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36화 도시의 공기(2)
“농민들이 어째서 이탈한다고 생각하지?”
내 질문을 받은 무사들은 서로의 얼굴만 쳐다보았다. 그렇게 눈치를 살피다가, 애시당초 총대를 맸던 마사미치가 입을 열었다.
“그들이 게으르기 때문입니다.”
“게으르다?”
“그렇습니다.”
귀 기울이는 모습을 보여주자, 사다미치는 거기에 힘을 얻은 듯했다.
“도망치다 잡힌 자들은 세금이 무겁다며 우는 소리를 합니다. 하지만 그건 나약한 자들의 변명에 불과합니다.”
“그 말이 옳습니다. 다른 농민들은 여전히 땀 흘려 농사를 짓는데, 게을러서 꾀를 부리니 소출이 적은 것이지요. 그러고는 세금 탓이나 일삼는 자들입니다.”
나는 턱을 매만지며, 그들의 헛소리를 들었다. 그리고는 한 가지를 질문했다.
“그럼 세율은 얼마나 되나?”
질문을 받은 무사들은 저마다 자기 영지에서 얼마나 걷는지 떠들었다.
“팔 할을 걷습니다.”
“저는 팔 할하고도 닷 푼을 받습니다.”
“요즘 흉년이라 칠 할로 정했습니다.”
“저 역시 칠 할입니다.”
“구 할입니다.”
대체로 칠 할에서 구 할 사이를 언급했다. 그러니까 열 석을 농사지으면 그중에서 일곱 석 내지는 아홉 석을 가져간다는 이야기였다.
이야기를 듣고 나니, 입꼬리가 비틀리는 걸 막을 수가 없었다. 그걸 긍정의 뜻으로 받아들였는지, 내 앞에 앉아 있는 무사들 역시 얼굴에 미소를 띄웠다.
“자네들의 말을 정리해보지. 그러니까……. 자네들은 세금을 칠 할에서 구 할 정도 걷고, 게으른 자들은 그걸 충당하지 못해 도망친다는 이야기로군?”
“바로 그겁니다, 쿠보.”
“그럼 석고는 얼마나 되나?”
나와 협정을 체결하는 최저 기준인 일만 석부터 십만 석까지 다양한 수치가 거론되었다. 이 자리에 참석한 무사들의 석고를 모두 합치면, 족히 백만을 헤아리는 듯했다.
“근데 그렇게 걷어서 뭐에 쓰나?”
“뭐에 쓰냐니요? 당연히…….”
호기롭게 답하려던 사다미치가 도로 입을 다물어버렸다.
애초에 그렇게 높은 세율을 유지하는 이유는 단 하나일 수밖에 없었기 때문이다.
군비. 난세에 자신의 영지를 지키고 남의 영지를 집어삼킬 군대를 유지하는 비용. 그걸 충당하기 위한 세금일 터였다.
백배 양보해서 다테나 아시나 같은 경우라면, 그나마 납득은 할 수 있었다. 내 묵인 아래 동북면을 휘젓고 다니는 중이었으니. 하지만 정작 그런 자들은 이 자리에 참석하지 않았다.
그러니 이들은 입이 열 개라도 할 말이 없을 터였다.
“그리고 듣자하니 이상한 점이 몇 가지 있더군.”
분위기는 싸늘하게 식어 갔고, 누구도 입을 열지 않았다. 그런 가운데 내 목소리만이 나지막하게 장내를 울렸다.
“내 영지로 들어온 자들은 대부분이 유랑민이었지. 자네들의 말대로라면, 게을러서 야반도주한 자들이라는 이야기일세.”
꼴깍.
누가 냈는지는 알 수 없지만, 침 넘어가는 소리가 났다. 그러거나 말거나 나는 내 할 말을 계속했다.
“그렇게 게으른 자들이 모였는데, 심지어 세율은 자네들에 비하면 부끄러울 정도로 낮지. 형편이 그러한데, 세입은 얼마나 될 거 같나?”
사다미치와 그를 따라온 자들은 다른 의미로 고개를 들지 못하고 있었다.
구체적인 수치를 언급하지 않아도, 실질적으로 운용하고 있는 군대로 짐작이 가능한 영역일 터였다.
“지금 자네들이 하는 말이 이치에 맞는다고 생각하나?”
“하, 하지만 쿠보, 부디 자비를…….”
이제는 아예 사형 선고라도 받은 듯한 모습이었다. 하지만 이 자리에서 모조리 숨통을 끊어놓는다면, 기껏 사그러든 난세의 불씨가 다시 활활 타오를 가능성이 적지 않았다.
피할 곳 없는 도적은 쫓지 말라는 말이 있다. 달리 말하면, 궁지에 몰린 쥐는 고양이를 문다는 속담과도 통하는 이야기였다.
