당연히 노예로 지내야 하는 기간도 그에 비례할 수밖에 없는 것. 저들은 그 문제를 해결해 달라고 찾아온 것이었다.
단순하게 생각하면 허용하지 못할 것은 아니었지만, 장기적으로 도시에 가져올 폐해는 심각할 터였다.
“말이 통한다면 굳이 출신을 따질 이유가 있겠나?”
“그야 그렇습니다마는…….”
“물론 자네들은 그 비주의 노예들을 데려다가 최대한 길게 써먹고 싶은 것이겠지?”
내가 빙긋 웃으며 그렇게 말하니, 저들도 입꼬리를 올려보였다.
“역시 쿠보께서는 저희들의 마음을 잘 아십니다.”
“그렇다면 외국인 노예에 한해서 법을 조금 달리해 보도록 하지. 해방에 필요한 기간을 좀 늘리고, 우리 말을 쓸 수 있는 정도면 되겠군.”
“감사합니다, 쿠보.”
하지만 내 말은 아직 끝나지 않았다.
“근데 세금은 내게.”
“그야 기꺼이…….”
“해마다 은화 백 닢. 외국인이 들어오는데, 나도 관리를 해야 하지 않겠나. 그에 따르는 비용을 낸다고 생각하게.”
갑자기 조용해졌지만, 그런 와중에 머릿속으로 주판 두드리는 소리만 요란하게 느껴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