나 역시 이들에게 활로를 넌지시 보여주었다.
“물론 자네들의 처지는 모르는 바가 아니네. 군대라는 거, 사실 어찌 보면 그야말로 자네들의 가족 같은 이들을 모아놓은 집단이 아니던가.”
아랫사람의 입장에서야, 가족이라는 단어에서 뒤쪽 글자에 상당한 강세가 붙기는 하겠지만.
어쨌거나 자신에게 딸린 식솔을 먹여 살리는 일이야말로 다이묘의 중요한 의무가 아니던가.
“쿠, 쿠보의 말이 옳습니다.”
“오랜 세월 제 가문을 섬긴 자들인데 어떻게 바로 내보낼 수가 있겠습니까.”
그 조그만 틈새가 주어지자, 저들은 부리나케 맞장구를 치며 매달렸다. 예상했던 대로의 반응이었다.
“그러니 시일을 좀 두도록 하지. 백성들에게나, 자네들에게나 말이야.”
“어떤 복안이 있으십니까?”
“먼저 백성들에 관한 문제부터 이야기를 하지.”
나는 그렇게 운을 뗀 뒤, 준비된 차를 한 모금 삼켰다.
“한 달. 원래 출신지가 아닌 곳에서 한 달간 머무르면, 이전의 소속과는 상관없이 해당 지역의 주민으로 인정하세.”
반드시 아와지나 스모토, 나니와쿄라고 확정하지 않았다. 그러니 지금 내게 항의하러 온 무사들끼리도 농민 유치 경쟁을 벌이게 될 터였다.
물론 회유보다는 강압이 손쉬운 법이니, 납치 따위의 수단을 동원할지도 모른다. 하지만 그런 일이 현실로 나타난다면, 그때 가서 본보기 하나를 만들어 버리면 그만이 아니겠는가.
무사들은 의외로 선선히 내 제안을 받아들였다.
아마 유럽의 귀족들이었다면 일 년하고도 하루를 한 달로 줄였다고 펄펄 뛰겠지만, 이들은 외국의 사정에 밝은 편이 아니었다.
그러니 한 달이면 충분하다고 생각하는 듯했다. 아마 나중에 후회할지도 모르지만, 그거야 내가 신경 쓸 바는 아니지 않은가.
“그리고 자네들이 보유한 군대 말이네만.”
“말씀하십시오.”
나는 이나바 사다미치와 그를 따라온 무사들에게 손을 활짝 펴보였다.
“앞으로 오 년. 오 년의 유예 기간을 주겠네. 수하들에게 생업을 마련해 주기에는 충분한 시간이겠지?”
만약 저들이 당장 가신단을 축소하고 잉여병력을 해산시켜 버린다면, 문제가 일어날 가능성이 상당히 높았다.
낭인은 특별한 원인이 있어야만 생겨나는 게 아니었다. 번듯한 주군과 영지, 봉록을 지닌 무사가 그 모든 걸 잃어버리면, 그게 곧 낭인이다.
칼밥 깨나 먹은 떠돌이는 여러모로 위험한 존재였고, 특히 상행에 막대한 지장을 초래할 터였다.
그걸 막기 위해서 다소간의 완충 장치를 제시한 것이다.
“오 년은 조금 짧…….”
눈치 없는 누군가가 그나마도 뻗대 보려 했다. 하지만 다른 무사들이 알아서 눈빛을 모아 그 입을 다물게 만들었다.
“물론 감당할 자신이 있으면, 계속 지금 상태를 유지해도 될 걸세. 하지만 남들은 유복하게 지내는데, 거지꼴로 지내면서 위신도 세우지 못하는 그런 처지가 되고 싶은가?”
- 아닙니다!
무사들의 합창이 한 목소리로 장내를 울렸다.
“그럼 이야기는 끝난 셈이군.”
* * *
사부로가 탄 배는 오미나토를 떠나 세토 해 초입에 접어들었다. 아와지 섬이 보이는 가운데, 순찰 함대가 그들을 검문하러 접근했다.
“어디서 왔소?”
의례적인 질문이었다. 하지만 불성실하게 답할 경우, 곧바로 과녁 신세가 될 수도 있었다.
다나카 상회의 도방은 공손하게 상행 경로를 말했다.
“오미나토, 오다와라를 경유해서 오슈의 쿠로카와까지 갔다가 역순으로 돌아오는 길입니다.”
“혹시 이주를 원하는 자들이 있소이까?”
“모두 열다섯 명이 선단 전체에 나눠 탄 상탭니다.”
순찰선에서 병사 다섯 명이 더 건너와서는 짐을 확인했다. 그리고 상단에 속한 이들의 통행증을 마저 검사하고, 새로 들어온 사람들의 숫자를 적어갔다.
멀어지는 순찰 함대를 바라보면서, 상단 심부름꾼 아이 하나가 사환에게 질문을 던졌다.
“어르신, 어째서 밀항자들의 숫자를 확인하는 겁니까? 어차피 항구에 도착하면 어련히 치소를 찾아갈 텐데 말입니다.”
검문의 의미는 물건이 아니라 사람에 있었다. 이 사환도 거기까지는 알고 있었지만, 구체적인 이유는 모르는 눈치였다.
“내가 전에 듣기로는, 노예 거래를 막기 위해서라고 하더구나.”
“노예 거래요? 노예 거래가 금지는 아니잖습니까.”
소년은 사부로의 말을 알아듣지 못했다.
아직도 스모토 한구석에는 노예 시장이 돌아가고 있었다. 거래하거나 소유하는 것 역시 금지되지 않았다.
“그렇지. 우리 법에, 합법적으로 잡혀온 노예와 불법적으로 끌려온 노예는 엄히 구분되고 있지.”
몸값을 내지 못한 전쟁 포로는 그대로 노예가 되었다. 그리고 외부에서부터 노예였던 사람들 역시 마찬가지였다. 그러나 애초에 양민이었던 사람들을 붙잡아다 노예로 팔다 걸릴 경우, 엄격한 처벌을 받았다.
“혹여 운이 좋은 밀항자는 스모토에 연고가 있을지도 모르지. 하지만 대개는 맨 몸으로 어떻게든 살아 보겠다고 오는 사람들이야.”
그리고 의지가지없는 외로운 신세는 범죄의 표적이 되기도 쉬운 법이다. 지금 그들이 거친 검문은 그같은 불상사를 막기 위한 최소한의 안전장치였다.
“물론 한 가지 이유가 더 있지.”
선원 하나가 둘의 대화에 끼어들었다. 상단에 들어온 지 얼마 되지 않는 자였는데, 워낙 특색이 없어서 사부로는 아직도 그가 익숙하지 않았다.
“밀항자 모두가 선량한 사람들은 아니야.”
“범죄자일 수도 있겠네요.”
심부름꾼 아이가 한 가지 가능성을 제시했지만, 선원은 고개를 내저었다.
“흠, 그럴지도 모르지. 하지만 그건 별로 중요하지 않아.”
“그럼요?”
“쿠보 나으리의 적들이 간자를 밀어 넣는 통로이기도 하지. 그걸 막기 위해서라도 최소한 몇 사람이 드나드는지는 확인을 하는 거란다.”
세 사람이 잡담을 나누는 동안, 배는 어느덧 항만에 거의 진입해 있었다.
항해사와 선원들은 다나카 상회에 할당된 선착장에 배를 댔다. 그리고 그 모든 절차가 끝난 뒤에는 모든 사람들이 부지런히 짐을 내렸다.
그러는 동안, 항구에서 일하는 하급 관원 한 사람이 그들을 찾아왔다.
“여기가 다나카 상회에 속한 배들이오?”
“그렇습니다. 따라오시죠.”
사부로가 처음 돌아왔을 때는, 이러한 방문에 벌벌 떨었다.
상인에게 관료란 지나치게 멀어도, 지나치게 가까워도 좋을 게 없었으니 말이다. 하물며 치안을 맡은 자라면 더더욱 그러했다.
하지만 민망하게도 관원의 목적은 그나 상회의 물목이 아니었다. 밀항자들을 인계받아 치소로 데려가는 것. 그게 입항한 배를 찾는 치안관들의 업무였다.
“이미 전달받으셨겠지만, 모두 열다섯 명입니다.”
“음, 일치하는군.”
관원은 자신이 들고 있는 장부를 확인했다. 그리고 숫자가 맞는 걸 확인하며, 고개를 끄덕였다.
항해사나 상단의 서기 이상인 사람들은 모두 밀항자들의 신변을 책임질 의무가 있었다. 한 명이라도 사라지고 없어질 경우, 간자를 들인 것과 같은 죄로 처벌받았다.
“숫자가 맞는 걸 확인했으니 끝일세.”
“아, 나으리. 저들은 카나메 씨네 공장으로 보내주십쇼.”
밀항자들은 별다른 특기가 있으면 그걸 살릴 수 있는 직업을 알선 받는다.
하지만 대부분은 땅 파먹는 것만 아는 농투성이였고, 그 경우에는 특별한 재주를 필요로 하지 않는 직장에 보내졌다. 공장이나 상회의 심부름꾼 같은 자리가 바로 그런 경우였다.
“자네들은 그쪽하고 협약을 맺은 모양이군. 알겠네. 그리 조처함세.”
치안관은 추가로 몇 가지를 장부에 더 적어 넣은 뒤, 밀항자들을 데리고 배를 떠났다.